[윤재훈의 지구를 걷다㉘] 코카서스 3국을 가다2_ 아제르바이잔의 첫 세계문화유산, 올드시티 바쿠

윤재훈 기자
  • 입력 2020.12.07 12:05
  • 수정 2020.12.19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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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의 첫 세계문화유산, 올드시티 바쿠(Baku)

"땅은 무엇인가
왜 땅에 주인이 있는가?
마음대로 철조망을 넘나드는 저 새가

우리에게 묻는다."

(친철한 코카서스 청년들. 촬영=윤재훈)
(친철한 코카서스 청년들. 촬영=윤재훈)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공항에서 살 수 있는 버스 티켓은 일회용과 충전용 카드 두 종류인데 한 장에 2원씩이며 필요만큼만 충전해 쓴다. 화폐 단위는 엄청 커 1마나트(AZN)가 700원이 넘는 듯하다.

공항버스는 시내 중심가인 <28MAY> 종점에 내려 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바로 옆이 게스트하우스다. 그러나 현지인들에게 주소를 물어도 잘 모른다. 결국에 두 명의 청년들이 얀덱스 앱으로 택시를 불러 태워주고 간다. 중앙아시아를 지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페르시아인 특유의 털복숭이다. 처음에는 약간씩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참 친절했다. 미국이 만들어 놓은 파괴적인 이슬람인은 없다.

근처에 다 온 것 같은데, 기사도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5마낫를 주고 내렸다. 처음에 헤매던 장소로 와 전화를 하니 주인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단 하나의 간판도 없다. 코카서스 나라를 지나는 내내 그랬던 것 같다. 미얀마에서처럼 짐을 들고 3층까지 올라갔다. 그나마 천장이 높아 더위는 덜할 듯하다.

(아제르바이잔 기차역. 촬영=윤재훈)
(아제르바이잔 기차역. 촬영=윤재훈)

대부분 버스들의 종점이 시내의 중심가에 있는 <28 May 매트로 역>과 조지아로 가는 국제열차가 출발하는 기차역 앞에 선다. 바로 옆에는 <28 May 백화점>까지 있어 약속장소나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는데 좋다.

시내는 그리 넓지 않은데, 택시비는 기사 마음대로다. 같은 장소를 10마나트를 부르다가 또 5마나트를 부르기도 한다. 구글 지도를 잘 검색하며 대부분 걸어 다녀도 될 만한 거리다. 요금은 한국과 별 차이는 없어도 배낭여행자들에게는 부담이 되겠다. 여행자에게 바가지를 씌우려고 하는 택시도 있으니, 미리 물어보고 타는 것이 좋다.

바쿠는 무슬림 인이 99%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한 인도에서도 힌두교인이 55%이고, 무슬림이 45%라고 한다. 탄생지에서 마저 불교를 거의 믿지 않으니, 점차 불교는 어디로 갈 것인가. 요즘은 명상에 심취한 서구인들도 만날 수 있으며, 벽안의 스님들까지도 만날 수 있는 시절인연이다. 세계는 이슬람의 인구가 가장 많다고 한다.

모든 것은 그 기근과 인연에 따라 알맞은 땅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니, 우리는 바람 따라 그 길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특히나 동남아권에서 찬란한 황금 붓다문명을 꽃 피우고 있는데, 그것은 소승불교(테라바다, 상좌부불교)이다. 중국이나 한국, 일본, 베트남 등에서는 대승불교(마하상기카, 대중부불교)를 믿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불자들마저 실망시키는 스님들이 가끔 나타나 안타까울 때가 있다. 

(초연결사회. 촬영=윤재훈)
(초연결사회. 촬영=윤재훈)

바야흐로 세상은 인터넷과 스마트 폰의 세상이다. 구글지도와 인터넷의 바다는 우리들의 여행을 너무나 편리하게 해준다. 여행서도 필요 없는 여행, 이제는 어느 나라를 가든 맨 먼저 심(Sim유심칩)카드를 찾게 된다.

4차 혁명의 초연결사회로 진입하는 인류는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크라우드, 인공지능, 5G‘의 세상으로 연결(WWW)되어 있다. 지구촌의 이제 하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갸날프게 퍼득이던 어린 나비의 날개 짓이 중국 앞바다에서는 폭풍우로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빙하가 녹으니 북극곰들이 동족포식을 하고, 살인적인 폭염과 장마, 지진 해일, 메뚜기 떼의 공습 등 세계의 재난은 국경을 넘는다. 갈수록 바이러스들은 강해져 이제 인간을 '자연에서 집 안으로 가두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환경인식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며칠 머무를 텐데, 심카드를 사는 것이 아깝기도 하다. 공항에서는 2기가에 30마나트를 받더니 여기에서는 15마나트다. 아제콜Azercall이 제일 좋다고 하는데, 아재들이 많이 사는지.

(지하철 내부. 조명이 고풍하다. 촬영=윤재훈)
(지하철 내부. 조명이 고풍하다. 촬영=윤재훈)

코카서스 3개국은 모두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독립했다. 오랫동안 소련의 영향을 받아왔던 까닭에 아직도 그때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아제르바이잔의 바쿠는 다르다. 정치체제는 아직도 구소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소련 시절에 만들어진 낡은 건물들은 오일머니의 힘으로 지워버린 지 오래다.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으며 조로아스터교와 사산 왕조, 아랍, 페르시아, 시르바니, 오스만튀르크 제국과 러시아 문화의 영향 속에서 발전했고 그런 문화들의 살아있는 증거를 보여준다. 12세기에 축조된 대부분의 성벽들이 아직도 위풍당당하다.

바쿠 성곽도시는 아제르바이잔에서 얼마 남아있지 않은 중세도시 중의 하나이며, 도시는 미로 같이 연결된 좁은 길과 밀집되어 있는 건물, 작은 정원등과 같은 중세도시의 위용과 특징을 담고 있다.

(올드시티 성벽 밖의 풍경. 촬영=윤재훈)
(올드시티 성벽 밖의 풍경. 촬영=윤재훈)

트립어드바이저에 아제르바이잔 145개 관광지 중 최고라는 올드시티 바쿠(Baku)를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갔다. 소련 시대에 방공호라도 할 양이었는지, 에스컬레이터가 한참을 내려간다. 내부는 샹들리에가 달려있어 어느 카페라도 온 듯, 매우 환하고 귀족적이다. 만약의 사태에 피신해 와도 그리 답답한 줄은 모를 것도 같다.

지하도를 올라오자마자 성벽이 보인다. 일렬로 길게 구멍이 뚫려있어 적이 침공해 성벽이라도 오를 경우, 뜨거운 물이나 기름을 부어 효과적으로 막아 냈겠다

서로 죽이고 죽는 인간의 역사는 전쟁과 살육의 연속이다. 끊임없는 살상을 목적으로 전쟁 무기를 개발하고, 그것을 팔아 자신의 부와 권력을 유지하는 전쟁광들이 있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노벨도 이것까지는 생각을 못했다고 하니. 그는 그 멍에로 인류에게 노벨상을 남겼다.

“과연 적이란 무엇일까? 
다른 나라에서 쳐들어오면 적인가?
그럼 땅은 무엇인가?
왜 땅에 주인이 있는가?
마음대로 철조망을 넘나드는 저 새가,
우리에게 묻는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맘껏 조롱하며
국경의 말뚝 아래 무슨 표식이라도 있는가,
다시 묻는다.
오늘도 흙먼지와 잡풀들만 날리는데
총칼을 들고 두 눈을 부릅뜨며,
세월을 허비하는 젊은 초병에게 묻는다.“

(성곽 안의 모습. 촬영=윤재훈)
(성곽 안의 모습. 촬영=윤재훈)

바쿠는 12세기 즈음에 실크로드의 중요한 중개무역 장소였으며, 중심부는 고대 실크로드의 유적들이 여럿 남아 있는 고도(古都)이다. 그런데 지하철을 건설하면서 콘크리트 벽을 성벽과 같이 붙여놓아, 이 나라의 현 유물보존 수준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2000년 12월 시르반샤 궁전과 메이든 타워를 포함해 아제르바이잔 첫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지만, 3년 후 유네스코는 2000년 11월 발생한 지진 피해와 열악한 보존을 이유로 ’위험천만한 세계유산목록‘에 올렸다. 그 후 다시 그 복구 노력을 평가받아 2009년 멸종위기 명단에서 빠졌다.

올드시티는 영화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1945년 『아르신 말 앨런』, 1968년 『유년의 마지막 밤』 같은 많은 영화와 1964년 『구시가지』, 2003년 『올드시티의 산책』 같은 다큐멘터리들도 촬영되어 그 줏가를 더했다.

여기에 인기 있는 장소로는 주마 모스크 뒤에 수백 년을 서 있었던 뽕나무인데, 구시가지의 재미있는 전설과 노래들이 떠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1970년 공사를 하면서 잘려나가 버렸다고 한다.

(페르시아의 에술품들. 촬영=윤재훈)
(페르시아 예술품들. 촬영=윤재훈)

바쿠비아의 배우 ’후세윈굴루 사랍키‘는 초기 러시아 통치를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은 회고록을 썼다.

”바투는 다음과 같은 두 구역으로 나뉘었다.
’이차리 샤하르‘와 ’바이엘 샤하르‘, ’이너시티‘가 주축을 이루었다.
내성에 살던 사람들은 바쿠의 원주민으로 여겨졌다.

그들은 바자회, 장인 워크숍, 모스크 등 모든 것에 근접해 있었다.
그곳에는 교회뿐 아니라 러시아 점령기에 세워진 군막까지 있었다.
성벽 안에 사는 주민들은 자신들을 바깥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여겼고,
종종 그들을 ‘외딴 도시의 맨발 사람들’이라 불렀다.“

러시아인들의 도착과 함께 구시가지의 전통적 건축양식을 대대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바로크나 고딕, 유럽의 대표적 양식들이 19, 20세기에 집중적으로 지어졌다.

1865년에는 바다가 보이는 성벽 일부를 철거하여 팔기까지 했다고 하니, '역사에 대한 그 무지함이 '1915년 일제의 만행에 의해  사라져 버린 우리의 돈의문(서대문, 새문, 신문新門)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까지 하다.' 그 돌들의 팔아 4만 4000루불로 외곽도시 건물이나 바쿠대로 건설에 쓰였으며, '돈의문도 어느 고관 대작의 집을 짓는데나 담장으로 쓰였다고 한다." 1867년에 대로에 첫 분수대를 세워졌으며, 1877년에는 그 유명한 ‘타기예프 문’이 열리고, 이문의 개방(?)은 소비에트 식민지 시대까지 이어졌다.

2008년에는 바히드 공원을 재건축을 하다가 지하도가 발견되었다. 비탈리 안토노프라는 학자에 의하면 18세기 후반 바쿠는 백인들의 혁명 운동 중심지였으며, 도시 내 집단 폭동 시 주지사를 구하기 위하였거나, 고대 사바일 성과 연결하는 지하 통로라고 한다.

(건물마다 LG 에어컨, 가는 곳마다 삼성 스마트폰. 촬영=윤재훈)
(건물마다 LG 에어컨, 가는 곳마다 삼성 스마트폰. 촬영=윤재훈)

올드시티로 들어오니 건물 전체에 LG 에어컨이 달려있어 자부심을 일게 한다. 밀려가는 관광객들을 보니 여기도 서울 성곽이나 서촌, 베네치아, 파리처럼, 머지않아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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