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事] 지하철에서 만난 부부

윤재훈 기자
  • 입력 2020.12.16 16:46
  • 수정 2021.04.1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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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들만 외롭다
(독들만 외롭다. 촬영=윤재훈)

지하철에서 만난 부부

여자는 휠체어에 앉아 있다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는
팻말을 앞에 놓고,
석고상처럼 굳어 있다

그 뒤에 남편이 목발을 집고
한쪽 다리로만 걷는다

부스스한 머리
감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
서릿발 내린 새끼줄 같은 머리칼

눈 쌓인 나무 밑에서는
사람들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흰 썰매를 탄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가지고 오실 것이라고,
취기 어린 목소리로,
징글벨를 부르며 달뜨는데,

부부는 다리는 절뚝이며
더러는 졸고 가는,
밤 지하철 통로를
유령처럼 지나간다

냉기가 천지를 감싸는 날,
두 사람은 있는 것만으로
크낙한 위안이 될 것이다

빌딩 숲 사이로
함박눈이 쏟아진다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코로나의 망령이 온 지구촌을 감싸고 있다.
서민들과 자영업자들은 얼마나 힘들까?
모두가 한 발짝 물러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조금씩만 양보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구상에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벌들이 살지 못하면, 사람도 살지 못한다.
자연은 나와 한 몸이다.
인간이 이 지구에 출현한 뒤로
이 지구는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2020.12.16. 지하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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