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㉛] 코카서스 3국을 가다 5_중앙아시아 대륙을 지나, 조지아까지

윤재훈 기자
  • 입력 2020.12.22 18:23
  • 수정 2020.12.31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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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대륙을 지나, 조지아까지

"참 먼 길을 돌아왔다.
지금까지 지나왔던 길이 창밖으로,
기차 속도에 맞춰 흘러갔다."

 

(아제르바이잔의 국경을 넘으며. 촬영=윤재훈)
(아제르바이잔의 국경을 넘으며. 촬영=윤재훈)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열차는 드디어 아제르바이잔의 마지막 역인 <스탄시야시Stansiyasi>에 7, 45분쯤 도착했는데, 어디에서나 국경은 고압적이다. 어젯밤부터 풍만한 승무원 아줌마는 노처녀도 아닌데, 히스테리라도 부리는지 무척 신경질적이고 딱딱거린다. 선지식(善知識)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넉넉하게 넓히려고 하지만, 자꾸만 걸린다.

바람은 그물 속으로 지나가도
걸리지 않는데,
천지간(天地間)을 걸어가도
는 날마다 걸린다.

마음,
넓히면 우주를 닮고,
좁히면 바늘 하나 꼽을 자리가 없다.

여권을 먼저 걷어가고, 잠시 후 짐 검사를 하더니 비자 용지를 걷어간다. 한 사람이 움직여 기차 안에서 업무를 봐주니 많은 여행자들이 편하다. 약 50여 분 기다리니 끝난다.

잠시 후 도착한 조지아 입국장은 참 친절하다. 가장 궁금한 비자 기간이 얼마나 될까? 잠시 읽기를 멈추고 한 번 맞춰 보시라, 만일 보지 않고 맞췄다고 멜 주소를 보내주시면 선물도 보내줄 수 있다. 무려……, 무려, 일 년에서 5일 뺀 360일을 준다. 세계에서 우리 국민에게 가장 넉넉하게 주는 나라다. 그러니 마음으로부터 더 옷깃이 여며지는 것 같다. 

(조지아 거리 모습이 마치 모스크바에 온 듯하다. 촬영=윤재훈)
(조지아 거리 모습이 마치 모스크바에 온 듯하다. 촬영=윤재훈)

국경 입구부터 마음이 편하다. 뭔가 풍경이 아름다울 것 같고,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날 것 같다. 기차가 멈추자 에어컨도 다시 멈춰버려 기차 안은 다시 찜통이다. 오랜 시간 밀폐된 공간에서 많은 사람이 비지땀을 줄, 줄, 흘리더니, 도저히 안 되겠는지 한 사람 두 사람 밖으로 나간다.

이따금 만나는 가판에는 둥글고 알록달록한 모양의 과자들이 즐비하게 걸려 있다. 이곳의 전통 과자인 ‘할바’다. 할바는 꿀과 호두를 넣어서 만든다. 너무 달아서 홍차와 함께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하룻밤을 새우고 10시쯤 국경에 도착했는데, 기차는 떠날 줄을 모른다. 그렇게 또 얼마나 기다렸을까, 미동도 하지 않을 것 같던 기차가 마침내 11, 30분쯤에, 긴 뱀이 꾸물텅 거리는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기차는 마침내 12, 50분쯤 꿈에 그리던 조지아 <트빌리시역>에 진입한다.

참 먼 길을 돌아왔다.

지금까지 지나왔던 길이 창밖으로, 기차 속도에 맞춰 흘러갔다."

(서해를 건너며. 촬영=윤재훈)
(서해를 건너며. 촬영=윤재훈)

인천 여객선 터미널에서 중국 보따리 상인들의 억센 말소리들 틈에 끼여 출발했었다. 가방을 올리자, 곧 경고음이 울렸다. 가방 안에서 위험하다는 짐 몇 가지를 덜어내고 나자 비로소 가방을 실을 수 있었다. 그리고 흔들리는 여객선에 기대어 서해를 건넜다. 갈매기는 관광객들이 먹을 것을 주자,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면서 줄기차게 따라왔다.

소매치기 천국이었던 대국의 수도 베이징역에서 출발한 <몽골 국제열차>, 작은 수도, 한국인 업종이 유난히 많았으며, 주로 식당과 슈퍼 등 서비스 업종이 많고, 베이징역보다 더 소매치기가 많았던 <울란바타르>의 최대의 재래시장 ‘나랑톨’, 몽골여행 카페 쥔장 ‘몽랑’과 회원들과의 우정. 몽골 최대의 국립공원 ‘테를지’ 강변을 우마차로 넘고, 게르 옆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전통음식 ‘허르헉’을 먹으며, 밤새 내 눈 속으로 쏟아지던 굵은 별빛들, 초원 가운데 나타난 옛 수도 ‘카라코룸’.

"몽골벌판에는 길이 없다.

그냥 내가 가면 길이다."

서산대사의 말씀 한 구절도 떠 올랐다.

"눈 쌓인 길, 어지러이 가지 마라,

따라오던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는니라."

(몽골 국립공원 ‘흡수골 강변’을 지나. 촬영=윤재훈)
(몽골 국립공원 ‘흡수골 강변’을 지나. 촬영=윤재훈)

러시아 국경과 맞닿은 바다 같은 호수 흡수골까지 완행미니버스를 타고, 추위에 떨며 밤을 새워 달렸다. 문틈 새로 들어오던 시베리아의 냉풍(冷風)은 끊임없이 나의 살점을 물어 뜯었다. 불도 없고 깊이도 알 수 없는 화장실은 나무 두세 장이 얼기설기 얹혀져있었고, 밟자마자 그 위에는 살얼음이 얻혀 미끄러질뻔 했던 아찔함 , 5, 60년대 시골마을 같았던 거대한 몽골 대륙을 늑대처럼 몇 달간을 떠돌다가 그 풍경을 뒤로 하고, 11월의 첫눈을 맞으며 중국의 4대 석굴 중 하나인 '다퉁 석굴'을 지나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칭다오 바다 건너 고국이 있을 것이다. 촬영=윤재훈)
(칭다오 바다 건너 고국이 있을 것이다. 촬영=윤재훈)

<칭다오(靑島)> 맥주로 목을 축이고, 5, 4 광장에서 중국 청년들이 외쳤던 일본의 만행을 생각하며, 두 달 전에 일어났었던 우리의 3, 1운동을 생각했다.

100개가 넘은 샘의 있었다는 맑은 물의 고향, 빼어난 자연의 <지난>을 지났다. 이어 중국의 4대 명산 타이안시의 <태산>에서 양사언이 지은 ‘태산이 높다 하되’ 시조를 암송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매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르리 없건마는
사람은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웬일인지 이 시는 50년도 더 넘은 그 시절, 국민학교(?) 6학년 국어책에 실린 9편의 시 중 첫 번째에 있었는데, 지금도 술, 술,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친김에 두 번째 나온 시조도 한 번 읊어본다.

지당池塘에 비 뿌리고, 양류楊柳에 내(뿌연 안개) 끼인 제
사공은 어데 가고 빈 배만 매였는고
석양에 갈매기만 오락가락하더라.“

임진란 예견하고 뜨거운 가슴으로 임금에게 직간을 서슴지 않았던 의병장, <조헌>의 시다. 아마도 이 시대에 같이 학교를 나왔던 사람들이라면 기억이 나기도 할 것이다. 그 이외에도 ‘이고 진 저 늙은이’, ‘가노라 삼각산아’ 등의 시가 더 있었다. 필자로 평생 시를 쓰다 보니 시 이야기만 나오면 쉬, 떠나지 못하니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눈 내리는 천 년 고도, ‘난징.’ 촬영=윤재훈)

이어 중국의 7대 고도(古都)이며 중화민국의 수도였던 <난징南京>으로 갔다. 난징은 한자음 그대로 옛 시절 남쪽의 수도였으며 한, 송, 명나라 등 한족들이 중요하게 여기던 국가의 중심 수도였다. 원나라가 세워지면서 중국의 베이징(북경, 北京)이 수도가 되었지만, 난징은 이전 한족 왕조의 수도로서 유서가 깊은 곳이다. 즉 북경(베이징)과 남경(난징), 그리고 서경(장안, 시안)은 중국 내륙에 있는 낙양(뤄양)을 중심으로 해서 붙여진 이름들이다. 중국은 가는 곳마다 우리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었던 거대한 제국들과 빼어난 자연들이 너무 많아 가끔씩 부럽게 한다.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빼어난 정원의 도시 <소주(쑤저우)>에서는, 커다란 정원과 가산(家山)을 눈 시리게 보았다, 황푸강의 화려한 야경으로 흥청거리며 그 불빛에 취하다가, 꽃뱀을 만났던 <상해>, 중국 최대의 경제 도시로 흥청거리지만 한 블럭만 들어가면 인민들이 숨어살던 '판자촌', 장강 삼각주에 위치한 7대 고도 <항저우>의 서호, 오랜 세계여행 중에 웬일인지 여행자에게 200위안(36,000원)이라는 거금의 케이블카 요금을 받지 않아 나를 놀라게 했던 <황산 눈밭 산행>, 그 거대하고 빼어난 기암괴석의 명산은 중국 청년들과 오르다, 중간에서 미리 준비한 즉석밥을 먹으며 나누었던 우정.

남국의 도시, 5대 경제특구의 하나 <샤먼 섬>, 오지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우연히 만나 청년의 안내로 같던,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둥글게 쌓아 올린 흙으로 만든 궁궐이 몇 채 있던 <토루>, 그곳은 대문만 닫아걸면 적이 들어올 공간이 없는 난공불락이었다. 지붕만 둥글게 뚫려 하늘과 하나가 되었다.

이어 남쪽 대륙을 횡단했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 가장 먼저 개방한 경제 특별구역, 홍콩, 마카오, 그 뒤를 이어 3번째로 국민소득이 높은 <선전>, 중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광저우>.

(꿈속의 풍경, ‘계림.’ 촬영=윤재훈)
(숨이 멎을듯하다 ‘계림.’ 촬영=윤재훈)

광시 좡족 자치구이며 기이한 카르스트 지형의 바위들이 탑처럼 솟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어린 시절부터 정말로 가고 싶었던 기이한 산들과 강의 도시 <구이린(계림桂林)>. 민초(民草)들의 아픔이 계단마다 배어있던 거대한 다랑이논의 산성 <룽성>.

태평천국의 난 때 도시가 포위당했으나 결코 함락되지 않았으며, 마오쩌둥의 공산주의 혁명의 장소. 중일 전쟁 때는 잠시 일본에게 빼앗기기까지 했던 수난의 장소이며, 3,000여 년의 오래된 역사를 가진 후난성 경제 중심지인 <창사>,

중국 제1호 국가삼림공원이며,‘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 안개 쌓인 절벽 사이로 협객들이 날아다니는 무협지의 배경 같은 기이한 암벽들로, 세계적인 흥행을 이룬 ‘아바타’의 촬영지 <장자제>. 중국은 정말 파면 팔수록 세계의 포든 풍경과 모든 날씨가 다 산재해 있다. 

꿈에 그리던 윈난성으로 가는 길목에 있으며, 기이한 석림들이 있던 <쿤밍>, 꽃 빛 풍경과 얼하이호의 물빛에 취하던 아름다운 고장 <다리>, ‘나시족’의 고향, 소수민족들의 천국, 1996년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이듬해 리장 고성이 있는 구시가지가 세계문화유산 지정된 <리장>, 두보와 대나무 숲이 아름다운 <청두>,

“꽃잎 하나 떨어져도 봄이 가는데
모진 바람에 꽃잎 흩날리니, 서러운 인사여
지는 꽃 탐하는 것도 잠깐 사이려니
서럽다 하여 어찌 술 마시길 꺼릴 소냐

강상(江上)의 작은 정자에 물총새 둥지 틀고
궁원 큰 무덤에 기린 석상 쓰러지는데
사물의 이치 헤아려 즐겨야 하리니
어찌 헛된 이름에 몸을 얽맬 것이냐”

- 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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