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㉜] 코카서스 3국을 가다 6_아시아에서 만난 고도(古都)들

윤재훈 기자
  • 입력 2020.12.27 15:22
  • 수정 2021.03.1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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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대륙을 지나, 조지아까지

여행의 길은 따스하다.

여행자는 걷는다
잠시 길 위에 쉼은 있어도 그 발길에는 끊임이 없다.
발걸음이 멈추면 여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풀을 따라 이동하는 유목민의 삶과도 닮았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의식하든 하지 않든,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단지 그 시간을 잊지 않고, 인지하고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시간은 훨씬 장구하게 다가온다.

                                                                          - 윤재훈 글

(세계문화유산, ‘핑야오 고성. 촬영=윤재훈’)
(세계문화유산, ‘핑야오 고성. 촬영=윤재훈’)

산맥을 따라 물줄기가 흘러간다.
저 도도하게 흘러가는 물줄기는 그침이 없다.
태고 이래로, 상선약수(上善若水)로 흘러가는 물은,
우리네 삶을 닮았다.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가히 중국의 대륙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조그만 반도의 나라에서 평생을 자란 작은 가슴 속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넓었다. 그 광활한 땅에 사는 사람들, 그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꿈을 꾸며 살고 있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그런 의문들이 나의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밝은 해는 서산에 기울고
황하는 바다로 흘러간다
천 리 끝까지 바라보고자
다시 한 층 더 오른다.
왕지환, ‘관작루에 올라

중국에는 유명한 누각이 네 군대가 있는데, 무창의 '황학루', 동정호의 '악양루', 남칭의 '등왕각', 산서성의 관작루다. 그중에서 당나라 시대 시인인 왕지환의 시가 중국인들에게 많이 회자되고 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큰 꿈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그래서인지 ‘시진핑’ 국가 주석이 외교 사절들을 만날 때 이 시를 즐겨 인용한다고 한다.

길은 다시 끝없이 펼쳐져 있다. 해가 지고 배가 고프면 발걸음을 멈추고, 해가 뜨면 다시 출발한다. 그 옛날 타클라마칸 사막의 삭은 뼈들을 이정표 삼아 가셨다는 해초 스님이나, 수많은 여행자들도 또한 그러했으리라.

(20여 분 이상 헤매며, 지하도까지 건너 길을 알려주는 중국인 천사들. 촬영=윤재훈)
(20여 분 이상 헤매며, 지하도까지 건너 길을 알려주는 중국인 천사들. 촬영=윤재훈)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황도의 수도였으며 실크로드의 시발점이자 종착지인 지구상의 영원한 고도 <시안>,. 역시 중국의 7대 고도이며 세계에서 전기 사용량이 가장 많아 야경도 제일 아름답다는 ‘룽먼석굴’이 있는 <낙양(뤄양)>의 석양 녘, 중국의 4대 고성이며 도시 전체에 옛 거리의 모습이 보존되어 세계문화유산 지정된 <핑야오 고성>,

서쪽 사막의 관문, 위구르의 땅 <란저우>, 티벳보다 더 티벳 다운 티베트족 자치주이며, 도시 하나가 사원 같은 커다란 ‘라브랑 티베트교 사원’이 있는 <샤허>,

(‘샤허’에서. 촬영=윤재훈)
(‘샤허’에서. 촬영=윤재훈)

일생에 한 번,
천 리 길을 지나 성소(聖所)에 왔다
, 한 번은 오고 싶었던 길
한 번 돌릴 때마다
한 권의 경전을 읽는다
붓다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

소슬한 겨울바람 아래
마니차를 돌린다
음성이 내려 앉는다
- '마니차를 돌리며', 윤재훈

평균해발고도가 2200m이며 칭하이호까지 있어 중국의 여름 휴양지 수도라고도 불리는 <시닝>, 트카 지방(황중현)에는 티베트 불교 게르크파의 종조 트카파의 탄생지로, 이 땅에 쿠붐-체파린 사원이 건립되어 몽골, 티베트로부터 순례자와 수행 승려들이 모여 티베트 6대 승원의 하나로 번영했던 곳이다. 중국 북부에서 가장 큰 모스크 중 하나인 둥관 모스크와 세계에서 가장 긴 불화가 있는 박물관이 있으며, 하서회랑이 지나가는 비단길의 길목이다.

노을 무렵 산 전체가 무지개떡으로 변화는 기이한 칠채산이 있는 <장예>, 만리장성의 서쪽 끝, 실크로드의 관문 <자위관 성루>, 마침내 명사산이 보인다.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석굴, 사막과 초승달 호수, 그리고 낙타, 밤이면 모래가 울어 에이는 <둔황>,

자위관 성문 앞에선가 만난 중국 소녀와 타던 모래 썰매, 그녀는 나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슈퍼에 가더니,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서 준다. 나는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그녀를 생각하며 그것을 아껴 먹었다.

일조량은 많고 강수량이 적어서 매우 건조하며 서리가 내리지 않는 날이 270일 이상 달하는 서쪽 끝, 지열이 높아 과일이 풍부하며 당도도 무척 높아 포도하미과가 유명하며 면화와 채소류의 재배도 활발한 이역만리 <투루판>,

(젊은 그녀는 무슨 고민이 그리 커, 천 리 먼 길을 와서 오체투지를 할까. 촬영=윤재훈 )
(젊은 그녀는 무슨 고민이 그리 커, 천 리 먼 길을 와서 오체투지를 할까. 촬영=윤재훈 )

톈산(천산) 산맥의 자락에 위치하며 비단길의 중요도시, ‘아름다운 목장을 뜻하며 중국 서부의 최대 도시, <우루무치>로 향했다. 그런데 갑자기 여태까지와 분위기가 다르다. 고속도로에서 길을 막고 계속해서 검문을 한다. 위그르족의 폭동이 잦은 곳이어서 그런가.

그러나 과연, 독립을 요구하는 그들의 행동은 폭동인가? 서방세계에 자국 정치에 간섭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경고하는 중국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한강의 기적보다 더 빨리 상승하는 놀라운 그들이 경제력의 무엇일까?

나는 7년 전에 떠난 세계여행에서 타 보았던 중국의 완행열차와 완전히 천지개벽한 현재의 고속철을 바꿔 타 보면서, 그 자신감이 허풍만은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나는 그 열차를 타면서 칸마다 정면에서 나오는 속도를 본 적이 있다.

보통 선진국들의 고속철이 3~400키로 왔다갔다 하는데, 중국은 현재 그 두 배인 6~700키로까지 올릴 수 있다고 한다. 보통 비행기가 5~1,000키로 속도로 날아간다고 하니, 거의 비행기의 속도에 다가가는 놀라운 속도다.

中華(중화)의 시대는 다시 도래하고 있는가?”

(이 땅에도 사람들이 살았다. 응회암을 파고 들어간 집의 형태들. 촬영=윤재훈)
(이 땅에도 사람들이 살았다. 응회암을 파고 들어간 집의 형태들. 촬영=윤재훈)

바람, 구름, 초원의 땅
그 땅을 찾아가기 위해 서해를 건너온
한 사내가 서 있다

베이징 역, 인산인해의 틈바구니에서
홍조 띤 얼굴을 하고 그가 시간을 가늠한다
철길만 외로이 벌판에 길을 내고
그 끝은 어디에 닿아있는지 아득할 뿐이다

사내가 다시 손차양을 하고
무엇이 그리운지 동쪽을 본다
저 해무가 거치면 아련한 그 나라가
이어도처럼 떠 있을 것이다

끝없이 달리는 푸른 구릉들
그 지평선 위로 오르는 구름들은
저마다 미완의 꿈들을 피워 올리는지
바람 속에서 가볍게 몸피들을 부풀리고 있다

길을 달리는 건
오직 철마와 끝이 보이지 않은 전신주뿐
그리고 낮은 구릉들 사이로 언뜻언뜻 달리는
푸른 늑대 한 마리를 보았다

말발굽 소리도 이미 잦아든 지 오래인
이 푸른 대륙에
이 길의 끝은 도대체 어디쯤 가 닿아있을까
잠도 자지 않는 빙하가 365일 흘러내리는
천산 산맥 중심부를 관통하고 들어가
잠들어 버렸을까
맘모스의 화석처럼

언뜻언뜻 보이는 게르들
오직 하늘에 떠 있는 구름만이 이 땅에서는
그늘을 만들 수 있다

신은 어찌하여 이 광활한 벌판에
이토록 작은 인류를 보내셨을까
사내가 문득 벌판에 서서 다시
해시계를 가늠한다

길이 나 있다
광활한 초원 위로
난마(亂馬)하는 길들
저 길들은 도대체 모두 어디로 간단 말일까
주체할 수 없는 꿈들을 안고
저마다 한 길씩 잡아 떠나갔을까
구릉 사이로 늑대 한 마리 또 스친다

사내는 나지막한 구릉 정상까지 뛰어 올라가
손차양을 하고 초원을 바라본다
어디에도 늑대가 간 길은 없다
가벼이 몽골 벌판을 떠다니는 바람만이
초원을 핥고 다닌다

부드러운 곡선만이 아가의 둔부처럼
지평선에 누워있고
거대한 뭉게구름들이 포근한 엄마의 품처럼
능선들을 다독이고 있다.
-'푸른 늑대를 찾아서', 윤 재 훈

이제는 대륙의 서쪽 끝이다 더 이상 갈래야 갈 수가 없다. 나는 이 거대한 땅을 지나오면서 우리의 역사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수천 년 중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며 그 그늘 속에서 살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고대 시대부터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 오백 년에 이르는 동안 한 번도 그들의 그늘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한류가 세계의 표준이 되고, 반도체와 정보통신의 강국이다. 대장금과 주몽, 싸이와 비, 빌보드 차트에 당당히 1위로 등극하는 BTS를 보면서 처음에는 경악을 금치 못하다가, 이제는 많이 담담해졌다.

(이제 더 이상 갈 데가 없다. 중국 대륙의 서쪽 끝, 우루무치 박물관 앞에서 중국 청년과 마지막 우정을 나눴다. 촬영=윤재훈)
(이제 더 이상 갈 데가 없다. 중국 대륙의 서쪽 끝, 우루무치 박물관 앞에서 중국 청년과 마지막 우정을 나눴다. 촬영=윤재훈)

하지만, 나는 이 대국의 급격한 저력을 보면서 선뜻선뜻 두려움이 다가왔다. 어느덧 경제력은 일본을 제치고 미국과 맞대응 하려고 하는 이 거대한 국가. 과연 그들이 말대로 세계의 조류는 다시 중화(中華)의 시대로 다가오는가?

그러나 동아시아로 그 물결이 바뀌어 오고 있는 것은 느낄 수 있겠다. 세계의 가장 큰 컨테이너 항구가 1위부터 6위까지 동아시아에 몰려있으며, 유럽의 거리를 여행하면서도, 우리와의 물가에 대한 화폐의 높낮이를 그리 느낄 수가 없었다.

그만 반도에서 세계의 10위 권 경제로 도약하고 있는 대한민국에도 충분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치안, 의료, 의류, 화장품, 코로나 방역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선진국으로 가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제 이 대륙을 떠날 시간이다. 우루무치 역에서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가는 열차표를 샀다.

(천산 산맥의 산자락, 봄이 오고 있다. 촬영=윤재훈)
(천산 산맥의 산자락, 봄이 오고 있다. 촬영=윤재훈)

실크로드의 요충지,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 <알마티>, 고려인 시장에서 만나 동포들의 따뜻한 정, 지금이야 수도를 아스타나(누르술탄)로 옮겼지만, 여전히 최대 도시, 카스피해에 석유가 쏟아져 나오는 나라, 소련 식민지 시대 가장 큰 나라. 톈산산맥과 일레 알라타우 얼음산이 도시를 병풍처럼 감싸고, 온 도시가 숲속을 걷는 듯하며, 개울물이 졸, , 흐르는 생명의 도시, 너무나 편안해 글만 쓰며 한 달을 보냈다.

이어서 찾아간 천상 호수 이식쿨의 고향,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 이식쿨 강변에 위치하며 암각화의 고향 <촐폰 아타>, 이시쿨의 동쪽 오지 <카라쿨>, 그곳에서 3대가 살면 스마트폰 가게를 운영하던 고려인 청년과의 우정, 재래시장에서 만난 고려인 아줌마가 싸주시던 김치는 지금도 진하게 내 가슴 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다시 국경을 넘어 찾아간 카자흐스탄의 <타라즈>, 그곳에서 만난 목사님과 사모님, 한글이 제법 유창하던 현지 대학생들, 그 먼 곳까지 봉사를 나왔던 한국의 대학생들,

(히바, 거대한 흙성의 아이들. 촬영=윤재훈)
(히바, 거대한 흙성의 아이들. 촬영=윤재훈)

그리고 도착한 정통 무슬림의 나라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그 주요 도시들은 모두 실크로드의 요충지였다. 중앙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크며 14세기 티무르 제국의 수도였던 <사마르칸트>, 경외감이 드는 비비하눔 사원과 고도의 중심지 레기스탄’,

세계문화유산으로 튀르크인들의 고향 <부하라>의 따뜻했던 거리풍경, 서쪽 끝에 있으며 호라즘 왕국히바 칸국의 수도, 우즈베키스탄 최초의 세계문화유산으로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웅장한 흙성, 그 안의 마을 이찬 칼라가 있던 <히바>, 소박한 마을 사람들,

그리고 마침내 카스피해, 원유 바다를 넘어, 코카서스 산맥의 나라 아제르바이잔을 지나왔다. 그 길이 꿈결같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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