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㉞] 위파사나 명상수행 2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1.06 17:38
  • 수정 2021.01.0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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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파사나의 명상수행
- 태국 위앙 파파오 사원에서

입동(立冬)이 지난 오늘
거리를 내려다보다가
문득 그 집에 가고 싶다

오늘처럼 배가 출출해지고
창밖의 나무들 옷 다 벗어놓고 흔들리며,
먼 산이 가슴 속으로 들어오는 날이면
신망리 순대국집에 가고 싶다

 

나이가 네 살이나 많다는
인의 눈() 속에 빠져 사는
끄럼 타는 사내가 정답게 맞아 주는 곳
-‘ 그 눈() 속에 빠지다.’중에서, 윤 재 훈

 

(멍크와 함께. 찰영=윤재훈)
(멍크와 함께. 찰영=윤재훈)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멍크는 상갓집에서 마을 사람들이 권해 거기서 자기로 하고, 나는 아낙의 집으로 갔다. 밤중에 낯선 손님, 그것도 낯선 나라 사람이 불쑥 찾아오니, 그녀의 부모와 어린 아이는 좀 놀란 듯하다. 아마도 외국인은 처음 본 듯하다, 더더구나 한국인은.

그래서 오랜 여행자의 발길은 항시 조심스러워진다. 특히나 오지를 찾아다니는 여행자는 더욱 옷깃이 여미어진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 사람을 보는 민족, 싸이나 비, BTS는 어디 미국의 가수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낯선 이방인은, 동쪽의 조그만 나라, IT의 세계 강국, 코로나의 표준의 되는 나라, 그 나라 사람의 표준이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읊조려본다.

“눈 쌓인 길 함부로 가지마라.
뒤따라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느니라.”

- 서산대사

(잃어버린 초가 풍경 아래, 재산목록 1호, 새 오토바이. 촬영-윤재훈)

집 안은 단순하다. 지은 지가 얼마 되지 않는 듯하다. 블록을 1열로 쌓고, 그 위에 시멘트로 마무리도 하지 않아, 아직까지 블럭 냄새가 날 듯 하다. 사철 여름인 나라이니 창문은 항상 열어두어 환기는 잘 된다. 벽지나 시멘트 그런 것은 없다.

하긴 집이란 무엇인가? 우리 인류는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군집을 이루었다. 그 첫 집은 동굴이었다. 비와 바람, 풍찬노숙(風餐露宿)을 막아주고, 동물과 사람의 눈만 피하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가난하고 소박한 이들의 살림살이를 보면, 인간의 원초를 생각나게 한다. 눈물겹도록 소박하다. 도시인들이여!

살림살이가 넘쳐날 것도 없다. 골목마다 버려놓은 쓸만한 가구나 넘치는 생활 용품들, 그런 것은 없다. 자급자족을 하니 거의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코로나 발병에 기여한 것은 없고, 지구 환경에 이바지 하고 있다. 책 한 권도 보기 힘든 집은, 스님의 삶처럼 단촐하다.

아낙은 무척 활달하고 거침이 없다. 자그마한 방을 하나 안내해주는데, 아마도 자신이 자는 방인 모양이다. 때에 절인 모기장 하나 쳐 있고, 방의 넓이도 딱, 그 정도다. 다른 짐들도 무척 남루하며, 때에 절어있다.

대부분의 소수민족들의 집이 다 그런다. 아침이면 들판으로 나가고 저녁이면 돌아오니, 아마도 빨 시간이 없는 모양이다? 아니면 그것보다는 먹고사는 것이 더 급한지.

(하루종일 집에 정물처럼 앉아있을 어머니. 촬영=윤재훈)
(하루종일 집에 정물처럼 앉아있을 어머니. 촬영=윤재훈)

배낭여행자는 어느 곳에 자던지 몸 하나 편하게 눕힐 수 있으면, 그만이다. 더 이상 바램은 없다. 그래서 가끔은 고국의 안락하고 넓은 잠자리가 그리울 때도 있다. 그러니 풍요로움이 넘쳐 고마움마저 잊어버리는 한국의 아이들이여, 너무 투정만 하지 마시라. 지구 인구의 반은 지금 배고픔으로 죽어가고 있으니. 특히나 사각사각 고추가루의 깊은 맛과 씹히는 김치의 질감은 더욱 생각난다. 거기에 막걸리 한 잔.

그런데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백의민족으로 엄청난 농사일 속에서도 흰 옷을 입고 살아왔다. 그래도 깨끗함을 유지하고 살아왔으니, 부모님네들의 삶이야 얼마나 지난했을까?

거기에 일제 36년의 식민지와 전쟁의 난리까지 겪어왔으니 말이다. 해마다 뼈 빠지게 농사를 짓지만 가을이면 다 일본으로 실어가 버리고, 봄이면 찾아오던 그 보릿고개의 질곡을, 우리들이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타일랜드 북쪽은 산모롱이마다 엄청나게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다. 카렌족, 몽족, 아카족, 리서족 야오족, 샨족, 등 그 민족들의 수조차 다 헤아리기가 힘들다. 그런 마을들을 관통하여 연말연시 위파사나 집중수행을 간다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는 순박한 아저씨. 촬영=윤재훈)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는 순박한 아저씨. 촬영=윤재훈)

아낙의 집에서 따뜻하게 카우니아오로 아침밥을 지어서 준다. 이 쌀은 우리 말로 하면 찹쌀인데, 우리보다 알이 약간 작고 찰기가 덜하다.

원주민들은 살이 찐다고 주로 통일벼 계통의 쌀을 먹는데, 더운 나라이다 보니 한두 가지 반찬이나 고기와 먹는다. 종일 농사일을 하는 농부들이야 돌아서면 배가 고프니, 이걸로도 부족할 것이다.

특히나 저녁밥은 날이 덥다보니 해질 무렵부터 열리는 도깨비 시장에 가서 사 와서 집에서 가족들과 먹는다. 뜨거운 음식들을 그대로 얇은 비닐에 싸주니 엄청난 환경호르몬으로 건강에 아주 안 좋을 듯하다. 특히나 환경쓰레기가 엄청나게 배출된다. 어느 곳이나 인간이 출현하고 나면 그 곳의 환경은 물론이고, 다른 생명체들의 터전마저 완전히 망쳐버린다.

여행자들도 하루 종일 걷느라 돌아서면 배가 고프니, 주로 카우니아오를 먹는다. 가족들의 애틋한 정에 마음이 뜨거워진다. 대부분 상은 없이 그냥 바닥에 앉아서 먹는다.

아빠 엄마는 51세 동갑내기인데, 평생 일을 해서 인지,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인다. 우리의 시골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순박한 농부다. 엄마는 심장이 안 좋아 약을 먹는다고 하는데, 힘이 없어 보인다. 낮에 식구들 다 나가고 나면, 하루 종일 집에서 정물처럼 외롭겠다. 그 녀의 눈이 바다 속처럼 깊어 보인다.

가족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멍크를 만나기 위해 마을로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장에 가기 위해 나선 아낙들, 60년대쯤 우리 시골 같다. 촬영=윤재훈)
(장에 가기 위해 나선 아낙들, 60년대쯤 우리 시골 같다. 촬영=윤재훈)

아낙들은 장이라도 가는지 삼삼오오 앉아 이따끔씩 오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대나무 바구니에는 닭이 한 마리 담겨있고, 곡식 푸대도 보인다. 아마도 오늘 이것을 시장에 내다팔고 허기가 지면, 시래기가 설, 설, 뿌려져 있는 선지 국수라도 한 그릇 사먹고 들어올지도 모른다.

오늘처럼 배가 굴풋해지면,
신망리 순대국 집이 생각난다

지금은 기억 속에도 아득한 왕(王)대포 한 잔과, 새우젓,
생각만 해도 코끝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청양고추가 밥상에 나오는 곳
기름 쫙, 뺀 돼지고기를 듬뿍 썰어 뚝배기에 담아주고,
장작 난로 연통으로 배부른 연기 담뿍 올라오는,
텁수룩한 주인의 너스레 따뜻한 곳
수더분한 아낙의 소리 창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고,
주방에서 빙그레 미소만 짓고 있던 곳

입동(立冬)이 지난 오늘
거리를 내려다보다가
문득 그 집에 가고 싶다

오늘처럼 배가 출출해지고
창밖의 나무들 옷 다 벗어놓고 흔들리며,
먼 산이 가슴 속으로 들어오는 날이면
신망리 순대국집에 가고 싶다
나이가 네 살이나 많다는
부인의 눈(目) 속에 빠져 사는
부끄럼 타는 사내가 정답게 맞아 주는 곳

눈보라 치기 전에 그 집에 한 번 들러
따뜻한 그 창에 기대앉고 싶다

- ‘그 눈(目) 속에 빠지다.’ 윤 재 훈

 

(밭으로 향하는 아낙들. 촬영=윤재훈)
(밭으로 향하는 아낙들. 촬영=윤재훈)

아낙들은 저마다 망태 하나씩을 들고 삼삼오오 들판으로 향한다. 하루 종일 들판에 학처럼 업드려 있다가 저녁이면 돌아올 것이다.

한 시간여 달려가 치앙마이에서 멀지 않은 위앙파파오(Wiang papao)라는 자그마한 도시에서 우리는 점심을 먹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동산이 하나 나오고, 정상에 사원이 하나 보인다. 10여 일 동안 여기에 머물며 수행에 정진할 곳이다.

(멍크들의 호기심. 촬영=윤재훈)
(멍크들의 호기심. 촬영=윤재훈)

난민촌처럼 산에 텐트들이 쳐 있고 절 마당은 약간 공사 중이다. 커다란 천막 아래 좌판이 놓이고 황금가사를 입은 멍크들이 보인다. 멍크들은 돋보기 같은 것을 들고 유심히 뭔가를 바라보는데, 그 풍경이 낯설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좌판에는 대부분 부처님이 새겨진 목거리와 멍크들의 생필품을 파는 난장이다. 그러데 대부분 목거리에 지대한 관심들을 보인다. 부처님을 들고 유심히 바라보는 모습이 그 옛날 시계방에서 시계를 수리하던 아저씨들을 보는 듯하다. 하긴 여기는 아직까지 시계수리 하는 곳도 있다. 그런데 그 모습들이 거의 전문가들 수준 같다.

그중 돋보기 묶음에 남근 목조각이 걸려 있고, 그것을 손가락 사이에 낀채 목거리를 감정하는 스님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탄드라의 정서가 깊이 배어 있는 듯하다. 탄트라는 성을 우리처럼 금기시하지 않으며, 상응보조요법으로 즐긴다고 한다.

문득 잘생긴 남근목 하나가 내 눈길을 끈다. 이싼(치앙마이 동쪽 지역)에서 만든 거라고 400b를 부르는데, 멍크가 흥정해 주어 300b(12,000원)에 샀다.

이곳의 멍크들은 누구나 목거리를 차고 있다. 어깨에 걸린 자그마한 천 가방을 열며, 많은 부처님 목거리들이 있다. 거의 신앙적으로 멍크들은 붓다를 수집한다. 가끔 붓다를 나 같은 여행자에게 정표로 주기도 하고, 노자 돈이 떨어지면 마당에 앉아 팔기도 한다. 몸에는 불경과 관련된 문신들도 많이 했다.

스님 한 분이 1000b짜리가 묶어진 돈다발을 꺼내더니 1500b(6만원)을 내고 목거리 두 개를 서슴없이 산다. 깜작 놀랬다. 이곳에서 오랜 여행 기간 동안 저렇게 큰 돈다발로 내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장난끼가 가득 밴 동자승들. 촬영=윤재훈)
(장난끼가 가득 밴 동자승들. 촬영=윤재훈)

보통 사원 안에는 동자들을 위한 학교가 같이 있어. 팔리어를 비롯한 기본 경전들을 배운다. 그런데 우리네 학교와 마찬가지로 동자승들은 아이의 모습 그대로다. 공부보다는 만화영화 등에 더 관심이 있는 듯하다. 수업시간인데도 뒷자리에서는 책도 꺼내지 않고 과자를 먹고 있는 동자들의 모습이, 여느 아이들 교실과 비슷하다.

나아가 소승불교에서 왓(WAT사찰)은 국민 정신의 구심점이었다. 심지어 나라에 기근이 들며 백성들에게 식량을 나누어주고, 아플 때는 환자들의 치료까지 했다.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스님에게 가서 질문을 하고, 가르침을 받았다.

매년 4월이면 ‘포이 상 롱’이라고 아이들이 머리를 깎고 동진출가(童眞出家)하는 의식이 전국에서 펼쳐진다.

출가는 가문의 영광이고 마을의 영광이다. 일가친척들이 전통 악기를 가지고 와 사원 안에서 밤을 새며 흥겹게 악기를 치며 즐겁게 논다. 그리고 화려한 복장에 무등을 태우고 마을을 한바퀴 돈다. 출가하는 아이의 집에 가서도 의식을 한다.

치앙마이 사찰을 순례하다가는 ‘왓 쨋욧’에서 한국어를 독학하며, 여러 권의 한국어 책을 자랑하던 동자승을 만난 적도 있다.

(호기심 가득한 파괴. 촬영=윤재훈)
(호기심 가득한 파괴. 촬영=윤재훈)

법회가 끝나가자 사람들은 돌아가고, 동자들이 라면 박스 같은 것을 몇 개, 단 위로 갖다 놓는다. 순식간에 ‘나가 스톤(naga stone용머리 탑)’ 주위로 멍크들이 몰려들어 대단한 관심을 보인다.

‘나가’는 소승불교의 상징으로 용 모양을 하고 있는데, 보통 1개, 5개, 7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 보통 대웅전을 올라가는 계단 양쪽으로 머리가 하나인 나가 두 마리가 있는데, 타일랜드의 가장 오래되고 큰 절 중의 하나인 치앙마이의 ‘왓(사찰) 째디(팁) 루앙(큰)’에 가면 7개의 머리를 한 째디를 볼 수 있다.

멍크들이 앞 다투어 채 식지도 않은 돌들을 고르고, 한 멍크가 마치 장사하는 사람처럼 돈을 손에 들고 받는다. 어디 시장바닥에 온 기분이다. 문득 속계의 물욕을 떠난 스님의 모습은 아니듯 하여 약간 허탈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이것 역시 수천 년 내려온 그들의 전통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소승불교의 나라들은 보통 마을 안에 사원이 있다. 사원은 마을 사람들의 정신의 구심점이며, 사랑방 역할도 한다. 매일 아침 재물을 바치는 사람들의 불심은, 한없이 경건하고 깊기만 하다. 여행자에게도 전혀 배척하는 것 없이 오직 ‘자비’로만 대한다. 먹을 것도 그냥 주며, 공양도 할 수 있다.

‘왓 째디 루앙’에서 꽃을 같다 바치는 법회를 본 적이 있는데, 온 절이 꽃으로 휩싸였다. 남국의 그 진한 꽃향기가 온 절 안에서 진동하는 그런 경헙이었다.

법회를 하는 모습도 아름답다. 부처님 앞에 단아하게 앉아 절을 하던 여인의 자태는, 평생 잊혀지지 않을 듯하다.

스무하룻날 수행 중 봄빛 한 줄기 들어오던 좀통Chom thong의 법당에 홀로 앉아, 하얀 옷을 입고 깊은 명상에 들어있던 메시의 인상도 오랫동안 남는다. 마치 삼매에 들어있는 관음보살을 모습이 떠오르다가, 김시습의 ‘만복사 저포기’의 한 장면도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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