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㉟] 생사(生死)가 일여(一如)한데, 나를 이룰 곳이 어디냐? 3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1.08 15:18
  • 수정 2021.01.0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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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生死)가 일여(一如)한데, 나를 이룰 곳이 어디냐? 3

 

()이란 무엇인가?
하루 세 끼 밥 먹고,
하루종일 했던 행동들이 다 법일 것이다.
상주불멸(常住不滅), 행주좌와(行住坐臥)이다.
그러면 모든 행동이 더욱 조심스러워질 것이다.”

                                    - 위파사나 수행 중에

 

(아이들의 지극한 바램. 촬영=윤재훈)
(아이들의 지극한 바램. 촬영=윤재훈)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좀통’은 치앙마이 인근에 있는 소도시이다. 이곳에는 타일랜드 북쪽에서 가장 큰 ‘외국인을 위한 위파사나 수행사원’이 있다. 지금도 수행자들을 위한 숙소를 짓고 있는데, 이 인근에서 가장 도력이 높으신 스님의 원력으로 거의 마무리 공사 중이다.

시설은 아주 좋고, 모든 것이 무료다. 수행자들은 개인적으로 계획표를 짜 하루종일 명상과 행공을 번갈아 하며 묵언수행을 한다. 아침에는 큰 법사에게 점검을 받는데, 스무하룻날에 다가갈수록 찾아오는 번민의 폭도 더욱 높아간다.

이 짧은 시간도 이럴진대 평생을 사원에 머무는 수행자들의 번민은 오죽할까.? 우리가 수행자에게 두 손을 모우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혼탁한 이 세상에 한 줄기 빛은 거기에서 나올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국의 수행자들은 일반인들이 걱정해야 할 수준이다. 오히려 사회에 크나큰 해악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곳에서 수행을 하러 온 한국의 조계종 스님을 만난 적이 있다. 스님은 한국의 간화선 수행과 도량에 부족함을 느꼈는지 위파사나에 심취하고 있었다. 오랜 인도 만행까지 다녀오신 스님은 사과메론을 참 좋아하셔서, 점심 때 종종 메론을 대접하고, 법문을 듣던 일이 새삼 떠오른다.

(네팔, ‘파핑’에서, 히말리야를 보며. 촬영=윤재훈)
(네팔, ‘파핑’에서, 히말리야를 보며. 촬영=윤재훈)

여행을 하면서 종종 조계종 스님들을 만난 적이 있다. 네팔에는 수많은 티벳 불교 사원들이 있는데, 카트만두에서 그리 멀지 않은 ‘파핑’이라는 곳에서도 티벳 불교로 승복을 바꿔입은 스님을 만난 적이 있다. 스님은 그곳에서 커다란 노트북을 켜놓고 ‘생명의 서’를 집필하셨는데, 원불교 교무님들과 만나 같이 공부하던 기억이 새롭다.

이런 현상들은 왜 올까? 한국의 승단은 깊이 자성해야 할 것이다. 한국 조계종에 화두처럼 던져지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닌가 한다.

스님이 우리를 데리고 가서 보여주던 히말라야 설산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이런 정신적인 수행자들과의 인연이 내 삶의 진폭에 크나큰 자양분이 된다.

(돌 안에서 나오는 ‘나가 스톤naga stone.’ 촬영=윤재훈)
(돌 안에서 나오는 ‘나가 스톤'(naga stone)’ 촬영=윤재훈)

스님들이 앞다투어 돌을 흔들어 보고 깬다. 그러자 그 안에 조그만 부처, 나가, 다양한 구슬 모양 등의 성물이 나온다. 작은 돌은 700b, 큰 돌은 1000b(4만원) 이다. 스님들 돌 깨는 소리만이 밤 정적을 깬다. 적지 않은 돈 같은데, 많은 스님들이 산다.

어떻게 돌 안에서 저런 것이 나올까, 붙인 흔적도 없는데, 신기해서 한참을 들여다 보는데, 도통 모르겠다.

멍크가 안쓰러웠는지 설명해 준다. 아마도 도기를 만들 듯이 각종 붓다의 상징들을 넣어 온천에 오랜 시간 두면 부풀고, 번쩍거리는 탄소들이 박힌다고 한다. 돌들이 참 신기하게 생겼다.

밤이 깊어 가지만 다시 법회를 시작한다. 120~130여명 되는 스님들이 앉아 있는데, 주로 아잔(큰스님, 이슬람에서 하루에 다섯 번 메카를 향해 올리는 기도 소리도 아잔이라고 부른다)에 의해서 법회가 진행된다.

마이크를 가지고 말을 하는데, 계속해서 숫자의 단위인지, 돈의 단위인지 잘 모르겠다.

(마음 안이 진리밭인데, 헤매지는 말아야지. 촬영=윤재훈)
(마음 안이 진리밭인데, 헤매지는 말아야지. 촬영=윤재훈)

새벽 4, 45분쯤 되니 스님이 아침 기상종을 친다. ‘왓 푸라탓 와잉 호아(Wat pra that waing hoa)’의 두 번째 날이 밝아온다. 이제 한 해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은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다.

안개가 짙게 끼여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멍크가 마치 사바세계라도 굽어보고 있는 것 같다. 예수님과 부처님도 죄와 전쟁이 많은 저 땅을 내려다보며 죄사함을 바라고 계실까? 문득 그의 얼굴에 수심이 어리는 듯하다.

법이 무엇인지 헤매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마음 안이 진리밭이라고, 옆에 두고 헤매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불계와 속계가 한 치 차이라고 하는데,
안개만 더욱 짙어 온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여로이지 않는가?

 

(첫새벽에 꺾어온 들꽃. 촬영=윤재훈)
(첫 새벽에 꺾어온 들꽃. 촬영=윤재훈)

7시가 되어가니 벌써 마을 노인들이 공양물과 들꽃을 한 무더기 꺾어 올라온다. 매일 저렇게 꺾어오면 인근에 들꽃들이 남아나지 않겠다. 밥을 여기저기 조금씩 떼어놓는다. 항상 아침 예불을 올리고 스님들에게 공양물을 드리는 탁발 의식을 진행한다.

스님들은 건물의 오른쪽으로 신도들은 왼쪽으로 돌아 중간에서 만나 공양물을 드린다.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가장 먼저 정갈한 음식들을 만들어서 올라왔을 것이다. 혹시나 밥이라도 식을까, 고이고이 싸서 가져왔을 것이다. 불자들의 정성을 보면 가히 부처님도 감응하실 것 같다.

만사가 예배나 불공을 드리듯이 산다면,

걸림이 없을 것이다.’

새벽 4, 45분쯤 되니 스님이 아침 기상종을 친다. ‘왓 푸라탓 와잉 호아(Wat pra that waing hoa)’의 두 번째 날이 밝아온다. 이제 한 해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은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다.안개가 짙게 끼여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멍크가 마치 사바세계라도 굽어보고 있는 것 같다. 예수님과 부처님도 죄와 전쟁이 많은 저 땅을 내려다보며 죄사함을 바라고 계실까? 문득 그의 얼굴에 수심이 어리는 듯하다.“법이 무엇인지 헤매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마음 안이 진리밭이라고, 옆에 두고 헤매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불계와 속계가 한 치 차이라고 하는데,안개만 더욱 짙어 온다.‘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할 것이다.’그것이 우리의 삶의 여로이지 않는가?“
(탁발, 귀한 음식들을 받는다. 촬영=윤재훈)

법(法)이란 무엇인가?
하루 세 끼 밥 먹고,
하루종일 했던 행동들이 다 법일 것이다.
상주불멸(常住不滅), 행주좌와(行住坐臥)이다.
그러면 모든 행동이 더욱 조심스러워질 것이다.

- 위파사나 수행 중에

주로 공양으로 쌀을 많이 하며, 고산족들 많은 오는 듯하다. 다른 나라 민족으로 신분도 불안정하고 살기도 척박하니 더욱 의지처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추앙받은 스님이 계시면 무슨 일이 있을 때, 큰 힘이 될 것이다. 현지인 신도들도 얼마나 든든하겠는가.

탁발이 끝나면 스님들이 먼저 식사를 하고, 신도들이 먹는다. 계속해서 아잔이 중간중간 마이크로 무슨 이야기를 한다.

특히나 나이 드신 불자님들의 정성을 보면 더욱 갸륵하다. 자신들이 떠날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하면서 저리 더 지극 정성일까? 부처님께서도 생사에 얽매이면 현재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물에 걸리지 않은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은 사자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게, 
삶의 순리라고 하였는데,
우리는 백 년도 못살면서 천 년 걱정을 하고 있다.

 

(아잔 친견, 부모처럼 따뜻하다. 촬영=윤재훈)
(아잔 친견, 부모처럼 따뜻하다. 촬영=윤재훈)

아잔이 이 인근에서는 꽤 유명한 멍크인 모양이다. 아침 법회가 끝나자 수행 중인 멍크들이 앞다투어 친견을 하는데, 그 줄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어제밤 나가 스톤(naga stone) 행사를 할 때 보았던 것과 비슷한 조그만 불상이나 진주 모양의 것들을 몇 개씩 받는다. 어젯 밤과 마찬가지로 마의크로 계속해서 숫자의 단위를 말한다.

(진리가 어디 있는지, 텐트촌. 촬영=윤재훈)
(진리가 어디 있는지, 텐트촌. 촬영=윤재훈)

아침 공양를 하고 텐트촌으로 내려오니 여기저기 주무시는 멍크들도 있다. 백 명의 사람이 있으면 백 가지 삶이 있다고 한다. 저마다 다들 말못할 사연들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더러는 반드시 한 번은 출가의 길을 가야 하니 떠나오기도 했을 것이다.

나도 오랫동안 여행을 하고 있으니 출가도 한 번 쯤은 해보고 싶었다. 철저한 번뇌에 진저리치며 은산철벽을 건너듯, 생사라는 이 무한 고리의 문을 잡아당겨 보고 싶을 때도 있었다.

생겨난 것들은 언젠가,
다시 돌아간다.
이 지난한 명제는, 참이다
생사일여(生死一如)한데,
나를 이룰 곳이 어디냐?

- 오지 사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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