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㊱] 윤회의 고리를 누가 끊어줄 것인가? 4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1.15 17:21
  • 수정 2021.01.2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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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파사나 명상의 연말연시 풍경4

윤회의 고리를 누가 끊어줄 것인가?

산방에 오래된 방석 하나
고승대덕을 두 분이나 낳았다는데

봄볕 아른거리는 날
나도 그 위에
가만히 앉아보면,

민들레 한 송이 쯤
피워 낼 수 있을 것도 같아
- ‘산방(山房)의 방석 하나’, 윤재훈

(10대 부부. 촬영=윤재훈)
(10대 부부. 촬영=윤재훈)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갑자기 하루 한 끼만 먹으니 배가 고프다. 슬글슬금 산그늘처럼 마을로 내려간다. 허름한 가게로 들어가니 아주머니 두 사람이 ‘타이 위스키’ 마시고 있더니 한 잔 건넨다.

집에서 대충 만든 독주인데, 40도가 넘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젊은 부부가 들어온다. 아기는 안고 있는 부인은 16살이고 남편은 18살이다. 아직 솜털도 채 가시지 않은 채 흰 이를 드러내놓고 웃는, 어린 부부의 웃음이 해맑다 못해 천진난만하다.

작은 병 타이 위스키는 40b(1,600원)이다. 나도 한 병 사 같이 마시다 아주머니들은 돌아갔다. 가게 주인 아들과 앉아 몸짓 발짓, 서툰 타이어를 간간히 섞어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저녁 예불. 촬영=윤재훈)

사원에 돌아오니 저녁 예불중이다. 오늘은 아주 넓게 난장을 펴고 불상을 파는 장꾼이 왔다. 다양한 부처님이 많아 계속해서 멍크들이 다녀간다. 밤이 이슥해 지자 장꾼은 익숙한 솜씨로 그 옆에 텐트를 친다. 누구나 밤이 되면 텐트를 치고 잘 수 있는 곳, 가난한 영혼들에게 사원은 참 좋은 장소다. 거기다 도력 높은 스님들도 있으니 귀신도 범접하지 못할 것이다.

구름이 한 마리 거대한 용으로 형상화되어
바람에 가비얍게 움직인다.


한 해를 보내며, 타일랜드 북부 산악지역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법어로 한 해를 보낸다.

(아잔에게 궁금증을 묻는다. 촬영=윤재훈)
(아잔에게 궁금증을 묻는다. 촬영=윤재훈)

법회가 끝나가자 아잔(큰 스님)<푸라 자우 탄 자이Pra Jaw Tan Jai>라는 노랗게 금칠이 된 부처님 뭉치와, 멍크들이 허리에 감은 빨간 실 등을 가지고 와, 마이크로 직접 팔면서 돈까지 받는 모습이 낯설다.

어찌보면 우습기까지 하지만 오랫동안 내려온 전통인 듯 스스럼이 없다. 아잔이 들고 있는 저 성물들은 아마도 그의 도력이 들어가, 사람들이 저리 좋아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잔은 타일랜드 북부에서 아주 이름이 높은 아잔통의 제자라고 하는데, 이름에서 통할 통()’자가 인상 깊다. 갑자기 내 이름을 불러 앞에 가서 150b를 주고 한 개 사서, 멍크 친구인 에게 주었는데 이름은 <쪽밧>이란다. 쪽박이라는 말이 떠올라 한참 미소를 지었다.

뒤쪽에서는 멍크들이 담배를 피우며 차를 끓이고, 이야기를 한다. 위파사나 불교는 고기와 담배에 대한 제약이 없는 듯하다. 성속(聖俗)이 끓어진 자리인가?

다른 멍크가 아잔에게 뭔가를 주자, 이번에는 아잔이 손바닥에 올려놓고 주문을 외며 기를 넣어주는 듯하다.

(10여일 가까이 장작불로 쫄이는 허브. 촬영=윤재훈)
(10여일 가까이 장작불로 쫄이는 허브. 촬영=윤재훈)

며칠째 마당의 장작불 위에 커다란 솥을 놓고 뭔가를 끓인다. 인근 산에서 난 약초들과 사탕수수라고 하는데, 물이 쫄고 쫄아 점점 진득해진다. 그것을 타이 허브 <Tai hurb>라고 하는데, 허리와 에너지 보강에 좋다고 하며, 멍크들은 자주 차에다 몇 방울씩 떨어뜨려 마신다. 우리에 비해 단백질 섭취가 훨씬 작을 듯도 하다. 배가 아픈 데도 좋다고 한다.

(째디에서 시작된 줄이 솥 안으로 들어가 있다. 촬영=윤재훈)
(째디에서 시작된 줄이 솥 안으로 들어가 있다. 촬영=윤재훈)

가만히 보니 손 안에 하얀 실이 하나 연결되어 있다. 따라가 보니 그 실은 멍크들이 매일 법회 때마다 앉아있는 째디(탑)에서 시작하여, 코끼리 상아를 지나 100여 명이 넘은 스님들의 손을 거쳐 솥 안으로 들어와 있다. 그러니 모든 기운들이 모여 다 이곳으로 들어온다고 보면 된다.

멍크들은 그것을 ‘파워 매직 메디신<Power magic medicin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타일랜드에서 ‘출가(出嫁)’라는 것은 일생에 단 한 번, 일대사(一大事)를 결정짓는 그런 비장한 문제는 아닌 듯하다. 일곱 번까지 출가할 수 있고 일단 출가를 하면 마을과 가문의 자랑이 된다.

동자들이 출가할 때는 어깨가 으쓱하게 마을에서 잔치를 해주며, 무등까지 태워 요란하게 온 마을을 돈다. 아이의 집에 가서도 요란하게 행사를 한다. 또한 사원으로 가서 3일 동안 얼굴에 짙은 화장을 해주며, 가장 화려한 옷들로 갈아입고 떠들썩하게 잔치를 한다.

며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도 많다고 하니, 상당히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출가한다고 볼 수 있다.

(붓다와 아잔. 촬영=윤재훈)
(붓다와 아잔. 촬영=윤재훈)

부처님는 왕자의 신분으로 호화스러운 궁중 생활를 포기하고, 거기에 야쇼다라 왕비, ‘번뇌의 씨앗’이라고 이름 붙인 ‘라후라’라는 자식까지 버리고 출가했다. 나중에 아들은 십 대 제자의 한 명으로 ‘밀행 제일’이라고 칭해진다. 그 모진 서원은 무엇이었을까?.

생사 번뇌의 고리를 다 끓고, 다시는 이 윤회의 바다에서 괴로워하지 않겠다는 그런 비장함 때문이시지 않았을까?.

“내 결코 깨닫지 못하면 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일어나지 않겠다”라는, 그 섬뜩함의 발로였을까?

밀행제일 ‘라후라’ 존자가 20세가 되었을 때 어느 날 부처님과 걸식을 나갔을 때 주신 말씀이라고 한다.

모든 삼라만상과 더불어, 몸도 마음도 생각도,
모두 무상하다고 생각하여라.
그러면 모든 집착이 사라지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소승불교는 언제나 스님이 되었다가 다시 그만둘 수 있다. 그 안도감이 출가를 더 쉽게 결정할 수 있게 하지 않을까? 누구나 한 번 쯤 승단을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그런 장점도 있겠다.

한국의 조계 승단은 점점 스님의 수가 줄어들고 노령화되어 간다고 한다. 스님들이 시도 때도 없이 속인(俗人)들을 실망시키는 이유도 있겠지만, 단 한 번의 파계만으로 다시는 스님이 될 수 없다는 그 엄중함이 더욱 섬뜩하지 않을까? 물론 그렇지 않는 종단들이 더 많지만, 그 청정한 정신 때문에 우리가 더 실망을 많이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일 수도 있다.

내 소유의 모든 것, 부모 자식의 핏줄까지 다 버리고, 표표히 산문으로 들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또 그런 선연함 때문에 수천 년 한국의 승단이 이어져 오지 않았을까?

산방에 오래된 방석 하나
고승대덕을 두 분이나 낳았다는데

봄볕 아른거리는 날
나도 그 위에
가만히 앉아보면,

민들레 한 송이 쯤
피워 낼 수 있을 것도 같아
- ‘산방山房의 방석 하나’, 윤재훈

 

(1일 1식 공양. 촬영=윤재훈)
(1일 1식 공양. 촬영=윤재훈)

멍크들은 사원 생활은 표면적으로는 누구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 아침에 아잔과 한 번의 대화 시간이 지나가면, 오직 자기가 알아서 하는 것이다.

윤회의 고리를 누가 끊어줄 것인가.

그 고리가 정작 있기나 한 것일까?

성불이란 오직 자신의 인연과 기근에 따라 가능하기나 하는 것인지, 자칫 잘못하면 사원의 생활이 좌불안석(坐不安席)일 수도 있다. 단 21일짜리 수행을 하면서도 나는 일희일우(一喜一憂)를 거듭하며 헤매었으니 말이다. 무엇을 먹었는지 밤에 게우는 멍크들이 많다. 뭘 잘못 먹었나?

오전 수업 끝나고 11시가 넘어가면 이제 오후 불식(不食)인데, 동자들은 과자 같은 것을 먹는다. 아직 적응이 안 되어서인지, 쉬는 시간에는 컴 앞에서 오락을 하거나 만화영화를 본다. 오전에 밥을 준비하고, 비질하는 동자들도 보인다.

원주민의 아이들과 고산족 아이들이 서로 섞여 동화되어가는 중이며, 사원 생활에 어떤 차별도 없는 듯하다.

(저 옷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태종대 달리는 사람들.’ 촬영=윤재훈)
(저 옷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태종대 달리는 사람들.’ 촬영=윤재훈)

멍크들이 공양이 끝나면 신도들의 공양이 시작된다. 이 외진 산속 절간에서 낯익은 글씨가 내 눈길을 잡는다. 저 옷이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지. 잠시 후 복권 장수가 왔다. 이곳은 사람들이 복권을 참 많이 산다. 스님들이 모여앉아 입에 담배를 물고, 복권 사는 모습이 참 낯설다.

아침 공양 시간이 되어 가면 꼭 애음이 섞여 나오는 음악이 잔잔하게 산기슭 사원의 마당에 깔린다. ‘인간은 누구나 종교적일까?’ 사람들을 한없이 사색적으로 흘러가게 하는 그런 분위기다.

얼마 전까지 이 나라는 모계 사회였다. 아주 오래된 사진도 아닌 것 같은데, 여성들은 젖가슴을 훤히 드러내놓고 사진을 찍었다. 여성은 아직 멍크가 되지 못하고 매씨라고 부른다. 하긴 소승불교에서는 여인과 악인은 성불이 안 된다, 대승경인 법화경 제12 ‘제바달다 품’에 와서야 비로소 여인성불과 악인성불이 가능하게 된다.

(아침 공양이 끝나고. 촬영=윤재훈)
(아침 공양이 끝나고. 촬영=윤재훈)

아잔과 다른 멍크 한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경을 외는데 마치 서로 주거니 받거니, 때로는 악을 쓰듯이, 어떤 때는 만담이라도 하는 것처럼 재미있게 왼다. 마치 티벳 스님들이 난장에서 법 토론이라도 벌이는 듯이, 족히 30여 분은 외는 것 같다.

야단법석(野壇法席)을 하거나, 십우도(十牛圖)의 마지막 반열인 입전수수(入廛垂手)에라도 들어, 저잣거리 안에서도 삼매에 드시려고 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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