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br>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news/photo/202101/3029_5975_4449.jpg)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2019년 조연현문학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중학교 교사인 민자씨는 겨울방학을 맞아 한껏 여유를 부리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대학교 졸업 이후 줄곧 계속 해온 중학교 교사생활이지만 요즈막엔 나이가 60살을 바라봐선지 피로가 능숙함을 앞질렀다. 다행히도 민자씨의 딸 둘이 다 대학에 입학한 후부터는 남편을 포함해서 가족 내에서 불문율이 생겼다. 적어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는 엄마인 민자씨의 취침과 기상, 아침밥은 누구의 시간표에도 맞추지 말고 민자씨 마음대로 하기로 말이다.
민자씨는 가족들에게 미소를 날리며 “그럼, 이 몸은 평생 연금이 나오는 연금녀니까 상종가로 알아서들 잘 모셔야지. 방학 때는 주부역할도 방학이니 각자도생 합시다!”하고 농담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 겨울방학은 쉬어도 너무 푹 쉬는 것 같았다. 방학으로 풀어진데다가 코로나로 모임과 운동이 줄어서인지 몸이 자꾸 무거워지는 듯 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낀 민자씨는 이제부터는 자주 병원에 갈 나이가 된 것 같아 이참에 주변의 중년 친구들이 거의 다 들었다는 실손보험을 알아보았다. 며칠 후, 보험회사에서 방문간호사를 집으로 보내 문진과 혈액검사를 해갔다. 그런데, 보험을 의뢰했던 설계사에게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돌아왔다.
“손민자 선생님, 다른 데는 다 이상이 없는데요, 피검사 결과 공복혈당이 좀 높게 나왔습니다.”
민자씨는 의아했다. 1년 전에 한 종합검진에서도 혈당은 높지 않았는데, 그사이에 혈당이 위험수치가 됐다니 말이다. 하긴 그때도 중년부인 특유의 아랫배 살을 좀 빼는 게 좋겠다는 경고를 듣긴 했지만 크게 문제될 건 없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놈의 코로나 때문에 덜 움직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 돼버려 늘어난 몸무게가 배로만 몰린 것 같더니 그예 공복혈당을 높여버린 모양이다. 민자씨는 그럼, 자신은 혈당이 높아서 실손보험에 들지 못하는 거냐고 물었다. 설계사는 “선생님, 한 6개월간 한 음절을 가진 네 가지 음식을 좀 줄여서 먹은 후 다시 혈당을 재보도록 하지요. 아직 당뇨 구간이 아니라서 보험 가입은 되는데, 납입액이 좀 높아질 수가 있어서요.”
“네 가지, 한 음절을 가진 음식이라… 무슨 음식이죠?”
“네, 그게, 우리 설계사들이 늘 중년 고객들에게 권유하는 문구인데요. ‘밥, 빵, 떡 면’ 이 바로 피해야 할 네 가지 한 음절 음식이랍니다.”
평소에 탄수화물 과다가 몸에 좋지 않다는 정도는 익히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막상 ‘밥, 빵, 떡, 면’을 주범으로 ‘적시’를 받고 보니 민자씨는 갑자기 힘이 빠졌다. 저 네 가지 주식을 빼고 식사를 한다면 먹는 즐거움이 몽땅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흰쌀밥 대신에 현미밥을, 달콤한 버터식빵 대신에 거친 통곡물빵을 먹고, 떡은 아예 먹을 생각도 말자고 할 수도 있는데, ‘면’이 제일 문제였다. 점심으로 집에서 느긋하게 해물칼국수와 오뎅우동을 먹지 못하는 겨울방학은 생각도 하기 싫었다. 진한 멸치국물맛 잔치국수도 끊어야 한단 말인가! 더 늦기 전에 실손보험에 들기 위해서?
“선생님이 그리 과체중도 아니시고 하니 이 네 가지 음식 조금만 줄이시면, 더 날씬해지시기도 하고, 혈당도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올 테니 일석이조라 권고 드리는 겁니다.”
민자씨는 이성적으로는 그 보험설계사의 말에 찬성을 하고, 성격상 결국 지침을 따르겠지만 당분간 삶의 소중한 한 가지 낙이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에 내심 “나 이대로 살래!”하는 반발이 만만치 않게 차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