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52] 밥, 빵, 떡, 면

오은주 기자
  • 입력 2021.01.1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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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br>​​​​​​​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2019년 조연현문학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중학교 교사인 민자씨는 겨울방학을 맞아 한껏 여유를 부리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대학교 졸업 이후 줄곧 계속 해온 중학교 교사생활이지만 요즈막엔 나이가 60살을 바라봐선지 피로가 능숙함을 앞질렀다. 다행히도 민자씨의 딸 둘이 다 대학에 입학한 후부터는 남편을 포함해서 가족 내에서 불문율이 생겼다. 적어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는 엄마인 민자씨의 취침과 기상, 아침밥은 누구의 시간표에도 맞추지 말고 민자씨 마음대로 하기로 말이다.

민자씨는 가족들에게 미소를 날리며 “그럼, 이 몸은 평생 연금이 나오는 연금녀니까 상종가로 알아서들 잘 모셔야지. 방학 때는 주부역할도 방학이니 각자도생 합시다!”하고 농담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 겨울방학은 쉬어도 너무 푹 쉬는 것 같았다. 방학으로 풀어진데다가 코로나로 모임과 운동이 줄어서인지 몸이 자꾸 무거워지는 듯 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낀 민자씨는 이제부터는 자주 병원에 갈 나이가 된 것 같아 이참에 주변의 중년 친구들이 거의 다 들었다는 실손보험을 알아보았다. 며칠 후, 보험회사에서 방문간호사를 집으로 보내 문진과 혈액검사를 해갔다. 그런데, 보험을 의뢰했던 설계사에게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돌아왔다.

“손민자 선생님, 다른 데는 다 이상이 없는데요, 피검사 결과 공복혈당이 좀 높게 나왔습니다.”

민자씨는 의아했다. 1년 전에 한 종합검진에서도 혈당은 높지 않았는데, 그사이에 혈당이 위험수치가 됐다니 말이다. 하긴 그때도 중년부인 특유의 아랫배 살을 좀 빼는 게 좋겠다는 경고를 듣긴 했지만 크게 문제될 건 없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놈의 코로나 때문에 덜 움직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 돼버려 늘어난 몸무게가 배로만 몰린 것 같더니 그예 공복혈당을 높여버린 모양이다. 민자씨는 그럼, 자신은 혈당이 높아서 실손보험에 들지 못하는 거냐고 물었다. 설계사는 “선생님, 한 6개월간 한 음절을 가진 네 가지 음식을 좀 줄여서 먹은 후 다시 혈당을 재보도록 하지요. 아직 당뇨 구간이 아니라서 보험 가입은 되는데, 납입액이 좀 높아질 수가 있어서요.”

“네 가지, 한 음절을 가진 음식이라… 무슨 음식이죠?”

“네, 그게, 우리 설계사들이 늘 중년 고객들에게 권유하는 문구인데요. ‘밥, 빵, 떡 면’ 이 바로 피해야 할 네 가지 한 음절 음식이랍니다.”

평소에 탄수화물 과다가 몸에 좋지 않다는 정도는 익히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막상 ‘밥, 빵, 떡, 면’을 주범으로 ‘적시’를 받고 보니 민자씨는 갑자기 힘이 빠졌다. 저 네 가지 주식을 빼고 식사를 한다면 먹는 즐거움이 몽땅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흰쌀밥 대신에 현미밥을, 달콤한 버터식빵 대신에 거친 통곡물빵을 먹고, 떡은 아예 먹을 생각도 말자고 할 수도 있는데, ‘면’이 제일 문제였다. 점심으로 집에서 느긋하게 해물칼국수와 오뎅우동을 먹지 못하는 겨울방학은 생각도 하기 싫었다. 진한 멸치국물맛 잔치국수도 끊어야 한단 말인가! 더 늦기 전에 실손보험에 들기 위해서?

“선생님이 그리 과체중도 아니시고 하니 이 네 가지 음식 조금만 줄이시면, 더 날씬해지시기도 하고, 혈당도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올 테니 일석이조라 권고 드리는 겁니다.”

민자씨는 이성적으로는 그 보험설계사의 말에 찬성을 하고, 성격상 결국 지침을 따르겠지만 당분간 삶의 소중한 한 가지 낙이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에 내심 “나 이대로 살래!”하는 반발이 만만치 않게 차올랐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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