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㊲] 소박한 수행자들5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1.21 11:03
  • 수정 2021.01.2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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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수행자들

바람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나 싶더니

솔방울 하나
툭, 하고
소 등으로 떨어졌다

깜작 놀란 소
길길이 뛰더니,
산문으로 들어가
십우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 ‘흰소를 찾아서’, 윤재훈

(소박한 수행. 촬영=윤재훈)
(소박한 수행. 촬영=윤재훈)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새벽이 되면 등이 시리도록 냉기가 올라온다. 이것저것 6장 가까이 깔았는데도 춥다. 요리조리 몸을 뒤척여 보지만 소용없다. 그래서 저절로 잠이 일찍 깬다. 오늘은 바닥을 따뜻하게 깔아야지 하지만, 햇빛이 나면 또 잊어버리는 설산에 사는 ‘한고조(寒苦鳥, 衆生)’ 같다.

해만 뜨며 지난 밤의 뼈를 깎는 히말라야의 추위를 잊어버리고, 놀기에 바쁜 중생들의 모습이다. 그래서 ‘내일이면 집 지으리 새’라고도 한다.

(만화영화가 더 좋아요. 촬영=윤재훈)
(만화영화가 더 좋아요. 촬영=윤재훈)

오전에는 동자승들이 공부를 하는데, 영어 시간인 모양이다. 우리는 중학교에 가면 문법책으로 시작하는데, 회화책으로 바로 시작한다.

20년 이상 영어를 배웠지만 외국인만 보이면 울렁증이 먼저 일어나는, 우리의 잘못된 영어 교육 때문에 지금도 외국인을 만나면 더듬거린다. 그래서 영어는 평생 어렵다. 여기에서는 사찰에서 공부을 해도 학력 인정이 된다고 하니, 더욱 공부할 맛이 나겠다.

2박 3일 동안 부처님 목걸이를 팔던 장꾼들이 오늘은 람빵에 있는 절로 간다고 노점들을 걷는다. 그곳은 특히 코끼리를 타려는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곳이다. 이제 이곳에서는 며칠 지났으니 목걸이에 대한 멍크들의 관심도 떨어지고, 또한 사찰마다 동안거 중이니 갈 곳은 많으리라.

(어느 것이 내 수행의 버팀목이 되어줄까. 촬영=윤재훈)
(어느 것이 내 수행의 버팀목이 되어줄까. 촬영=윤재훈)

진열장을 보다 부처님 목걸이가 생각보다 저렴해서 2개를 골랐다. 150b을 달라는 것을 100b에 흥정하자 끝물이라 그런지 혼쾌하게 해준다. 희미하게 여인 부처가 새겨져 있는데, <꾸악>이란다. 오일 같은 것 안에도 부처님이 들어있는데 약간 큰 것은 350b이고, 작은 것은 300b이라는데, 비교적 가격이 높다.

부처님을 팔고 있지만 장꾼의 모습으로만 보여 말도 걸어보지 않았는데, 보기보다 사내가 싹싹하다. 자기가 먹다가 반 정도 남은 쏨오를 먹으라고 준다.

(스님의 발걸음 따라 땅에 무릎을 꿇은 지극한 신심들. 촬영=윤재훈)
(스님의 발걸음 따라 땅에 무릎을 꿇은 지극한 신심들. 촬영=윤재훈)

멍크들은 대부분 부처님 목걸아들이 많다. 몇 개씩 목에 걸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한 멍크가 주머니에서 잔돈을 꺼내고 악어가죽으로 된 지갑 안을 보여주면서, 돈이 없어 방콕까지 걸어가야 된다고 한다.

목걸이 두 개를 들고 자꾸 150b을 연발하는데, 수행자의 모습이 아닌 듯도 하여 안타까운 마음마저 든다. 이것 역시 이 나라의 수행 환경일 것이다.

정말 차비라도 떨어졌는지, 뒷날은 텐트를 치고 같이 수행하는 멍크들에게 판다. 간혹 그렇게 노자가 떨어지면 바닥에 놓고 파는 멍크들을 본 적이 있다.

 

바람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나 싶더니

 

솔방울 하나

, 하고

소 등으로 떨어졌다

 

깜짝 놀란 소

길길이 뛰더니,

산문으로 들어가

십우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흰소를 찾아서’, 윤재훈

 

나뭇잎에 담배를 말아 피는 멍크가 있어 호기심이 일어 한 번 빨아보았는데, 상당히 독하다. 어린 시절 가난한 한국의 어른들이 피던 봉초생각이 났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는 그때의 우리보다는 훨씬 국민 소득이 높다.

그 시절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는 한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10위 권에 들어가는 경제 대국이 되었다. 선진국들처럼 중소기업이 튼튼한 나라가 되어야 하는데, 모든 부의 중심이 재벌과 권력자들에게만 쏠려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스님, 우리 스님! 아잔에게 예를 갖추는 신도들. 촬영=윤재훈)
(스님, 우리 스님! 아잔에게 예를 갖추는 신도들. 촬영=윤재훈)

저녁 예불이 시작되었다. 아잔이 한참 동안 경을 외우더니 한 여성 신도 뒤로 간다. 말레이시아 여자라고 하는데 어디가 불편한 듯, 남편이 꽉 잡고 있다.

갑자기 아잔이 그녀의 머리를 잡고 경을 외는데 여자가 발버둥을 치더니, 막 개운다. 한참을 그렇게 하다가 법회가 끝났고 아픈 여자인 줄 알았는데 멀쩡하다. 뒤쪽으로 가 또 개우고도 배가 고픈지 남편과 음식을 먹는다.

쉬는 시간에 보니 여자가 있고 아잔 옆에 손을 심하게 떠는 23살의 젊은이가 앉아있다. 치앙마이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아잔과 마치 법거량이라도 하는 듯 말을 주고 받으며, 그 여자의 손목을 잡고 진맥을 하며 서로 이야기를 한다.

여자는 잔뜩 뭔가가 못마땅한 듯하고, 옆에는 시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이 앉아 계속해서 물을 따라준다. 젊은이는 손을 심하게 떨면서 말하는 폼이 도력이 있어 보인다. 신중하게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자, 빙 둘러서 있던 멍크들이 그 말을 경청하다가 웃는다.

아잔과 서로 이야기를 하다 아까처럼 머리를 잡고 경을 외자 또 여자가 개우기 시작한다. 멍크들이 빙 둘러 서 있는데 바께스를 놓고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계속 개운다. 어찌 보면 약간 정상이 아닌 듯도 하다.

아잔이 제자인듯한 멍크를 옆에 앉혀두고 자리를 옮겨 이야기하는데, 그 자세가 마치 티벳의 큰 스님처럼 기운이 높아 보인다.

한국의 승가에서는 보통 그런 것들을 잡술로 취급하여 경계하는 경향인데, 여러 멍크들 앞에서 신통력을 보여주기 위함인지도 모르겠다.

(마당에서도 삼매에 들지 못할 이유는 없다. 촬영=윤재훈)
(마당에서도 삼매에 들지 못할 이유는 없다. 촬영=윤재훈)

첫날 햇발이 내리쬐는 입구 화단 위에 조그만 텐트를 치고, 나에게 스스럼없이 프라피드(phra pid ta)라는 눈 가린 부처님 목거리를 하나 주던 얼굴이 유난히 새까맣던 멍크. 다른 멍크가 와 대화를 청하니, 팔목을 잡고 진맥부터 하는데, 도력이 있어 보인다.

다른 스님들의 말을 종합해 보며 절 뒤뜰에 <지꽁>이라는 중국 스님의 동상이 있는데, 술병을 머리에 베고 부채질을 하며 누워 있다. 이 학생이 여기애 와 수련을 하다가, 그 멍크의 혼령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나며 손을 심하게 떨면서, 그 멍크와 대화를 하며 영험하게 말해준다는 것이다.

(손오공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촬영=윤재훈)
(손오공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촬영=윤재훈)

한참을 그렇게 스님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아잔이 나오는데, 그냥 평범한 젊은이다. 몇 마디 까닭을 물으니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하고, 그것이 싫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 아래에는 손오공 상이 있는데, 무슨 관련이 있어서 세워둔 모양이다. 삼장법사도 아닌데,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

(매일 신도들이 와 법회에 참여한다. 촬영=윤재훈)

이렇게 많은 멍크들이 한꺼번에 수행하는 법회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은지 매일 신도들이 이 낮으막한 산을 올라온다. 물론 기운도 좋을 것이다.

6시쯤 되자 신도들은 멍크들 뒤로 가 앉고 저녁 법회가 시작된다. 아잔의 주도하에 법회가 진행되고 8시가 되어가자 신도들은 거의 돌아갔다. 멍크들의 수행은 이제 거의 막바지에 되어 가서 그러는지, 아잔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

뒤에서는 젊은 멍크들과 아까 찌공의 혼령이 들어갔다는 대학생이 마치 최면술사처럼 간간이 사람들이 잠재우고, 스스로 일어나게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깨우기도 한다. 탑 아래에서는 아잔이 다른 멍크들에게 기를 넣어주고, 멍크 두 사람도 서로 손을 맞잡거나 발을 대고 기를 주고받는다.

물질을 터부시하는 것 같은 옛날 우리네 사찰문화와 달리, 여기에서는 철저하게 관여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잔이 중심이 되어 <돌에서 나오는 성물, 허리에 감는 실, 등을 판다.  거의 종일 아잔은 마이크를 놓지 않고 수행을 진행하지만, 에너지가 항상 넘친다.

한참 동안 이같은 의식이 진행되고 몇몇의 스님들도 끝나가는 시간이 아쉬운지 약초를 끓이는 불가로 간다.

(사원 마당의 풍경. 촬영=윤재훈)
(사원 마당의 풍경. 촬영=윤재훈)

수행자에게 장소란 무엇일까?

그것은 참으로 중요할 것이다. 그 장소에 따라 자신의 기운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어떤 도반들과 함께 수행을 하는가하는 시절인연도 중요하다. 만사가 그 수행력과 기근에 따라 나타나겠지만,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도 자신의 복운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세상만사가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처럼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야 걸림이 없을 것이다.

(아침 시주. 촬영=윤재훈)
(아침 시주. 촬영=윤재훈)

늦은 밤 찾아 들어가거나 비가 심하게 와 들어가도 먹여주고 재워주는 사원, 저녁연기 피어오르는 굴뚝은 보이지 않지만, 그 옛날 우리네 시골 인심이 살아있는 곳.

동물도 배가 고파 사원으로 찾아들면 먹여서 보낸다. 눈 속에 먹이가 없어 인가 근처로 내려와 잡혀 죽은 그런 짐승들은, 최소한 이 나라에서는 없다.

“부처님의 자비가 온 산천과 사람들의 마음속에, 넘쳐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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