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㊳] 이 세상에 모든 무명(無明)을 없애주소서6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1.25 10:46
  • 수정 2021.01.26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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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모든 무명(無明)을 없애주소서

살아있는 것들에게
가장 숭고한
먹기 위해,

제 몸보다 수백 배 큰
만다라를 끌고,

사람들이 잠든 후
막 생을 마감한
경전을 끌고,

야단법석(野壇法席) 중이다

- ’만다라 –치앙마이에서‘, 윤재훈

(시멘트 예술가. 촬영=윤재훈)
(시멘트 예술가. 촬영=윤재훈)

절 입구에 인도 흰두의 신들인 <비쉬누, 날라이, 시바> 등의 동상이 서 있다. 뙈약볕 아래 한 사내가 시멘트로 여러 가지 성물을 만들고 있는데, 붓다를 다듬은 그의 손길이 진지함을 넘어 성스럽기까지 하다.

이 세상에 모든 무명(無明)을 없애게 해달라고 빌었던 ‘빈녀의 일등’이나, 부처님에게 모래떡을 바친 ‘덕승동자’라는 아이는, 나중에 전 인도를 통일한 고대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전륜왕(아육대왕)이 된다.

특히나 파괴의 신인 시바는 골목길이나 업소들 안에도 많이 서 있다. 그녀가 좋아하는 탈 것인 호랑이 위에 앉아있는데, 시멘트로 만든 솜씨가 약간 엉성하기도 하다.

태국의 사찰에는 비쉬뉴 동상도 많는데, 우리의 토속신앙과 습합되어 사찰 안에 산신당이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 듯하다.

(‘이 세상 모르고 지은 죄, 알고 지은 죄, 다 씻겨 나가기를. 촬영=윤재훈)
(‘이 세상 모르고 지은 죄, 알고 지은 죄, 다 씻겨 나가기를. 촬영=윤재훈)

그 옆에 젊은 멍크가 하나 텐트도 없이 모기장만 치고 있다. 문득 내 멜 주소를 묻는데, 옆에서 그의 도반으로 보이는 멍크 둘이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숲속에서 개운다

술을 먹었다고 하는 것인지, 못 먹는 술을 먹은 것인지, 너무 많이 먹은 것인지, 심심치 않게 개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수행 기간에 술을 먹은 것은 아닌 듯도 한데.

(공양을 드릴 때가 가장 행복해요. 촬영=윤재훈)
(공양을 드릴 때가 가장 행복해요. 촬영=윤재훈)

타일랜드어로 느아는 미얀마를 경계로 하는 북쪽 지역, ‘’따이는 남쪽 지역, ’이산는 라오스를 국경으로 하는 오른쪽 지역을 가르킨다. 깡 또는 끄랑은 방콕을 포함한 가운데 지역은 부르는 이름이다.

지역마다 서로 말들이 다른데, 우리의 사투리처럼 말이 조금 변하는 게 아니라, 명사가 통째로 변해 현지인들도 모를 때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심지어 수업 제목도 오늘은 Northern language(북쪽 언어) 시간이란다.

그러나 타일랜드와 라오스는 옛날에 한 나라여서 언어가 서로 비슷해 대화가 된다.

수시로 멍크들은 휴대폰을 통해 음악이나 라디오도 듣고, 인터넷를 통해 페이스북도 자유롭게 사용한다. 산사에 앉아 한가롭게 폰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번 생에서 생사 일대사의 문제를 결정짓기 위해 나온 수행자의 모습은 아닌 듯도 하다.

순례자의 길에는 가는 곳마다 다른 풍경, 다른 삶의 방식들이 펼쳐져, 더욱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아침마다 울려나오는 애음(哀音)의 음악도 이제 며칠 지나면 듣지 못할 것이다. 계속 들어도 들을 때마다 범부들에게 생사의 번민이 떠오르게 하는 운율이다.

스님이 앞에서 경을 외다 웃기도 하고, 신도들이 읽다가 틀리면 가르쳐 주기도 하고, 법회가 우리처럼 엄숙하기보다는 화기애애하고 자유롭다.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개우는 스님들이 많은지 모르겠다.(뒤에 그 연유가 나온다.)

(“저 어때요.” 촬영=윤재훈)
(“저 어때요.” 촬영=윤재훈)

이곳은 사철 여름이다. 그러니 매일 하루에도 샤워를 몇 번씩 한다. 그나마 지금은 겨울철에 해당하고 자그마한 동산 위라 덜 덥다.

그런데 산 위라 그런지 수돗물까지 며칠째 나오지 않는데., 지붕도 없는 샤워실에도 물이 없다. 동자와 멍크들은 동산 아래로 흐르는 개울에 가서 목욕과 빨래를 한다. 오늘은 양수기로 차에 물을 싣고 올라와 화장실 등에 붓는다.

먹는 물은 대부분 사서 먹는데 신도들이 많이 보시한다. 엄청난 페트병을 어떻게 처리하나 걱정스러운데, 아무 생각 없이 텐트 앞에 피워져 있는 모닥불 위로 던진다. 그 양이 많지는 않는 것 같지만 비닐도 마찬가지로 버린다. 환경에 대한 인간의 무지는 어디를 가나 똑같으니 이것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환경은 일심동체(一心同體). 그러나 우리는 극심한 이기적인 동물이다 보니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니 지나친 환경파괴 때문에 바이러스들이 변이를 일으키고 코로나로 몰려왔다. 잠시 몇 달간은 변해가는 듯했지만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 느낌이다.

지금 변하지 않으면, 인류에게는 미래가 없다.”

(“이 세상 모든 번민을 없애 주소서, 멍크를 존경합니다.” 촬영=윤재훈)
(“이 세상 모든 번민을 없애 주소서, 멍크를 존경합니다.” 촬영=윤재훈)

 

 

며칠째 뙈약볕 아래에서 멍크 몇 사람이 붙어 바닥에 타일을 붙이고 있다. 여기는 대부분 울력 보시를 하는 것 같다. 사실 불교가 생활 전체인 나라에서 부처님에게 바치는 것은 무엇이던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 것이다.

오늘도 마당가에서 뚜껑도 없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솥 곁에는 멍크들이 끊이지 않고, 누군가는 나무를 넣거나 커다란 솥을 젓고 있다.

특히나 오늘은 토요일이라 아침인데도, 여느 때보다 신도와 멍크들이 많다. 그러니 공양물도 넉넉하다.

사람이 너무 많이 와 아침밥이 떨어져 새로 하고 있다고 해서, 누룽지를 먹었다. 아주머니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멍크들을 따라 이곳까지 왔다.

(“염주 한 알 생의 번뇌, 염주 두 알 사의 번뇌.” 촬영=윤재훈)
(“염주 한 알 생의 번뇌, 염주 두 알 사의 번뇌.” 촬영=윤재훈)

그렇게 많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거의 보이지 않는다. 캄보디아의 시하눅빌에서 왔다는 <덴 오우> 멍크 텐트 앞에는 5, 6명이 모여,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도이 안타논>에서 생산된다는 우롱차를 마신다.

이곳에는 타일랜드 국민들 사이에서 생불(生佛)‘로 추앙받으며, 7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왕위에 올랐던 푸미폰 국왕부부의 탑이 솟아, 내국인 및 외국인들도 많이 온다. 감자처럼 생긴 것도 시원하니 먹을만 하다.

이제 수행기간이 끝나가서 그런지 까울락()도 먹고, 동남아 사람들이 즐겨먹는 간식 중의 하나인 해바라기씨sun flower도 까먹었다.

<~>이라는 멍크가 루앙 부 투악(Ruang Bu Tuak‘)이라는 부처님 목걸이를 정표로 준다. 그의 다정하고 순박한 마음이 아릿하게 전해져 온다.

아침 법회 시간이 끝나고 하루 일식(一食)을 하고 나면, 오전에 잠시 낮잠들을 잔다. 쉬엄쉬엄 올라와 커피를 마시는데, 멍크들이 불교와 관련된 문신들을 많이 했다.

멍크가 팔에 있는 문신을 가르키며 <가부끼> 라고 하고, 다른 멍크는 등 전체에 문신을 했는데, <만다라>라고 한다.

가부끼(歌舞伎)란 말을 가만히 되내여 보니 이웃 나라 일본의 가부키가 생각이 난다.

그것은 일본의 전통예술이며, ’머리를 기울이며 맘대로 춤을 추기라는 가부쿠라는 말에서 나왔다. 이상한 동작이나 복장을 가부키라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을 가부키모노라고 한다.

독특하게 모든 출연자들이 남성이며, ()와 달리 여성역을 맡는 배우는 여자 목소리를 낸다. 일본의 중요 무형문화제이며,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무형유산의 반열에 올라와 있다. 공연은 전용극장인 가부키자(歌舞伎座)에서 한다. 이 단어는 에도시대에 정립되었다.

 

(일일 일식(一日一食). 촬영=윤재훈)
(일일일식(一日一食). 촬영=윤재훈)

살아있는 것들에게는
먹는 문제가 가장 크다

먹기 위해
일을 해야 하고
먹기 위해
상대에게 거짓말도,
때로는 칼도 서슴없이 겨눈다

깊은 밤
하얀 벽을 따라
오글거리는 것들

풀씨처럼 작은 개미들이
제 몸보다 수백 배 큰
거미를 옮긴다

멀리서 보니 바람에 나뭇잎이
살랑이는 듯
거대한 절벽을 오른다

살아있는 것들에게
가장 숭고한
먹기 위해,
제 몸보다 수백 배 큰
만다라를 끌고,

사람들이 잠든 후
막 생을 마감한
경전을 끌고,

야단법석(野壇法席) 중이다

- ’만다라 –치앙마이에서‘, 윤재훈

이제 수행 기간이 다 끝나가니 모두들 짐을 정리하는 분위기다. 숲속에 쳐둔 텐트로 돌아와 아침에 남겨둔 음식에 독한 위스키를 한 잔 하는데, 죄스런 생각이 든다.

토요일이라 법회도 빨리 끝나고 아잔이 동자들을 모아놓고 뭔가를 이야기 하더니, 마당에서 TV를 틀어 영화를 보여준다. 멍크들은 장작불에 차를 끓이고 이야기 나누며 산속의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이야기를 주도하던 승납이 있어 보이는 멍크가 내일 자기가 있는 절로 돌아간다고 한다. 회자정리(會者定離)이다.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되어 있다.

모두 잘 돌아가, ’큰 도'()를 이루시어 이 세상

빛과 소금이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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