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건희의 산책길⑰] 우리 민족의 슬픈 자화상, 연극 ‘자이니치’

천건희 기자
  • 입력 2021.01.29 11:35
  • 수정 2021.02.0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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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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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천건희 기자]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에서 만난 공연장은 ‘두 좌석 띄어 앉기’의 시행으로 관람석은 휑한 느낌이다. 그러나 공연을 준비하는 스텝과 배우, 관객들의 열정은 뜨거웠다. 지난 1월 27일 가슴 뭉클한 연극 <자이니치>를 관람했다.

‘자이니치’는 일본어로 재일(在日), 일본에 거주함을 뜻하는 말로 일본에 살고 있으면서도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살아가는 재일동포를 의미한다. 이들은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재일한국인(민단)과 북한 국적을 가지고 있는 재일조선인(조총련)으로 나누어져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연극 <자이니치>는 일본 후쿠시마에 거주하는 재일교포 다섯 형제의 이야기다. 무대는 다다미방 장례식장, 병풍이 쳐져 있고 고인의 관과 사진이 놓인 제사상이 있다. 약한 향 내음과 일본 가수가 부른 가요 <임진강>의 구슬픈 멜로디가 흐르고 있었다.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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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자였던 둘째의 장례식장에서 민단 소속인 큰 형과 조총련인 셋째와 넷째, 한국에서 활동하는 야구 선수 막내, 이렇게 네 형제는 15년 만에 처음 만난다. 쓰나미로 죽은 둘째의 유언을 지켜주기 위해 유해를 아버지의 고향인 한국으로 보내려 같이 고민한다. 그러나 재가 된 유골조차도 한국여권이 없다는 이유와 쓰나미로 인한 원전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거부당하는 현실을 만난다. 결국 형제들은 화장(火葬)한 후에도 타지 않고 남은 우메보시 씨 한 개와 본인들의 머리카락이나 손톱 등을 모아 함께 한국으로 보내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이데올로기로 인해 반목했던 지난 세월의 갈등과 오해를 풀고 용서와 화해를 한다.

차현석 연출가는 “한국인의 시선에서 <자이니치>의 정체성을 담아 시대를 반영하고 싶었다. 재일 교포는 남이 아닌 우리 국민이다”며 연출 의도를 전했다. 우리 민족의 슬픈 자화상에 마음 아프다. 15년 만에 만났어도, 다시 언제 만날지 알 수 없어도, 형제인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한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출연한 권태원, 윤상현, 문태수, 이웅호, 유재동 등 다섯 명 배우들은 ‘자이니치’라는 무겁고 심각해질 수 있는 주제의 갈등을 해학적으로 풀어내며 즐거움을 준다. 남자 배우 다섯 명만 등장하는 연극이고, 무대 전환도 없지만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흡인력은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배우들은 대사 중 일부를 일본어로 말하기도 했다. “조선말로 하라우!~”라고 계속 다그쳤던 셋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공연계가 코로나 2.5단계로 인해 가장 힘든 상황에서도 극단 <후암>이 창단 20주년 기념시리즈 1탄으로 2015년 초연된 연극 <자이니치>를 다시 무대에 올려 기쁘다. 극단 <후암>은 2001년 창단해 연극 <흑백다방>, <칸사이 주먹> 등 창작공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음에 격려와 박수를 보낸다.

연출가 차현석 / 촬영=천건희 기자
연출가 차현석 / 촬영=천건희 기자

죽은 둘째가 가장 좋아했다던 <임진강>의 가사가 지금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코로나 상황 같이 느껴져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내리고

물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 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진정한 통일은 영토의 통일도 중요하지만 마음과 마음의 통일이 우선이지 않을까?... 우리들이 갈등을 내려놓고 화해를 할 준비가 되고 동질감을 회복하는 것이 실제 통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믿는다.”라는 차현석 연출가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연극 <자이니치> 공연은 오는 1월 31일까지 이어진다. 무대를 통한 치유와 희망의 과정이 계속 이어지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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