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㊴] 풍등(風燈)을 띄우며7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2.04 17:27
  • 수정 2021.02.05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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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등(風燈)을 띄우며

꿈이 무엇이니 묻자
소녀는 하얀 잇속을 드러내며
빙긋이 웃기만 한다

소녀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다본다
나도 열적어
하늘만 올려다본다

바람 따라 아스라하게
사라지는 등불

오늘 밤 어느 무인도에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별 하나
떨어져 내릴 것만 같다

풍등(風燈), 몽족 마을에서, 윤재훈

 

 

(소박한 거처, 촬영=윤재훈)
(소박한 거처, 촬영=윤재훈)

[이모작뉴스 윤재훈기자] 마침내 아잔이 불을 끄라고 한다. 나무가 풍부해 며칠 동안 장작불 위에서 푹 고듯이 끓이더니 약간 진득한 액(液)이 되었다. 이것을 ‘타이 메디신 오일<Tai medicine oil>’, 또는 ‘파워 메디신 매직<Power magic medicine>’이라고 부른다. 식용유통 크기의 양철통에 10개 정도가 나왔다. 저을 때마다 <멘톨>향이 진하게 풍겨 나왔다

저녁 법회 때마다 하얀 실이 째디(탑)를 한 바퀴 돌아 부처님을 손을 지나 코끼리 상아를 감고, 100명이 넘는 멍크들의 손에 얹혀 있었다. 다시 그 실이 나무 위을 지나 솥으로 들어갔다. 가히 자연과 성물, 멍크들의 온갖 기운이 함께 소통된 셈이다.

이것을 오늘 하루 동안 법석에 놓고 법회를 한다고 하니, 한마디로 멍크들의 <정성>과 <공력>으로 만들어 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정성에 가히 돈을 주고 사서 쓰기가 미안할 정도다.

(허브, 열매, 뿌리, 사탕수수 등 인근 산에서 재취한 온갖 약초, 촬영=윤재훈)
(허브, 열매, 뿌리, 사탕수수 등 인근 산에서 재취한 온갖 약초, 촬영=윤재훈)

커다란 솥에 팔리어 경을 외며 멍크 닥터<Monk doctor>라고 불리는 멍크가, <각종 식물, 열매, 나뭇가지, 사탕수수 등>과 중간중간에 노란 작은 열매를 수시로 썰어 넣었다. 그는 이 천연허브 오일을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는 듯하다. 옆에 끓고 있던 차를 따라 마시려 하자, 멍크가 티스푼으로 한 스푼 넣어주는데, 참기름처럼 노란 기름이 동동 뜬다.

마지막에는 이 오일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멍크들이 바닥까지 긁어 남은 오일을 담아간다. 오일 만드는 일을 끝낸 멍크는 허기가 지는지 식사를 하는데, 그의 등에는 만다라처럼 관음보살 문신이 있다.

마치 군대 가면 자기가 사회에서 했던 것을 주특기를 살리듯, 사원에서도 비슷한 것 같다. 표면적으로 상하 직업, 배움, 귀천이 없는 것 같은데, 사람이 사는 속사정은 어떨지 궁금하다.

오일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을 해주는데, 멍크의 이름은 <꼿Kot>이라고 하며, 방콕에 있는 <왓(절) 돈무앙>에 기거한다고 한다. 전화와 이메일도 없고 오직 비파사나만 수행하며, 1년 이상 인도, 네팔, 스리랑카, 중국 한국, 일본 등을 여행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것이 한국의 김치와 같은 것이라고 해서 놀랐다. 멍크들은 차에도 즐겨 타서 마시고, 머리나 배 아플 때도 물에 조금 타 먹어도 좋단다. 피부 트러블에도 바르고 심지어 화상을 입었을 때도 이것을 바른다. 그 옛날 우리의 안티푸라민이나 호랑이 연고처럼 만물약으로 쓰이며, 입술에도 립밤처럼 바른다.

특히 이곳은 사철 여름이라 항상 모기가 극성이어서 댕기열 같은 열병들이 위험한데, 이것을 바르면 밖에서 자도 허브향 때문에 모기가 물지 않아 여행자에게도 아주 유용하다. 가격은 100밧(4,000원) 정도 한다.

(법회 모습, 촬영=윤재훈)
(법회 모습, 촬영=윤재훈)

피부에 바르면 미끄럽거나 반짝거리지 않고, 멍크들의 심성을 닮아 담백하다. 이곳에서 내려온 비기(祕技)로 멍크들의 모임이 있을 때 가끔씩 만들어 쓰는 모양이다. 170여 명이 넘은 스님들과 신도들이 쓸 양으로는 그리 넉넉하지는 않겠다. 멍크들이 음악을 들으면서 오일을 작은 병 안에 담는다.

이곳 사람들은 허브를 흡입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듯하다. 평소에도 립스틱처럼 생긴 것을 콧속에 넣고 수시로 빨아들인다. 그러면 머리가 맑아진다고 한다.

(성속의 경계, 촬영=윤재훈)
(성속의 경계, 촬영=윤재훈)

이제 각자 절로 다가올 날들이 다가오니 멍크들이 차비라도 마련하려는 것인지 모여 앉아 붓다 목거리을 판다. 멍크들이 경비가 떨어지면 이렇게 하는 것이 일반화된 것 같다. 한 멍크가 스톤 멘다<stone menda>,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이라고 보여준다. 상당히 가격이 나갈 듯하다.

서로 가격을 흥정하며 한 부부는 서로 귓속말를 하며 어떻게 할 것인지를 타협한다. 멍크도 팔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옆에 상인들에게 물어보는 풍경이, 참 낯설다. 두 개를 1010b(40,400원)에 사는데, 가만히 보니 본인들 역시 좌판을 펴고 장사하는 부부다

(붓다를 고르며, 촬영=윤재훈)
(붓다를 고르며, 촬영=윤재훈)

한 멍크가 차에 오일을 타서 마시더니, 온몸에도 바른다. 윗주머니에서 금부처님 두 개를 내더니. 저울에 다니 <38,15>그램이 나온다. 한 개에 60,000b(우리돈 240만원)이라고 하는데, 멍크의 살림살이로 대단한 금액 같다.

그러고 보니 이 멍크가 가지고 있는 부처님들은 전부 몇천 밧(B)을 홋가하는 값나는 것들만 있다. 휴대폰도 삼성 갤럭시 노트 최신형을 쓰며, 주머니에 복권도 여러 장 있다. 집안이 넉넉해서일까, 선한 눈매의 납자(衲子)는 가난한 여행자보다 참 많이도 가지고 있는 부자 스님이다.

한참을 앉아있으니 마치 시장 난전(亂廛)에라도 앉아있는 것처럼 혼란스러워 자리를 떴다. 이런 모습 저런 모습이 다 현재 사바의 모습이다.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문득 이것도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서로 다른 수행법일까? 마치 기준에 딱 맞는 잣대처럼 예단하면, 항상 실수를 범하기 마련이다.

문득 우리 조계종 종단의 푸른 눈의 납자 현각 스님이, 혜민 부자스님에게 쏟아낸 서슬 퍼런 일갈(一喝)이 떠오른다.

“연예인일 뿐이다.

일체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전혀 모르는 도둑놈일 뿐이야.

부처님의 가르침을 팔아먹고 지옥으로 가고 있는 기생충일 뿐이야.”

이제 나도 이곳에 머물 만큼 머물렀다. 다음 일정을 준비해야겠다.

(아침 공양, 촬영=윤재훈)
(아침 공양, 촬영=윤재훈)

이 깊은 산속에서 일어난 일들은 옛날 같으면 1년, 5년, 아니면 수십 년이 걸려 세상 밖으로 흘러나갔을 것이다. 아니면 절간 속에서 맴돌다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단 몇 초면 세계로 퍼져나간다. 내가 지금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린다면 바로 세계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놀라운 세상에 살고 있다. 한편으로는 섬뜻함이 밀려온다.

문득 아잔의 이런 시연들이 혹시라도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히 수행자로서의 모습이 맞는 것인지?

지금 이곳에 모인 멍크들은 타일랜드에 있는 45개 도시와 인근에 있는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에서 온 멍크들이다. 모두 자신의 수행점검을 위해 만행을 떠나왔다.

매일 밤낮으로 개우는 스님들이 많아 술을 먹어서 그런가 하고 오해도 많이 했는데, 마하버드(Maha bird) 멍크가 그 까닭을 알려준다. ‘위장 청소(clear stomach)’를 하다고 민간 의학(Folk medicine protect)으로 내려온 일정한 나무를 갈아 먹으면, 그렇게 올라온다고 한다.

위장에 부담이 없을까?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좋을 테데, 이미 들어가 있는 음식물을 어쨌든 억지로 개우는 것인데. 차라리 음식을 집어넣지 않는 단식이 더 긍정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마하버드 멍크는 32세이며 라오스 위앙짠에 사는데, 지금은 여기서 멀지 않은 타일랜드의 치앙센(chiang Saen)에서 수행한다고 한다. 미얀마의 국경에 있는 타질렉에 있는 왓(절)에서도 1년간 비파사나 수행만 했다고 한다. 그는 선기가 있어 보이고 영어도 잘 한다.

(저녁 법회, 촬영=윤재훈)
(저녁 법회, 촬영=윤재훈)

법회 시간이 다가오자 미니밴 트럭 뒤에 사람들이 타고 올라온다. 오지 민족들은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계속해서 내리고, 그들의 옷차림에서 참 어려운 살림살이가 여실히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다. 초라할망정 꽃이나 쌀, 공양금을 준비해 온다.

저 어려운 살림살이에서 지극한 마음으로 준비해오는 공양금의 공덕을, 수행자들은 얼마나 생각할까 궁금하다. 그래서 성철스님께서도 ‘공양 도둑은 되지 말라고 하셨고’, ‘일을 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고 강조하였다.

저녁 법회 때 아잔이 두 번째로 귀신(ghost, devil)를 쫒는다고 시연을 한다. 한국의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며, 또한 잡기(雜技)하는 스님들은 저열하게 평가하는 환경도 있다.

오늘 만든 오일을 마셨는지, 아니면 게우는 나무 간 물을 먹었는지, 머리를 침으로 찌르는지, 그녀가 비명을 지르면 운다. 참 낯선 풍경이다. 공부하려고 이곳으로 모여든 스님들은 또한 무얼 얻어 갈련지.

이번에는 법석에서 아잔이 사용하던 물건을 파는 듯하다. 여러 가지 구슬과, 팔찌, 목거리, 브로치처럼 생긴 것 등을 판매하는데. 보통 1000b이 넘는다. 돈은 그 자리에서 아잔이 가져간다.

한 멍크가 대나무 통 안에 찹쌀을 넣어 장작불 위에서 익힌, <카올람>을 준다. 저녁에 먹을 요량으로 받았다.

(풍등을 띄우며. 촬영=윤재훈)
(풍등을 띄우며. 촬영=윤재훈)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 아침에도 밧(B)이라는 화폐 단위가 연속해서 스피커에 나온다. 마치 혹시나 잊고 있었던 사람들을 상기시키는 것도 같다.

아침부터 예쁜 봉투에 50b, 100b, 200b, 거기에 잔돈까지 정성껏 넣어 풀까지 붙여, 아잔에게 공양을 바친다. 아잔이 봉투 뭉치를 모아와 동자들에게 정리하라고 준다. 누가 얼마를 냈는지, 얼마나 어려운 사람들의 고단한 일상이 들어가 있는지, 아잔은 아실까?

겨울날 이국의 산속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멍크들과 텐트를 치고 10일간이나 같이 지냈다. 참 특별한 인연이다. 사찰과 인연이 깊은 것인지, 나는 지금 아시아의 절을 순례하고 있는 중이다.

한 해의 마지막 날도 아잔이 앞에서 마이크로 모든 행사를 진행한다. 뒤에서는 동자들은 서로 웃고 때리고 장난에 여념이 없다. 옆에 어른 스님들은 누구 하나 쳐다보거나, 신경 쓰는 사람도 없다. 만약 한국에서 이런 풍경이 펼쳐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 밤에는 한 해를 보내는 연말연시 행사가 사찰 마당에서 열릴 것이다. 홈 로이(하늘로 띄우다)를 날리고, 수많은 폭죽이 터질 것이다. 기대가 된다.

꿈이 무엇이니 묻자
소녀는 하얀 잇속을 드러내며
빙긋이 웃기만 한다

소녀가 물끄러미
바라다본다
나도 열적어
하늘만 올려다본다

바람 따라 아스라하게
사라지는 등불

오늘 밤 어느 무인도에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별 하나
떨어져 내릴 것만 같다

- 풍등(風燈), 몽족 마을에서,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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