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53] 전원주택 로망

오은주 기자
  • 입력 2021.02.05 16:56
  • 수정 2021.04.1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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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2019년 조연현문학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아, 이젠 정말 아파트살이가 재미가 없다” 라고 수남씨는 뇌까렸다. 오늘은 정말 집, 그 중에서도 단독주택을 보러 가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몇 년 전부터, 구체적으로는 하나뿐인 딸이 결혼을 한 3년 전부터, 오래된 로망이 다시 타올랐다. 마음에 드는,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은데 주위에서 우려 섞인 견해들이 많았다. 게다가 결혼한 딸이 일 년 후 손주를 출산하자 육아를 돕다보니 3년이 훌쩍 지났다. 이젠 손주도 발걸음을 떼고 수남씨의 아내가 딸집으로 출퇴근을 하며 돕고 있었다.

전원주택살이의 희망을 주위에 알리기 시작하자 먼저 쏟아져 들어온 의견들은, 병원이 멀어서 어쩔거냐, 여름에는 벌레와 투쟁해야 하고, 겨울에는 추위와 싸워야 하고, 외로울 거고, 수퍼도 멀어서 매끼니 밥해 먹기도 녹록치 않다는 우려가 더 우세했다. 그 모든 비토세력들과 마당에서의 멋진 바비큐 파티를 기다리는 우호세력들의 엇갈리는 말잔치 속에 수남씨의 결심은 더 굳어졌다. 요즘 아파트 전세 시세가 좋으니, 그 돈으로 전원주택에 전세로 2년을 살아보고 결정하자고 타협을 보았다.

서울사람들이 흔히 전원주택이 많은 곳으로 생각하는 양수리 쪽으로 일단 마음을 정하고 그 근처에 사는 지인의 소개를 받아서 전세매물로 나와 있는 두 집을 보기로 했다. 지금도 직장 다니는 딸네 집에서 살다시피 하며 손주를 키우고 있는 아내에게는 시간이 날 때 가끔 들러달라고만 했다. 전원주택에 대한 수남씨의 오랜 로망을 익히 알고 있는 아내는 흔쾌히 동조하며 자신도 주말에 쉬러 갈 테니 작지만 예쁜 집을 얻으라고만 부탁하고 모든 선택권을 일임했다.

수남씨는 자신이야말로 혼자 사는 데는 최적화된 남자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한식당을 운영했던 터라 식재료를 다루는 데는 이골이 날 정도로 능숙하니 ‘남자 혼자 식사 해결’이라는 독립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 이미 갖추어진 셈이다. 드디어 디데이가 오고, 수남씨는 중개인과 같이 양수역 근처의 단독주택 단지에 있는 집을 보러 갔다. 약간 경사지에 단지형으로 지어진 집들은 고립감이 없으면서도 독립감을 주는 좋은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다.

“그렇지, 모름지기 사람은 이런 데서 땅을 밟으며 살아야 제 맛이지.”

나지막한 단층에 텃밭이 딸린 첫 번째 집을 둘러보기만 했는데도 수남씨는 가슴이 트이는 것 같았다. 두 번째 집은 수남씨가 부탁한대로 다락이 있는 일층 집이었다. 어린 시절 안방 위에 있던 다락은 온갖 물건의 보물창고라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어려운 마성의 공간이었던 기억에 꼭 다시 갖고 싶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그 집의 다락으로 올라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수남씨는 머리를 숙이고 내려오다가 그만 좁은 계단에서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다행히 중개인이 곧 붙잡아줘서 일어나고 집에 와서도 별로 아프지 않았는데 하룻밤 자고 나자 허리를 도무지 펼 수가 없었다. 정형외과에서 허리가 완전히 나으려면 6개월이 걸린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이제 곧 봄이라 전원주택에 가면 사방에 할 일 천지라 그 허리로는 무리라는 진단도 곁들여졌다. 전원주택살이의 어려움에 대한 경고를 강렬하게 한 방 날려주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물러설 수남씨가 아니었다.

“내 꿈은 6개월 미루어졌을 뿐 나는 그 집에서 반드시 살 테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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