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㊹] 코카서스 3국을 가다 10_조지아 '구걸의 풍경'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3.15 10:54
  • 수정 2021.04.1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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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구걸의 풍경

국경으로 갈라져 있지만,
인터넷으로 묶여진 지구촌은 초 단위로 가까워져 버려,
국경의 의미가 갈수록 무의미해지는 것 같다.

코로나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세계의 국경을 지나가면서, 인류공생의 길을 생각해 본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판자집 가게, 동네 친구들의 사랑방인 듯하다. 촬영=윤재훈)
(노부부가 운영하는 판자집 가게, 동네 친구들의 사랑방인 듯하다. 촬영=윤재훈)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사람들이 반지하에 많이 산다. 그런데 내려가는 계단이 인도 쪽으로 나있어, 곳곳에 푹, 푹, 꺼져있다. 반 정도 올라가는 1층도 계단이 길 쪽으로 튀어나와 있다. 가로등도 별로 없어 밤에 술이라도 한 잔 먹고 비틀대다가는, 큰일 나겠다. 그리고 자판기를 비롯하여 돌출되어 있는 물건들도 너무 많아 부딪치기 십상이다. 지하철역 뒤쪽으로는 옛 거리들이 군데군데 잘 남아 있다.

<삼고리> 매트로 역으로 간다. 오래된 낡은 집 앞에서 현지인들이 뭔가를 읽고 있어 가보니, <기오르기 미켈라드제> 영화배우가 살았던 집이란다. 구글에 찾아보아도 코카서스 지역의 영화에 문외한으로 알 수가 없다. 허름한 안쪽 마당을 구경하고 나오니 현지인이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다. <마르자니 쉬빌리역> 근처에는 중저가 숙소들이 밀집되어 있어 배낭 여행자가 있기 편하다.

(멀쩡한 아가씨가 구걸을 하고, 지나가던 사내가 지갑 안을 보여주며 이야기한다. 촬영=윤재훈)
(이웃 나라에서 온 난민 가족인 듯, 깨끗하게 옷을 입고 조카들까지 왔는지, 대가족이다. 촬영=윤재훈)

이곳은 지하철이 더 깊이 내려간다. 소련 시절 대부분 방공호 용도 같은데, 쿠라강이 있어 더 깊어진 모양이다. 에스컬레이터가 상당히 빨리 내려가는 것 같은데, 2~3분은 흘러가는 것 같다. 요금은 0,3~0,5라리(1라리 440) 정도 한다.

누군가 표가 없는지 들어가지 못하고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표를 한 번 대주고 가는 아가씨. 일행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그녀의 넉넉한 품에 한참을 바라본다. 입구에는 정복을 입은 남자들과 아주머니들이 지키고 있는데, 별 신경을 안쓴다. 대부분 아주머니들은 배가 풍만하게 나와있다. 군데군데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도 부스가 있고 아주머니들이 앉아 있다.

급할 때는 만국 공통어가 더 유용하다. 오랜 여행을 하다보면 화장실이 급한 경우가 아주 많다. 어눌한 발음으로 “Where are toliret?”하면, "아이 돈 노"하는 경우가 많는데, 아랫도리를 가리키며 “쉬”하고 액센트를 강하게 집어넣으면, “오케이” 하면서 대부분 알아먹는다. 급할 때 역시, ‘바디 랭귀지’가 강하다.

(멀쩡한 아가씨가 구걸을 하고, 지나가던 사내가 지갑 안을 보여주며 이야기한다. 촬영=윤재훈)
(멀쩡한 아가씨가 구걸을 하고, 지나가던 사내가 지갑 안을 보여주며 이야기한다. 촬영=윤재훈)

매트로 문 닫히는 간격이 우리보다 빠르다. 꽝, 하고 닫히는 소리까지 들리는데, 문 사이에 손가락이라도 끼면 큰일 나겠다. 한국인들 급한 성격에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문은 다시 열리지 않는다. 에어컨도 없이 위에 작은 문이 열려있어, 엄청 시끄럽다.

“한 사내가 자리가 비어 있는데도 앉지 못하고,
바닥에 앉아 졸고 있다.
그의 인생도 평생 저렇게 천대받고 고독했을까?

그도 태어났을 때는 누군가의 축복 속에 왔을 텐데,
평생 소외 받고 호강 한 번 못해 보았을 것 같은 사내.
그의 초라한 차림새가 여행자와 오버랩 된다.“

 

(화가들의 작업실 같은 난장. 촬영=윤재훈)
(화가들의 작업실 같은 난장. 촬영=윤재훈)

오거리 커다란 건물 앞에서 화가와 상인들이 좌판이 매일 펼쳐진다. 주로 그림과 전통물건들을 진열해놓고 판다. 몇 사람의 화가는 그림을 파는 것 보다, 잘 팔리지도 않을 것 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에 더 열중하는 것 같다. 특히나 페르시아 인들이 항상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반달형의 칼과, 조지아의 전통 와인 뿔잔인 ‘깐지’가 많이 진열되어 있다.

”여행에 정의가 있는가
많은 나라, 오랜 시간의 여행이 꼭 좋은가
그 길에서 무엇을 보고 사색했는가?

여행을 하다 보면 세계는 하나이고,
우주에서 보면 지구라는 별은 하나의 가족 같다.
인간은 유한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이 지구를 잘 보전하고,
궁극에 우주라는 무한의 자원을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닌가?
그 밑바닥에 인간의 이기심을 극복하는 것이 보다 큰 문제일 것이다.

국경으로 갈라져 있지만,
인터넷으로 묶여진 지구촌은 초 단위로 가까워져 버려,
국경의 의미가 갈수록 무의미해지는 것 같다.
코로나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세계의 국경을 지나가면서, 인류공생의 길을 생각해 본다.“

지하도 입구에는 광주리 위에 땅콩 같은 주전부리 몇 가지를 놓고 조는 할머니, 사진을 찍으려는데 퍼뜩, 잠을 깨 내가 더 놀랐다.

트빌리시는 교통진행을 위해서인지 건너가는 길들이 별로 없다. 가는 길에 지하도를 잘보고 미리미리 건너가지 않으면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아주머니 걸인들이 많은데, 모두 차도르 복장을 단정하게 입었다. 촬영=윤재훈)

구걸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대부분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검정 ‘차도르’로 가린 아주머니들이, 얼굴만 내민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옷들은 깨끗하게 세탁해서 입고, 적선통을 앞에 두고 앉아 있는데, 때때로 성자처럼 거룩해 보이기도 한다. 예수님도 저렇게 이슬라엘의 벌판을 헤매셨을까?

잠시 거리를 따라 걸으니 <국립박물관>이 보인다. 어느 나라를 가든 국립박물관은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다. 그나마 그 나라의 문화적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박물관 앞에는 뭔가를 써서 들고 구걸하는 사내가 졸고 있다. 손에는 동전 몇 닢이 놓여있다. 연신 인사를 하듯 고개가 위아래로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모습이, 살아온 그의 인생 같다.

서울역이나 시청 앞쯤 지하철역에서, 겨울 찬바람에 냉골 올라오는 허리를 오소리처럼 꺾던 모습들이 오버랩된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데
지하도에 누워있는 부랑아들을 보면,
그 말이 자꾸 믿기지 않는다

갈수록 냉기만이 속살을 파고드는 계절
기상 게스트의 급한 목소리만 울대를 세우며 몰려오는 시간
사람들은 저마다 두꺼운 목도리로 얼굴을 감싼 채,
지하도로 종종걸음을 친다

한 평도 못 되는 박스 한 장에 몸을 누인 사람들
그들에게 지구는 너무 좁다
사막에서 발견된 미이라처럼
마치 냉동고에 누워있는 백태 낀 동태 같다

이 밤 골수를 타고
뼛속까지 올라올 하얀 냉기를
그는 도대체 어떻게 넘기려는지,
사내는 달팽이처럼 엉덩이를 어기적거리며
상자 모서리마다 테이프를 붙인다
찬바람은 저 모서리를 비켜 가 주려나
대책 없이 해소 기침만 쏟아내고 있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데
자꾸 그 말이 믿기지 않는다

소주 기운으로라도 녹이기에는
얼어붙은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냉골보다 더욱 무섭다
이빨마저 딱, 딱, 부딪치는데, 달팽이 집보다 추운
얇은 상자를 절뚝이며, 테이프로 기운다
머리부터 상자 안으로 집어 넣는데,
병색이 완연한 기침소리만
텅, 텅, 지하도를 맴돈다

아직 잠들지 못한 동료 몇
깡소주를 놓고 몰려 앉아
허연 김을 내뿜으며
대상도 없는 고함을 친다

깜박 잠이 들었을까
그의 해소 소리가 잠시 멈추었다
그의 얼굴에도 잠시 평화가 어리는 듯하다
그는 지금쯤 아직 베지도 못한
고향 밭의 마른 고추단 사이를 지나,
사립문을 열고 들어설지도 모른다

- 1월, 윤재훈

 

(성 조지아 황금상이 있는 자유 광장과 러시아와 조지아에서 다 유명한 푸쉬킨 공원 풍경. 촬영=윤재훈)
(성 조지아 황금상이 있는 자유 광장과 러시아와 조지아에서 다 유명한 푸쉬킨 공원 풍경. 촬영=윤재훈)

게스트하우스에서 우연히 만난 이란과 영국 청년, 나른한 오후 서로 의기가 통해 거리 구경을 나섰다.

이란 청년은 서울에 있는 한양대학교를 나와 제법 한국말을 한다. 아버지는 이란사람이고 엄마는 영국인이라고 했다. 그도 미국의 제재 아래 일거리가 없는 조국을 떠나 유럽에서 일자리 잡기를 원한다. 당분간 그는 조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 영어 구사도 컴퓨터 솜씨도, 인물도 어느 한 군데 빠진 데가 없다. 이후 그는 소득이 높은 스위스에서 자리를 잡았다는 페북 연락을 받았다.

시내버스의 난폭운전이 상당히 험한데, 잠시 서자 갑자기 아주머니가 올라와 차표검사를 한다. 옛 소련풍의 거리를 바라보고 있던 영국 청년이 문득,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건물들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이란은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가 바닥에 앉고 빵보다는 밥을 많이 먹는다고 이란 청년이 거든다. 유럽이 우리보다 훨씬 더 가까운 페르시아 대제국의 풍습이, 무언가 우리와 깊은 숙연이 있는 듯하다.

모두의 손에 스마트폰이 들려있는 이 시대에도 시계를 차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다. 나도 어느 거리 모퉁이에서가 태엽을 고쳤는데,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다시 빠져 버린다

문득 커피콩 볶은 냄새가 구수하게 발길을 끈다. 몇 번 간 적이 있는 그 집에서 터키식 커피 한 잔을 1라리 씩에 마셨다.

유황온천과 와인으로 러시아의 문호들을 열광시켰던 이 땅, 옛날식 목욕탕이 있다고 해서 나선 길인데, 초저녁 시내는 차가 너무 밀린다. 거의 앞으로 나가지 못해 자유광장 앞에서 내렸다. 금빛 조지아상이 노을과 막 켜지기 시작하는 불빛을 받아 더욱 빛난다.

(터키 여행자에게 목거리를 샀다. 촬영=윤재훈)
(터키 여행자에게 목거리를 샀다. 촬영=윤재훈)

어디선가 섹소폰 소리가 들린다. 노부부가 섹소폰과 아코디언을 연주하는데, 수준이 있다. 이곳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한 가지 이상 악기를 배웠는지, 연주들을 참 많이 하는 듯하다.

그들과 헤어지고 자유 광장을 거니는데, 지하철 앞 난장에 목걸이 몇 개 펼쳐놓고 파는 청년이 있다. 문득 나도, 치앙마이 인근 ‘난’이라는 도시에서 샀던 수공예품 목걸이가 떨어져, 그에게 맡겼다.

터키에서 왔다는 청년, 목걸이를 만들어 팔며 경비를 보태고, 잠은 근교로 나가 텐트를 치고 잔다고 한다. 아마도 밤이 으슥해지며 그는 어느 이름 모를 곳으로 가 남모르게 텐트를 치고, 피곤한 몸을 누이는 모양이다. 이런 고행을 마다 않는 청년은 그만큼 그에게 여행이 절실해서 이리라. 동병상련을 느끼며 그가 만들어 파는 목걸이와 팔찌를 12라리(5300정도)에 샀다.

(ㄱ자로 허리가 굽어진 할아버지. 촬영=윤재훈)
(ㄱ자로 허리가 굽어진 할아버지. 촬영=윤재훈)

매트로 역 앞 지하도
검정 정교회 복장을 하고
허리가 90도로 굽어진 노인
구걸을 한다.
그의 초라하고 기괴한 모습에
적선들을 많이 한다.

한 번도 허리를 펴지 못하는 노인
살아온 생이 그렇게
굽게 만든 모양이다.
적선통을 유심히 내려다보더니
이윽고 구걸을 끝낸다

90도 굽은 허리에 걸맞게
짧막한 지팡이를 집고
ㄱ자로 걷은 그의 걸음걸이,
세상도 그렇게 굽어 보인다.

유난히 더듬거리며 걷은 모습이
마치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아무래도 너무 더디다
노인은 앞도 보이지 않은 모양이다.

앞에는 10여 계단 지하도
보통 사람에게는 너무나 평범한 그 길이
노인에게는 천 길 낭떠러지 같다

모두들 바삐 걸어가는 심야(深夜)
중절모를 쓰고 유심히
노인을 바라보는 청년 하나
기어코 노인에게 다가가더니
부축을 하고 내려간다.
띄엄띄엄 슬로우 비디오가
정지 화면이 된다

기어코 아래까지 부축하고 내려온 청년
못내 미덥지 않는지 가지 않고 지켜본다
혹여 그에게도 고향 집에 부모님이라도 계실까
아니면 그는 유난히
가정교육을 잘 받은 사람일까

노인은 다시 건너편 계단을 오를 모양이다
청년은 바닥에 얼어붙은 듯
걸음을 옮기지 못하더니,
다시 노인의 손을 잡고 게단을 오른다
어둠침침한 그 뒤로 커다랗게 복(福)자가
써지는 듯하다

지하도에서 다 올라온 청년
그제서야 한 시름 놓았다는 듯
파랑파랑 천사처럼 날아간다
눈시울이 뜨꺼워진다

노인은 계단을 올라오자 말자
바로 그 옆에 앉아
다시 구걸을 시작한다
생활화된 구걸
숙업(宿業)이 깊어 보인다.
이생에서 좋은 인연을
많이 쌓아야 할 텐데

자유 광장 타워 위 황금 동상
저 홀로 야경을 받아
빛나고 있다.
노인은 자울거리더니
옆 기둥에 기대여 잔다
혹여 그는 꿈길에서
고향집 어머니라도 만나고 있을지 모른다

- ‘삶이 무겁다’,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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