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㊻] 코카서스 3국을 가다 12_조지아 므크바리 강변에 앉아, 와인을 마시다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3.24 15:18
  • 수정 2021.03.24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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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므크바리 강변'에 앉아, 와인을 마시다

저무는 것이 어디 어둠뿐이랴
캄캄하게 저물어 가는 트빌리시
므크바리 강변에 앉아
지나온 길을 생각한다

수천 리 지나왔던 실크로드가
어느새 가슴 속으로 들어와 있다
그 길을 낙타를 몰고 떠났던
대상들처럼 헤매며 왔다

(부부 연주. 촬영=윤재훈)   
(부부 연주. 촬영=윤재훈)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오늘도 자그마하게 푸시킨 공원은 사람들로 붐빈다. 공원 규모에 걸맞지 않게 분수에 물발은 20대의 사내처럼 세다.

“그대 자유로운 영혼이
원하는 곳으로 떠나라.
어린아이처럼 무모하게”
-푸시킨

여기서부터 루스타 벨리 메트로역까지 가는 메인 도로에는 대부분 중요시설이 몰려있다. 국회, 조지아 국립박물관, 루스타 벨리 극장, 트빌리시 오페라 발레 극장, 트빌리시 현대미술관 등이다.

자유 광장에는 이따금 시내 투어를 다니는 빨간색의 이 층 시티버스가 관광객들을 기다리며 서 있다, 요금은 50라리(22,000원)이며, 약 두어 시간 정도 트빌리시 시내를 관광하며 중요지점에 잠깐씩 세워준다. 배낭여행자에게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깔끔한 스쿠터는, 하루 70라리(31,000원)이며, 오래된 것은 50라리이다. 타일랜드 치앙마이에서는 6~7년 전에, 허름한 125cc 구형 오토바이를 2,000원에 타고 다녔는데.

그 옆에는 관광안내소가 있다. 영어를 잘 하는 아주머니가 있어, 궁금한 것은 미리미리 물어보는 것이 좋다. 조지아 대부분 도시의 지도도 잘 비치되어 있으니, 미리미리 확보하자. 유명한 관광지인 <다비드 가래자 동굴 수도원>에도 가려면, 여기서 차량을 물어보면 된다.

이 낯선 도시에도 감나무가 있어, 고향 마당처럼 반가운 생각이 든다. 저것이 빨갛게 익는 날이며, 이 도시가 한층 더 푸근해지겠다.

지하도에서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오르내리며, 급하게 지나가는 차량처럼 세상은 바쁘다. 보다 보람 있게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지천명을 넘기고 이순이 넘어가도 더 캄캄하기만 하다.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슬퍼하랴.

(카페 같은 플랫폼. 촬영=윤재훈)
(카페 같은 플랫폼. 촬영=윤재훈)

지하도로 내려가자 풍경이 달라진다. 멀쩡한 아줌마가 매표소 앞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매트로를 타야 한다며 “원 라리, 원 라리” 한다. 대부분 못 본척하지만, 누군가 안으로 들어가라고 티켓을 한 번 대준다. 여인은 안으로 들어가서도 여전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또 “원 라리, 원 라리” 한다. “염치’라는 것을 떠나, ‘코치’도 아예 없다. 생활화가 된 것 같다.” “인간이 저렇게, 거지 근성으로도, 변할 수 있는 모양이다.” 한 번뿐인 소중한 생에서, 그 숙업(宿業)을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젊은 남녀들도 승무원들이 보는 데도 개찰구를 넘어가거나 구멍으로 끼여가고, 다시 나와 서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한다. 뒤뚱거리는 아줌마 검표원은 이골이 났는지, 보고도 모른 척한다. 검표원 옆에서 한참을 히히덕거리더니, 다시 넘어간다. 바로 옆에는 경찰룸이 있고 안에는 경찰들이 떼거리로 있지만, 신경도 안쓴다. 또 떼거리로 넘어온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역 앞에서 뭔가를 은밀히 보이며 권하는 사내, 눈이 반쯤 풀렸다. 역 안팎에는 경찰들이 깔려있는데, 담배를 피는 사내의 눈이 몽롱하다. 친구와 서로 담배를 가지고 장난을 친다. 무엇을 피는 것일까? 경찰들도 다 알 듯하다. 나오면서 보니 컴컴한 곳에 사내들 셋 앉아, 무엇을 피는 것일까? 그 앞에 주차된 순찰차의 경광등만 빛난다

슈퍼에서 저녁 준비를 한다. 앞에서 계산을 기다리던 청춘들이, 그새를 못 참아 키스를 하고 난리다.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갈 때도 보니, 정류장에 서 있는 중년의 사내가 은밀한 신호를 보낸다.

(그대와 함께 블루스를. 촬영=윤재훈)
(그대와 함께 블루스를. 촬영=윤재훈)

밤이 이슥해 가자 경직되어 있던 사람들의 눈동자도 개개비의 눈처럼 어느 정도 풀리고, 길거리 보컬들의 선곡도 감미로운 블루스 음악으로 바뀐다. 삼삼오오 커플들이 나와 음악에 맞춰 조지아 밤거리를 돈다. 올드 시티의 밤이 향기로워진다. 두어 팀이 더 들어와 하루의 시름을 녹인다. 여행자의 향수도 짙어간다.

(올드시티 모습. 촬영=윤재훈)
(올드시티 모습. 촬영=윤재훈)

올드시티(Old city, Kote afkhazi St) 앞, 숙소에서 한방을 쓰던 청년이 작은 스피커 하나 틀어놓고, 동전통을 앞에 놓은 채 노래를 부른다. 나름 흥에 겨워 신나게 부르려 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그래야 보는 사람도 즐거우리라. 한 방에 있는 인연으로 그에게 동전 몇 닙 집어넣었다.

오후 무렵이면 슬슬 여행자들로 나른한 몸을 풀기 시작한다. 대부분 먹거리와 술집뿐 옛 건물이나 특별한 유적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의 올드 시티는, 성벽 안으로 옛 거리가 상당히 많이 남아 있었는데, 약간 실망스럽다.

여행자처럼 배낭을 멘 서양인 두 사람이 길에 서서 무슨 말을 하는데, 잘 모르겠다. 여행 와서 돈이 떨어졌다는 말인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한다.

빙빙 돌아가면서 굽은 회전 통닭이 어지럽다. 허기가 지는가. 별로 크지 않는데, 25라리(11,000원)씩을 받는다.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는 토종닭처럼 큰 닭들이 훨씬 더 쌌다.

(깐지를 든 사내. 촬영=윤재훈)
(깐지를 든 사내. 촬영=윤재훈)

약간 흥청거리는 거리, 어둠 속에 홀로 앉아있는 초로의 사내, 가족이 없는 걸까, 아니면 돌아갈 집마저 없는 걸까? 그의 모습이 정처 없다.

와인의 나라답게 올드 시티 중간 쯤에 청동으로 된 <깐지>를 들고, 반쯤 취한 듯한 사내가 비스듬히 앉아있다. 깐지는 소나 산양의 뿔로 만든 조지아 전통 와인잔이다.

8,000년이 넘어가는 크레브린 항아리가 발견되는 와인의 고향답다. 이것만 만드는 전통 장인들이 있으며, 모터에 진흙을 발라 깐지에 광을 낸다. 그리고 동물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마지막 <파라핀>으로 헹궈내면 된다.

마셔도 된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장인이 와인을 따라 한 잔 시원하게 원삿을 한다. 상대는 깐지에 술을 받으면 반드시 다 마셔야 한다. 로맨틱한 조지아 사람들은 와인 만큼이나 장미도 사랑하다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우연히 부인이 초이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쓴다는, 한국인 부부 교사를 만났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본다면 두 분에게 안부를 전한다. 잠시 사진을 찍고 잠깐의 이야기를 나누다 서둘러 헤어졌다.

장기 여행자들은 해외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매우 반갑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반가워하기보다는 더 경계를 하는 것 같아, 여행자를 슬프게 한다. 모든 것을 훌, 훌, 털고 나온 여행길, 머나먼 이역만리에서 만난 조국이 같은 사람들인데, 좀 좋으랴. 더욱 반갑고 소중하다. 이 세상에 99%의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 더 많으리라 믿는다.

(흥청거리는 거리. 촬영=윤재훈)
(흥청거리는 거리. 촬영=윤재훈)

올드시티가 끝나가는 좁다란 길에는 술집들이 밀집되어있고, 요란한 음악 소리가 나온다. 그 거리를 지나가며 므크바리 강(쿠라강) 옆으로 커다란 광장이 나온다. 사람들로 어마어마하게 붐비고 차들도 뒤엉켜있다. 강을 정원 삼아 앉아있는 카페 마당에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음악 소리에 춤을 춘다.

(므크바리 강변에 앉아. 촬영=윤재훈)
(므크바리 강변에 앉아. 촬영=윤재훈)

므크바리 강의 시원한 바람이 아미를 스친다. 강변마다 걸린 불빛들이 아름답다. 간간이 유람선들이 강심을 따라 흘러가며 지나간 음악을 같이 흘려보낸다.

나지막한 솔로카(라)키(Solokaki) 언덕 위로 므타츠민다 산이 펼쳐지고, 허물어진 ‘나리칼라 요새(Narikala Fortress)’가 화려한 조명을 받아 환하다. 이 나라의 랜드마크인 ‘조지아 어머니상(Mother of Jeorgia)’도 보인다. 그 머리 위로 끊임없이 케이블카가 오르내리며, 매표소는 다리 건너 리케공원에 있다.

하지만 메이단(Meidan)에서 약 20~30여 분 경사진 길을 오르는 것을 추천한다. 입구에는 특히나 조명이 아름다운 ‘트빌리시 성 조지 대성당(St. George cathedral of Tbilisi)’이 있는데, 교회 탑에 케이블카가 걸리는 야경이 아름답다. 그 불빛 아래 한참을 주저앉아 다시 므크바리 강을 내려다본다.

저무는 것이 어디 어둠뿐이랴
캄캄하게 저물어 가는 트빌리시
므크바리 강변에 앉아
지나온 길을 생각한다

수천 리 지나왔던 실크로드가
어느새 가슴 속으로 들어와 있다
그 길을 낙타를 몰고 떠났던
대상들처럼 헤매며 왔다

강 건너 메테키 교회의 수난사가
여직 강물에 어른거리는 조지아
다시 가야 할 길은 멀다
실크로드 끝에도 도착하지 않았다

어디 그 종착점이 있겠는가
끝없이 흘러가는 므크바리 강물처럼,
이 대륙의 끝 리스본에는
범선을 타고 떠났던 정복자들의
야심이 아직도 어른거리고 있으리라

그 피해의 대륙에서 떠나온 여행자가
소통의 길, 침략의 길이었던
실크로드를 따라 왔다
세계의 중심이었던 장안을 지나
중앙아시아와 기름의 바다, 카스피해를 넘어,

아직 그 길은 요원하다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손차양을 하고
서쪽을 본다

- ‘실크로드’,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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