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마크 브랜드 스토리①] 코카콜라 vs 펩시 브랜드 전쟁
[러브마크 브랜드 스토리①] 코카콜라 vs 펩시 브랜드 전쟁
  • 김남기 기자
  • 승인 2021.04.01 1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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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러브마크 브랜드 스토리는 앞으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소비자로부터 사랑받는 브랜드를 재밌는 에피소드와 함께 소개한다.

브랜드의 핵심목표는 고객에게 사랑받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객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면 브랜드는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랜드 그 이상의 가치를 상징하는 것을 ‘러브마크’라고 한다. 과거 제품 중심의 마케팅시절에는 ‘상표’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현재는 브랜드’라는 이름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러브마크’는 소비자와 감성적인 교류를 통해 사랑을 받는 브랜드를 말한다.

여의도 윤중로에 벚꽃이 만개했다. 기상관측이레 가장 일찍 피웠다고 한다. 하지만, 윤중로는 한산하기 그지없다. 이맘때면, 70년대 봄소풍의 풍경이 떠오른다. 삶은 계란, 김밥 그리고 사이다 한 병을 들고 설렜던 그 시절. 예전에는 사이다, 콜라, 써니텐, 환타 등 몇 개 안되는 음료들이 구멍가게에 진열 돼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이다 보다 콜라가 인기가 있게 됐고, 군인들이 먹고 싶은 것 1위로 시원한 콜라를 꼽았다.

오늘은 콜라브랜드의 1, 2위를 다투는 오랜 숙적 코카콜라와 펩시의 브랜드 100년 전쟁을 소개하겠다. 

영화 ‘부시맨’부족의 신의 선물 ‘콜라병’

(영화 부시맨 포스터)
(영화 부시맨 포스터)

1980년 ‘부시맨’ 영화가 인기를 끌었다. 아프리카 칼라하리에 원시생활을 하던 부시맨에게 큰 사건이 벌어졌다. 하늘에서 콜라병이 떨어지고, 부시맨은 빈병의 용도를 모른 채 난리가 났다. 근처를 지나던 조종사가 버리고 간 것인데, 난생 처음 본 콜라병을, 부시맨들은 신의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추장 카이는 신에게 콜라병을 돌려주려고 신의 땅이라 불리는 곳으로 길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은 영화이다.

이처럼 콜라는 오래전부터 영화의 소재로 활용될 만큼 일상생활 속에 없어서는 안 될 음료였다.

코카콜라와 펩시 100년 전쟁…비교광고

(세계 30대 브랜드 가치 순위. 사진=인터브랜드 제공)

인터브랜드 선정 2020년 브랜드가치 순위에서 코카콜라는 6위(568억 달러), 펩시는 26위(186억 달러)이고, 우리나라 기업인 삼성은 5위(622억 달러)이다.

콜라의 고향 미국의 시장점유율은 2015년 기준 코카콜라(42.5%)가 펩시(시장점유율 27%)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 미주지역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적으로 코카콜라가 압도적으로 많이 판매되고 있다.

(코카콜라 패거리에 펩시가 숨을 거둔다는 비교광고)

코카콜라와 펩시의 비교광고는 유명해서 일부로 찾아서 보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는 비교광고 제작시, 제약이 많은 반면에 외국의 경우 자유롭게 비교광고를 한다. 두 콜라 회사의 불꽃 튀는 광고전쟁은 치열하기 보다는 한바탕 웃음이 나는 유머광고가 대부분이다.

(코카콜라와 펩시의 비교광고)

2013년 할로윈데이 광고전쟁 일화다 펩시가 먼저 "무시무시한 할로윈 보내세요!(We wish you a scary Halloween!)"이란 광고카피로 펩시가 코카콜라 로고가 빨간 망토를 두르고 있다. 이번엔 코카콜라가 반격에 나섰다. 같은 이미지에 "모두가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어 하죠!(Everybody wants to be a hero!)"라고 광고카피만 바꾸었다. 펩시가 코카콜라처럼 영웅이 되고 싶어한다. 라는 뜻이다.

콜라의 시초는 소화제

콜라는 1886년 미국의 약사 존 펨버턴이 소화제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탄산수에 코카잎 추출성분과 콜라나무껍질 원액을 넣어 만든 소화제였다. 그 후 ​코카콜라 창업주 캔들러는 122만원에 콜라 독점사업권을 구입했고, 1892년에 코카콜라를 설립했다. 이후 1919년 캔들러는 어니스트 우드러프(Ernest Woodruff)에게 회사를 2,500만 달러에 매각한다. 이후 콜라 제조법은 보안이 철처히 지켜지고 있다.

(코카콜라 제조법이 보관돼있는 금고 입구. 사진=코카콜라 제공)

여성의 몸매를 응용했다고 유명한 코카콜라의 병모양은 1915년 50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고 공모했는데, 유리병 공장의 직원이 디자인한 것이다. 사실은 브리테니커 백과사전에 있는 카카오 열매 사진을 보고 만든 것이고, 카카오 열매가 콜라 열매라고 착각한 것이다.

(코카콜라 병의 변천사. 사진=코카콜라 제공)<br>
(코카콜라 병의 변천사. 사진=코카콜라 제공)

펩시콜라는 1893년 미국의 약사 칼렙 브래드햄이 설립했고, 소화불량 치료에 효과적이라고 홍보했다. 칼렙 브래드햄은 자신의 이름을 넣어 브래드의 음료수(Brad's drink)’라는 이름으로 판매를 했고, 1898년에 펩시콜라로 이름을 바꾸었다.

(펩시 병의 변천사. 사진=flickriver.com 제공)

펩시콜라의 태극문양 로고는 1945년에 펩시 디자인실에서 동양의 음양을 상징하는 태극무늬에서 따 왔다. 혹자는 펩시가 롯데칠성음료에서 판매해 태극문양을 넣은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1944년 2차대전중 콜라르르 즐기는 병사. 사진= Chief Signal Officer, National Archives)

콜라의 본격적인 인기는 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군의 군수물자로 채택되어 전 세계에 폭발적으로 보급됐다. 미군이 주둔하는 곳마다 식수 대용으로 콜라를 자주 마시게 돼, 대량의 콜라가 현지인들에게도 소개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퍼지게 됐다.

# 1 콜라전쟁사...코카콜라 vs 펩시 우주에서 격돌하다

(챌린저호에서 콜라 캔의 기능과 맛을 테스트하는 우주 비행사. 사진=Teagam Boda 콜라 워즈)

1984년 NASA에서는 무중력 상태로 설계된 콜라캔을 실험하기로 했다. 고민 끝에 NASA는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에 실을 콜라로 코카콜라를 선정했다. 펩시는 이 소식을 듣고 발칵 뒤집어졌다. 그동안 펩시는 자사콜라를 비행선에 싣기 위해 NASA에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콜라를 보낼 일“이 없다는 부정적인 대답을 들었기 때문이다. 펩시는 가만히 있지 않았고, 언론과 정치권에 로비를 했다.

‘펩시가 우주선에 실리기 위해 로비를 하고 있다“ 
“펩시가 공화당과 대통령의 지지를 받고 있다"라고 소문을 퍼트렸다.

결국 NASA는 여론과 언론의 압력에 못 이겨, 챌린저호에 두 음료를 모두 동승(?) 시키기로 했다. 

(코카콜라와 펩시, 챌린저호에서 테스트를 거친 콜라 용기. 사진 출처= 미국 국립항공우주박물관)

그런데 두 회사에게는 큰 숙제가 남겨졌다. 무중력 상태에서 “어떻게 콜라 캔을 만들고 맛을 유지할 것인가?”였다. 탄산의 톡 쏘는 맛이 무중력 상태의 우주에서 실현시키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이 기술을 실현시키기 위해 코카콜라는 25만 달러, 펩시는 1400만 달러를 들였다.

우주비행사는 누구의 손을 들어 주었을까? 콜라를 마신 우주비행사들은 모두 시큰둥했고, 무중력 상태의 탄산이 우주비행사들에게 고통만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두 콜라회사는 결국 ‘김빠진’콜라를 한 사발 들이킨 꼴이 됐다.

그러나 두 콜라회사는 큰 비용을 들인 콜라캔 기술과 콜라 맛 테스트를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NASA는 콜라의 우주비행을 홍보하지 말라고 했다. 결국 콜라회사의 우주전쟁 결과는 비싼 값의 제품개발비용을 제대로 홍보도 못하고 날린 셈이었다.

다음 코카콜라 vs 펩시 브랜드 전쟁은 ‘실패한 마케팅’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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