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건희의 산책길⑱] 고종 황실 잔치 재현 ‘야진연(夜進宴)’...국립국악원 개원 70주년 기념공연

천건희 기자
  • 입력 2021.04.12 11:57
  • 수정 2021.04.1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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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진연 공연장소 국립국악원 예악당 풍경. 촬영=천건희 기자)
(야진연 공연장소 국립국악원 예악당 풍경. 촬영=천건희 기자)

[이모작뉴스 천건희 기자] 서초동 국립국악원은 둘러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 곳이다. 예악당, 우면당, 연희마당, 국악박물관 그리고 넓은 초록색 잔디 광장은 언제 가도 여유와 편안함을 느낀다. 우면산의 연초록색이 싱그러웠던 지난 4월 9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야진연(夜進宴)’을 관람했다.

‘야진연’은 국립국악원 개원 70주년 기념공연이다. 전통 음악을 계승하고자 한국 전쟁 중이었던 1951년 4월, 피난지 부산에서 국립국악원이 설립됐다. 전쟁 중에 설립된 국악원이 70주년이 됐다니 감동이다.

진연(進宴)은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궁중에서 베풀던 잔치. <야진연>은 1902년 고종의 기로소(耆老所 조선 시대 조정 원로들의 예우를 위해 설치한 기구) 입소를 축하했던 잔치 중, 밤에 열었던 왕실 잔치를 재해석해 만들었다고 한다. 경운궁(지금의 덕수궁) 함녕전에서 황태자 순종이 아버지 고종을 위해 준비한 밤의 축제이다. 

(촬영=천건희 기자)
(야진연의 모티브가 된 '임인진연도병' 병풍. 촬영=천건희 기자)

당시의 궁궐 잔치 풍경은 국립국악원이 소장한 ‘임인진연도병’ 병풍에 그려져 있어 이번 공연 재현의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왕실의 존엄과 공적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의례만이 아니라 음악과 무용도 기록물로 남긴 기록문화유산 덕분이다.

(촬영=천건희 기자)
(뱃머리와 흡사한 정악단 단원 무대. 촬영=천건희 기자)

공연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여전히 한 자리 띄어 앉기가 시행됐다. 정악단 단원들이 앉은 무대는 먼 곳을 향해 나아가는 뱃머리와도 흡사하다. 오방색 한복을 입은 무용단원들의 춤사위와 정악단의 연주는 시시각각 변하는 LED 화면과 하나 돼 왕실 축제를 환상적인 무대로 만들었다. 벽면에서는 폭포와 보름달, 무릉도원으로 느껴지는 다양한 영상이 펼쳐지고, 바닥은 호수가 되기도 하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촬영=천건희 기자)
(야진연 공연. 사진=국립국악원제공)

정도전이 조선의 건국을 송축하기 위해 지었다는 ‘정동방곡’을 시작으로, 현실 세계에서 무릉도원으로 나아가는 고종을 표현한 ‘제수창’ 춤으로 이어졌다. 두 마리의 학이 내려와 연꽃을 터트리는 학무는 궁중무용의 정수를 보는 듯했다. 새롭고 힘찬 발걸음의 시작을 알리는 ‘대취타’에 이어 무릉도원을 향해 젓는 뱃놀이를 표현한 ‘선유락’으로 이어진 화려하면서도 품위 있는 무대였다.

첫 장면에서 고종이 오른 계단(기로소 입소)을, 마지막 장면에서 아들 순종이 바라보며, 무대는 막을 내린다. 아버지의 안식과 평안을 소망하는 아들의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따뜻해졌다.

궁중음악의 깊고 느린 호흡, 궁중무용의 담백하고 절제된 동작이 격이 있고,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음을 다시 깨닫게 됐다. 내가 119년 전 왕실 잔치에 초대돼 현장에 있는 듯 한 느낌이었다. 공연 내내 궁중 예술의 아름다움에 빠져 코로나에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힐링이 됐다.

(야진연 공연팀 무대인사. 촬영=천건희 기자)
(야진연 공연팀 무대인사. 촬영=천건희 기자)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축제를 통해 휴식과 회복의 삶을 선물하길 바란다”는 조수현 연출가의 소박한 소망은 이루어진 듯하다.

국립국악원에는 분주한 일상에 쉼표를 만들어 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다. 2분기(4,5,6월)에도 민속악단, 정악단, 창작악단 등의 정기공연이 있고, 매주 토요일마다 국악 동화 공연과 토요명품, 또 명인들의 풍류 사랑방 등의 프로그램이 있으니 다시 나들이를 꿈꾼다. <야진연>은 예악당에서 4월 14일까지 이어진다.

(촬영=천건희 기자)
(야진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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