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57] 60대 남자가 배우지 못한 것들

오은주 기자
  • 입력 2021.04.19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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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br>​​​​​​​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2019년 조연현문학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사위가 집에 왔다. 아니 결혼한 딸과 사위와 외손자가 같이 왔다. 결혼하고 딸이 빠져나간 방이 썰렁하게 느껴졌던 것도 잠시, 어느새 식구가 불어서 세 사람이 들어설 때는 현관 입구부터 떠들썩했다. 돌이 막 지난 손자는 역시나 아빠 품에 안긴 채 집으로 들어선다. 아기를 안은 사위의 자세가 아주 자연스럽다. 아기가 울자 사위가 가방에서 분유를 꺼내 역시나 익숙하고 차분한 동작으로 먹인다. 그때 딸은 무엇을 하나 봤더니 제 엄마랑 한갓지고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다. 외손주가 생긴 뒤, 주말이면 형석씨의 집에서 늘상 보는 장면이지만 형석씨는 아직까지 마음 깊이 실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저녁밥을 먹고 나면 사위는 자기 앞의 그릇을 싱크대로 가져다 놓고, 설거지를 돕는다. 아니 아예 손목 힘이 좋은 자기가 다 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말하며 고무장갑을 찾는다. 처음엔 처가에 왔으니 처부모들 앞에서 좋은 남편 코스프레로 하는 행동이 아닐까 했는데 딸네 집에 가보면 음식부터 아예 같이 만드는 모습이었다. 형석씨에게 요즘말로 뒤통수를 치는 깨달음의 경지인 ‘현타’가 왔다.

“저렇게 살아도 되는데, 난 왜 그렇게 아이들을 아내 손에서만 키우게 했을까? 게다가 아내가 애 둘을 키우면서 중학교 선생님 하느라 동동거리며 그리 바빴는데 제사까지 꼬박 지내게 하면서도 그걸 당연하게 알았으니. 남자는 생밤이나 까고 제사상만 펴면 다 되는 줄 알았으니…”

형석씨의 고교동창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모두들 집안 살림을 너무 모르고 가족 중 유독 아들과 친밀감이 떨어진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제는 대학생 이상이지만, 친구들도 아들이 중고교 시절에는 다들 어려움을 겪은 모양이었다. 한 친구는 아들이 대화를 거부한 채 3일 동안 방문을 걸어 잠그는 통에 망치로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고 하고, 한 친구는 아들이 중학생일 때, 이렇게 아버지 말 안 들을 거면 나가라고 했더니 정말 가출을 해서 혼이 났다는 경험담이 쏟아졌다.

형석씨도 나이 60이 넘어 좀 여유로운 마음으로 가정과 가족을 생각해보니 지난 시간, 자신이 가정에서는 고스란히 가부장적이었음을 깨달았다. 그것도 아내가 좀 도와달라고 수십 년간 말할 때는 모르다가 딸이 결혼해서 젊은 사위가 사는 모습을 보고서야 실감을 하는 중이었다. 살림도 그렇지만 부자관계도 여전히 힘들다. 형석씨도 돌아가신 아버지와는 별다른 대화나 친밀한 경험을 공유하지 못한 채 서먹한 관계에 그친 터라 장례식장에서 그게 제일 아프게 다가왔었다. 좀 더 살가운 부자관계였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그런 아쉬움 말이다. “우린 고등학교에서 그걸 안 배웠어, 그래서 서툰 거야.” 이렇게 농담하는 친구의 말처럼 학교에서도 집안에서도 배우질 않아 아들과의 관계가 부드럽지 못한 걸까? 아들은 젊은 자신이라 기대가 너무 큰 탓일까?

지금 사위가 어린 손주를 돌보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레 친구 같은 아빠를 거쳐서 동지 같은 아빠가 될 터였다. 그런 시절은 지나갔지만, 형석씨는 결혼 전이라 아직 집에서 직장에 다니는 아들과 틈만 나면 뭔가 공유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지금부터 습득해나가도 건강이 받쳐주면 발휘할 시간이 많을 것 같았다. 형석씨는 손주를 어르고 있는 사위에게 주문을 한다.

“이서방, 조금 있으면 자네 처남 집으로 들어온다니까 남자들끼리 한 잔 하자, 술안주는 내가 만들어 볼 테니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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