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51] 천년 붓다왕국 미얀마4_바간 왕국 속으로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5.14 18:26
  • 수정 2021.05.18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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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간 왕국 속으로

살아있는 것들에게
가장 숭고한, 먹기 위해
제 몸보다 수백 배 큰 만다라를 끌고
사람들이 잠든 후
막 생을 마감한 경전을 끌고
야단법석野壇法席 중이다
- 만다라, 윤재훈

 

(노바스(동자승) 탁발. 촬영=윤재훈)
(노바스(동자승) 탁발. 촬영=윤재훈)

아침이면 점차 오토바이 소리 높아가고, 붉은 가사를 입고 탁발을 나선 멍크(스님)들의 모습이 보인다. 게스트하우스 오른쪽으로 미얀마의 서민들이 와서 먹는 식당이 있다. 젊은 나라라 그런지 전통나무가옥에는 오전부터 청년들로 넘쳐난다. 술과 차를 파는데, 낮에는 삼삼오오 모여 짜이를 마신다. 차가 생활화되어 있는 그들의 문화가 참 좋아 보인다.

여기서도 커피가 가장 흔하며 한 잔에 500짯k 정도 한다. 대부분 음식 500~1,000짯k이며, 많으면 2,000k까지 한다. 맥주가 2,500k으로 제일 비싸다. 1달러가 1,544짯이다. 미얀마에 많이 사는 소수민족인 샨족 국수도 1,000짯을 한다.

12~3세 쯤으로나 보이는 아이들이 홀에서 써빙을 잘한다. 허름한 탁자 위로는 먼지가 쌓여있고, 미얀마 전통 차와 수시로 파리들이 내려앉은 덴뿌라, 마른 도너츠와 캔맥주 등이 있다. 중국식 꽈배기가 400짯, 코코넛과 설탕을 넣었다는 빵이 500짯, 야채를 넣어 튀겼다는 삼각형 모양의 빵은 300짯이다.

가끔 흙먼지가 나게 바닥을 쓸고 있으니 먹을 생각이 안 나는데, 우리의 옛날도 그러했으리라. 먼지 나는 장터 마당에서 어머니가 사주시는 국수 한 그릇의 추억과 함께, 최고로 행복한 한 끼의 식사가 아니였을까.

(미얀마인들의 쉼터. 촬영=윤재훈)
(미얀마인들의 쉼터. 촬영=윤재훈)

청년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수시로 친구들과 왁자지껄 몰려온다. 그리고 우리의 다방처럼 500짯 하는 짜이를 시켜, 빵을 찍어서 간식으로 먹고 쉬었다 간다. 그들의 호기로운 웃음소리가 파란 하늘 위로 퍼진다. 오전에 가면 꽈배기를 튀기는데, 막 나온 따뜻한 것은 설탕에 찍어 먹으면 입맛이 난다. 더운 나라라 그런지, 영양이 부족해서 인지, 대부분 사람들이 말랐다.

아침부터 따뜻한 밥을 먹으니 벌써 땀이 비오듯하다. 너무 더워 수돗가에서 세수하고 모자까지 물에 담군다. 미안마의 국민 음식 <모힝가>는 메기 육수로 끓여낸 쌀국수라 영양가도 높고 맛있다. 허기가 채워지지 않아 한 그릇 더 시키니 떨어졌다고 하며, 안면이 있는 종업원이 옆집에 가서 한 그릇을 사 왔다. 참 고맙다.

(천 불 천 탑. 촬영=윤재훈)
(천 불 천 탑. 촬영=윤재훈)

구비앙지(Gubyaukgyi) 탑 군락을 막 지나니 또 탑들이 나타난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바간왕국의 탑과 사원이 나타날 모양이다.

이곳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13세기에 찾아온 마르코 폴로가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 있는 도시’라고 견문기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불교 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웠지만, 지나치게 사원 건축에 국력을 소비해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몬 문자를 기초로 ‘버마 문자’를 만드는 정신적 성숙도 가져온다. 세종대왕이 1443년에 한글을 창제하였으니 우리보다 200여 년 앞선 셈이다.

(무더위가 절정이다. 촬영=윤재훈)
(무더위가 절정이다. 촬영=윤재훈)

송나라에는 파간으로 알려져 있고 조공을 바쳤으나, 1277년부터 87년 사이에 원나라 쿠빌라이 칸으로부터 무려 4번의 침공을 받아 1299년 결국 무너졌다. 그 후 첩의 소생인 ‘나라티하바테’가 친위 쿠테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아 11대 왕에 오른다. 그가 건립한 파고다의 비문을 보면

“3,600만 병력을 지휘하고 
3,000명의 후궁을 거느리며
300그릇의 반찬으로 식사를 한다”

라는 기록이 있다. 그만큼 왕의 권위를 세웠으나 원나라 침공으로 멸망의 길을 걷는다. 1287년 항복을 타진하러 가던 왕은 티하투 왕자에게 살해당하며 사실상 멸망한다. 그후 미얀마는 250여 년간 남북으로 첨예하게 분열된다. 사실 이때 멸망했지만, 명실공히 완전히 멸망한 것은 그 아들인 초스와가 살해 당한 1299년이라는 설도 있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영국과 세 차례 전쟁을 하지만, 결국 1885년 병합당하고 영국령 인도 제국의 일부로 되어 멸망한다. 그리고 수도는 만달레이에서 영국에 의해 바다에 가까운 양곤으로 옮겨진다. 아마도 이것은 우리의 일제 강점기처럼, 제국주의자들이 물산을 약탈해서 가장 빨리 그들의 나라로 가져가기 위한 수단이었는지 모른다.

(지인 사진)
(이게 국민을 위한 경찰인가. 지인 사진)

2006년에는 느닷없이 점성술에 따라 수도를 양곤에서 네피도(당시 핀마나)로 옮기더니, 화폐 단위마저 괴상하게 만들었다. 이에 미국과 유럽 등은 미얀마에 대해 경제 제재, 외교관 미얀마 방문 금지, 기업 철수 등으로 강력히 대응했고, 1998년에는 사실상 원조마저 중단됐다.

2021년 2월 1일에는 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아웅산 수치 총리와 윈 민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 인사들이 구금되고, 국영방송마저 중단되었다. 이에 국민들이 격렬하게 민주화 시위로 저항해 오고 있으며, 수많은 시민들이 살상되고 있다.

(천 불 천 탑, 허물어진 영화. 촬영=윤재훈)
(천 불 천 탑, 허물어진 영화. 촬영=윤재훈)

버마 최초의 통일왕조인 바간(버간, 파간1044~1287)의 파고다는 <쩨디(Zedi)>와 <파토(pahto)>라는 두 가지 양식이 있다. 쩨디는 사방이 벽돌로 막혀 있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사원이며, 파토는 내부로 들어갈 수 있으며, 벽에는 크고작은 불상들이 있고 소규모 법회도 할 수 있다. 미얀마는 대부분 파토가 많으며 이웃 나라인 타일랜드에서는 쩨디도 많은 듯하다.

유적 내부는 캄캄하므로 미리 전등을 준비해야 하며, 특히 박쥐들이 많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어쩌다 잠긴 곳도 있다. 특히 부처님을 모신 곳이며 미얀마의 천 년 보물이니,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가서 가능한 공손하게 보는 것이 좋다.

또한 가로등이 아주 부족해 주위가 어두우므로 일찍 들어오는 것이 좋다. 탑 정상에서 보는 일출과 일몰이 장관이므로 관심이 있다면 잘 찾아보자. 새벽에는 애드벌룬 여행도 있는데, 비용이 너무 비싸 배낭여행자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어디서 오시나요. 촬영=윤재훈)
(어디에서 오시나요. 촬영=윤재훈)

사람들의 부산함을 피해 뒤쪽으로 돌아가니 조용하다. 벌판에 정물처럼 덩그랗게 빛바랜 몇 기의 탑이 천 년 세월 졸고 있다. 그 뜨락을 따라 쉬엄쉬엄 탑의 능선들을 소요하며 발걸음의 보폭을 줄인다. 한 며칠 시간 내어 염주알 굴리듯 이 군락을 걸어도 좋겠다. 인적도 돌보는 이도 없다.

살아있는 것들에게는
먹는 문제가 삶의 전부다
먹기 위해 일을 해야 하고
먹기 위해 상대에게 거짓말도,
때로는 서슴없이 칼도 겨눈다

깊은 밤 하얀 벽을 따라
오글거리며 오르는 것들
풀씨처럼 작은 개미들이
제 몸보다 수백 배 큰 거미를 옮긴다
멀리서 보니 바람에 나뭇잎이
살랑이는 듯 흔들리며
거대한 절벽을 오른다

살아있는 것들에게
가장 숭고한, 먹기 위해
제 몸보다 수백 배 큰 만다라를 끌고
사람들이 잠든 후
막 생을 마감한 경전을 끌고
야단법석(野壇法席) 중이다

- 만다라, 윤재훈

 

(삼매에 들었다. 촬영=윤재훈)
(삼매에 들었다. 촬영=윤재훈)

탑 안으로 들어가니 어슬렁거리며 개가 일어나고, 부처님 옆에 한 젊은이가 경계의 눈빛으로 앉아있다. 전혀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이 고요하다. 약간은 두려운 표정을 짓는 것 같은 청년, 그는 이방인이 무서운 것일까, 아니면 이 세상이 두려운 것일까. 낯설게 바라보는 그의 눈매가 선하다. 문득 눈빛이 맑은 저 청년은 부처님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인다. 어쩌다 인연이 닿아 이 세기의 노정에서 운좋게 잠시 뵐 수도 있을 것이다.

문득 온몸에 욕창이 돋아 상원사에서 온천을 할 때, 문수보살을 배알(拜謁) 했다는 천하의 패륜아. 형 문종의 당부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12살 나이의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던 왕, 끝까지 선왕과의 약속을 지켰던 사육신들의 푸른 절개가 강물에 흐른다

변절의 상징 신숙주와 천하의 모사꾼 한명회, 두 명의 딸을 2대에 걸쳐 왕비로 앉혔으나, 16살에 단명하고 마는 큰딸 예종비 장순왕후, 17세에 병사한 둘째 딸 성종비 공혜왕후,

한 세월의 부귀영화가 업보를 안고 흘러간다. 딸들은 조선의 두 번째와 세 번째 단명한 왕비가 된다.

올려다본 파란 하늘, 구름처럼 옛 왕조의 역사가 흘러간다. 왕은 말년에도 구신(舊臣)들의 저주처럼 불행했다.

- 업보(業報), 세조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윤재훈

 

(뿌린 데로, 자연이 주는 데로 거둔다. 촬영=윤재훈)
(뿌린 데로, 자연이 주는 데로 거둔다. 촬영=윤재훈)

지혜는 배움을 앞선다. 인간의 삶에서 도덕성은 사회의 기본요소일 것이다. 그것이 무너졌을 때 개인의 삶과 나아가 국가까지 불행의 나락에 빠지기 쉽다. 그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작금(昨今)의 한국 사회다. 도덕성이 결여된 무지한 관리와 윤리성이 없는 지식인들에 의해, 국민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지고 고통 속을 헤매게 하는가. 법을 제정하는 정치인의 폐해는 그보다 더 큰 해악일 것이다. 그러니 플라톤도

“우리가 정치에 무관심할 때,
가장 나쁜 사람의 지배를 받게 된다”

고 일갈했다. 그러니 우리의 삶에서 참다운 지혜만큼 중요한 것이 있겠는가?

세상에 넘쳐나는 종교, 그런데 그 종교가 유사 이래 무슨 자정작용을 하고 있는지? 세계의 수많은 살육의 전쟁사를 보며 대부분 종교가 그 저변에 깔려있다. 이 지상에 무슨 유익함이 있으며, 성직자들의 부정부패는 걱정의 도를 이미 지나쳐버려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땅콩껍질로 먹거리를 만든다. 촬영=윤재훈)
(땅콩껍질로 먹거리를 만든다. 촬영=윤재훈)

선종의 6대조인 혜능 스님도 무학이었으니, 배움이 없는 저 소년이 휠씬 성불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혜능 스님은 지혜의 밝음으로 법통을 이어받았고 한국 승가에도 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예술이나 글쓰기도 그렇지 않을까? 배우면 배울수록 나에게서 천리만리 달아나는 것이 아닐까?

“예술의 근본은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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