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건희의 산책길㉑] 황혼과 청춘이 보듬는 깊은 울림, 창작가무극 ‘나빌레라’

천건희 기자
  • 입력 2021.05.20 15:08
  • 수정 2021.05.20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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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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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천건희 기자] <나빌레라>는 ‘나비 같다’라는 의미의 시적 표현이다.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나빌레라>를 지난 5월 16일, 예술의 전당 CJ토월극장에서 관람했다. ‘창작가무극’이라는 공연 안내가 좋았다.

<나빌레라>는 2019년에 초연되었고, 동명의 웹툰이 원작(HUN 글, 지민 그림)이다. 최근에는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방송됐다. 치매 판정 후 어릴 적 꿈이었던 발레에 새롭게 도전하는 감동적인 이야기는 무대 위에서 음악, 무용과 어우러져 더 빛을 발했다.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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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무대는 아무런 개성도 없는 건물들이 나열된 회색 도시.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고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일흔 여섯의 덕출은 친구의 장례식을 다녀온 후, 어린 시절 꿈꿨던 발레를 배우기로 결심한다.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발레단을 찾아간 그는, 발레리노를 꿈꾸지만 생활고로 인해 방황하는 청년 채록을 발레 선생으로 만난다. 덕출은 발레를 배우면서 채록의 매니저 역할을 해주기로 한다. 덕출의 건강 상태를 알게 된 채록은 덕출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노력하다 본인도 발레에 대한 열정을 되찾는다. 덕출의 진심을 알게 된 가족들도 점점 그의 꿈을 응원하지만 덕출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진다. 발표회에 특별 출연을 하기로 했지만 치매 악화로 결국 기억을 잃는다. 그러나 근육은 기억한다며 이끄는 채록의 도움으로 덕출은 인생 소원이었던 파드되((pad de deux 발레에서 두 사람이 추는 춤)를 멋지게 해낸다. 5년 뒤, 덕출의 후원으로 발레 유학을 다녀온 채록이 치매 상태인 덕출을 찾아오는 장면으로 무대는 막을 내린다.

(창작가무극 '나빌레라' 공연현장. 사진=서울예술단 제공)

발레는 중력을 이겨내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춤. 덕출과 채록은 중력만이 아니라 늙음과 죽음, 경제적 어려움 등 거스르고 싶은 현실을 극복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덕출은 생의 마지막에 자기 존재에 대한 확인으로 발레에 도전하고, 스승이자 파트너인 채록을 정신적으로 지지하고, 실질적인 도움도 주어 나비가 되게 만드는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성장을 하는 황혼과 청춘의 모습은 깊은 울림을 준다.

춤이 돋보이는 무대 연출이었다. 좌우로 움직이는 벽채형 무대 세트는 빠르게 전환하여 무대 위가 넓은 공연장이 되어 역동적인 군무를 보여 주었다. 또한 덕출의 발레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무용 시퀀스(sequence)로 이어져 클래식 발레 공연을 덤으로 본 듯했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할아버지 덕출이 청년 채록에게 이야기해준 말들은 평생 기억하고 싶은 말이다.

“내 나이에 쉬엄쉬엄하면 어떡해. 내 인생에서 가장 없는 게 시간인걸...”

“재능이 있고 없고를 누가 판단하는 거야?

어릴 때 꽃 피는 사람도 있고

늙어서 꽃 피는 사람도 있고

죽기 전에 꽃 피는 사람도 있어.

뭔가를 계속 하다 보면 사람마다 시기가 찾아오는 거야”

‘나의 어릴 적 꿈’을 떠올리게 하고, 용기와 위로를 주는 창작가무극 <나빌레라>는 5월 30일까지 예술의 전당 CJ토월극장에서 이어진다.

(창작가무극 '나빌레라' 포스터=서울예술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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