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52] 천년 붓다왕국 미얀마5_풍화(風火) 속 바간 왕국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5.20 17:29
  • 수정 2021.09.1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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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화(風火) 속 바간 왕국(Ba Gan Kingdom)

수많은 사람이 파고다 안에
붓다를 조성했는데
컴컴한 탑 안에는 박쥐만 난다
붓다는 천안통(天眼通)으로
모든 것을 본다는데
나의 눈이 어두워 돌부리에 넘어졌다
- 입전수수(入廛垂手), 윤재훈

 

(나에 살던 고향은. 촬영=윤재훈)
(나에 살던 고향은. 촬영=윤재훈)

구비앙지(Gubyaukgyi) 탑 군락을 막 지나니, 이번에는 구비앙지(Gubyauknge pagoda)라는 팻말이 나온다. 이름이 참 비슷하다. 어린 시절 신작로처럼 흙먼지가 폴폴, 날린다. 아카시아 꽃잎만 흩날린다면 영락없이 그 고향 같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그 시절의 추억이 더욱 마음속에 사무친다.

나에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봉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5분여 들어가니 오랜 풍화를 견뎌낸 탑이 나오고, 입구는 쇠창살로 막아져 있다. 양쪽 입구를 지키던 부처는 다 떨어져 나가고 자국만 있다. 옆에는 옛 흑백영화에서나 보았을 법한 오막살이 집 한 채가 놓여있고, 사립문을 열리더니 아주머니 한 분이 나와 들어 가려냐고 묻는다. 고개를 끄덕이자 문을 열어준다.

안쪽에는 작은 법회라도 할 수 있도록 공터가 있고 뒤쪽에 탑이 서 있는 자리는 둥글게 회랑으로 되어있다. 양쪽 벽에는 조밀하게 감실이 있고 안에는 작은 부처들이 수많은 표정을 지으며 앉아있다. 비바람을 피해서인지 문양들은 비교적 선명하다. 후레쉬(손전등)를 켜자 쏴아, 하고 천장에 붙어있던 박쥐들이 일제히 난다. 깜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부처님 앞에서 달게 잠이 들었다. 촬영=윤재훈)
(부처님 앞에서 달게 잠이 들었다. 촬영=윤재훈)

밖은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 속인데, 탑 안은 시원하다. 벽은 두껍고 지붕은 높으며 사면에 환기구가 있어 이렇게 서늘한 것일까, 사람들은 아무 곳이나 널브려져 땅바닥 위에서 잠을 잔다. 상당히 찬데 구안와사라도 걸리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한참을 돌아보고 나오니 아주머니는 그때까지 부처님 앞에 명상하듯 앉아있고, 밖에서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수많은 사람이 파고다 안에
붓다를 조성했는데
컴컴한 탑 안에는 박쥐만 난다
붓다는 천안통(天眼通)으로
모든 것을 본다는데
나의 눈이 어두워 돌부리에 넘어졌다
푸르륵, 박쥐들이 나는 소리가 썰물 같다.

붓다는 어디에 있을까,
벽을 더듬어 본다
가느다란 한 줄기 빛 너머 탑 밖은
지금 난장이 펼쳐져 소란하고
곳곳에서 볼멘소리들만 가득한데,
무심한 붓다는 말이 없고
잔잔하게 미소만 짓고 앉아,
마치, 네 스스로 해결하라는 듯
가부좌만 틀고 삼매에 들었다.
- 입전수수(入廛垂手), 윤재훈

(감실 안 부처님들. 촬영=윤재훈)1
(감실 안 부처님들. 촬영=윤재훈)

사면에 환기 구멍도 허투루 하지 않고 탑으로 형상화한 심미안(審美眼)이 돋보인다. 천천히 사원을 한 바퀴 돈다. 빨간 벽돌로 쌓고 그 위에 하얀 회칠을 했는데, 문양들이 세월의 무게 앞에 덧없이 떨어져 나가고 있다. 보존의 손길은 거의 미치지 않는 것 같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가 발등의 불이니, 여기까지는 신경이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60년대 아시아에서 잘 살았던 나라 중의 하나, 기름이나 천연가스, 루비, 사파이어 등 지하자원이 풍부하며, 전 세계의 티크 목(고급 원목)의 75%를 생산하고 있는 나라. 그렇지만 60여 년 동안 모든 권력과 경제력을 군부가 잡고 있어 국민의 삶은 피폐하기 이를 데 없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군부 쿠데타와 국민 저항도 사실 여기에서 기인하고 있다. 그래서 미얀마 국민은 삼생(三生)을 하나로 보는 불교에 귀의해 삶을 영위해 가는가 보다.

(군인과 경찰이 국민을 죽이는 나라.)
(군인과 경찰이 국민을 죽이는 나라.)

남편은 미얀마 사람들이 한국에 일하러 가면 한 달에 얼마나 버느냐고 묻는다. 150만 원 이상은 벌 거라고 하니 부러워하는 눈치다. 그들에게는 대한민국은 옛 시절 우리 동포들이 먹고살기 위해 미국을 건너갔던, ‘코리안 드림’인 셈이다.

미얀마의 많은 국민이 지금 한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 와 있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도 여행하다 보면 한국 가는 것이 소원이라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단지 한국인이란 이유만으로 같이 사진을 찍으며, 참 잘 해준다. 그때마다 그들의 소중한 꿈을 깨지 말아야 하는데, 가난한 나라에서 돈 벌러 왔다고 깔보지 말고, 임금체불하지 말고, 인간적인 대우를 해줘야 하는데, 하는 우려를 많이 한다. 그래야 세계여행에 불이 붙은 한국인들도 좋은 나라의 국민으로 편안하게 이런 나라들을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한국은 5, 60년대 아시아 최빈국이었다. 이 나라보다 훨씬 못살고 해외 원조에 의존하던 나라였다. 또한, 한국전쟁 때는 세계의 우방국들이 자국의 소중한 젊은이들의 피를 뿌리며 우리나라를 도와주었다.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한국에서 3~5년 정도 일했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만나면, 기쁨보다 먼저 가슴이 철렁, 했다. 혹시나, 이 사람이 한국에 대한 나쁜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 어쩌나, 해코지라도 당하면 어쩌나, 하고 말이다. 그러나 다행히 나쁜 인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적었다.

(난생처음 와보는 산하, 홀로 산을 넘어가려면 기름도 든든해야 한다. 촬영=윤재훈)
(난생처음 와보는 산하, 홀로 산을 넘어가려면 기름도 든든해야 한다. 촬영=윤재훈)

한 번은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적인 마약왕 쿤사의 거점인 골든 트라이앵글과 메콩강을 따라 타일랜드와 라오스의 동쪽 국경을 따라 4개월을 여행한 적이 있다. 그 후 내친김에 타일랜드와 지금 한창 극악한 군부 쿠데타 중인 미얀마의 서쪽 국경을 따라 또 4개월을 돌았다.

미얀마는 4월 13일부터 더굴라(띤잔) 축제(타일랜드는 송크란)가 열려, 4일 동안(타일랜드는 3일) 전국이 흥분에 휩싸인다. 그리고 6개월여 계속해서 소나기 같은 스콜이 내린다. 미얀마와 타일랜드는 새해가 똑같다. 물은 정화의 의미가 있으며, 한 해 동안 알게 모르고 지었던 잘못을 물로 깨끗이 씻는다는 의미다.

빗방울이 너무 굵어 맞으면 아프기까지 하는데, 어느 이름 모를 산등성이를 넘어가다가 스콜을 만났다. 잠깐 동안 속옷까지 다 젖어 버렸다. 앞이 안 보이는 빗속을 해치며 산을 내려가니 몇 채의 인가가 보였다. 무조건 제일 첫 집의 마당으로 오토바이를 몰고 들어가 세웠다. 집안에서 사람들이 나오더니 맨 먼저 빳빳하게 잘 마른 수건을 건네주었다.

그 짧은 순간에도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따뜻한 그들의 정이 마음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우리들의 어린 시절도 그러했다. 우리나라가 산업화되기 이전에, 사람들 간의 정이 살아있었을 때, 마을마다 인심이 그러했다.

(그리운 가족들, 군부 쿠데타 아래에서 편안하게 잘 있는지. 촬영=윤재훈)
(그리운 가족들, 군부 쿠데타 아래에서 편안하게 잘 있는지. 촬영=윤재훈)

식구들은 막 저녁 식사를 준비 중이었던 모양이다. 나를 정개(부엌)로 들어오라고 한다. 얼마나 사람들이 밟았는지 맨들맨들 광이 나는 땅바닥에는 작은 화로가 놓여있고, 그 위에서 배부른 밥 냄새가 풍겨 올라왔다. 한쪽 구석에서는 또 불을 피우고 뭔가를 익히고 있었다.

이윽고 사람들은 땅바닥 위에 두세 가지 반찬과 국을 놓고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우리의 5, 60년대에도 그러했다. 그러나 최소한 밥상은 펴놓고 방 안에서 먹었는데, 그들의 열악한 상황이 전해오는 듯하다.

지금 미얀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군부 쿠데타 중에 가장 큰 소수민족 세력이, 카렌족(동남부)과 샨족(동부), 카친족(동북부)이다. 그들은 자체 군대까지 보유하고 있다. 현재 미얀마 젊은이들이 군부에 대항하기 위해, 이 세력으로 들어가 군사훈련까지 받고 있다. 오래전부터 미얀마는 국경을 접한 타일랜드와 함께 군부 쿠데타가 자주 일어나고 군부의 권력 집중화로 국민의 삶이 피폐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래서 미얀마 소수민족의 많은 수가 1,000고지가 넘어가는 타일랜드 오지 산들을 넘어와, 수많은 경비병들에게 웃돈까지 줘가며, 이 고지 저 능선에서 작은 마을들을 이루며 대를 이어 살고 있다. 타일랜드 정부에서도 이들에게 소소한 지원까지 해주며 자국 국민화를 시도하고 있다.

(매라 난민 캠프 Mae Ra refugee came. 촬영=윤재훈)
(매라 난민 캠프(Mae Ra refugee camp) 촬영=윤재훈)

여기에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1984년 설치되어 35,000명가량 수용하는 최대 규모 매라 난민 캠프(Mae La refugee camp)를 비롯해, 메솟 등 미얀마 난민 10만 명가량을 수용하기 위한 수용시설 9곳이 현재 양국 국경 지역에서 운영 중이다.

타일랜드에게도 이득이 있다. 미얀마와 국경을 접한 오지 산들은 대개 1,000m 이상 솟아있는 높은 산들인데, 밀림 지역이다. 이들이 여기로 숨어들어와 화전을 하여 농지를 만들고, 또 수많은 농산물을 재배하여 새벽이면 치앙마이 시장에 쏟아 자국민들의 신선한 식탁을 책임진다. 또 산 벼를 비롯한 벼농사를 지어 아시아 쌀수출국 1위라는 명성에 보탬이 되고 있다. 또한, 인구가 국력인 시대와도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오토바이를 타고 오지 산모롱이를 돌 때마다, 작은 마을들이 나온다. 여기도 카렌족의 마을이다. 청년은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날 저녁 함께 자는데, 그가 말했다. 자신도 한국에 근로자로 다녀온 적이 있다고! 가슴이 철렁, 했다.

그런데 이 마을에 15명의 청년이 더 갔다 왔다고 했다. 한 마디로 빚들을 내어 온 동네 청년들이 단체로 다녀온 모양이다. 다른 친구들은 돈도 많이 벌어와 잘살고 있는데, 자신은 조기 귀국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잠시 말을 멈추더니 침묵이 흐른다. 여기서 수백만 원 이상의 돈을 빌려 수속비를 내고 갔을 텐데,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공장에서 일하다 그만 몸을 다쳤다고 한다. 그에게 조심스럽게 한국에 대한 인상을 묻자, 그래도 나쁜 기억은 없다고 했다.

(망중한(忙中閑). 촬영=윤재훈)
(망중한(忙中閑). 촬영=윤재훈)

많은 사람이 한국에 한 번 다녀오면 ‘코리아 드림’을 이룬다. 좋은 신랑감이 된다. 집과 차를 사고 사업체도 만들고 결혼까지 한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겐트에서 만난 그는 슈퍼를 하며 여유 있어 보였다. 한마디로 중류층 이상의 생활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또 가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타일랜드에서는 멍크(스님)를 한 사람 사귀었다. 그도 한국에서 3년 이상 일하며 부인에게로 돈을 보냈다. 그런데 부인이 그만, 다른 데로 다 써버린 모양이다. 돌아와 보니 한 푼도 없더란다. 그는 이혼하고 다행히 남은 돈으로 부모님 집 사드리고, 두 명의 아이들을 맡겨놓고 멍크가 되었다. 주체할 수 없는 그의 마음을 약간 알 듯도 하다.

“사장님들이시여,
부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욕하거나 때리지 말고,
봉급 잘 주어, 그들이 ‘아름다운 나라, 인간적인 한국인들이 사는 나라’로 기억하고 돌아가게 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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