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60] 코로나 백신과 나이

오은주 기자
  • 입력 2021.06.15 10:4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2019년 조연현문학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영옥씨의 친구들이 모두 감정적으로 집단반발과 가벼운 우울 상태에 빠졌다. 영옥씨는 1960년생이고 친구들도 거의 동갑으로 작년에 환갑을 지냈다. 요즘 환갑이면 청춘이라 환갑잔치는 어울리지도 않는다며 입에 올리지도 않았고 신중년이라는 새로운 세대 구분으로 마냥 젊은 나이인 듯 살아오지 않았던가. 코로나만 종식되면 히말라야 원정대라도 꾸릴 기세로 건강한 그룹이 영옥씨 친구들이었다. 게다다 UN이 인생 100세 시대를 맞아 새로 발표한 연령분류 기준표에 의하면, 18세~65세는 청년, 66세~79세는 중년, 80세~99세는 노년이래서 아직 청년이구만 청년! 하고 지내왔다.

그런데 보란 듯이 의학적으로는 노령층이라고 이번에 진실의 입이 열렸다. 바로 코로나백신의 접종순위 때문이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60세 이상 고령층’부터 먼저 접종한다는 뉴스가 나오던 날 친구들 카톡방이 불이 났다.

“영옥아, 너 뉴스 봤니? 우리더러 고령층이란다.”

“고위험군, 취약층, 노령층 별 단어가 다 나오더라. 기가 막혀서…”

“그 중 제일 후한 표현이 60세 이상 어르신이야.”

“뉴스기자들이 다들 젊은 사람들이니까 우리가 그렇게도 보이겠지. 우리 어릴 때만해도 60살 먹은 여자들은 다 머리허연 할머니들이었지 뭐. 요즘이야 머리칼 검게 염색하고 빠진 이도 임플란트로 넣고 하니까 나이를 잘 모르게 된 거지. 솔직히 우리도 몸속은 젊을 때랑 같지는 않잖아. 이젠 나이를 받아들이고 나라에서 나이 많다고 주는 혜택이나 받아보자.”

카톡방은 씁쓸하게 닫히고 영옥씨는 60세 이상 고령층이 접종하는 6월 초에 코로나 백신 접종을 했다. 동네 내과에서 접종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파트의 같은 라인에 사는 젊은 애기엄마와 유치원에서 하교하는 유치원생 딸을 만났다. 수년간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이라 세대는 달라도 가끔 말을 하고 사는 사이였다.

“난 지금 백신 맞고 오는 길이예요. 젊은 사람들은 아직 멀었지요?”

“아, 그러세요. 2~3 일간은 힘들다니 집에 가서 푹 쉬세요.”

그러자 엄마 손을 잡고 이 대화를 듣고 있던 똘똘한 7살 여자애가 이렇게 말했다.

“아줌마, 코로나 주사 맞으셨어요? 우리 유치원에서 선생님들도 곧 맞게 된다고 하셨어요.”

순간 영옥씨에게 ‘아줌마’라는 단어가 천둥처럼 내리쳤다. ‘응, 이 꼬마아가씨에겐 그래도 내가 할머니가 아니고 아줌마로 보였던 말이지. 그래, 내가 비록 백신접종 나이에선 고령층으로 분류됐지만 아직 손주도 없는데 할머니는 아니지. 순수한 애들 눈이 제일 정확하다는데, 역시 애들이 사람볼 줄 아네.’

“응, 아줌마가 좀 전에 아파트 상가 2층에 있는 내과에서 코로나 예방주사 맞았는데 하나도 안 아프네, 고마워.”

아줌마라는 단어에 힘을 주며 말하고 그 기특한 꼬마아가씨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령 어르신으로 백신 주사를 맞으러 갈 때는 타이레놀을 미리 챙겨두면서도, 2~3일간 아프다는데 어쩌지, 백신 맞고 잘못된 사람들도 있다는데 어쩌지 하는 온갖 나쁜 뉴스에 지레 겁먹었던 영옥씨였다. 남편에겐 2~3일간 집에서 밥을 못한다고 엄포까지 놓았다. 그런데 영옥씨는 동네 꼬마아가씨의 인상착의에 의거한 후한 여자 나이 분류 정의로 도로 아줌마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영옥씨는 주사를 맞았던 왼쪽 윗팔뚝이 진짜 전혀 아프지 않았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