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61]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오은주 기자
  • 입력 2021.06.24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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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2019년 조연현문학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55세 경호씨는 요즘 편의점 알바생이다. 일반 사무직으로 중소기업에서 일찍 퇴직을 하고 나니 기술도 주특기도 없는 악조건이라 일을 하고 돈을 벌려면 창업을 해야만 하는 형편이었다. 창업 설명회다, 스타트업이다, 이곳저곳 기웃거리기는 했는데 자본금이 적은 처지라 아직 모색 중이었다. 마침 편의점을 운영하는 친구로부터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야간알바를 해줄 수 있겠냐는 연락이 왔다. 편의점 점주라면 사장님임은 분명하지만 실상은 본인과 가족과 알바까지 동원돼야만 제대로 돌아가는 게 24시간 편의점이었다.

밤에 야간영업을 도와주던 친구의 대학생 아들이 군대에 가게 돼 믿고 맡길 사람이 필요하다는 요청이었다. 경호씨는 그 편의점에서 수습사원(?)으로 계산기포스 찍는 법부터 물건관리까지 배우고 나서야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손님들이 매대에서 골라오는 물건들 계산만 해주는 편한 일인 줄 알았더니 일인 가게의 특성상 모든 관리와 물류의 흐름을 알아야 했고 특히 김밥, 샌드위치 같은 신선식품의 유통기간 관리가 쉽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 일이 좀 익숙해지자, 낮에도 가끔 근무를 했고 자연히 편의점을 이용하는 손님들의 부류와 특성을 파악하게 되었다. 흔히 보듯, 늦은 밤 슬리퍼에 츄리닝을 입고 와서 유통기간이 다되어서 1+1로 판매하는 삶은 달걀과 샌드위치 등을 사가는 혼족들, 이른 아침에 들러 다이어트용 샐러드와 두유 등을 사가는 직장인 아가씨들, 저녁에 편의점 밖 간이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는 남자들 등 시간대별로 손님들 구성이 달랐다.

그중에서 가게를 가장 활기차게 해주는 존재는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 가기 전에 주로 컵라면과 주먹밥을 사 먹는 중고생들이었다. 와르르 몰려와 2개를 구매하면 3개를 주는 사발면을 사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중·고등학교 때 혼자 하숙을 하면서 간식 사먹을 돈이 궁했던 기억이 났다. 그래도 면소재지에서 작은 구멍가게와 밭농사로 어렵사리 살림을 꾸려가던 부모님이 근처 도시에 하숙을 시키며 중·고등학교를 다니게 해준 고마움에 다시금 울컥 했다.

경호씨가 중학교 때 주말에 집에 돌아와 학교에서 나누어준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하다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냐는 칸에 ‘좋은 남편과 아버지’라고 잔뜩 추상적인 답을 써놓았다. 그걸 보신 어머니는 “남자 직업은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공무원이 최고”라며 공무원으로 바꾸어 쓰라고 명령 아닌 명령을 했다. 자식의 꿈마저 좌지우지 하려는 게 아니라 가난에서 최소한 벗어나라는 간절함이 묻어나는 명령이었다. 월요일 학교에 가서 제출할 때 얼핏 보니 반 이상이 공무원이나 회사원이라고 쓴 것 같았다.

경호씨는 지금 자신이 부모님의 바람대로 공무원이 되었다면 아직도 근무를 하면서 월급을 따박따박 받았겠지만, 55세에 퇴직을 했기에 또 다른 일을 모색하고 준비할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 모든 제품과 인간군상의 축소판인 편의점에서 일을 해보는 게 무언가 세상에 대응할 경험과 지혜를 축적시켜 주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던 자신이 중학교 때 희망했던 ‘좋은 남편과 아버지’도 되고 어머니가 희망했던 ‘월급’ 그 이상의 월급을 가져다주리라는 희망을 품어보았다. 구석 탁자에서 시선은 스마트폰 화면에, 입은 라면가닥을 물고 있는 중학생 녀석에게 경호씨는 작은 봉지김치를 가져다주면서 그 대가로 꼰대아저씨 티를 내며 말했다.

“학생, 맛있게 먹고 학원가서 공부 열심히 해. 부모님 말씀도 잘 듣고.”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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