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57] 천년 붓다왕국 미얀마10_미얀마인의 열광, 림프의 축제 ‘띤잔'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6.25 13:16
  • 수정 2022.02.1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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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인의 열광, 림프의 축제 ‘띤잔'(Thingyan)

“군부는,  미얀마 군대가 아니라, 침략자다.”

 

("우리들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촬영=윤재훈)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미얀마의 7월은 너무 무덥다. 푸석거리는 비포장도로 위로는 먼지가 치솟고 작열하는 태양이 대지를 달군다. 탑 부분에 금칠한 사원이 보인다. <알로도우비(Alo Temple)> 사원이다. 새로 보수한 듯 상당히 크다. 그 앞에는 몇 개의 파라솔과 천막이 쳐있는 가게들이 밀집해 있다.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사원 앞에 오토바이를 세운다. 코코넛을 한 통 사서 통째로 마신다. 자연에서 막 따낸 은은한 단맛, 이 맛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남국(南國)의 꽃도 그렇다. 햇발 아래 치솟은 젊은 여인의 육감 같다.

가게에는 그 옛날 우리네 시장 어디 한 편에서 보았을 법한, 팥빙수를 만들기 위해 얼음을 갈았던 기계 같은 것이 보인다. 바로 사탕수수를 짜주는 기계다. 더위를 가시는 데는 역시 최고다. 입안에서 녹은 달콤한 즙이 단번에 더위를 잊게 한다. 이 더위 속에서 맹물만 마셔서는 견딜 재간이 없다.

일단 과즙을 먹고 나니 한결 더위가 가신다. 일단 그늘로만 들어오면 그런 데로 시원하다. 현지인들도 덥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탑 안은 시원하다. 촬영=윤재훈)

<아쉬 난시> 파고다 안으로 들어간다. 여기저기 현지인들이 흙먼지가 뿌연 맨바닥 위에 누워 잠을 자거나 스마트폰을 본다. 점심을 먹고 낮잠이라도 한숨 잘 모양이다. 바닥은 시원한데, 구안와사라도 걸리면 어쩌나, 적이 걱정이 된다.

대부분 소규모 탑들은 안쪽으로 들어가며 두 개의 방 구조로, 입구는 비어있고 안쪽은 탑 밑이 된다. 어두컴컴하며 정면에는 본존이 놓여있고 양쪽의 벽에는 작은 감실들이 파여 붓다가 모셔져 있다. 어디를 가나 푸드덕 박쥐들이 난다. 미얀마의 탑들은 안으로 회랑이 한 바퀴 빙 돌게 되어있는데, 그들의 지극한 불심이 느껴진다.

(바람구멍. 촬영 윤재훈)
(바람구멍. 촬영=윤재훈)

밖에는 40도에 육박하는 불볕더위이지만 안은 시원하다. 천정이 높아 시원하고 빨간 벽돌들이 열기를 차단한다. 사방에 바람구멍이 있어 살살 바람기가 느껴진다. 옛사람들의 건축술에 다시 한번 감탄을 한다. 코카서스나 유럽 지역을 여행하면서 그 지붕이 높던 정교회 성당들도 많이 들어가 보았지만, 이런 서늘함은 느껴보지 못한 것 같다. 누군가 미얀마 음악을 틀어놓고 자는지 은은하게 들려온다.

(지극한 기원. 촬영=윤재훈)

내가 그 사람을 만난 곳은 탑 안이었다. 유난히 한 사내만 정갈하게 은박지를 깔고 누워 있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옆에 앉아도 되냐고 물으니 사내가 일어서면서,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자신의 딸이 만달레이에 있는 대학의 한국어과에 다닌다고 하면서 갑자기 전화기를 꺼내 든다. 그리고 바꿔준다,

전화기 속에서는 약간은 어색한, 그러나 또박또박 한국어로 소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만달레이 외국어 대학교> 3학년으로 한국어학과에 다니는 18세의 <산디 첸디 아호>. 한 학년 정원은 50명이며 한국어 교수 3명이라고 한다. 4학년 다 합치면 200명이 되겠다. 한국어로 말이 참 잘 통하는데, 0과 9의 발음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한참을 이야기하고 우리는 다시 소녀의 집이 있는 만달레이에서 만나기로 하고 페이스북 친구를 맺었다.

아빠 <울라무>는 엄마와 함께 작은 125cc 오토바이를 타고, 보석 행상을 다니는 모양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얀마 ‘모곡’ 지방의 루비와 사파이어 같은 귀금속들을 주문을 받아, 반지에 채워서 갖다 주는 것 같다. 그러면서 나에게 반지에 끼는 녹색 구슬을 하나 선물로 주면서, 나중에 반지를 만들어 준다고 아주머니가 말한다.

(아마라푸라, ‘우 뻬인 다리’ 입구에서. 촬영 윤재훈)
(아마라푸라, ‘우 뻬인 다리’ 입구에서. 촬영=윤재훈)

그 후 만달레이에서 다시 그 소녀를 만났다. 게스트하우스에 있는데, 엄마와 아빠와 함께 오토바이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왔다. 그리고 가족들의 고향인 인근의 <아마라푸라အမရပူရ>를 구경 갔다. 이곳은 옛적에 미얀마의 수도였다. 아마라푸라는 팔리어로 '불멸의 도시'이며 18~19세기 동안 3차례나 콘바웅 왕조의 수도였다.

역사적으로는 만달레이 남쪽에 위치해 타웅묘(남쪽의 도시)라고 불렸지만, 오늘날은 만달레이가 커짐에 따라 그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서쪽으로는 이라와디강이 흐르고, 남쪽에는 잉와(아바)왕국이 있었다.

잉와는 ‘호수의 입구’라는 뜻으로 ‘타도민비야 왕’이 세웠으며, 1364~1841년까지 477년 동안 옛 버마의 수도가 되었다. 그 전에는 인근의 사가잉이었는데, 샨족에 점령된 후 이곳으로 옮겨왔다. 그러나 1841년과 1939년에 두 번의 지진으로 궁전과 사원 등 대부분이 무너져, 고대왕국의 모습은 거의 없다.

꼰바웅 왕조의 보도퍼야 왕(1781~1819)은 왕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로운 수도인 아마라푸라를 세웠다. 그러나 손자인 바지도 왕(1819~1837)은 1823년에 수도를 아바로 옮겼고, 다시 그의 아들인 타라와디 왕(1837~1846)이 아마라푸라로 다시 환도하였다.

1841년부터 1857년까지 아마라푸라는 미얀마의 수도였지만 민돈 왕(1853~1878)은 1860년에 만달레이로 천도하였다. 궁전 건물들은 해체되어 코끼리를 통해 새로운 장소로 옮겨졌고, 성벽은 도로나 철도의 재료로 사용되는 불운으로 옛 모습은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 단지 해자의 일부가 바가야 수도원 주변에 있어 그 시절을 유추해볼 수 있다.

(‘우 뻬인 다리’에서. 촬영=윤재훈)

아마다푸라의 가장 유명한 볼거리는 단연 <우 뻬인 다리(U Pein Bridge)>이다. 티크 목으로 된 이 다리는 따웅타만 (Taungthaman) 호수 위에 서 있는데, 높이가 3m이며 폭은 2m인데, 길이가 무려 1,209m에 달한다.

156년 전 마하 간다용 수도원과 호수 건너편으로 스님들이 탁발 공양을 할 수 있도록, 마을 유지인 ‘우 뻬인’이라는 사람이 보시를 했다. 1,086개나 되는 티크목 기둥으로 세워진 이 다리는, 우기 때는 물이 차지만 건기가 되면 앙상하게 흰 뼈가 드러난다. 일백오십 년이 넘은 티크목들은 갈비뼈를 드러내듯, 세월 속에 삭고 있다.

바닥도 앙상하게 드러나 가게들이 그 자리에 들어서 있고, 해 질 무렵이면 사람들이 일몰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온다. 아직도 이 다리는 많은 현지인이 이용하며 관광객들도 제법 온다.

인근에 1914년에 만들어진 미얀마 최대의 수도원인 <마하 간다용 수도원>과 <짜욱또지 파고다>가 있다. 마하 간다용 수도원은 미얀마에서 가장 큰 수도원으로, 현재는 약 1,500여 명의 스님이 위빠사나 수행과 팔리어 삼장 강학을 하고 있다. 많을 때는 3,000명까지 수용한다고 하니 가히 그 규모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오전 10시 15분부터 시작되는 점심 공양 탁발이 장관으로, 이를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온다.

또한 1847년에 건립된 짜욱또지 파고다는 타일랜드의 치앙라이 주에 있는 화이트 템플를 보는 듯, 아름다운 흰색 사원이다. 회랑에 있는 천체도도 인상적이다. 넓은 뜨락 나무 그늘 아래에는 테이트하는 청춘남녀들이 많다.

(오늘만 같으면. 촬영 윤재훈)
("오늘만 같으면". 촬영=윤재훈)

미얀마 최대 물의 축제 '띤잔(Thingyan)'은 그들의 가장 큰 신년 명절인, 4월 13일쯤 열린다. 이때는 '인드라인 타쟈밍'이 인간 세상에 강림이 예상되는 시기로 그에게 물을 헌납하는 것이다. 최소 3~5일 정도가 진행되며, 물을 뿌리는 기간은 매년 뽀우나(Pounna, 산스크리트어인(Brahmin)에서 유래)라는 점성술사에 의해 결정된다.

또한 일 년 중 가장 더울 때이니, 물로 대지와 몸을 식혀주는 의식이기도 한 모양이다. 띤잔은 '모든 것을 바꾸다'라는 뜻을 지닌 산스크리트어인 '띠따우(Thithau)'에서 유래된 말로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의미이다.

또한 이 기간에 뿌려진 물은 어따예(Athaye)라고 한다. 어따(Atha)는 인도의 암리따(Amrta), 힌두교 신화에 등장하는 영생의 묘약을 의미하며, 예(ye)는 니르(Nir, 물을 의미)에서 유래되었으므로, 영생수라 할 수 있다. 이 기간이 끝나고 나면 이제 머지않아 우기가 시작된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물을 뿌리는 행위는 휴식과 오락을 위한 유흥적 의미도 있지만, 과거에 알고 지었든, 모르고 지었든 그 죄를 씻고, 새해를 깨끗하게 맞이하겠다는 상징적 의미도 들어있다. 즉 우리도 머지 않은 옛날의 설날에는 깨끗이 목욕하고 새옷과 새 양말을 신었다. 그 의미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축제의 마지막 날에는 전국에 축포가 터지고, 음악이 성대하게 울려 퍼진다. 머리가 여러 개 달린 나가(Naga)를 바다에 띄우거나, 배 밑에 바퀴를 달아 거리를 순회하기도 한다. 저녁이면 사람들이 강가로 나와 꽃과 촛불, 향을 피워 물에 띄우기도 한다.

또한 사원이나 시골에서는 경건하게 종교적 의례가 치러지며, 가정에서는 연소자가 연장자의 머리를 감겨주거나 손발톱을 깎아주는 전통들이 지속되고 있다.

우리는 만달레이에서 다시 만났다. 오토바이 두 대에 부모님과 함께 나누어 타고 게스트 하우스에 찾아왔다. 거리는 이미 뜨거운 축제의 열기로 확성기의 울림과 빽빽한 오토바이의 행렬, 그 뒤에서 나오는 엄청난 매연으로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타일랜드에서 같은 시기에 열리는 송크란 축제보다 그 열기가 더 뜨거운 듯하다.

아빠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가는데, 사방에서 물이 날아왔다. 대부분 바가지로 퍼붓는데, 가끔씩 옷 속을 잡아 흥건하게 부어 넣거나, 수도에 아예 호수를 꼽아 쏘아댄다. 옷이 젖는 것은 포기하고 그냥 축제를 즐겨야 한다. 그러나 폰과 현금 등은 비닐 팩에 잘 감싸야 한다

(축제의 열기에 도시가 마비될 정도다. 촬영 윤재훈)
(축제의 열기에 도시가 마비될 정도다, 촬영=윤재훈)

가끔씩 덜컹거리며 비포장 길이 나왔다. 한 30여 분 달렸을까, 어떤 집 앞에는 아예 큼지막하게 단을 만들고 음악을 틀어놓은 채, 남녀 10대들이 흥겨웁게 춤을 추고 있었다. 손에도 호수를 늘어뜨린 채, 한 사람도 허투루 그냥 보내지 않고, 물을 쏘아댔다.

오토바이가 그 집 앞에 섰다. 많은 사람이 식사하고 있었으며 우리도 앉자마자 바로 식사가 나왔다. 먹으면서 보니 끊임없이 사람들이 오고 갔다. 이곳은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불교 왕국답게 자신이 보시의 의미로 즐겁게 사람들에게 공양을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산하에도 가끔 산행을 하면서 절간에 가서 공양할 때가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일부러 들르기도 한다. 야채가 듬뿍 들어간 비빔밥은 언제 먹어도 건강식이다. 그 음식 속에는 속세의 모든 생명에 대한 무한한 자비가 들어있어, 더욱 경건하다.

"군부는, 미얀마 군대가 아니라, 침략자다."

믿기지 않는 현실을 봤다. 젊은 사관생도들이 '분명히' 춤을 추고 있었다. 700명이 되어가는 사망자와 3,000명 정도의 민주인사들이 연행되었는데, 외국의 침략이 아닌 자신들이 세금으로 키운 자국의 군대에 의해. 국민은 최대의 축제도 반납한 채 무고한 이웃과 혈육에 죽음에 항거하기 위해 붉은 페인트를 곳곳에 뿌리며 항거하고 있는데, 꽃 같은 청년들이 아무 역사관도 없이 세뇌되어.

그것이 더 무서운 일이다. 조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젊은이들이. 그것도 보란 듯이 SNS 화면에 물을 뿌리며, 때춤을 추면서 광란의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 무슨 망령인가?”

심지어 항거하려고 모여있는 국민에게, 띤잔 축제를 즐기려 모였다면 예전에 사진과 영상들을 보여주며 왜곡시키고 있다. 자신들의 나라 백성으로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이미 내 논 자식으로 취급하는 모양이다.

자신들의 부와 권력,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살육이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세계인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냥 모른 척 방관하고 있다. 이 작은 지구 안에서.

“어쩔거나, 미얀마(Myanmar).”

맹글라바, 옴 마니 밧메홈.

(이라와디 강을 따라 사가잉 가는 다리 위에서, 언니와 함께. 촬영 윤재훈)
(이라와디 강을 따라 '사가잉' 가는 다리 위에서, 언니와 함께. 촬영=윤재훈)

부모님은 딸만 셋을 두고 있는데, 하나같이 늘씬한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미녀들이다. 16세 고등학생, 18세 대학생, 20세 대학생, 누구를 미스코리아 대회에 내어놔도 빠지지 않을 포스들이다.

문득 얼마 전에 사진에 보았던 미얀마 미스코리아가 국제 대회에 나와 대회는 딴전이고, 군부 쿠데타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을 애절히 표현하던 광경이 생각난다. 순박한 세 아가씨는 참 예쁘게 잘 자란 느낌이다.

부부는 오토바이 한 대에 의지해서 보석 행상을 다니면서도, 어떻게 이렇게 딸들을 반듯하게 잘 키웠을까? 그들의 험난한 인생역정이 눈에 보이는 듯하여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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