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탑골공원 "코에 바람이라도 넣으려고 나온다"
[기자수첩] 탑골공원 "코에 바람이라도 넣으려고 나온다"
  • 전부길 기자
  • 승인 2021.07.09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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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코로나 춘궁기를 맞이한 어르신들
유일한 위로처를 찾아 4시간 출퇴근도 불사
관계 단절로 인한 소외감 극복
무료급식, 2백원이면 냉커피를 마신다
디지털 공포에서 벗어나는 세상
(탑골공원 북문쪽 그늘에 모여 장기를 두는 어르신들. 촬영=전부길)

[이모작뉴스 전부길 기자] 탑골공원은 언젠가부터 어르신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의 대명사가 되었다.

3개 노선의 지하철이 교차하는 편리한 교통 여건과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지하철 노선의 확장으로 서울뿐 아니라 경기도, 인천, 천안에서 까지도 매일 출퇴근하는 어르신도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공원을 거닐며 환담을 나누거나, 장기를 두며 여가를 즐기는 모습이 흔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위험으로 인한 사회두기는 탑골공원의 문은 닫게 하고 이전의 풍경을 앗아갔다. 20여 년 동안 중단된 적 없었던 무료급식조차 그쳤다.

잠시 전염세가 주춤하자 작년 5월 탑골공원 무료급식이 재개되었다. 코로나로19로 모이는 것을 두려워하던 시기였지만 이랑곳 없이 더 많은 인파가 찾아왔다.

탑골공원은 무료급식 재개 후에도 배식을 위한 대기 장소로 잠시 이용되는 것 외에는 철저히 출입이 통제되었다.

그럼에도 공원 근처를 서성이는 어르신들의 모습, 인근의 지하철 역사나 골목길에 무리 지어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코로나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매일 수 백 명의 어르신들이 탑골로 향한다.

전염병에 취약한 고령층의 밀집에 감염의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모여들고 있다.

지금은 대부분 예방 접종을 완료한 상태이다.

며칠 동안 내리던 비가 그치고 31도까지 올라가던 날 정오에 종로3가역에서 내렸다.

11번 출구 통해 종묘공원으로 향했다.

이전의 종묘 앞 공원에는 거목들이 울창한 공원이었는데, 지하 공용주차장을 만드느라 지금은 작은 나무들만 있어 더위를 피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공원 동쪽의 종로성당 쪽으로 거대한 은행나무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다.

그늘 아래 백여 명의 어르신들이 나무를 보호하는 경계석에 걸터앉아 신문을 보거나, 바둑을 두느라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있었다.

옆에서 구경하는 어르신도 간간히 보인다. 구경꾼에게 물으니 매일이 거의 비슷한 숫자가 모인다고 한다.

매일 오는 사람도 있고 가끔 오는 사람도 있다.

여기 종묘공원은 바둑만 두는 바둑파만 모이는데 탑골공원의 장기파에 비해서 조금 팔팔한 편이라고 한다.

편의점 주변의 벤치에는 두 세 명씩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그 중에는 과거의 자신의 무용담이나 전공을 자랑스럽게 늘어놓는 라떼(나--때는)족 주변으로 동년배 어르신 5-6명이 모여 있는 모습도 있다.

(나무 경계석을 의자삼아 쉬거나 장기를 두시는 어르신들. 촬영=전부길)

동행한 이모 형(兄)이 한숨을 쉬며 말한다.

에고, 무슨 소용이야.
나이 들면 아무것도 쓸모가 없어져,
인정도 못 받아.
듣겠다는 사람도 없어.

무거운 바둑판과 알을 어떻게 가져 오느냐고 물었더니 관리인이 있다고 누군가 알려준다.

약 30세트 정도를 갖추고 아침이면 내어주고 저녁이면 다시 수거해서 보관함에 넣어둔다고 한다. 한 세트 당 1천 원을 관리비로 받으면서 주변 청소까지 도맡아 한다고 한다.

내기나 도박성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예전에 내기로 경찰이 출동되고 몇 명이 벌금을 내고 구청에서 모이지 못하게 하는 소동이 일어난 이후 현재는 거의 없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러나 암암리에 소액의 내기는 벌어진다고 추가로 귀뜸해 준다.

(바둑에 빠져 계시는 어르신들. 촬영=전부길)

김모(78)어르신은 “송탄에서 2시간 넘게
걸려 오는데 여기 와서 바둑 한 판 두고 가면
기분이 좋아진다.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한다.

종묘공원에서 종로2가 쪽으로 6-700미터 내려가면 탑골공원이 있다.

(종로3가에서 탑곱공원으로 내려가는 길. 촬영=전부길)

탑골공원은 남성어르신들 차지이다. 여성어르신들은 소수만 나온다.

코로나 이전 여성어르신들은 주로 종로 3가에서 2가에 걸쳐 있는 패스트푸드점에 모였다. 이 곳이 여성어르신들의 아지트였다.

여럿이 와서 커피 한두 잔 시켜놓고 뜨거운 물을 타 나눠 마시고 햄버거를 나눠 먹기도 하던 곳이다.

그러나 코로나19 거리두기가 실행되자 여성 어르신들은 발길을 끊었다.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이다.

(굳게 닫힌 삼일문. 촬영=전부길)

코로나19로 굳게 닫혀버린 탑골공원의 문은 아직도 열리지 않고 있다. 문 안의 공원 모습은 평온과 고요가 자리하고 외부에 무심한 듯 보인다.

정문에는 더위 때문인지 외롭게 노숙자 한사람만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다.

서문 쪽 낙원상가 가까워질 무렵 담에 기대어 앉아있는 깡마른 체구의 여성어르신이 눈길을 끈다. 박카스 아줌마로 추정되는 여성들을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여성을 만나는 것이기에 신기하기도 했다.

곁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용두동에서 왔고 “남편이 중풍으로 쓰러져 있는데 돈도 안주고, 외도한다고 의심하고 때려서 집을 나왔다”고 한다.

(이모어르신. 촬영=전부길)

 ‘아이스케키를 먹고 싶은데
돈이 없다’고 하신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 1400원을 드렸더니
얼굴에 화색이 돈다.
나이가 65세라고 해서 웃으며
‘아닌 것 같다.  75세는 되어 보인다’고 했더니
화를 내면서 65세가 맞다고 계속 우긴다.
그리고선 슬며시 돈을 주머니에 챙겨 넣는다.
이상하게 마음이 저린다.

공원 담장을 끼고 북문 쪽으로 가니 여기는 초한(楚漢)의 싸움을 즐기는 장기파들의 세상이다.

아까 종묘공원의 바둑파들과는 또 다른 세계다. 떠들썩하지는 않지만 저마다 탁자에 장기판을 올려놓고 심각한 표정으로 전투를 지휘하는 장수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장기에 열중하시는 어르신들. 촬영=전부길)

자세히 보니 장기판에 ‘종로구청 증정’이라는 표시가 보인다. 구청에서 어르신들을 위해 장기세트 21개와 탁자, 야외용 의자 40개를 기증했다고 한다.

관리자는 아침에 꺼내주고 저녁에는 다 정리하여 집어넣는다. 수시로 주변 청소도 담당한다.

장기판 하나에 하루 1천 원 정도를 관리비로 받지만 절반 정도는 그냥 가버린다. 그냥 봉사 차원에서 하고 있다고 한다.

(장기를 두시는 어르신들. 촬영=전부길)

코로나가 한참 극성을 부릴 때에는 어르신들이 모여 있는 것이 염려되어 구청과 주민센터에서 해산 시키려 나왔지만 자신이 이를 막았다는 조용근(93) 어르신을 만났다.

계동에 사시는데 몇 년 전부터 다리가 불편하여 휠체어를 타고 오신다.

어제는 코로나 위험 때문에 공원주변에 구청 직원이 나와서 어르신들을 해산하려고 하여,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는데, 하필 안 나온 날이라 자신이 전화로 이를 막았다고 한다.

유일하게 본인만이 합법적인 모임을 할 수 있는 허가서를 받았다고 서류를 보여 주시는데, 기자가 보기에 어르신들의 모임 허가 여부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인다.

(조용근님이 내 보이신 증명서. 촬영=전부길)

갑자기 옆 자리가 소란스러워지더니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린다. 폭력이 오갔다. ‘누구 신고해 달라’고 외치는데 신고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잠시 후 지구대 경찰들이 출동했다. 때린 사람은 이미 도망가 버리고, 맞았다고 억울해 하는 사람만 남았다.

출동한 경찰이 주변 사람들에게 맞는 것 봤느냐고 묻는데 하나같이 못 봤다고 고개를 흔든다. 다들 대수롭지 않은 공연한 일에 끼어들지 않겠다는 모습이다.

지구대 순경에게 물으니 하루에도 3-4번은 이곳에 출동을 하는데, 대부분 사소한 말다툼이라고 한다.

왜 어르신들은 탑골공원으로 오는가?

코로나 상황에도 이곳으로 오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복지시설 운영이 축소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경로당, 복지관은 어르신들을 위한 여가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무료 급식을 지원하는 등, 고령층의 사회적, 정서적 교류의 장으로 이용돼 왔다.

다단계 판매 업소도 어르신들의 단골 출입 장소였으나 문을 닫았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지난해부터 운영 중단 기간이 길어진 상황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달 초 기준 서울 시내 경로당 전체 3468곳 가운데 문을 연 곳은 1418곳(40.9%)에 불과했다.

코로나19 이전 탑골에는 하루 3천명 넘는 노인이 드나들며 은퇴자와 실직자 또는 갈 데 없는 어르신들이 소일하는 공간이 됐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으로 공원 문을 걸어 잠궜다.

그럼에도 어르신들은 계속해서 찾아와 닫힌 공원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매력인가 아니면 필요인가

탑골공원이 폐쇄된 지 1년이 훨씬 지났지만, 공원 인근은 여전히 어르신들로 북적인다.

탑골을 찾는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허기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여기로 온다고 한다.

어르신들은 이구동성으로 경제적 수준이나 독거 여부가 아니란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갈 곳이나 갈만한 곳은 모두 문을 닫았고, 대부분이 비대면으로 이루어지니 철저한 일상의 단절을 경험하였다.

어르신들에게 깊은 고독감과 고통스런 소외감을 주었다.

어르신들이 이곳에 오는 이유는 단순하다.

비슷한 조건과 처지이기에 서로가 이해도도 높고 공감대도 형성된다.

서울시내 음식 가격은 어르신 소득으로는 큰 부담이지만, 탑골공원은 무료급식 등을 통해 끼니를 해결할 수 있고, 이를 받지 않아도 하루 5천 원이면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실 수 있다. 식사도 해결하고 하루를 즐길 수 있으니 안 찾겠느냐는 것이다.

부천에서 왔다는 김모(79)어르신은 “경제적 어려움까지 더해져
외부와 단절되었다는 고립감에 죽음에 대한 생각까지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여기를 다시 찾아오면서
고독감이 많이 회복되었다"고
눈물을 글썽인다.

이모(83)어르신은
'여기 오는 사람들 대다수는
잊혀진 사람들이며,
가끔 이런 식으로 만나서 이야기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그마저도 친구가 있는 이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은 그냥 앉아서 사람 구경이나
하다가 가는 거지’라고 체념조로 말한다.

강모(84)어르신은
집안에서의 적막감과 혼자 있다 보면
밀려드는 온갖 시름을 잊고 
‘코에 바람이라도 넣기 위해’
오늘도 집 밖의 길거리 여정을 이어온다고
하는데 말소리에 서글픔이 느껴진다.

누가 뭐래도 코로나19로 직격탄은 맞은 사람들은 어르신들이다.

비대면이 활성화되고,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고,
노인복지시설은 문을 닫고,
자원봉사자는 활동을 그치고 
자식들은 코로나라도 걸릴까 문밖 출입을 못하게 한다.

5-60년대에 너무 가난했던 시절이 있었다.
겨울을 구황작물로 간신히 견디고
봄을 맞이하였지만 보리는 아직 파랬고
양식은 떨어졌다.
보리가 익기까지 굶으며 기다리는
시기가 바로 춘궁기(春窮期)였다.
그러다가 보리를 수확하고
복날이 다가오면
닭죽으로 살아남았음을 자축했다.

며칠 후면 절기상 초복이다. 그러나, 

탑골로 모여드는 어르신들은 아직도 몸과 마음이 고픈 춘궁기다.

어르신들은 먹을 것도 부족하고, 심기도 채워지지 않고, 영혼의 갈증을 느끼는 혹독한 시기를 맞고 있다.

탑골에는 누가 나오라고 강제하는 이도 없다.

출석을 부르지도 않는다.

굳이 와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아침이 되어 눈을 뜨면 탑골로 나갈 생각에 마음이 분주해진다.

(공원 동문부근. 촬영=전부길)

탑골에는 현실과 다른 세상이 있다.

키오스크를 하지 못해 허둥대지 않아도 된다.
그저 동전 2개 넣고 버턴만 하나 눌러주면 시원한 냉커피가 나온다.

값싼 식당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친절하게 가져다 주는 무료급식으로 허기를 채울 수 있다.
오늘 만나도 친구가 되고 스스럼없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는 누구도 잔소리 하는 사람이 없다.
텅 빈 방안에 텔레비전 혼자 떠들어 대지 않으니 좋다.

말 상대가 없어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대화를 주고받으니 사는 것 같다.
아내에게서 삼식이(집에서 세 끼를 다 먹는다고 해서 붙여진 속어)라고 핀잔을 듣지 않으니 소화도 잘된다.

나는 오늘도 아픈 다리를 재촉하며 탑골로 가는 전철에 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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