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탑골공원 “엄마 품을 잃은 고아처럼 허전해서 나온다”

전부길 기자
  • 입력 2021.07.19 09:48
  • 수정 2021.11.03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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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 북문 밖은 항상 어르신들로 붐빈다, 촬영=전부길기자)

어르신들의 안식처이자 집결지, 탑골공원은 벌써 1년 반을 코로나19의 여파로 문을 굳게 닫았다.

대문의 규모만큼이나 육중하게 닫아버린 공원을 안타까워하는 이는 일반 관람자도 마찬가지다. 공원 안을 들어가 보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다.

탑골공원을 출입하던 어르신들에게 공원폐쇄는 또 다른 아픔이다. 마치 휴전선을 찾아 망향가를 부르는 실향민처럼, 어머니의 품을 잃어버리고 떠도는 고아같은 마음으로 오늘도 탑골 주변을 떠돌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집합 금지는 일상이 되었다. 비대면과 디지털 기기 사용은 청장년 세대에게는 비교적 익숙하나 어르신들은 오히려 오지에 들어앉은 절망감으로 다가왔다. 사회적 관계 단절에 뼈가 시리고 가슴은 뚫렸다. 밖을 나가지 않으면 죽어있는 것 같았다.

[이모작뉴스 전부길 기자] 어르신들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탑골로 나온다. 그래서 어르신들로 항상 붐빈다. 어르신들의 홍대이다.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종묘광장으로, 장기를 두는 사람들은 탑골공원 아니 공원 밖 북문 주변으로 모여든다.

(삼삼오오 모여 장기를 둔다.촬영=전부길기자)

탑골주변 어르신들이 모이는 곳은 거의 정해져 있다.

공원 서쪽으로 삼일대로를 건너면 인사동이다. 불과 몇 십 미터 거리에 있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르기에 어르신들은 잘 가지 않는다. 북쪽으로는 전철 5호선 종로3가역이 있는 돈화문로11길을 경계로 확연하게 남쪽은 어르신들이 많고 북쪽은 젊은이들 차지이다. 동쪽으로는 종묘광장공원까지가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고, 남으로 종로대로를 건너서 관수동 쪽으로도 거의 찾지를 않는다.

(탑골공원 주변 어르신들의 활동지. 사진=다음지도 캡쳐)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지하철 역사 안도 즐겨 찾아가는 만남의 장소이다.

오늘도 공원 북문밖에는 수 십개의 장기판들이 무더기를 이루고 있다. 모여있는 어르신들 주변으로 제일 성업중인 곳은 커피 자판기이다.

유진식당 옆 건물 처마 안에 자판기 3대가 쉼 없이 가동되고 있다. 어르신들 몇이 자판기 앞에서 웅성거려서 다가가 보니 얼음이 나오지 않아 당황해 하고 있다. 때마침 검은 옷의 여성이 자판기 옆의 문을 열고 재빠르게 들어가더니 종이컵과 시원하게 얼려놓은 물을 가지고 와 따라준다.

(쉴 새없이 커피를 내어주는 자판기. 촬영=전부길 기자)

‘자판기의 제빙 속도가 느려 아이스커피가 바로 나오지 않으니 천천히 드시라’는 당부도 이어진다. 자판기를 운영하고 있는 고한순(66)씨다. 기자에게도 마음씨 좋게 시원한 냉커피를 묻지도 않고 건넨다. 마음씨만큼 달달한 맛이다.

고씨는 “2백 원짜리 커피 한잔으로 어르신들이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고 한다. 하루에 3~40잔 정도의 커피를 어르신들께 무료로 뽑아 준단다.

‘하루에 얼마나 팔리나요’ ‘7-8백잔 팔릴 때도 있지만 가격이 싸서 별로 남는게 없어요’ 아이스커피도 한 잔에 2백 원 밖에 안되어 유지비 빼고 나면 별 수익은 없단다.

"그럼 가격을 올리면 되겠네요"
"어떻게 어르신들에게 그렇게 할수 있어요. 백 원도 아까워하시는 분들인데"

현재의 2백 원은 8년 전에 올린 가격이다. 재료값이 많이 올랐지만 커피값을 올린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참 마음이 따뜻해진다.

여전히 노인에게 따뜻한 장소다.

김모 어르신은 “집에서 돈도 못 갖다 주면서 3끼 밥만 찾으니 삼식이라고 핀잔받고 눈치보기 싫어 여기 오기 시작했다. 여기는 전철도 공짜, 밥도 공짜, 커피 한잔 200원, 어떤 날은 천 원도 못 쓰고 들어갈 때도 있다”고 너털웃음으로 계면쩍음을 대신한다.

“무료급식을 처음 받을 땐 창피하고 얼굴도 못 들겠더니, 이제는 그런 생각은 없고 마누라한테 밥상 받는 것보다 훨씬 편해”라고 유쾌하게 말한다.

길 건너 국일관 콜라텍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갔다는 방모(70) 어르신은 “2-3천원이면 거기서 반나절은 춤출 수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아 너무 아쉽다”고 안타까워 한다.

자판기 옆집으로 파크 이발관이 보인다. “이발 5000원, 염색 5000원”이라는 가격판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

지붕에 있는 간판에는 이발 4000원이라 표시되어 있다. 사장님께 가격표가 왜 다르냐고 물었더니 이전 가격인데 귀찮아서 바꾸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발소 창문에는 9시 뉴스에도 나오고, 착한 가격이라고 방송을 탓다는 사진이 이발소의 옛 영화를 대변해 준다. 하루에 얼마나 버시냐고 물어보니 손해 안보는 정도라고 겸손해한다.

(위에는 4000원 아래에는 5000원이라 써 있는데 밉지가 않다. 촬영=전부길 기자)

이 부근에만 이런 이발소가 50여 개나 되고 가격은 거의 비슷하다. 특징은 이발사들의 연령이 대부분 60대 이상이고, 3-40년의 경력자가 대부분이다.

마침 머리에 염색제를 바르고 마치 투구를 쓴 모습처럼 하고있는 어르신이 보인다. 안산에서 자주 오지만 염색은 두 달에 한 번 한다. 전에는 한 달에 한번 했는데 그것도 부담스러워 지금은 두 달에 한 번으로 줄였다고 한다.

“바람이라면 어르신 대부분이 기초수당이나 자식들이 준 용돈으로 생활할 텐데, 자녀들이 돈 잘 벌어서 용돈을 넉넉하게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동문 앞 구두수선 노점이 눈에 들어온다. “구두광택 1500원, 구두징 1500원”이라 붙여놓은 가격표를 보고 사진을 찍었더니 그걸 왜 찍느냐고 언짢아 한다. 보아하니 옆 잡화를 파는 노점상과 부부이신 모양이다.

동문에서 송해길로 나가는 길목에는 몇 대의 포장마차가 영업을 하고있다. 오후라서 그런지 손님이 많지 않았지만 몇 명씩은 앉아 있다. 사진을 찍으려니 큰 소리로 찍지 말라고 가장 가까운 포장마차의 주인이 신경적으로 외친다. 아마도 좋지 않은 기억이 있었던 모양이다.

(동문앞에 열지어 늘어선 포장마차. 촬영=전부길 기자)

송해길 곳곳에는 호떡, 꽈배기를 파는 노점상들이 있고, 길가로는 평범해 보이는 식당, 커피숍, 액세서리 가게들이 자리 잡고 있다.

종로3가 방향으로 나오니 ‘송해길입니다’라고 간판을 달고 있는 네 기둥에 한옥 지붕을 가진 문이 나온다.

(송해길로 들어가는 입구. 촬영=전부길 기자)

문 부근에 아까 어르신들 속에서 보았던 여성 둘과 남성 둘도 주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길에서 만난 유모씨에게 물었더니 박카스 아줌마라고 알려 준다.

박카스 아줌마

윤여정이 주연한 ‘죽여주는 여자’(2016년 개봉)가 생각난다. 탑골 인근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성을 팔며 근근이 살아가는 ‘박카스 할머니’ 소영(윤여정 분)의 삶을 다룬 영화다.

이곳에서 4-60대 여성들이 노인들을 상대로 돈을 받고 박카스를 판매한다. 박카스를 사주는 노인 손을 붙잡고 근처 허름한 여관이나 숙소로 이동한다.

(양쪽에서 지나가던 행인들이 멈추어 보고있다.촬영=전부길 기자)

최근에는 박카스 아줌마가 사라지고 ‘올빼미 아줌마’ 등장했다.

인근 포차·공원에서 가벼운 술자리와 대화를 나눠주는 올빼미 아줌마는 밤이 되면 조용히 등장했다가 새벽녘에 사라지는 중년 여성을 일컫는 은어다. 그들은 1시간에 2만 원 정도를 받고 노인들의 말벗을 해준다. 주로 포장마차나 다방, 식당, 공원 등지에서 차나 밥을 먹으면서 서로 대화를 한다. 올빼미 아줌마는 노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맞장구를 쳐준다. 가벼운 스킨십도 가능하다.

노인들은 외로움에 돈을 지불하고서 라도 이성 말벗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탑골공원의 문이 열린다?

공원 인근에는 두 개의 무료급식소가 운영되고 있다. 북문의 ‘탑골공원 원각사 무료급식소’와 동문에 위치한 ‘사회복지원각’이다. 1997년부터 보리 스님이 운영하던 무료급식소가 두 개로 나뉘었다. 둘 다 개인이나 기업의 후원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봉사로 운영된다.

급식도 모두 11시 30분부터 시작된다. 둘 다 비슷하게 하루 300인분 이상의 배식을 하니 탑골 부근에서 이루어지는 무료급식은 매일 600인분 이상이다.

‘사회복지원각’의 문을 열고 들어가 총무님을 만났다. 취재를 안 하는게 돕는 거라는 말에 의아했다.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누군가 민원을 넣으면 폐쇄로 이어질 수 있기에 조심한다. “언론에 주목받지 않고 조용히 어려운 이웃들에게 밥을 드리고 싶다. 배고픔과 외로움을 달랠 수 있게 많은 분들이 이해를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한다.

참 눈물이 난다.

좋은 일인데,

더 알려야 하는데 알릴 수 없는 이 아이러니는 뭔가.

배고픈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에 종교를 떠나 깊은 울림이 오고 진심이 느껴진다.

탑골공원의 문이 열렸다.

어떻게 된 일인가?

작년에 공원 밖으로 배식 때마다 수백명이 모여들어 코로나 위험이 커지자, 종로구청의 배려로 공원을 급식대기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급식을 받기 위해 열을 체크하고 공원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줄을 맞추어 정열해 놓은 의자에 앉아 기다리다가, 문 출구에서 배식을 시작하면 가서 도시락을 받고 문을 나가면 된다.

(탑골공원안 어느새 대기자로 가득찼다. 사진=사회복지원각 제공) 

공원이 참 유용하게 급식 대기소로 사용되고 있음에 웃음이 나온다.

(봉사자들이 식사를 전달하고 있다.사진=사회복지원각 제공)

정문으로

탑골공원 정문 오른쪽에 붙박이처럼 책상에 현수막과 안내문을 걸어놓고 “대마도 반환만세. 만주간도 반환만세”라고 띠를 두른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있는 박세환(67)님을 만났다.

혼자서 무언가 중얼중얼하고 있었다. 자신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누가 와서 현수막과 서명지 등을 다 찢어놓아 엉망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가 뭐하는 곳이냐’ 물었더니 대뜸 ‘서명을 할거냐’고 물으셨다. ‘알아야 서명을 하지요’ ‘우선 서명부터 해야 설명을 해 주겠다’고 한다.

7년째 대마도, 연해주.만주 간도 반환 서명운동 벌이고 있는 박세환님.촬영=전부길 기자

여기서 대마도, 연해주.만주 간도 반환 서명운동을 한단다.

“대마도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조선시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비롯해 많은 지도에 우리 영토로 표시돼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도 수 차례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일본 정부에 대마도 반환을 촉구했다. 대마도 분쟁이 동북아평화를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한 유엔군 맥아더 사령관의 제지로 중단됐을 뿐이다”

그래서 7년 전부터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국회와 교육부에 몇 번이나 청원서를 넣었다고 한다. 참 대단한 열정이시다.

다시 삼일대로를 따라 끼고 북문 낙원상가 쪽으로 향했다.

상가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옆 비좁은 골목길에 국밥집들이 줄지어 있다. 하나같이 가격은 5천원이다.

(낙원상가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으로 줄지어 있는 국밥집들. 촬영=전부길 기자)

나주 국밥을 운영하는 이모(57)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한다.

 “이곳은 어르신들에게는 고향 같은 곳이다. 나도 나이 들면 찾아올 것이다”

락희거리

북문에서 신영 청과와 고향축산 사이에 조그마한 골목이 있다.

(락희거리 입구.촬영=전부길 기자)

작년에 서울시에서 ‘어르신친화거리’로 만들겠다면서 거리 이름을 ‘락희거리’라고 지었다. ‘락희’는 ‘럭키(lucky)’를 음차(音借)한 말로 한자로는 ‘樂喜’라고 쓴다. LG그룹의 모태가 된 락희상회는 1950년대에 락희치약을 내놓아 히트를 쳤다. 그만큼 ‘락희’라는 말은 어르신들에게는 추억을 상기시키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어르신들은 '락희거리'라는 이름을 잘 모른다.

락희거리를 지나 5호선 전철의 5번 출구 쪽으로 나갔다.

저녁이 다가오는 돈화문로 양쪽은 포장마차에서 펼쳐놓은 야외 탁자와 형형색색의 의자들이 장관을 이루었다.

(길 가를 가득매운 포장마차의 탁자와 의자. 촬영=전부길 기자)

익선동으로 이어지는 골목에는 음식점과 카페들이 준비를 마치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탑골 주변은 낮에는 어르신들로 넘쳐 나지만 밤에는 적막해진다. 반면 이곳은 낮에는 조용하다가 땅거미가 지면 흥청대기 시작한다.

탑골공원에서 종묘광장공원으로 이어지는 뒷골목은 대로 쪽으로는 귀금속 상점이 줄달아 있고, 골목 안으로는 식당, 카페, 여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어르신들은 탑골공원이 ‘변하지 않는 공간'이라 좋다고 한다.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탑골공원만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다.
어쩌면 어르신들이 잡고자 하는 것은 과거인지 모른다.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을 잡고 싶은 욕심인지도 모른다.

탑골은 오늘도 어르신들을 부른다.

디지털 세상이 줄 수 없는 인정을 주는 곳이다.
제도를 만들었다고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큰소리치는 사람들 속에서
함께 아파하고 귀기울여 주는 이웃들이 있다.
말하지 않아도 국수 한 가닥이라도 더 주려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
내 주머니의 100원이라도 아껴주려는 세심함이 있다.
값싸게 받아서 감사하고 찾아주는 발걸음에 고마워하는 가슴이 있다.

나는 오늘도 눈을 뜨면 탑골로 나갈 생각에 마음이 분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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