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63] 천년 붓다왕국 미얀마16_양곤의 봄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8.05 09:26
  • 수정 2021.08.10 10: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곤의 봄 

누구에게는 복(福)이 되고,

누구에게는 죄(罪)가 되는 것일까?

그 경계가 모호해진다

(태산에 오직 황제만이 올릴 수 있는 봉선(封禪),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맨 처음 올린 장소인 타이안(泰安) 시의 대묘(垈廟). 촬영=윤재훈)
(태산에 오직 황제만이 올릴 수 있는 봉선(封禪),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맨 처음 올린 장소인 타이안(泰安)시의 대묘(垈廟).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약 3개월간 중국 대륙의 동남서부를 여행하고, 오랫동안 염원하던 테라와다 불교의 고향 미얀마로 날아간다. 특히나 태산과 그 기슭에 있던 공자의 고향 취푸(曲阜)에서의 ‘공묘, 공부, 공림’에서 보았던 거대한 유교의 강.

중국의 4대 명소라는 황산 종주, 구이린(계림)의 강물, 수많은 기묘한 봉우리들, 장자제의 산하가 기억에 남고, 세계문화유산의 정원 도시 쑤저우(소주), 고도 난징과 항저우, 거대한 계단식 논의 물결, 용척제전.

푸젠성 토루(福建土楼)와 윈난성의 다리 시와 리장, 호도협 종주, 옥룡설산과 메리설산, 쿤밍의 석림(石林)과 토림, 천 년 고도 시안과 뤄양이 다시 그립다.

위그루의 나라, 란저우에서 시작된 서쪽 황토 사막을 따라 작은 티벳 샤허와 칠채산, 혜초스님의 둔황, 만리장성의 끝 자위관, 낙타의 고향 투루판, 거대한 중국 대륙의 서북쪽 끝, 갈 수 없을 것 같았던 우루무치의 낯설음.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거대한 실크로드 대장정 길.

쿤밍에서 치앙마이를 경유해 3시간쯤 기다리다가, 방콕에서 2박 후에 양곤으로 떠나는 항공권을 예약했다. 가격도 저렴하고 일 년 이상 머물렀던 치앙마이 생각도 간절했다. 배낭여행자는 항상 경비와의 씨름이니, 굳이 직항을 끊을 이유도 없었다.

쿤밍에서 가는 대형비행기는 짐을 30kg까지 실을 수 있지만, 방콕에서 바꾸어 타는 에어아시아는 소형비행기라 20kg로 제한된다. 29kg가 나와 공항 바닥에서 줄이느라 혼났다. 기내에 가지고 들어가는 것은 문제 삼지 않으니 가능한 들고 들어가야 한다.

안에는 몇 달 동안 가지고 다니던 캔소주가 세 개 남아 있었다. 버리려고 하니 참 아깝다, 아껴 먹었는데. 할 수 없이 반 정도 마시고 버렸다. 취기가 돌고 딱, 기분이 좋다. 짐을 검사하는 사내가 트렁크를 들어주니 더욱 고맙다. 가자 미얀마로.

(아른 거리는 열기 속으로, 어디를 가시나. 촬영=윤재훈 기자)

방콕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가 카오산을 중심으로 몇 군데가 있다. 여행사도 한 군데 있다. 그렇다고 특별히 반가워하지도 않으니, 일부러 찾아갈 것까지는 없다. 1차 세계여행 때 나는 그곳에 짐을 맡기고 오랜 시간 후에 오니 트렁크에 가득 찼던 짐들이 모두 벌레가 먹어 통째로 버린 기억이 난다.

이번에는 배낭여행자들의 성지 ‘카오산 로드’에서 가까운 한국인 게스트에 여장을 풀었다. 한국 젊은이들이 많이 묵고 있었다. 오랜 여행 속에 한국인을 만나면 기쁘지만, 잠시 해외여행을 나온 사람들은 오히려 만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한다.

밤마다 게스트에는 한국인들끼리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주인은 별로 친절하지 않았으며, 양말 외에는 빨래도 못하게 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게스트를 들었어도, 빨래를 못하게 하는 곳은 처음이다. 침구들은 괜찮아 보이는데, 밤새 간지럽고 아침에 일어나니 손도 붉혀 있다. 두 명의 직원이 앉아 있는데,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눈치다.

(돌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하지만, 이 지점은 어디쯤이나 될까? 촬영=윤재훈)
(돌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하지만, 이 지점은 어디쯤이나 될까? 촬영=윤재훈 기자)

양곤공항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학교 대신 전부 노동으로 몰려있는 듯하다. 우리의 5, 60년대 거리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인도에서 느꼈던 감회가 몰려온다. 오랜 여행에서 온 피로감인지 공항을 나서는데, 다가오는 사람들이 전부 사기꾼으로 보인다, 어쩌나 이 느낌을, 앞으로 상당 시간 머물러야 할 텐데. 옆으로는 하루 장사를 끝내고 돌아가는 손수레들만 힘겹게 지나간다.

3월 17일, 지금 고국은 온갖 꽃들이 피어날 텐데, 이곳은 참으로 무덥다. 사철 무더운 나라이니 어쩌랴마는. 미얀마인들이 일 년을 손꼽아 기다려온 띤잔(더굴라, 물축제) 축제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어서 6개월여 우기가 시작될 것이다.

(슐레 파고다. 촬영=윤재훈)
(슐레 파고다. 촬영=윤재훈 기자)

로타리 가운데 있는 <술레 파고다Sule pagoda> 앞에 숙소를 잡았다. 양곤의 중심부로, 미얀마 정치, 사회의 1번지이다. 전설에 의하면 쉐다곤 파고다보다 2,50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현재 세워진 쉐다곤의 장소도 고대 정령 나트 신앙의 신(영혼)에게 계시를 받아 세워졌다고 한다. 또한 1988년의 8888 항쟁이나, 2007년 미얀마 반정부 시위의 거점이기도 했다.

동그란 로타리 안에 황금색 째디가 솟아 있는데 빙 둘러 문들이 있어, 참으로 특이하다. 오직 횡단보도를 통해서만 불심 깊은 미얀마인들이 끊임없이 들어간다. 마치 요단강의 다리라도 건너는 것 같다. 양곤에서 쉐다곤 파고다 다음으로 미얀마인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게스트 하우스가 3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다. 무더위 속 낑낑대며, 배낭과 트렁크를 들고 올라갔다. 그런데 숙소가 마땅찮다. 다시 내려가려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다행히 근처에 다른 숙소가 있다. 2층인데 1인실이었으며 가격도 저렴했다. 방 안에는 침대 1개와 다행히 에어컨이 있었으며 창문은 하나도 없다. 샤워실은 화장실과 겸용이었지만 넓어서 쓸 만하다.

시커먼 주인 사내는 친절하지 않았으며, 10대 아이들 두 명이 일하고 있었다. 밤이 되면 세 사람은 1층 조그만 응접실에서 자니, 늦게 들어오면 그들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그랬어요, 부처님도 용서하실까? 촬영=윤재훈)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그랬어요, 부처님도 용서하실까? 촬영=윤재훈 기자)

입구에는 손바닥만한 공원이 있었으며 거리에는 노점이 널려있고, 사람들은 이따금 그 공원에서 쉬었다 갔다. 수많은 새를 잡아 새장 속에 넣어둔 늙은 여자는, 새들을 사서 방생하라고 부추긴다. 그 업 때문인지 다리를 전다.

가족이 와서 새 두 마리를 사고 아이에게 복을 쌓으라며 날리게 한다. 주인은 제법 돈이 든 비닐봉지를 아무 곳에나 놓아두었다. 저 새를 잡아 온 사람은 누구일까? 전문적으로 새만 잡아 파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누구에게는 복(福)이 되고,

누구에게는 죄(罪)가 되는 것일까?

그 경계가 모호해진다

(젖은 잘 나오지 않고, 아이에게 뭐라도 주고 싶은 것일까. 촬영=윤재훈)
(젖은 잘 나오지 않고, 아이에게 뭐라도 주고 싶은 것일까. 촬영=윤재훈 기자)

육교 아래 그늘에서 박스 한 장을 펴놓고 누워있는 여자, 손님이 다가가자 부시시 일어나 새를 판다. 홀쪽한 젖가슴에 걸린 옷들은 언제 빨았는지 지저분하다. 사람들이 수시로 와 비둘기 먹이를 사서 뿌리고 간다. 어디까지 복이 되는 것일까? 잠시 그 경계가 모호해질 때가 있다.

그러고 보니 대부분의 노점 아줌마들이 새를 판다. 나무 위에는 비둘기들이 가득하여 수시로 똥 세례를 퍼붓고, 누군가 먹이를 주면 떼로 모여든다. 평화의 상징이라는 말도 옛말이고 도시 곳곳이 몸살을 앓는다. 슐레곤 파고다도 그 똥 때문에 부식이 빨라질 것이다. 숙소에서는 밤새 비둘기들이 구, 구, 대는 소리를 들었다.

(산소통까지 약탈해 가는 군인들. 촬영=윤재훈)
(산소통까지 약탈해 가는 군인들.)

더위에 시계 가죽 줄이 축 쳐져 있어 노점에서 교환하다가, 아카족 청년을 만났다. 이 땅에 사는 소수민족들은, 오랜 시간 군부로부터 많은 탄압과 학살을 당하고 있다. 그래서 인근 타일랜드 국경을 넘어 많은 사람이 오지 산속에서 숨어 살고 있다.

여성들은 뙈약볕 아래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대부분 타나카를 바르고, 노점에서 파는 700원짜리 국수의 닭국물은 진해 먹을 만하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수치 여사의 아버지, 버마의 영웅이었던 아웅산 장군의 이름을 딴 ‘보족 아웅산 시장’이 나온다. 미얀마의 옛 이름 ‘버마’ 시기에는 우리에게도 아픈 역사가 있다. 광주 학살의 원흉으로 전 대통령 지위까지 박탈당한 전두환 씨가 국가의 중요 요직의 장관들을 데리고 가, 혼자만 살고 모두 폭탄 테러를 당한 불운의 장소다.

그런데 지금 그 땅은 광주 항쟁과 똑같은,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고 있으며, 7개월이 되어 가지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군부는 오히려 더 심하게 국민을 살상하고, 세계는 눈과 귀가 막혀버렸다.

(보족 아웅산 시장. 촬영=윤재훈)
(보족 아웅산 시장. 촬영=윤재훈 기자)

보족 아웅산 시장은 재래시장이 아니고, 그냥 현대적 시장이다. 성냥곽처럼 양쪽으로 쭉 점포들이 들어서, 특별함이 없는 듯하다. 오늘 장사가 시원찮은지 15세 소년이 호객을 한다. 가난한 나라일수록 아이들의 학교는 뒷전이며 아예 생활전선으로 내몰린다. 군인들이 정권을 잡으면 나라가 가난해지고, 국민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오후가 되면 게스트 하우스 옆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간다. 어디를 가나 식당에서는 담배 연기를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비흡연자들은 더욱 괴롭다.

고국은 꽃샘추위가 몰려온다는데, 이곳은 한낮 기온이 40도를 육박하는 무더위이다. 그래도 에어컨을 틀어놓은 식당 안은 시원하며, 생맥주를 한 잔 시켜 놓고 앉아 있으면, 여기가 천국이다.

“번뇌 즉 보리煩惱卽菩㰚이고,

생사 즉 열반生死卽涅槃이다.”

낮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어려운 나라일수록 더욱 그럴까? 우리처럼 생맥주에 싸구려 양주를 타서 폭탄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밍가라 극장. 촬영=윤재훈)
(밍가라 극장. 촬영=윤재훈 기자)

새벽 6시 30분인데, 벌써 수은주가 27도까지 올라간다. 오늘 하루는 얼마나 더우려나. 10시가 넘어가니 거리는 벌써 뜨겁게 달구워져 있다. 새까만 피부에 이미 적응이 된 현지인들은, 그나마 더위에 더 익숙할 듯하다.

극장이 두 군데가 보이는데, 한쪽은 밍가라 극장이다. 약간의 언어만 알 수 있다면 그들이 삶이 물씬 녹아나 있는 미얀마 영화를 한 편 보고 싶어진다.

간간이 길거리에는 포장을 둘러쓴 노상(路上) 다방이 나타나고, 짜이 한 잔에 300킵을 받는다. 물이 귀한 나라이니 변변한 수도 시설도 없어 컵도 대충 씻는다. 그 옆으로는 우리의 선술집 같은 곳도 있으며, 사람들은 낮은 의자에 앉아 하루의 피로를 푼다.

가난한 살림살이다 보니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면서 먹는 사람들도 있다. 이 폭염에 음식이 상하기 쉽겠다. 7, 80년 우리네 삶도 그랬다. 노란 양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학교에 가려면 가방에 세워야 했고, 그러면 김치국물이 흘러 밥에서는 언제나 시큼한 냄새가 나기 일쑤였다. 그래도 너무 배가 고프니 먹어야 했다. 도시락을 들고 다니면서 친구들의 반찬을 뺏어 먹고, 몇 명의 아이들의 반찬을 얻어와 도시락을 막 흔들어 버리면 맛있는 비빕밥도 되어 나왔다. 아직도 친구들의 추억이 잔뜩 어린, 그때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엄마, 물병 안이 깨끗하지요. 촬영=윤재훈 기자)

"엄마, 물병 안이 깨끗하지요

 그래, 우리 아들 마음처럼 깨끗하네."

 

다정하게 페트병을 줍는 엄마와 아들, 그래도 아들은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삶의 시간에 어려운 일이 닥쳐오더라도, 이때의 기억으로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이의 표정이 행복해 보인다.

역에서 물을 팔면서 사는 10대 초반 아이들, 그들에게도 학교는 사치인 모양이다. 부모는 뭐 하는 사람인지, 아이들은 참 잘 생겼다. 서양인이 페트병 물값을 물어보자. 3,000k이라 부르더니 서로 흥정을 하고, 800k에 산다. 식당에서는 400k에 사 먹을 수 있다.

장사꾼들이 많으니 비닐과 플라스틱 등을 비롯한 쓰레기 양이 엄청나고, 한낮 더위에 바람에 실려 온 그 냄새가 역겹다. 작은 귤 한 봉지에 우리 돈으로 500원 정도 한다.

15, 6세나 되었을까. 돌아앉아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데, 인도에서 많이 본 풍경이다. 동남아 오지 산속에 가면, 수많은 소수 민족 소녀들이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어린 소년들이 콘돔을 많이 가지고 다닌다.

이어 빈민가가 나타난다. 인도의 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풍경, 뉴델리 역 근처의 골목에서 보았던 빈민가 그물망 넘어, 사내의 섬찟했던 눈빛이 아직 기억에 남아있다. 10대 소년이 어른들처럼 귀에 이쑤시개를 꽂아두더니 다시 쓴다. 허름한 그의 차림새에 비해, 같이 다니는 소녀는 깨끗한 옷차림에 예쁘다.

(다꼬를 하는 청년들. 촬영=윤재훈)
(다꼬를 하는 청년들. 촬영=윤재훈 기자)

한낮 뙈약볕 아래 청년들이 ‘다꼬’를 하고 있다. 또 빈민가가 나온다. 없는 사람은 한없이 없고, 있는 사람들은 넘치게 있는 나라. 군부가 정권을 잡고, 돈이 되는 기업은 모두 그들이 가지고 있으며, 자기들만 부대 내에서 잘 먹고 편하게 사는 나라. 그들의 풍기는 악취처럼 쓰레기 냄새는 도시에 가득하고, 도시 빈민들만 넘쳐난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세상이 원망스럽지나 않을까? 대부분 붓다를 믿고 있으니, 이 세상은 고행의 땅이고 내세(來世)의 정토를 생각하고 있을까? 그러나 도적들이 들끓고 있는 세상에서 국민은 내세보다는 우선 배가 고프겠다. 이곳에 오니 미얀마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우리가 정치에 무관심할 때,

 우리보다 못한 자들의 지배를 받게된다."

- 플라톤

도시하천도 심하게 오염되어 있고, 연착이라도 되는지 양곤역을 앞두고, 기차는 떠날 줄을 모른다. 여기저기 자리를 깔고 사람들이 앉거나 누워 있으며, 2010년대 초반까지 중국처럼 걸인들도 많다.

“이놈아 내가 너를 구걸해서 키워놓았는데,

나에게 이럴 수가 있냐?”

누군가 환청처럼 신세 한탄을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