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건희의 산책길㉕] 모두의 공예, 모두의 박물관 ‘서울공예박물관’

천건희 기자
  • 입력 2021.08.09 12:26
  • 수정 2021.08.09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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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풍문여고가 담 없는 개방형·참여형 박물관으로 탈바꿈
개관기념 기획전 [공예, 시간과 경계를 넘다] 10월 24일까지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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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천건희 기자] 종로구 안국동 옛 풍문여고를 리모델링한 ‘서울공예박물관’이 개관했다. 한국 공예의 역사와 최고의 공예품을 감상할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 공예 박물관이다. 코로나로 인해 개관식은 연기됐고, 지금은 사전관람 기간으로 인터넷 예약을 통해 운영 중이다. 이곳을 지난 8월 2일 다녀왔다.

풍문여고는 담장 옆 여고를 다닌 특별한 인연이 있는 학교라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다. 풍문여고의 운동장과 건물들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리모델링해서 반가웠다. 지금은 돌담과 정문이 없어져 공원처럼 열려있고, 운동장은 초록 잔디로 단장되었다. 풍문여고(지금은 풍문고등학교로 강남구 자곡로에 위치)는 안동별궁의 옛터로 1907년 조선왕조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이 순정효황후와 가례를 올린 장소이다. 풍문여고 학생들은 해마다 가례 재현을 하였는데, 강남구로 이사 가기 전 마지막해인, 2016년 9월에는 300여명의 풍문여고 재학·졸업생들이 한복을 입고 풍문여고에서 광화문 광장까지 ‘순종·순정효황후 가례 재현 및 퍼레이드’를 했다.

서울공예박물관에는 가장 오래된 국내 자수 유물로 추정되는 고려말 ‘사계분경도(보물 제 653호)’ 등 전통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분야의 공예품 2만 2천여 점이 소장되어 있다. 이 중 엄선된 작품들이 현재 총 8개의 상설전과 기획전을 통해 전시 중이다. 안내 데스크와 실내외 의자들도 현대 공예작가들의 작품들이라 멋스럽다.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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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전 <장인, 세상을 이롭게 하다>의 제목이 가슴에 와 닿았다. 장인들의 손에서 광석은 금속공예로, 흙은 토기를 거쳐 도자기로, 나무와 전복은 나전칠기로 새롭게 탄생했음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잣나무로 뼈대를 만드는 과정부터 흑칠하고 자개를 붙이고 문양을 표현하는 나전칠기 제작 공정의 20단계 등 공예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이 재현되어 있다. 무수히 많은 장인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수고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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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 꽃이 피다>와 <보자기, 일상을 감싸다> 전시는 감동이다. 한국자수박물관을 설립한 허동화(1926~2018), 박영숙 부부가 기증한 컬렉션 5000여 점 중 엄선한 작품을 2개 층에 선보이는 전시다. 허동화, 박영숙 부부는 우리 직물공예품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1960년대부터 자수품과 보자기를 비롯한 우리의 옛 복식과 침선도구 등을 수집하고 전시하여, 우리나라 자수와 보자기가 세계인이 공감하는 예술작품으로 인정받는데 큰 기여를 했다. 책가도 10첩 자수 병풍의 정교함, 골무나 보자기 등의 일상용품에도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자수를 새긴 품격이 감탄스럽다. 우리나라에만 있다는 조각보자기의 아름다운 색채구성이 시선을 붙잡았다. 유물 전시 실물 앞에는 문양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촉각 관람 전시물’이 놓여 있어 시각장애인들의 이해를 도왔고, 직접 자수를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과 나만의 조각보를 만드는 공간도 있었다.

 

“수집에는 사람을 순수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 힘이 사회나 국가, 더 거창하게는 인류에

공헌하고자 하는 큰마음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 허동화, <수집, 발품 팔고, 공들이고> 中에서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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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기념 기획전인 <공예, 시간과 경계를 넘다> 1부(도자, 목木, 유리) 전시는 높은 천장에 자연광이 들어오는 창들이 있는 넓은 전시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80명의 현대 공예가들의 세련된 도자, 나무, 유리 공예품들을 보여주는 전시로 ‘전통을 새롭게 보다’, ‘기능에서 조형으로 움직이다’, ‘일상에 의미를 더하다’, ‘기술과 재료에 도전하다’ 순으로 멋진 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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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예박물관의 커다란 원통형 건물은 어린이박물관이고, 아직 개방 전인 한옥건축물 공예별당에서는 ‘절기별 공예감상’, ‘공예가 음악을 품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계획되어 있다니 기대가 된다. 서울공예박물관은 만져볼 수 있는 전시물들이 마련되어 있고, 체험존이 있는 참여형 박물관이다. 입장료는 무료이고, 담이 없다. 언제나 누구라도 들어 올 수 있는 공간으로 개방되어 있다. 400년 넘은 은행나무 아래에서 작품 의자에 앉아 휴식하기 좋은 공예마당은 언제나 이용할 수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나라 공예의 가치와 장인들을 재조명할 수 있는 공예전문박물관이 개관되어 기쁘다.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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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예박물관 관람은 익숙하지만, 우리나라 공예의 아름다움과 가치에 대해 너무나 많이 모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전시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주어진 관람 시간 1시간 20분은 너무 부족하게 느껴졌다. ‘다시 또 와야지’ 하는 마음이 드는 서울공예박물관의 개관전 <공예, 시간과 경계를 넘다> 전시는 10월 24일까지 이어진다. 돌담을 따라 감고당길을 걸어 ‘책 속에 길이 있다’ 현판이 있는 정독도서관까지의 산책길은 관람의 기분 좋은 느낌을 배가시키는 또 하나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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