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건희의 산책길㉖] 성남훈 사진전 ‘부유하는 슬픔의 시’, 인사동 코트(KOTE)에서 보고 느끼고 나누다

천건희 기자
  • 입력 2021.08.17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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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문화공간 인사동 코트(KOTE) / 촬영=천건희 기자
복합문화공간 인사동 코트(KOTE) / 촬영=천건희 기자

[이모작뉴스 천건희 기자] 피맛골은 ‘조선시대 종로를 오가던 평민들이 고관들의 말을 피해 다니던 길(避馬)’이라는 유래담이 있는 골목길이다. 피맛골 끝자락, 3·1운동 학생 지도자들의 집회 장소였던 승동교회와 담을 마주하고 있는 곳에 복합문화공간 ‘인사동 코트(KOTE)’가 있다. 인사동 초입 큰 도로 바로 뒤, 500평의 넓은 땅에 100년 넘은 오동나무를 중심으로 넓은 정원을 만들고, 60년 넘은 낡은 건물 세 개를 연결하여 재생시켜 만든 멋진 문화공간이다. 코트는 꽃과 뜰의 합성어로 ‘경계의 뜰에 핀 오동나무꽃’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곳에서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기념 예술행사로 기획된, <The Road/KOTE 길 위의 꿈을 새기다> 퍼포먼스를 관람했다.

‘The Road’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성남훈의 ‘부유하는 슬픔의 시’ 주제로 전시된 작품을 춤과 음악으로 해석하는 입체적인 전시 관람이다. 성남훈 작가는 30여 년간 세계 분쟁지역과 무분별한 자원개발로 파괴된 지역을 사진 화폭에 담으며, 인권 회복과 환경 보존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성남훈 작가는 “누군가 다루어야 할 문제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뿐”이라며 겸손하게 이야기한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사진을 춤사위로 해석한 퍼포먼스는 2층 <내면의 서재>에서 시작해 3층 <갤러리>, 4층 <루프탑>으로 이동하며 펼쳐졌다. 철창을 사이에 두고 할머니가 손자에게 키스해주는 코소보 난민 사진은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제주 4·3사건의 역사적 아픔을 담아 핏물처럼 보이는 제주도 정방폭포 사진 앞에서 하얀색의 발레복 무용수는 죽은 이들의 넋을 위로하듯 슬프게 춤을 추었다. 난민들의 사진이 녹슨 철판 위에 전시된 전시실에서는 아코디언과 콘트라베이스가 저음의 연주로 사진의 의미를 묵직하게 전달했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사진들의 주제는 무겁고 슬프지만 미학적으로 힘 있게 가슴에 와 닿는다. 인도네시아의 멋진 코발트색 호수에서 수영을 즐기는 것 같은 사진의 진실은 가슴 아프다. 현대인의 필수품인 스마트폰을 만들 때 꼭 필요한 주석을 생산하는 인도네시아 방카섬은 주석 채굴로 급격한 환경파괴를 겪었다. 주석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아 방치된 채굴장 호수는 인체에 치명적인 오염물질로 인해 코발트색으로 변했다. 주민들은 코발트색 호수가 건강에 나쁘다는 것을 알지만, 돈이 되는 광물질 채취를 위해 물에 들어간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성남훈/촬영=천건희 기자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성남훈/촬영=천건희 기자

복합문화공간 ‘코트’에는 창작자들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유공간 <코트랩>이 있다. 칸막이 없는 열린 공간에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모여 있어, 신선하고 새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코트랩> 앞의 <내면의 서재>에는 책들을 소장할 수 있고, 넓은 책상 위에서 핸드 드립 커피를 마시며 책을 편하게 읽을 수도 있다. 코트 카페, 내면의 서재, 코트 라이브 등은 공유공간으로 누구나 빌려 쓸 수 있다고 한다. 4층 <루프탑>에 오르면 자연미 가득한 옥상 정원과 탁 트인 종로구 전경이 보인다. 서울의 과거와 현재의 공존, 그 자체다.

4층 루프탑에서 내려다본 오동나무와 야외정원 / 촬영=천건희 기자
4층 루프탑에서 내려다본 오동나무와 야외정원 / 촬영=천건희 기자

오동나무를 살리기 위해, 오동나무를 둘러쌓던 건물들을 철거하고 빈티지 복합문화공간 ‘코트’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감동이다.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면서 위로와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것이 공간의 중요한 가치이다. 코트를 만든 안주영 대표는 ‘공간을 통한 나눔, 공간의 공정무역’이 인생의 꿈이고, 소중한 공간을 지켜주신 분들과 함께, 쓰러져 가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문화독립 공간>으로 만들어 가고 싶다고 한다. 안 대표의 선한 의지가 계속 잘 이어지기를 바란다.

내면의 서재에 있는 인사동 코트의 안주영 대표/촬영=천건희 기자
내면의 서재에 있는 인사동 코트의 안주영 대표/촬영=천건희 기자

다큐멘터리 사진의 힘이 가슴 깊이 느껴지는 성남훈 사진전 <부유하는 슬픔의 시>는 8월 29일까지 인사동 코트(KOTE)에서 이어진다. 공간마다 북토크, 워크샵, 강연회, 전시회가 끊임없이 열리고 있어 다양한 경험과 유쾌한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코트의 다음 방문이 기대된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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