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반격] 일흔 넘어 청춘을 피우다!...춘하추동무용단

서성혁 기자
  • 입력 2021.08.18 13:30
  • 수정 2021.09.01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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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넘어 청춘을 피우다!]

춘하추동무용단

 

(화관무를 연습하는 춘하추동무용단. 촬영=서성혁 기자)
(화관무를 연습하는 춘하추동무용단. 촬영=서성혁 기자)

 

[이모작뉴스 서성혁 기자] 인천 연수구에는 한복을 입고 고아(高雅)하게 춤을 추는 열댓 명의 시니어들이 있다. 인천 지역 내 복지관에 있는 어르신들이라면 모두가 아는 한없이 예쁘고 아름다운 ‘춘하추동무용단’이다.
춘하추동무용단은 인천 지역 내의 시니어 무용단이다. 평균연령이 70세가 넘는 춘하추동무용단을 보러 인천 연수문화재단이 운영하는 507문화벙커에 방문했다. 문화벙커 안에서는 춘하추동무용 단원 넷이서 합을 맞춰 무용연습을 하고 있었다. 고요한 물결과도 같은 춤 선이 70세가 넘은 어르신에게서 나온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코로나 이전까지 무용단은 달에 2~3번 기본적으로 무대에 올랐다.
(춘하추동무용단의 부채춤 곡선이 참 아름답다. 촬영=서성혁 기자)
(춘하추동무용단의 부채춤 곡선이 참 아름답다. 촬영=서성혁 기자)

춘하추동무용단 조성미 단장은 “무용단이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했고, 현재 3년째 단 한명의 단원도 탈퇴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자가 무용단을 보러 방문한 그 날, 무용단원이 함께 땀을 흘리며 연습한 후 식사와 차도 함께 하는 걸 봤다. 서로의 근황과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들으니, 업무보다는 끈끈한 우정으로 빚어낸 친구처럼 보였다. 아쉽게도 현재 무용단은 코로나19로 인원을 나눠 연습하거나 각자 온라인으로 모인다고 한다.

이날 기자가 만난 무용단원은 모두 70세를 넘었다. 각자 다른 일을 하며 살아온 무용단원 모두가 똑같이 말했던 것은, “오로지 가정을 위해서 일생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60세 넘어서까지 일했던 그들은 ‘춘하추동무용단’에서 만나 노년의 벗이 됐다.

칠십여 년 동안 저마다의 인생을 꾸려온 시니어들의 평범하지만 특별한 삶의 이야기를 듣고 왔다.

노년을 새로 만드는 삶, 내 삶을 내가 직접 꾸미다!

무용단에 입단하기까지의 이야기

김순임(무용단원, 75세)

(김순임 씨. 사진=조성미 제공)
(김순임 씨. 사진=춘하추동무용단 제공)

60살이 되기 전까지는 전업주부이면서 직장인이었어요. 나이가 들며 퇴직하고 손주도 잠깐 키우니 제가 어느새 60대 중반이 됐더라고요.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어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을 찾다 보니, 무용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이전부터 하고 싶었던 걸 배우고, 마음 맞는 사람도 꽤 생기니 춘하추동무용단이 됐어요.

하덕순(무용단원, 71세)

(하덕순 씨. 사진=조성미 제공)
(하덕순 씨. 사진=춘하추동무용단 제공)

저도 전업주부였어요. 결혼 후 부산에서 살다가 30여년 전 남편 사업이 무너지는 바람에 인천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때 전업주부기만 했던 저는 난생처음 모 식품사 판매원으로 시작해 40대부터 20년 넘게 일했습니다. 자식들이 결혼 후 독립하며, 저는 옛날부터 취미였던 민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때 저는 단장님을 만나며 무용단에 입단하게 됐습니다.

조성미(춘하추동무용단장, 72세)

(춘하추동무용단장 조성미. 촬영=서성혁 기자)
(춘하추동무용단장 조성미. 촬영=서성혁 기자)

홀로 아이들을 키워내야 해서 30대 시절부터 60살이 넘어서까지 백화점에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60대가 돼 직장을 관두고, 손주를 2년 동안 키웠습니다. 저는 “그동안 못해본 취미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국악과 민요를 좋아해 장구를 치게 됐고, 무용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인천 연수구 선학복지관 선생님께서 제 실력을 보고는, “무용을 함께 해볼 생각이 없냐”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춤추던 친구들과 새로운 사람들을 모아 무용단을 창단했습니다.

무용하며 생겨난 추억을 말하다.

김순임: 중국에 갔던 게 기억에 남아요.
무용단은 한중문화교류사업단에서 선정돼 2019년, 중국에 갔었어요. 무용단원 모두가 중국에 문화교류를 위해 공연하러 간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2018년에 무용단이 생긴 이후로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상도 타고 그래서 선정된 것 같아요. 우리는 중국에 배를 타고 가고, 함께 이곳저곳 돌아다녔습니다. 외지에 나가서 그런지 우리 무용단은 정이 깊어져 더욱 돈독해진 것 같아요.

춘하추동무용단은 중국에 가서 우리나라의 전통무용, 부채춤과 화관무 등을 중국의 큰 무대에서 선보였습니다. 관객들은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치더라구요. 관객과 우리 무용단 모두 감격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마음이 매우 뿌듯하더라고요. 저는 평생 가정주부로 살아왔지만, 일흔이 넘어 큰 무대에 설 줄은 몰랐어요.

(2019 한중 평화의 춤 광장무 축제 축하공연. 사진=춘하추동무용단 제공)
(2019 한중 평화의 춤 광장무 축제 축하공연. 사진=춘하추동무용단 제공)

하덕순: 저보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께 딸 대우를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중국에 가 큰 무대에서 공연한 것, 상을 받는 것 등 다양한 기억이 있지만, 요양원에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공연에 가는 게 제 추억이에요. 무용단은 대회에 나가기 위해 연습하지만, 우리보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에게 한국 전통무용을 보여드리기 위한 이유도 있답니다.

요양병원에 자주 방문하다 보니 어르신들은 항상 우리 무용단이 오면 반겨주십니다. 한 할머니는 “너무 예쁘네, 우리 딸 같아”라고 하셨어요. 최근 제 어머니도 요양원으로 가시게 됐는데, 집에 계실 적에 제가 머리에 비녀를 꽂고 부채춤을 추니 무척 좋아하셨던 기억이 나서 눈물이 핑 돌더라구요.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에게 춤을 선보이기 전 마지막까지 연습하는 춘하추동무용단. 맨 앞은 조성미 단장이다. 사진=춘하추동무용단 제공)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에게 춤을 선보이기 전 마지막까지 연습하는 춘하추동무용단. 맨 앞은 조성미 단장이다. 사진=춘하추동무용단 제공)

조성미: 무더운 뙤약볕에서 연습한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웃음)
작년에 대회때문에 무용연습을 해야 하는데, 코로나19라 연습실을 대여하지 못했습니다. 대여할 곳을 찾다가 무용단은 인파를 피해 송도 미추홀공원에 가서 춤을 췄어요. 이 공원은 잔디가 무척 아름다웠거든요. 대회 전 영상을 제출해야 해서, 무용단은 무더운 여름에 두꺼운 한복을 입고 족두리와 부채를 찬 채 영상을 찍었습니다. 햇볕 아래서 춤을 추니 당의가 땀에 흠뻑 젖었더라구요. 이때 지나가던 사진작가는 우리가 춤추는 걸 보고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고 푸른 잔디 앞에서 춤추는 우리를 찍어줬어요. 

(지나가는 사진작가가 미추홀공원에서 춤을 연습 중인 춘하추동무용단을 보고는 꼭 찍어야겠다 마음먹었다고 한다. 사진=춘하추동무용단 제공)
(지나가는 사진작가가 미추홀공원에서 춤을 연습 중인 춘하추동무용단을 보고는 꼭 찍어야겠다 마음먹었다고 한다. 사진=춘하추동무용단 제공)

나에게 ‘춘하추동무용단’이란?

김순임: ‘힐링’입니다.
나이가 들어 집에 혼자만 있다 보니 우울해지고 더군다나 건강까지 안 좋아졌었어요. 근데 많은 사람을 만나 뭘 한다는 것 자체로 제게 ‘힐링’이더라구요. 나와 가족만 바라보고 경제적인 부분에만 치우쳐 살다 보니 접하지 못한 게 많았어요. 제가 봉사하러 갔다가 오히려 많은 에너지를 받고 삶의 활력을 얻게 되기도 한답니다. 이런 활력이 생기니 어떤 문제가 닥쳐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신랑하고도 싸움이 줄어든 것 같기도 해요.(웃음)

하덕순: 건강과 행복을 주는 무용단이에요.
무용단에 들어와 무용연습을 하니 운동이 절로 되더라구요. 몸도 건강해졌는지 병원을 가는 횟수도 줄어들었어요. 기존에 먹던 건강식품도 끊었어요. 그저 행복해요. 무용단 언니들, 요양원 어머니‧아버지들 그리고 우리를 바라봐주는 관객들과 마주할 땐 제가 살아 있는 느낌이 듭니다. (웃음)

조성미: ‘선도주자’이다.
무용단이 2018년에 생기자마자 많은 축제에서 입상했습니다. 2019년에는 중국으로 넘어가 한중문화교류를 하기도 했죠. 불과 생긴 지 2년 만에요. 이처럼 춘하추동무용단은 국내를 넘어서 세계로 나가고 있는 선도주자라고 생각해요.

저는 무용단이 앞으로도 세계로 뻗어 나갔으면 해요. 우리가 세계에 부채춤과 화관무 등 한국무용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거든요. 나이가 많지만 그건 상관없어요.

(무용단이 기자에게 건넨 야구르트다. 원래 자신들이 먹으려고 했지만, 멀리서 와줘서 고맙다며 건네줬다. 이런 정이 어머니와도 같았다. 촬영=서성혁 기자)
(무용단이 기자에게 건넨 야구르트다. 원래 자신들이 먹으려고 했지만, 멀리서 와줘서 고맙다며 건네줬다. 이런 정이 어머니와도 같았다. 촬영=서성혁 기자)

‘특별한 삶이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춘하추동무용단은 하나같이 지금 부채를 들고 춤추고 있는 자신들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대답했다. 어찌 보면 평범한 삶을 살았던 그들이 방방곡곡 누비며 상을 타고 외국까지 나갈 수 있던 것은 나이 상관없이 의지와 노력이 만들어낸 ‘노년반격’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용단원들에게 춘하추동무용단은 우연한 기회로 찾아왔지만, 각자가 최선을 다해 노력해 결실을 보고 있다. 평균연령이 일흔이 넘는, 그리고 꽃샘추위처럼 조금 늦게 인생2막이 시작된 춘하추동무용단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여전히 시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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