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투어] 마음의 빗장을 열어가는 휴먼 드라마... 영화 “아담” 시사회

전부길 기자
  • 입력 2021.08.20 17:31
  • 수정 2022.04.2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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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전임신으로 불룩한 배를 끌어안고 남의 대문앞에 누워 잠을 청하는 사미아
사고사한 남편과 아직도 작별하지 못한 아블라
죽은 남편이 좋아하던 노래 앞에 무너져 내린 감정의 막
뉴욕타임지의 평 ‘여성에게 보내는 편지’

(영화 아담 포스터. 사진=아트비전제공)

[이모작뉴스 전부길 기자] 최근 미군이 철수한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은 파죽지세로 수도인 카불까지 며칠만에 진격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장악한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법'에 따라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겠다고 선언했다. 샤리아법은 이슬람 성서인 쿠란과 무함마드의 언행록에서 비롯되어 모든 일상 생활을 관여하는 하나의 규범이다.

제도적으로 이슬람을 표방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의 국가는 비교적 엄격한 이슬람식 생활을 요구하는 샤리아법을 우선한다. 그러나 이슬람을 공식 종교로 하는 말레이시아, 쿠웨이트 등은 비교적 자유로운 국가에 속하는데 영화 <아담>이 만들어 지고 배경이 되는 모로코도 이슬람 국가이지만 비교적 자유로운 국가에 속한다. 그렇다고 서구가 생각하는 만큼의 여성 인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카사블랑카를 찾아온 여인  

주인공인 사미아(니스린 에라디 분)는 혼전 임신을 숨기기 위해 가족과 고향을 떠나 모르코 최대의 경제도시 카사블랑카에서 일자리를 구하러 이곳 저곳 문을 두드리지만 실패한다. 불룩나온 배로 당장 잠자리를 해결해야 하는 애처로운 모습이다.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사미아. 제공=아트비전)

남편없이 여덟 살짜리 딸 와르다(두아이 벨카우다 분)를 키우며, 모르코 전통 빵 무세멘을 만들어 파는 무표정한 여인 아블라(루브나 아자발 분) 역시 사미아에게 일자리를 줄 수 없다. 아블라의 명랑한 딸 와르다는 호감을 나타내지만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여지는 아블라, 잘 곳이 없어 길 건너 대문 앞에 누워서 밤을 보내려는 사미아를 훔쳐보고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결국 그녀를 집으로 불러 들인다.

(남의집 대문 앞에 앉아있는 사미아. 사진=아트비전 제공)

며칠만 재워주려고 들였지만 딸과도 잘 어울리고 빵 만드는 일도 돕고, 모로코 전통 국수 ‘르지자’도 만들어 팔아 장사도 잘 된다.

아블라는 주위의 시선이 무서워 친척이라고 속이지만, 출산일이 가까워지자 내보내기로 한다. 눈치 빠른 사미아가 슬며서 짐을 챙겨 집을 나선다. 사미아가 떠난 것을 알고 어린 와르다는 ‘엄마는 피도 눈물도 없다’고 힐난한다. 모녀는 다시금 사미아를 찾아 헤매다가 버스터미널에서 만나 다시 집으로 데려온다.

(무표정하게 빵을 굽는 아블라.사진=아트비전 제공)

어느 날 사미아는 집안을 정리 중에 좋아하는 노래를 발견하고 틀어본다.

아블라에게 가져가 들려 주는데 그녀는 화를 내면서 음악을 끄려고 한다. 사미아는 “그냥 들어요”라고 외치면서 아블라의 손을 막아선다. 음악은 흐르고 힘이 들어가 있던 아블라의 손은 점점 약해지고 음악에 맞추어 어깨가 들썩여진다. 결국 아블라는 남편이 좋아하던 그 음악 앞에 무너져 버린다. 아블라의 남편은 30분 안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잠깐 나갔다가 사고사를 당했다. “죽음은 여자의 일이 아니다”란 관습 때문에 죽은 남편의 시신과도 작별하지 못했다. “여자들인 우리 일이 있기냐 하냐?”라면서 사미아가 맞장구를 친다.

(와르다와 함께 춤을 추는 사미아. 사진=아트비전 제공) 

사미아는 진통 끝에 사내아이를 출산한다. 아들의 이름이 뭐냐고 산파가 묻자 “제가 안 지을 거예요”라고 냉정하게 답한다.

아이는 배고파 울지만 다음 날 입양 보내려고 젖을 주지 않는다. “아이가 저와 있으면 미래가 없어요”

그러나 계속되는 아이의 울음은 사미아의 닫혔던 마음을 열게 만든다. 울음을 삼키며 “자라거든 날아가라. 그때까지 엄마 품에 있으렴” 하면서 젖을 물린다. “너의 이름은 아담이야.” 사미아가 아들에게 말한다.

며칠 후 아블라 모녀가 잠든 사이 사미아는 아들 ‘아담’(Adam)과 함께 조용히 집을 나선다.

센티멘탈 휴먼 드라마

영화 <아담>은 각기 다른 이유로 상처를 떠안고 사는 두 여성이 허름한 동내 빵 가게에서 서로 자신을 닫아 걸었던 마음의 빗장을 열어가는 과정을 그린 센티멘탈 휴먼 드라마이다.

(함께 마음을 여는 두 여인.사진=아트비전 제공)

<아담>은 주요 해외 언론 매체로부터 “두 여자 주인공의 가슴 아프게 사무치는 연기”(The Hollywood Reporter), “인물을 완벽하게 그려낸 잘 만들어진 영화”(Variety), “여성에게 보내는 편지”(The New York Times) 등의 극찬을 받았다.

영화는 마리암 투자니 감독의 첫 장편영화로, 서로의 삶을 바꾼 세 여성의 아름다운 순간을 카사블랑카의 자연광으로 잘 포착했다.

2020년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의 국제경쟁부문에는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장편영화를 연출한 여덟 명의 신인감독 작품이 초청되었는데, <아담>도 그 중의 한 편이다.

특히, <아담>은 제72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이름을 올리며, 마리암 투자니는 독창적인 재능을 지닌 젊은 연출가로 각광받았다. 이와 함께, 세밀한 시선으로 ‘여성의 주체적인 선택’과 ‘연대의 힘’이라는 주제를 그려낸 칸영화제가 주목한 여성 감독의 계보에 합류했다.

모로코는 이슬람 국가이다

이슬람국가에서는 여성의 권리는 극히 제한되어 있고, 혼전임신은 불법으로 심지어 병원 혜택도 받을 수도 없다. 샤리아법을 앞세우는 나라는 돌로 쳐서 처형하는 일도 종종 벌어지고 가족으로부터의 명예살인도 일어난다.

다행히 영화의 배경이 되는 모로코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이슬람이 국교인 나라라는 사실이다.

영화는 어떻게 혼전임신을 했는지 묻지도 않고, 굳이 설명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미혼모의 회한이나 두려움이나 분노도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마치 주인공이 인생을 달관한 수도자처럼 보여진다.

동양적인 시각에서도 상당한 의문이 드는 혼전임신에 이토록 무관심할 수 있는가? 특히 이슬람의 나라에서 그런 일이 일반화 될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상식을 깨버리는 전개

투자니 감독은 영상에서 우리의 관념과 상식을 깨버린다. 익숙한 패턴인 조소와 냉대를 이겨내고 슬픔과 고통을 승화하여 가슴을 열고 모성애를 찾아가는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해 버린다. 오직 어떻게 마음이 열려가는지에만 관심을 갖는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슬람 문화권의 여인들이지만 국적과 문화의 한계를 뛰어넘어 서로의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은 별다를 것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르코의 전통 음식 ‘무세멘’, ‘르지자’를 만들어 가면서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힐링으로 나아가는 감동을 보여준다.

(밀가루에 다른 것이 섞여 있네.사진=아트비전 제공)

시종 앵글은 두 여인의 얼굴에 집중되어 있다. 빵과 국수를 만들기 위해 숙련된 손이 움직인다거나 맛있게 만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찾기 힘들다. 아프리카가 생소한 우리는 르지자가 어떤 모양인지 맛은 어떤지 느껴 보기를 원하지만 감독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한 편의 서정시가 흐르듯이

영화는 마치 한편의 서정시를 낭독하듯이 흐르지만, 영화로서 느끼기를 원하는 부분은 사정없이 잘라내 버려서 아름답기는 하지만 뭐가 아름다운지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 화면이다.

아블라를 연기한 루브나 아자발은 마치 영혼이 없는 마루타처럼 감정의 변화가 없는 얼굴 표정을 보여준다.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꽁꽁 걸어 잠궈 놓고 있음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극도의 절제된 연기를 보여 준다.

(극도로 무표정한 아블라.사진=아트비전 제공)

사미아 역의 니스린 에라디도 마찬가지이다. 불러온 배를 하고 남의 대문 앞에 누워 잠을 청하는 모습에서 일말의 두려움이나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영화를 보는 관객이 안타까워지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 그런가 보다 하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것이 오히려 독이 아닌가 생각된다.

(서로 마음을 열어가는 사미아와 아블라.사진=아트비전 제공)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엔딩 크렛딧이 내려지고 극장의 문을 나선 이후에 다시금 깊이 음미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이다.

특히 스크린을 가득 메운 카메라 앵글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영상미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오는 25일에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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