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반격] 백화점 직원에서 무용교사로 변신...시니어 예술인 ‘조성미’

서성혁 기자
  • 입력 2021.08.25 18:47
  • 수정 2021.08.2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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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직원에서 무용교사로 변신]

시니어 예술인 '조성미'

 

(현 무용단장이자 무용교사 '조성미'. 촬영=서성혁 기자)
(현 무용단장이자 무용교사 '조성미'. 촬영=서성혁 기자)
[이모작뉴스 서성혁 기자] “남편 없이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힘들었어요”

 

춘하추동무용단장 조성미(71세)는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살아와 취미를 가질 만한 여유가 없었다. 환갑이 지나서 퇴직하고, 결혼한 자식들을 위해 손주를 돌봤다. 손주가 어느 정도 커서야 그녀는 하고 싶었던 것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그녀의 나이는 60세 후반이었다.

하지만, 하고 싶었던 것을 했던 그녀는 끊임없이 연습했다. 또한, 백화점에서 일할 때 가진 친절함으로 열댓 명이 넘는 무용단원을 이끌었다. 무용 실력과 통솔력을 공식적으로 인증받아 그녀는 일흔이 넘어서야 예술인이 될 수 있었다.

백화점 직원에서 무용단장으로 그리고 시니어 예술인이 되기까지, 인생2막을 늦게 시작한 조성미를 만나고 왔다.

“처음에는 무용을 배우려고 했죠. 하고 싶었으니까요”

(부채춤을 무용단원들하고 연습 중인 조성미. 촬영=서성혁 기자)
(부채춤을 무용단원들하고 연습 중인 조성미. 촬영=서성혁 기자)

그녀는 예전부터 국악(민요)을 좋아했다. 그래서 우리소리에 맞춰 춤추는 ‘무용’을 퇴직하고 나서야 하기 시작했다. 방송에서 나오는 우리 가락으로 춤추고 공연하는 모습을 보던 그녀는 무용단 창단을 생각했다. 그래서 무용을 독학하기 시작했다.

첫째, 온라인 플랫폼을 배웠다. 방송은 정해진 시간에 하다 보니 아무래도 제약이 컸다. 그녀는 스마트폰으로 영상 보는 방법부터 배웠다. 그다음 전통무용으로 유명한 사람들을 유튜브에서 찾아 부채춤과 화관무 등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유튜브로 무용을 거의 독학했다고 한다.

둘째, 교회‧주민센터‧복지관에 무작정 발을 들였다. 돈이 들지 않고 무용학습이 가능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춤을 직접 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거주하는 인천시 연수구에는 올드비전 선학종합사회복지관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부담 없이 배울 수 있었다. 춤추는 게 처음이었던 그녀는, 집에서 연습하고 복지관에서 수업을 들으며 취미를 즐겼다.

“좋아하는 무용을 시작했는데, 직업이 될 줄은 몰랐어요”

(공연에 나가 독무대를 꾸리는 조성미. 사진=춘하추동무용단 제공)
(공연에 나가 독무대를 꾸리는 조성미. 사진=춘하추동무용단 제공)

한참 자신이 다니던 교회에서 무용을 연습하고 있었는데, 선학복지관 담당자가 찾아 왔다. 담당자는 천안 흥타령 축제 대회에 나가고 싶은데, 인원이 부족하니 도와달라고 말했다. 자신의 가능성을 보고 부탁한 게 보여 그녀는 흔쾌히 응했다. 대회에 나가기 위해 무용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대회에 나갈 사람들을 봤을 땐, 7~8명 정도였다. 그녀는 몇 명 더 채워 전통무용 대회에 ‘춘하추동무용단’으로 참가했다. 첫 출전인데도 본선까지 진출해, 이에 힘입어 무용단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녀 역시 7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무용단장’이라는 새 직업을 갖게 됐다.

“무용단을 알리기 위해, 어디든 참여하고 또 연습했습니다”

첫째, 부채 쥔 손으로 무대를 휘어잡다

(천안 흥타령 축제 당시 무용단은 창단 1년만에 재도전 끝에 금상을 거머쥐었다. 사진=춘하추동무용단 제공)
(천안 흥타령 축제 당시 무용단은 창단 1년만에 재도전 끝에 금상을 거머쥐었다. 사진=춘하추동무용단 제공)

무용단을 창단하고 외부활동을 하기 위해 무용단원들과 매주 2회는 기본으로 춤을 연습했다. 무용단이 연습하는 것을 본 연수문화원은 전통혼례식, 인문학졸업식, 축제 등 행사참여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2018년에 설립한 지 1년도 안 된 무용단은 인천시 카네이션 축제에 금상을 받았다. 또한, 이듬해 ‘천안 흥타령 축제’에 재도전한 무용단은 금상의 영광을 얻었다. 이외에도 한‧중‧러 국제예술제, 골드세대 두잇어워드, 경기국악제 등에 수상하며, 그녀와 무용단원들은 자신감을 얻었다. 당연히 무용 연습도 더욱 열심히 하게 됐다.

둘째, 해외로 뻗어나가다

(2019 한중 문화교류제 당시 무용단. 사진=춘하추동무용단 제공)
(2019 한중 문화교류제 당시 무용단. 사진=춘하추동무용단 제공)

2019년, 춘하추동무용단의 인원은 15명까지 늘어났다. 또한, 한중 문화교류사업단으로 선정돼, 무용단은 중국에 진출했다. 처음에는 무용단 외에 다른 동아리를 합쳐 풍물단으로 중국에 갔다. 광장무 축제의 축하공연으로 갔지만, 사업단 대표는 무용단의 부채춤을 보고는 다음 공연에서 춘하추동무용단 이름으로 참여하게 했다.

셋째, 어르신들 위한 70세의 어여쁜 딸들
무용단은 요양원에도 자주 방문했다. 70세가 넘은 무용단원들을 어르신들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예쁜 딸처럼 봐줬다. 현재는 요양원에 방문할 수 없어 단원들은 안타까워 하고 어르신들을 그리워한다. 부모님 앞에서 재롱떠는 것처럼 열심히 활동하던 무용단은 대안노인회 행복나눔봉사단의 회원이 됐다.

백화점 직원에서 무용단장으로 그리고 ‘시니어 예술인(무용교사)’이 되기까지...

대안노인회 행복나눔봉사단의 회원이 되고 동아리는 봉사단의 지원을 받으며 활동도 하게 됐다. 또한, 무용단은 연수구 소속 정식 동아리가 되며 요양원‧공연‧대회 등 더 많은 곳에 참여하게 됐다.

그녀는 올해 6월, 연수문화원의 보조교사로 일하게 됐다. 그녀는 교사하는 데 필요한 예술활동증명확인서를 취득했다. 무용단장으로서 수많은 곳에 춘하추동무용단을 알린 그녀는, 이제 '시니어 예술인'이 됐다.

현재의 춘하추동무용단

(춤 연습 도중 인터뷰. 촬영=서성혁 기자)
(춤 연습 도중 인터뷰. 그녀의 웃음이 참으로 곱다. 촬영=서성혁 기자)

현재 무용단은 코로나19로 인원을 나눠 연습하거나 각자 온라인으로 모인다, 따로 모이니 더욱 바빠진 그녀는 현재, 여전히 유튜브를 보며 춤을 터득하고, 연습실에서 계속해서 연습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실버세대지만, 부끄럽지 않은 무용단으로서 지역사회에서 봉사하고 공연도 다니고 싶다”며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전통무용을 세계로 알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직장에서 퇴직하기 전, 돈을 모아 여생을 놀며 지내고 싶다는 신중년이 있다. 그녀 또한, 그런 생각이었지만, 여생을 논다는 말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던 취미를 시작한 그녀는, 어느덧 그 취미가 직업이 됐다. 직업이 될 정도로 원하던 취미를 활기차게 한 것이다.

“나이는 하지 못한 것을 탄식한다”는 말이 있다. 그녀는 하지 못한 것을 나이가 들어 함으로써 그 말에 부정했다. 현재 신중년도 그렇다. 아직 하지 못한 것이 많을 테지만, 늦지 않았다. 아직 녹록지 않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하자.

(화관무를 위한 꽃이 가방 안에 들어 있다. 시니어의 노년반격은 달콤하고 아름답다. 촬영=서성혁 기자)
(화관무를 위한 꽃이 가방 안에 들어 있다. 시니어의 노년반격은 달콤하고 아름답다. 촬영=서성혁 기자)

마지막으로 살아옴에 따라, 한이 모여 나를 무용교사 자리까지 오게 했다고 얘기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겠다.

한창 복지관에서 전통춤을 배울 때 한 선생님께서 말하시더라구요. “속에 무슨 한이 있길래, 그런 춤사위가 나오냐”라고요. 저는 전통국악과 무용에는 우리의 고유 정서인 ‘한(恨)’이 있다고 생각해요.

남편 없이 한평생 자식들을 키우고 사니 환갑이 넘어 있더라구요. 넉넉하게 살았다면, 제 한이 춤 속에 녹아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진심 어린 춤사위가 저를 시니어 예술인으로 만들어 준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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