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66] 조지아의 모든 음식은 한 편의 시와 같다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8.26 10:56
  • 수정 2021.08.2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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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의 모든 음식은 한 편의 시와 같다

행복한 사람이 맛있는 ’하차푸리‘를 만든다.
슬프거나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절대 빵 반죽을 만지지 말아야 하며,
그럴 사람은 맛있는 하차푸리를 만들 수 없다.

(빵을 굽은 제빵사. 촬영=윤재훈)
('라바쉬' 빵을 굽은 제빵사. 촬영=윤재훈)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조지아는 와인 못지않게 음식으로도 유명하다. ’천국의 식탁이 궁금하다면 조지아로 가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러시아의 시인 푸시킨도 “조지아의 모든 음식은 한 편의 시와 같다”라고 노래했으며, 조지아 고리 출신으로 악명이 높았던 스탈린도, 조국의 음식을 무척 사랑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조지안 인들은 잔칫상을 차릴 때 식탁 바닥이 보이지 않게 차려야 한다는 원칙이 있으며, 재료 본연의 맛으로만 그 승부를 낸다고 한다. 그만큼 음식에 자신이 있는 모양이다. 전설에 의하면 신이 세상을 만들 때, 저녁을 먹다가 코카서스 높은 산봉우리에 넘어져, 그만 그 음식을 쏟았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 먹는 사람들은 조지아의 음식이 짜고(“마릴리salt 아라no”), 고수풀(낀지 아라) 등의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주문 전에 분명히 의사 표현을 해야 후회하지 않는다.

(소박한 빵집. 촬영=윤재훈)
('토니스 푸리' 소박한 빵집. 촬영=윤재훈)

조지아 식탁에는 항상, ’빵, 치즈, 와인‘이 있다. 빵 중에 가장 맛있는 빵은 ’갓 구운 빵‘일 것이다. 저물 무렵 어느 이름 모를 골목을 지나다 그들의 전통 화덕인 ’토네(tone)‘에서 굽는 커다란 라바쉬(납작한 빵) 냄새를 맡으면, 빵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그 향기에 저절로 발길이 멈춰진다. 라바쉬가 익는 데는 20여 분 걸리며, 화덕에 소금을 뿌려야만 떼어낼 수 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면 탐스럽게 빵 바구니가 놓여있고, 저절로 손이 간다.

토네는 탄도르(tandoor)와 유사한 조지아식 화덕으로, 이런 형태들은 중앙아시아를 비롯하여 인도, 중동 등지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커다란 황토빛 항아리 안에는 내화벽돌이 켜켜이 쌓여 있으며, 전통적인 방법인 땔감을 사용하여 한 시간 이상 화덕을 지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건물 내부에 그을음이 생겨, 요즘 도시의 빵집들은 간편하게 가스 불이나 전기선이 설치된 토네를 주로 사용한다. 달궈진 토네는 쇠뚜껑을 덮어 열기를 지속시킨다. 이 벽돌은 7~8년을 주기로 교체한다고 한다.

빵집에서 굽은 빵들을 통틀어 ’토니스 푸리(tonis puri)‘라고 하는데, 푸리는 조지아어로 빵이다. 이 중 모양새가 유달리 특이한 쇼티스 푸리(shotis puri)와, 달콤한 빵 나주키(nazuki)는 토네에서 굽은 주메뉴다.

쇼티쇼 푸리는 쇼티라 줄여 부르기도 하는데, 카누처럼 길쭉하고 양 끝이 삐죽하다. 제빵사들은 밀대를 일절 쓰지 않고 손으로만 빵을 만드는데, 제빵사마다 약간씩 그 모양이 달라진다고 한다.

(붐비는 빵집. 촬영=윤재훈)
(붐비는 빵집. 촬영=윤재훈)

우리와 달리 빵을 먹는 조지아 인들에게는,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주식인데, 그중에서도 ’하차푸리(khachapuri)‘는 특히 좋아하는 빵 중에 하나이다. 지방에 따라 그 맛과 모양도 다른데, 그 유래에 대한 기록은 보기가 힘들다. 조지아 인들에게는 이런 생각이 전해져 내려온다.

행복한 사람이 맛있는 ’하차푸리‘를 만든다.
슬프거나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절대 빵 반죽을 만지지 말아야 하며,
그럴 사람은 맛있는 하차푸리를 만들 수 없다.

(조지아의 스니커즈로 불리는 국민 간식, 추르츠헬라. 촬영=윤재훈)

만두와 닮은 ’힌칼리(khinkali)‘도 많이 먹는데, 이 음식은 조지아 산악지대에서 유래되어 퍼졌다. 원조 레시피로 알려진 헤브수룰리(khevsuruli) 힌칼리는 다진 양고기나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섞고, 양파, 커민(cumin), 고추가리, 소금 등 양념을 넣는다.

산간에서는 양고기를 넣어 예찬하는 귀한 음식이지만 일반적으로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많이 사용한다. 지역에 따라 이메룰리 치즈, 양송이 버섯, 으깬 감자, 파슬리 등 특색있는 힌칼리들도 맛볼 수도 있다.

주름이 굵게 패인 힌칼리를 먹을 때는 반드시 꼭지를 잡고 먹는다. 꼭지는 손잡이 역할을 하지만, 두툼해 잘 익지 않기 때문에 먹지 않는다. 그래서 다 먹고 난 후 내가 먹은 양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중국이나 중앙아시아 등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돼지고기나 양고기 등을 끼워 넣은, 므츠바디(მწვადი, 샤슬릭)도 많이 먹는다.

또한 조지아의 스니커즈로 불리는 국민 간식, ’추르츠헬라(churchkhela)‘로 흔하다. 가게 앞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으며, 얼핏 보면 소시지를 닮았다. 호두를 실에 꿰어 농축시킨 포도쥬스와 전분에 돌돌 말아 말린 저장 음식이다. 색깔이나 울퉁불퉁한 모습이 독특하며, 쫄깃한 맛에 씹을수록 포도의 향과 호두의 고소한 맛이 잘 어울린다. 포도와 호두가 흔한 조지아의 환경이 잘 반영된 먹거리이다.

(마당에도 흔한 포도, 익으면 누구나 따먹는다.)
(마당에도 흔한 포도, 익으면 누구나 따먹는다. 촬영=윤재훈)

“신이 아제르바이잔에 ‘석유’를 선물하고

조지아에는 ‘물’을 선물 했다.”

조지아는 와인 이외에도 ’깨끗한 물‘로 유명하다. 그 대표적인 물이 바로 유럽에서 가장 큰 <보르조미 국립공원>에서 나오는 ’보르조미‘이다. 천연 광천수로 철분이 많은 탄산수라 유럽인들이 열광하며, 가장 비싼 물의 한 종류로 팔려 나간다. 공원에서는 큰 병 한 개에 5라리를 주고 준비된 플라스틱 물병에 받아가면 된다.

(돌배 따는 남자, 다운타운 호스텔 앞에서
(돌배 따는 남자, 다운타운 호스텔 앞에서. 촬영=윤재훈)

며칠 동안 머물던 트빌리시 호스텔에서 다운타운 호스텔로 옮겼다. 허름한 호스텔 앞에는 한 남자가 돌배를 따고 있었다. 초라하고 못생긴 돌배, 문득 큰 집 뒤란의 감나무와 할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우물이 하나 있었고 여름이면 사촌들은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온몸에 퍼부었다. 이가 시리게 차갑던 물, 그 옆에 재래식 치깐(화장실), 언제부턴가 일어나던 그 앞에 밧줄이 하나 달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요즘 수세식 화장실처럼 나무 의자가 하나, 놓여있던 생각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철없는 나는 우선 놀기에 바빴지만, 할아버지는 점점 화장실이 힘드셨나 보다.

(고향의 논밭. 촬영=윤재훈)
(고향의 논밭. 촬영=윤재훈)

설날과 추석날이며 경향각지(京鄕各地)에 있던 친척들이 모였다. 부모님은 제수를 준비하고 고향 마을 돌고개 입구, 낡은 가게 앞에서, 아버지는 꼭 정종을 샀다. 동구 밖에는 유난히 시계풀이 많았다. 눈처럼 하얗던 그 꽃, 우리는 그 꽃으로 저마다 시계를 만들어 손목에 매었다. 물질문명이 넘치는 이 풍요의 시대에 잊어버린 소박한 그리움들.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정겨운 고향 집, 대나무숲이 바깥과 경계를 지워주고, 잇대어 있던 정겨운 돌담, 어느 해인가 여름 방학 때 대문 앞 평상에서 낮잠을 자다가 그 돌 틈에서 목을 길게 빼 들고 나를 쳐다보던 뱀, 지금 생각해도 섬뜩하다.

대문 밖에는 벌써 친척들이 나와 있고, 마당에는 이미 모닥불이 오른다. 귀한 고기 굽은 냄새, 일가친척들의 웃음소리로 왁자하다. 덕석이 펴지고 “윷이야, 모야”, 목청껏 외치던 소리가, 고향 마을 파란 하늘 위로 퍼지던 시절, 그 소리에 놀랐는지, 이웃집 아저씨가 빼꼼하게 담 위로 고개를 내밀던 마을.

(코스모스 피어있던 정들은 고향 마을. 촬영=윤재훈)
(코스모스 피어있던 정들은 고향 마을. 촬영=윤재훈)

이제 그 고향 집에 아무도 없다. 하마 집은 폐가가 되었을까, 아이들은 모두 객지로 나가고, 큰 형수님 혼자 읍내에 나와 아파트에 사신다고 하는데.

우리 가족이 살던 산속의 외딴집도 이제 형체도 없다. 겨울날이면 마당에 함박눈이 소복이 쌓이고, 마당 건너 시커먼 늑대 두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먹이를 찾던 곳, 주인의 문소리에 힘을 얻은 누렁이는, 그때사 헛간에서 짖고.

쓰러져 가던 땟집, 낡은 문틀, 창호지 한 겹이 겨우 산속의 겨울바람을 힘겹게 막던, 그 문은 귀퉁이가 말라 비틀어지고, 황소바람이 들어왔다. 작고 무거운 미영(무명) 이불 한 장, 밤새 가족은 서로 당기고 밀고, 발목이라도 밀어 넣으려던 부순 방(아랫목)만 뜨거웠던 집, 아침이면 형제들 발에는 물집이 잡히고, 간밤 아버지 취한 속 달래라고 어머니가 머리맡에 떠놓았던 물그릇에는 하얗게 얼음이 얼어있고. 추석날 초가지붕 위로 하얀 박이 열리면, 한 뼘 마루에 앉아 어머니와 송편을 빚던 일.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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