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67] 조지아의 바다, '트빌리시 바다'
[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67] 조지아의 바다, '트빌리시 바다'
  • 윤재훈 기자
  • 승인 2021.08.27 17: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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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의 바다, '트빌리시 바다'

그 아래 서랍을 열며
아련한 배냇저고리부터,
엄마에게도 있었을, 처녀 적 옷가지들,
외할머니가 고이 간직하여 시집올 때 주었다던,

그 속에 엄마 냄새가 나, 코를 파묻고 싶었다던
아련한 어머니, 어머니의 고향

(코스모스 피어있던 정들은 고향 마을. 촬영=윤재훈)
(코스모스 피어있던 정들은 고향 마을. 촬영=윤재훈)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고향을 떠올리며 옥천 막내 고모 집이 생각난다. 5녀 1남이 단칸방에서 살던 그 집, 속없는 아이는 방학 때면 고모 집에 놀러 갔다. 어느 해인가는, 새를 잡는다고 새총을 쏘다 그만 어느 집 독아지를 깼는 모양이다. 해마다 그 집에서는 독아지 값을 물어달라고 했다고, 명절날 일가친척들이 모이면 고모는 놀리듯이 그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아이는 자라고, 어느 해부턴가는 그것도 시들해져 가지 않았나 보다.

그 조그만 마을에는 술도가 있었고 그 집 아들의 빽으로, 동네 아이들은 마당에 모여서 만세빵(어릴 때 흙 위에 그려놓고 놀던 놀이)을 했던 소박한 그 친구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할까?

변변한 옷들도 없는 시골의 겨울날은 추었고, 정 밖이 추운 날은, 5남 1녀랑 모여, 고구마 광이 있던 한쪽 방에서 놀았다. 온종일 빨간 반고구마와 하얀 물고구마 위를 오르내리며 정신없이 놀던 시절.

시골 방 한쪽 구석에 놓여있던
어머니의 옷장과 찬장,
공작인가 그려졌던 장농문을 열면

어머니 시집올 때 가지고 오셨다던
십장생들이 뛰어놀던 혼수 이불, 반짇고리들

그 아래 서랍을 열며
아련한 배냇저고리부터,
엄마에게도 있었을, 처녀 적 옷가지들,
외할머니가 고이 간직하여 시집올 때 주었다던,

그 속에 엄마 냄새가 나, 코를 파묻고 싶었다던
아련한 어머니, 어머니의 고향

- 해남(海南)에서, 윤재훈

 

(고향의 가을날 풍경. 촬영=윤재훈)
(고향의 가을날 풍경. 촬영=윤재훈)

그리고 밤이 되면 조그만 단칸방에서 9명이 오글오글 모여서 일렬로 잤다. 가장 안쪽 뒤란으로 나갈 수 있는 창호지가 발라진 쪽문 앞에는 고숙과 고모가 자고,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문 앞에서 잤다. 밤새 문틈으로 들어오는 왕바람을 맞으며, 서로 얼마나 이불을 잡아당겼을까?

그러다 추위에 자다 깨다 했을까? 약간의 밝은 빛이 비치기 시작하는 쪽문 앞으로 자꾸만 무슨 그림자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호기심이 많았던 어린 시절, 무심결에 그것을 보다가 다시 꿈나라로 빠져버렸던 기억이 나 피식, 웃음이 지어진다. 그때 다른 아이들은 다 잠들어 있었을까? 혹 자꾸만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에,

“엄마, 좋으면 좋다 그라소,

추워 죽것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 힘들었던 대한민국, 우리의 부모님 세대들은 그런 단칸방에서도, 다 해치고 일어나신 분들이다.

(품어주고, 용서해주고, 안아주는 고향. 촬영=윤재훈)
(품어주고, 용서해주고, 안아주는 고향. 촬영=윤재훈)

그렇게 겨울방학은 끝나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던 날. 안개가 잔뜩 끼어 있는 아침나절, 양쪽으로 박달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는 흙길을 따라 혼자 터덜터덜 걷고 있을 때, 갑자기 나무 뒤에서 아이들이 매달려 쏙, 고개를 내밀었다. 그다음 나무에도, 그다음 나무에도, 나는 그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며칠 만나 놀았던 사이인데, 그 사이에 벌써 아이들의 동심은 통했나 보다. 마치 꿈결인 듯, 두고두고 그 생각이 난다.

(수박을 사와 스스럼없이 건네던 인도 여행자 부부. 촬영=윤재훈)
(수박을 사와 스스럼없이 건네던 인도 여행자 부부. 촬영=윤재훈)

옮겨온 호스텔은 어둡고, 조그만 방에는 7개의 2층 침대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입구에 작은 응접실과 부엌이 었다. 그러나 가격이 워낙 저렴해서 인지, 침대는 잘 비지 않는다.

그중 6명이 이란 청년이다. 트럼프 때부터 더욱 사이가 나빠진 두 나라는, 미국의 경제제재로 대부분 대외경제가 막혀있다. 이슬람 지도자들은 무턱대고 ’자립경제‘를 외치지만, 워낙 사정이 좋지 않는 듯하다. 젊은이들은 조국을 등지고 돈을 벌기 위해, 이웃 나라로 떠나온다. 술을 먹는 것도 금지되어 있는데, 많은 사람이 눈을 피해 마시고 있다.

(폴란드인 마르신과 마르자니쉬빌리 지하철역 앞에서. 촬영=윤재훈)
(폴란드인 마르신과 마르자니쉬빌리 지하철역 앞에서. 촬영=윤재훈)

독일 보스턴대학교에 다닌다는 폴란드인 마르신(Marcin)과 의기가 통했다. 45세인 그는 키가 무려 2미터이며, 전공이 미술(Pine art)이라고 한다. 한쪽 귀에는 보청기를 끼고 있는데, 70% 정도만 들리고, 나머지 귀는 안 들린다고 한다. 큰 키에 심성이 착한 것 같은데, 창창한 그의 앞날이 환하길 빈다.

(허름한 서민 아파트. 촬영=윤재훈)
(허름한 서민 아파트. 촬영=윤재훈)

그와 인근에 <트빌리시 바다Sea>라고 부르는 호수에 가기로 했다. 트빌리시에서 지하철을 타고 30여 분 정도 걸렸다. 변두리로 나오니 도심에서 밀려난 척박한 서민들의 삶이 보인다. 작고 오래된 연립주택과 아파트 베란다에는, 그들의 열악한 삶의 흔적이 깊게 배어있다.

(호수로 들어가는 폴란드 친구. 촬영=윤재훈)
(호수로 들어가는 폴란드 친구. 촬영=윤재훈)

한 여성이 오더니 갑자기 훌러덩, 옷을 벗는다. 안에는 날아갈 듯한 수영복이 있다. 물에 들어갈 생각은 없는지, 모래밭에 작은 타올을 한 장 까는가 싶더니 벌러덩, 큰 대자로 눕는다. 아마도 일광욕을 하려는 모양이다. 설핏 자는가 싶더니 돌아누워 아예 브래지어까지 벗어버리고, 눕는다. 한참을 그렇게 있더니, 이제 가려는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다. 생의 자신감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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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훈 2021-08-27 16: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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