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68] 조지아의 풍경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9.03 11:07
  • 수정 2021.09.03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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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의 풍경

산기슭을 따라 걸어 나오는데,
담배를 피고 있는
열두 서넛 살의 아이들

그들의 삶이 걱정이 되어
꼭 안아주었다.

(촬영=윤재훈)
(트빌리시 바다.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배낭에서 서너 가지 먹거리를 내자, 폴란드 친구가 건포도를 낸다. 저녁때가 되자 동네 할머니들이 삶은 옥수수와 땅콩을 구워서 팔러 나온다. 그것을 먹으면서 트빌리지 호수를 바라본다. 조그만 해변에서 바로 앞에 삼각팬티를 입은 여성들이 민망한 자세로 누워 있으니, 마땅하게 눈길을 둘 데가 없다. 나만 민망한 것인지?

(바다가 그립다. 촬영=윤재훈 기자)

바다에 옆에 있는 데도,
나는 늘,
바다가 그립다

- 트빌리시 바다(Sea)에서

(아이들의 미래가 불안하다. 촬영=윤재훈)
(아이들의 미래가 불안하다. 촬영=윤재훈 기자)

산기슭을 따라 걸어 나오는데,
담배를 피고 있는
열두 서넛 살의 아이들
그들의 삶이 걱정이 되어
꼭 안아주었다.

잘 살아가리라 믿는다.

(수탈의 길이였던 모스코바로 가는 철도. 촬영=윤재훈)
(수탈의 길이었던 모스코바로 가는 철도. 촬영=윤재훈 기자)

어쩐지 이 철도를 보고 있으니, 동병상련(同病相憐), 국운이 흔들리던 일제 시대 슬픈 조국의 초상(肖像)이 보인다.

겨울날, 해 어스름 녘
고물상 앞에 할머니 셋
유모차에 한가득, 거푸집처럼 뭔가를 싣고 와 푼다
낫처럼 굽은 허리, 서로 맞대고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나눈다

저울 위에 폐지를 올리자
‘1250원’, 빨간 불이 잠시 깜박거린다
할머니 얼굴에 허탈한 빛이 스쳐 간다
주인의 얼굴도 겸연쩍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1300원’, ‘950원’, 다른 할머니들도
서로를 바라보며 말이 없다

하루종일 쓰레기통을 뒤지며
개처럼 쏘다녔을 절뚝거리던 발걸음들이
보도블럭 턱 위에서 휘청거린다
통풍 맞은 굽은 손가락으로 주웠을 고물들이
저울 위로 올라갈 무렵이면
할머니들의 몸은 마치 허깨비 같다
차라리 그 위에라도 올라앉고 싶은 것인지
잠깐 발뒤꿈치까지 움찔한다
무정한 저울추는 더 이상 움직일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요즘은 옛날처럼 폐지도 없어, 글고” ,
“당최, 이놈의 허리가 펴져야제, 뭘 줍든가 말든가 하지,
다리까지 잘 움직이지가 않으니”

“이걸로 손자 용돈도 줘야 하는디,
가스비도 세 달 치나 밀려,
끊는다고 독촉장까지 나왔는디,
이 엄동설한에 어찌게 사라고”

강 쪽에서 찬바람이 몰려와
사나운 개처럼 할머니들의 목덜미를 후려친다

“요번 겨울은 더 춥다는 디” ,
“왜, 자식들은 안 온 겨”
“요번 설에는 손자들 얼굴이라도 한번 봤으면 좋것는데”
“이놈의 먹고사는 것이, 뭔지”

끌, 끌, 혀를 차는 할머니의 등 뒤로
겨울바람이 손수레를 민다

- 동병상련(同病相憐)1

다시 지하철을 탔다. 대부분 사람이 고개를 푹 숙이고 휴대폰만 보고 있다.

“선에 매어 살게 된 새로운 인간
밖에 나오면,
이어폰, 충전기 선에 온종일 매여 있고,
회사에 가면 또 각종 선에 얽혀 있어야 한다.

집에 돌아오면,
또다시 TV, 컴퓨터, 세탁기 등
각종 전자매체의 선에 휩싸여 있고
그 아래에서 잠이 든다.
전자파가 유령처럼 떠 돈다.

마당에 묶인 개 같다.”

(자리가 있는 데도, 왜, 앉지 못할까. 무엇이 그리 만들었을까? (촬영=윤재훈 기자)

아이에서 어른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사람들, 우리나라 못지않게 많다.

막 떠나가는 지하철에
급하게 올라타는
바짝 마른 걸인 청년, 하나

누가 반겨줄 사람도 없는데
그는 이 지하철에 올라탈 때
희망에 부풀었을까?

무어라고 웅얼웅얼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사람들의 눈길은 무연하게 그를 외면하고,
그의 슬픈 삶만
빠르게 지나가는 밖의 풍경처럼 흐릿하다.

(아모운 호스텔 풍경, 공간이 좁으니 도르게 빨레줄을 연결했다. 촬영=윤재훈)
(아모운 호스텔 풍경, 공간이 좁으니 도르레 빨랫줄을 연결했다. 촬영=윤재훈 기자)

숙소를 예약하지 않으면 빈 방이 없다. 그만큼 여행자가 많이 밀려오는 것인지, 아니면 숙소가 작은 것인지 모르겠다. 다시 아모운(Amoun) 호스텔로 옮겼다. 4번째 숙소인데, 가장 마음에 든다.

이집트에서 왔다는 청년들 둘이서 동업을 한다. 청년들도 한 층을 빌려 영업을 하니 방이 따로 없어, 밤이면 우리와 같은 방에서 자고, 식당에서 음식도 같이 해서 먹었다. 그야말로 세계의 다양한 음식을 보는 셈이다.

방안에는 5개의 2층 침대가 있으니 10명이 함께 쓰고 있다. 대부분 나라들이 다르니 세계의 다른 문화와 풍습들이 매일 함께 어우러진다. 이슬람 사람은 하루에 5번, 예배시간이 되면 주위의 시선 아랑곳없이 깨끗한 천을 깔고 메카를 향해 절을 올린다. 그들의 순수한 신심은 경건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사람들은 배가 고프면 식당에 가서 간단하게들 음식을 해 먹고, 의기가 통하면 요리를 만들어서 함께 먹으며, 한 잔술에 이국의 운우(雲雨)를 나눴다.

(하루에 5번, 그의 의식이 성스럽다. 앞에는 호스텔 주인 청년들. 촬영=윤재훈)
(하루에 5번, 그의 의식이 성스럽다. 앞에는 호스텔 주인 청년들. 촬영=윤재훈 기자)

굴레수염에 덩치가 소 장수만 하게 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사내, 처음에는 다가가기가 무서워졌지만 우리는 금방 진심이 통해 가까워졌다.

인도에 처자식을 두고 돈을 벌러 왔다고 하는, 굴레수염을 깨끗이 면도한 38세의 키 작은 사내, 아침에 토마토 주스에 빵 한 조각을 먹더니, 저녁도 역시 그렇게 먹는다. 어제는 바나나를 먹겠냐고 물어보니 거절을 하더니, 오늘은 잘 받아서 먹는다. 그 옆에서 닭 다리를 삶아 먹는데, 미안해진다. 다른 나라에서 했던 것처럼 같이 먹자고 하려다, 호의가 지나치면 싫어할 수도 있겠다 싶어 그만두었다. 모든 사내가 다 굴레수염이 있으니, 수염이 별로 없는 아시아인들을 보기가 오히려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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