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73] 세계문화유산 도시, 조지아의 경주, ‘므츠헤타' 下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9.17 10:25
  • 수정 2021.09.27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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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의 도시, 조지아의 경주, ‘므츠헤타(Mtskheta)’  下

”새에게는 신이란 없고,
단지 나뭇가지로만 보일 것이다.
그러니 새는 훨씬 자유롭겠다.

 

(즈바리 수도원. 촬영=윤재훈)
(즈바리 수도원.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산꼭대기에 고즈넉하게 성당이 하나 매처럼 놓여있다. 누가 저 높은 곳에 성당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 끊임없이 하늘 가까이 가고 싶었던 인간 욕망의 투영이었을까?

수많은 혹성으로 우주선을 쏘아 보내는 이 시대에, 조그만 한 혹성에 기거하면서, 문득 그런 의문이 든다.

그 시절 순전히 사람의 힘으로 저 산꼭대기까지 자재를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고생을 했을까? 순전한 불심이었을까, 아니면 매가 무서웠을까? 오늘 그 현장에 수많은 관광객들이 올라간다.

656m의 즈바리 산 위에 세워진 이곳은, 산의 이름을 따 <즈바리 수도원(Jvari Monastery)>이라고 부른다. 기사들과 요금 흥정을 하는데, 20라리로 단합이 된 듯하다. 여행서에는 8라리에 갔다는 처자가 있어 다시 말했는데, 쉽게 흥정이 안된다. 내가 무심코 10라리를 말하자, 옆에 있던 젊은 기사가 가자고 한다,

동네를 지나 산을 빙 돌아 올라가는데, 약 20여 분 정도 걸린다. 사원은 입구부터 심하게 파괴되어 있고, 세월의 풍상 속에 속절없이 낡아가고 있다. 뒤쪽으로 부서진 난간에는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앉아 마을을 내려다보며, 함께 풍경이 되고 있다. 시원한 강바람이 올라온다.

이 나라는 종종 산 위에도 교회가 있는 모양이다. 프로메테우스의 전설이 서린 카즈베기의 산꼭대기에도, ‘츠민다 사베바(성삼위일체,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가 있었다.

(‘성 니노’의 형상, 오른쪽. 촬영=윤재훈)
(‘성 니노’의 형상, 오른쪽. 촬영=윤재훈 기자)

조지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의 하나이며,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안에는 규모가 작아 사람이 좀 모이면, 예배보기가 힘들 것 같다.

4세기경 조지아에 최초로 기독교를 전파한 성녀 ‘니노’는 조지아 기독교 역사에 중요한 인물이다. 터키의 카파도키아 난민 출신으로 노예이자 수녀가 된 니노는, 신의 계시를 받고 조지아로 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 므츠헤타의 유대인 지구에 머물면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즈바리는 조지아어로 ‘포도나무’라는 뜻이며, 그녀가 포도나무로 된 십자가를 가져온 것을 기념한다고 한다. 이후 그녀는 포도나무 십자가로 여러 기적을 행하는데, 그중 이곳을 다스리던 미리안 3세의 왕비 나나의 병을 낫게 했다고 한다. 그 후 이 교회는 순례자들의 필수 코스 되었다.

(즈바리 교회의 십자가. 촬영=윤재훈)
(즈바리 교회의 십자가. 촬영=윤재훈 기자)

“어느 날 사냥을 나간 미리안 3세는 안개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믿은 신에게 기도를 드렸는데, 안개가 걷히지가 않았다. 이번에는 니노가 믿은 신에게 빌었더니 순식간에 안개가 걷혔다.

이를 신의 계시로 믿은 왕은 334년에 기독교로 개종하고,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세례를 해줄 수 있는 사제를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즈바리 언덕에 나무 십자가를 세웠다. 니노가 세웠다는 설도 있다.

그 후 585~604년에 이 지역의 공작인 스테파노즈 1세가 십자가가 있던 자리에 즈바리 수도원을 세웠는데, 즈바리는 ‘십자가’란 뜻이다. 성 니노의 주검은 와인 산지로 유명한 카케디주의 시그나기에 있는 보드베 수도원에 안치되어 있다.

(파괴된 즈바리 수도원. 촬영=윤재훈)
(파괴된 즈바리 수도원. 촬영=윤재훈 기자)

입구에는 예수가 승천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으며, 안에는 미리안 3세가 세웠다는 커다란 십자가가 있다. 빽빽하게 벽면을 채웠던 다른 성당과 달리, 벽에는 성화 몇 점 외에는 비어있어, 편안한 느낌을 준다. 스베티츠호벨리 성당에 대해서 묘사해 놓은 듯한 성화도 있다.

테트라콘 양식이라고 불리는 이 수도원의 양식은 코카서스 지역 교회들의 모델이 되었다고 하는데, 파괴와 부식이 심해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그래서인지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처럼, 2004년 세계유적재단에 의해 ‘관리대상 세계유산’으로 지정이 되었다.

산꼭대기에서 보니 마을이 더욱 아스라하다. 두물머리에 만난 물은 서로를 얼싸안으며, 물머리를 트빌리시로 틀며 조용히 흘러간다. 다시 생각이 많아진다. 왜 이렇게 높은 산꼭대기에 교회를 지었을까?

외침을 많이 받아서일까, 유사시에는 군사시설로 쓰였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30여 년 전 소련 시절에는 군사기지로만 사용되어 일반인의 방문이 불허되었다고 한다. 일반인의 품으로 돌아온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요금을 깎아서 왔으니, 택시기사가 옆에서 자꾸 채근을 한다. 볼만큼 본 듯하여, 30여 분만에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나이가 들면 염치와 부끄러움이 없어지는 것일까? 촬영=윤재훈)
(나이가 들면 염치와 부끄러움이 없어지는 것일까? 촬영=윤재훈 기자)

이제 이 마을에서 마지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삼타브로 수도원>을 찾아간다. 숙소가 마땅치 않고 트빌리시에서 멀지 않아 당일치기로 온 탓에, 마음이 급하다. 마슈르카 정류장에 시간을 먼저 알아보러 갔는데, 8시 30분에 막차가 있다고 한다. 만약 이 차를 놓치면, 큰일이다. 뚱뚱한 체구에 걸음을 뒤뚱거리며 택시기사가 와 흥정을 한다.

입구에는 멀쩡한 동네 할머니들이 여러 사람 앉아, 아무 부끄럼 없이 보는 사람마다, “머니, 머니‘” 외친다. 소박한 시골 마을에 관광객이 몰려오면, 멀쩡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걸인이 되는 걸까? 전혀 꺼리낌 같은 것은 없다. 조지아는 가는 곳마다 걸인들이 참 많다. 그만큼 하층민의 생활이 곤궁한 모양이다.

갑자기 배가 굴풋해져 온다. 계단에 앉아 배낭 안에 든 먹거리를 먹다 무연히 허공을 보니, 십자가 꼭대기에 새가 앉아있다.

”새에게는 신이란 없고, 
단지 나뭇가지로만 보일 것이다.
그러니 새는 훨씬 자유롭겠다.

(왕가의 무덤. 촬영=윤재훈)
(왕가의 무덤. 촬영=윤재훈 기자)

평장을 하고 글씨를 쓴 무덤들이 많다. 검정 예복에 머리까지 가린 러시아 정교회 여인네들도 많은데, 수사들일까? 안쪽에 관사까지 있는 걸 보니, 거주하는듯하다. 하지만 그다지 선기(禪氣)가 어려 보이지는 않는다.

성당 앞쪽으로 나오니 장애 아들을 데리고 나와 구걸하는 아주머니가 있다. 해저물녘 마을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면서 손을 흔들어준다. 한 아주머니가 다가가더니 청년의 볼에 뽀뽀를 해주고 가는데, 성자처럼 보인다.

므츠헤타는 우리나라 경주에 비해 문화재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3개의 세계문화유산인 성당이 있고, 인근 벌판에는 부서진 잔해들이 있다. 왕국은 떠나고 왕들도 떠난 지 오래인 이 낡은 도시, 500년의 부귀영화가 사라진 고려의 뜨락에서, 한숨짓던 야은 길제와 원천석의 시조가 저절로 떠오른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어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련가 하노라.”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秋草)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부쳤으니

석양에 지나는 ()이 눈물겨워 하노라"

 

하지만 요즘은 하룻밤만 지나면 아파트를 짓느라, 산 한 쪽이 사라져버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중국은 인해전술로 베이징에 있는 서호를 삽으로 파면서, 그 옆에 자그마한 산을 하나 만들어 놓았다. 퇴락한 므츠헤타는 올드 시티라고 하기에는 마을이 좀 작은 듯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을까, 옛 왕도답게 바닥이 반질반질하다. 촬영=윤재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을까, 옛 왕도답게 바닥이 반질반질하다. 촬영=윤재훈 기자)

번화가라고 할 수 있는 곳은 스베티츠호벨리 성당을 따라 양쪽으로 집을 개조해, 2~300미터 정도 가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전부다. 포도에 각종 견과류를 섞어서 만든 조지아 달콤한 국민간식인 <추첼라(Churchkhela)> 파는 곳이 많은데, 너무 달다.

조지아는 와인의 나라인데, ’차차(Cha Cha)‘,도 유명하다. 와인을 만들고 남은 포도씨, 껍질, 줄기 등 포도 찌거기를 증류하여 만든 전통술로, 35도에서 70도까지 있다. 우리나라 밀주처럼 집에서도 담가 먹는데, '그루지아 브랜드' 또는 ’그루지아 보드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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