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건희컬렉션 어르신 특별관람 동행기...국립현대미술관

전부길 기자
  • 입력 2021.09.29 11:18
  • 수정 2021.11.03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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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층 특별 관람은 연말까지 매주 화요일 1회차(10시~11시)에 진행
미술관 홈페이지 사전 예약 시스템에서 예약 가능
무료 관람, 큰글자 안내서와 오디오기기 무료 대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촬영=전부길 기자)

[이모작뉴스 전부길 기자] 코로나19는 세상의 흐름을 바꾸었다. 젊은이들은 비대면으로 근무도 하고, 밥도 먹고, 회의도 하고, 운동도 한다. 그러나 디지털 앞에만 서면 움츠러드는 노년층은 오히려 사회와 점점 단절되고 고립감을 더 경험하고 있다. 특히 문화 향유 분야에서는 소외감을 더욱 느끼고 있다.

복지관과 노인정은 문을 닫았고,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중단되고, 자식들의 당부로 코로나19 전염이 두려워 외출도 삼가고 있다. 노인들은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을 열었다. 이 특별전은 평소 예술향유 기회를 갖기 어려운 사회취약·문화소외계층에 별도 관람 기회를 제공하고 있어 예술에 관심있는 노년층에는 희소식이다.

미술관은 일시적인 선정성 행사가 아니라 진정으로 소외 계층을 위한다는 진심이 보이는 그런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참으로 고 이건희 회장의 예술품 기증의미를 되살리는 귀중한 기회였다. 두 차례의 시범 운영을 마치고 9월 28일 첫 정식 운영하는 날 관람하시는 어르신들과 기자가 동행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강의동및 디지탈아카이브. 촬영=전부길기자)

9시40분. 대기
조금 일찍 경복궁 옆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도착했다. 벌써 몇몇 어르신들은 이미 벤치에 앉아 대기중이시다. 몇 분은 잠겨진 문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 보시며 언제 문을 여는지 궁금해 하신다.

부부 혹은 친구와 함께, 그리고 혼자 오신분도 계셨다. 모두들 밝은 얼굴이고 기대를 하고 계시는 모습들이시다.

몇 분들에게 어떻게 알고 오셨냐고 물었더니 TV뉴스에서 보거나 신문기사를 읽고 자식들이 예약을 해 주었다고 한다. 본인이 예약을 직접하신 분을 찾았으나 만나지는 못했다.

10시 정각 미술관의 문이 열렸다.

한 사람씩 온도를 체크하고 QR 코드를 켜서 인증받고 들어가니 매표소가 보인다. 친절한 안내를 받아 신분증과 예약 확인을 진행하고 옷깃에 빨간 입장권을 붙여 준다.

(온도체크와 QR인증. 촬영=전부길 기자)

그리고 정말 제대로 큰 글자로 된 교육자료를 받았다.

개봉동에서 오셨다는 김씨 어르신은 브로슈어 글씨가 커서 너무 맘에 든다고 감탄하신다.

‘안내서가 이렇게 큰 글자로 된 것은 처음이야. 노인들을 위해 이렇게 별도로 제작해 주니 정말 감사하다. 정말 대접받는 기분이다’

'다른 전시장 수차례 가 보았지만 대부분 글자가 작아 읽는 것을 포기하고 관람을 제대로 못했는데, 이렇게 돋보기를 끼지 않아도 보이게 큰 글자로 만들어 주니 속이 다 시원하다'

(좌측이 어르신용,오른쪽은 일반인용 안내서.촬영=전부길 기자)

들어가는 입구 왼쪽 벽면에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한국 명작미술’이라는 타이틀이 써 있다. 문 앞에는 원활한 관람 지원을 위해 오디오가이드 기기 무상대여가 진행되고 있다.

설명을 듣고 대여 받은 오디오기기를 켜서 그림 앞에 서기만 하면 자동으로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배우 유해진의 친근한 목소리가 더 깊은 감동과 여운을 전한다.

(오디오기기 사용법 설명. 촬영=전부길 기자)

도봉구에서 친구와 함께 오신 고씨 어르신이 한마디 하신다.

 ‘다른 곳에서는 스마트 폰 앱을 다운받아 설치하여 들으라 해서 포기했는데 여기서는 기기를 빌려주어 설명까지 들으니 정말 그림이 귀에 쏙쏙 들어오고 이해가 아주 쉬워 최고의 감동이다’

'특히 김기창, 김은호, 김환기, 김흥수, 박수근, 이응노, 이중섭 등의 작품들은 신문이나 잡지에서만 보아왔지 실물은 한 점도 직접 보기 어려운 작품인데 이렇게 한 곳에서 볼 수 있다니  정말 꿈만 같다'

(전시된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어르신들. 촬영=전부길 기자)

전시관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는 수용과 변화다. 일제 강점기에 새로운 문물이 유입되면서 미술계도 변화를 맞이한다. 서구 매체인 유화가 등장하였고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 등 생경한 용어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즈음하여 조선의 전통 서화도 변화를 모색한다.

백남순의 <낙원>(1936년경), 이상범의 <무릉도원>(1922)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통해 이 시기 동서양 회화의 특징이 융합과 수용을 통해 변모하는 과정을 비교 감상할 수 있다.

(백남순의 낙원 앞. 촬영=전부길 기자)

두 번째는 개성의 발현이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격동의 시기에도 작가들은 작업을 멈추지 않고 전시를 열고 새로운 미술을 추구하며 예술 활동을 이어갔다. 김환기, 유영국, 박수근, 이중섭 등 작가들의 파란만장한 삶과 그들의 독창적인 작품은 한국미술의 근간이 된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1950년대), 이중섭의 <황소>(1950년대),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1954) 등 이건희컬렉션에는 특히 이 시기의 작품이 집약되어 있다.

(개성의 발현 전시물 앞의 어르신들. 촬영=전부길 기자)

세 번째는 정착과 모색이다. 전후 복구 시기에 작가들은 국내‧외에서 차츰 정착하며 꾸준히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모색한다. 이성자, 남관, 이응노, 권옥연, 김흥수, 문신, 박생광, 천경자 등이 고유한 조형세계를 구축하며 한국미술을 보다 다채롭게 만들었다.

이성자의 <천 년의 고가>(1961), 김흥수의 <한국의 여인들>(1959) 등 이 시기의 대표작을 만날 수 있다.

(정착과 모색. 촬영=전부길 기자)

이번 고 이건희 회장의 예술품 기증은 ‘세기의 기증’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장르를 초월하여 입이 벌어질 만한 3조원 규모의 다양한 미술품을 조건없이 기증한 덕은 찬사를 받을 만하다.

잠실에서 남편과 함께 오신 허갑순 어르신은

“병원에 가야 하는데 왔다. 너무 감동이어서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치료를 다 받은 것 같다.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을 보았다는 사실 만으로도 흥분이 된다’

고 상기된 얼굴로 말씀하신다.

(전시장 내부. 촬영=전부길 기자)

전시관을 나서는 어르신들이 이구동성으로 하시는 말씀은 감사의 말이다. 이런 좋은 예술품을 볼수 있는 기회를 준 것에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고마움이 표정에 느껴진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의 사회공헌 활동은 온라인 사전예약에 어려움을 겪는 노년층 전용 회차 진행과 저소득 한부모 가정 대상 초청 행사 등 두 가지로 구성된다.

온라인 취약 노년층(1956년 12월 31일 이전 출생자) 특별 관람은 연말까지 매주 화요일에 1회차(10시~11시)에 현 거리두기 단계에서는 30명 제한으로 진행된다. 물론 입장료는 무료이다.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사전 예약 시스템에서 예약이 가능하다. 본 회차에는 노년층만 예약이 가능하며 방문 시에는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너무 짧은 관람 시간. 촬영=전부길 기자)

저소득 한부모 가정 특별 관람은 국립현대미술관과 2018년부터 사회공헌활동을 같이 하고 있는 국제구호 NGO 월드비전(World Vision)과 협력 하에 초청 행사로 이뤄진다. 10월 2일(토)부터 올해 연말까지 매주 토요일에 진행되며, 참가 대상은 월드비전에서 전국 저소득 한부모 가정 대상으로 본 행사에 희망하는 인원을 선정 및 모집할 예정이다. 

지금은 코로나19 비상 시기이다

다들 힘들고 어렵지만 가장 힘든 사람들 중에는 어르신들이 있다. 이번이 국립박물관의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작은 시도지만 큰 박수를 보낸다. 정말 진심이 느껴지는 프로그램이다. 어르신들을 위해 큰글자 안내서가 큰 감동을 준다. 모쪼록 이런 기획이 넘쳐나 어르신들이 사회나 문화에서 소외되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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