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작 성공수기] 취미가 인생 2막의 마중물이다~!...최우수상 ‘이양우’

김남기 기자
  • 입력 2021.10.07 15:02
  • 수정 2021.10.0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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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경상남도에서 실시한 제1회 신중년 인생이모작 성공수기 공모전 수상작품을 연재한다. 연재될 수상작품들은 퇴직 후 삶 준비, 재취업 성공사례, 사회공헌활동, 재능나눔 경험 등을 공유하고, 신중년 세대의 성공적인 인생 2막을 엿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취미가 인생 2막의 마중물이다~!
최우수상 ‘이양우’

(이양우씨의 촌집에 화실을 만들고 벽화를 그렸다. 사진=이양우 제공)

취미가 미술인 학창시절을 돌아보며

학창시절에 학교에 적어 내어야 하는 모든 양식에는 자신의 취미나 특기를 적는 난이 꼭 있었다.

취미, 특기를 적는 난에는 주저 없이 미술을 적어 냈던 기억이 있다. 미술 시간이면 모든 친구들의 부러운 눈초리를 받으며 주저 없이 그림을 그렸고 각종 미술대회에 참가하면 늘 상을 받곤 했었다.

미술부 활동 시간이 기다려졌고 선후배들과 야외스케치 나가면 그 시간은 최고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고3이 되어 진로를 결정해야 할 시기에 가정 형편상 미대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었고 취업 잘되는 법정대학으로 진학하였다. 취업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며 평범한 직장인이자 가장으로 살아가면서 미술에대해 채워지지 않는 욕구, 꿈을 이루지 못한 한 이 가슴 깊숙이 남아 있었다.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살자~! 오늘과 내일이 똑같은 무미건조한 인생을 살 순 없다.~!

직장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하고 퇴근 후엔 미술학원에 등록하여 그림에 관한 관심을 놓치지 않았고 결국엔 대학원에 진학하여 미술교육전공으로 졸업하였다. 직장 생활 중에도 근로복지공단에서 주관하는 근로자 예술제에 매년 출품하였고 수상도 많이 하였다. 부산미술협회, 부산 기독 미술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개인전도 열었고 단체전에도 많이 참여하였다. 미술치료사 자격을 취득하기도 하고 장애인 단체, 정신병원, 노인대학 등에서 미술치료로 재능기부 하면서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왔다.

정년을 앞두고 고민하다

(이양우씨 집에 마련된 화실. 사진=이양우 제공)

직장인으로 33년 동안 성실하게 근무하였고 정년을 앞둔 시점에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설계가 최대의 과제였다. 나에게 제2의 인생은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평생을 조직에 얽매여 살았고 생업과 가족부양에 대한 부담으로 자신을 위한 삶을 포기하고 살았지만, 은퇴 이후엔 전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삶,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며 살고 싶었다. 바쁜 일과 속에 간신히 틈내어 작품활동하고 봉사하고 사는 삶이 아닌 인생 후반전에는 오로지 미술에만 전념하고 작품을 만들고 전시하고, 이웃을 돌아보고 재능 기부하며 사는 인생을 설계하고 싶었다.

은퇴를 앞둔 어느 날 부동산을 하는 고향 후배가 “형님~ 조그만 촌집 한번 보실래예?” 고향 김해 진영의 양지마을은 어릴 적부터 잘 아는 동네이다. 진영의 가장 끄트머리 동네이고 아직 개발이 전혀 되지 않는 청정지역이다. “양지마을은 이름처럼 양지바르고 공장이 없어 전원생활 하기 딱 입니데이~!” 라고 조그만 촌집을 소개한다. 50년 된 무허가 촌집이 폐허가 되어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는 집이었다. 그러나 땅에는 임자가 있다고 했던가? 첫눈에 반해 버렸다. 반듯한 대지 모양에 10평도 안 되는 촌집이었지만 약간의 정원과 텃밭이 가능한 규모의 대지였다. 양지마을에는 노인들만 집을 지키고 있고 젊은이들은 거의 없는 마을이었다. 촌집은 마을회관 옆이라 마을 노인들을 대상으로 노인미술 치료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작품활동과 작업실 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일사천리로 부동산 계약이 진행되었고 촌집은 내 것이 되었다.

촌집을 화실로 만들다.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는 사람들=이양우 제공)

촌집을 1채 소유하고 난 후 은퇴할 날 만 기다려졌다. 10평도 채 안 되는 주택을 화실로 만드는 구상과 마당엔 화초와 유실수를 심고 텃밭을 만드는 구상으로 가슴 벅찬 감동 속에 퇴직을 맞이하였다. 동료들은 퇴직으로 인한 불안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염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 등으로 고민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염려와 걱정은 나에겐 상관이 없는 먼 이야기가 되었다. 퇴직하자 목수를 구했고 집수리에 들어갔다. 마당에는 구상했던 대로 매실, 대추, 포도, 사과, 석류, 단감나무를 심고 한편에는 영산홍, 이스라지, 회양목, 꽃 잔디, 송엽국 등으로 화단을 조성하고 한편에는 상추, 고추, 가지, 부추, 쪽파, 방울토마토, 들깨 등으로 텃밭을 만들었다. 은퇴 이후의 하루하루는 현직에 있을 때 보다 더욱 활기찬 하루가 되었고 새로운 일과 속에 평생 해보지 않았던 농사일들을 배우며 흙을 만지고 땀을 흘리며 열매를 거두는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촌집 벽에는 다양한 그림으로 벽화를 그렸고 작업실에는 평소에 그렸던 작품들로 갤러리를 만들었다. 동네 어르신들은 신기한 듯 오고 가며 관심을 가져준다. 시골에 귀촌하게 되면 텃세가 있다는 말을 듣는다. 원주민들과 관계 형성에 실패하여 떠나는 사람도 있다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고향으로 귀향했었고 고향에서 작업실을 마련하였고 토박이들은 이미 동기들이거나 선후배 관계로 형성되어 있어 원주민들과의 관계는 아주 빠르게 친해져 갔다.

양지마을 이장, 노인회장이 화실을 찾아오다

(마을담장에 벽화를 그리고 있다. 사진=이양우 제공)

화실을 마련하고 1년이 지났다. 이장과 노인회장이 화실을 찾아 왔다. 김해시에서 환경개선예산이 조금 나왔는데 마을을 벽화로 디자인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였고 나에게 의뢰하기를 원했다. 마을은 빈집이 많고 오래된 벽들로 흉물스러운 현장도 있다. 마을 입구에는 시멘트벽으로 마을 전체가 회색 도시처럼 침침하여 환하고 예쁜 마을로 변화시켜 달라고 한다. 오~!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그렇지 않아도 여건만 된다면 마을 벽화를 그리고 싶었는데, 마을에서 공식적으로 의뢰가 들어오다니~!!! 흔쾌히 승낙하였고 3개월간에 걸쳐 벽화 디자인 구상하고 제작하고 유튜버 만들어 소개하고 블로그에 올리고 행복한 날들이 이어졌다. 벽화를 그리는 동안 마을 어르신들은 무척 기뻐하셨다. 특히 마을 풍경을 그리고 마을에 적합한 캘리그라피 글귀에 더욱 감동하였다. 노인들이 ”우리마을에 보물 같은 화가가 들어 왔다~!” 는 말을 한다.

너무 듣기 좋은 말이다. 재료비, 인건비 정도만 남기고 약간의 돈은 마을 노인들을 위해 써 달라고 기부하였다. 무엇보다도 나의 작품이 마을 전체를 장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화가의 감정을 춤추게 하였고 고향을 위한 재능기부로 자긍심 가득하게 하였다.

김해문화재단 시화전 의뢰

(행복나눔터 야외전시장 '내 생애 첫시화전'. 사진=이양우 제공)

벽화가 진행되는 시점에 김해문화재단에서 시민연구원으로 활동하는 B 씨가 찾아 왔다. 김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진영역사공원에서 시화전을 기획하는데 시화를 그려 달라는 것이다. 필자는 은퇴하자 즉시 캘리그라피 과정에 입문하였고 캘리그라피를 열심히 연습하고 있던 터, 캘리로 만든 시화는 너무나 매력 있는 도전이었다. 배운 캘리그라피를 활용하고 전문가적인 수채화를 가미하여 20여 점에 달하는 캘리그라피 시화를 완성하였고 김해 진영역사공원과 찬새네골 행복마을 나눔터 야외전시관에서 2회에 걸쳐 전시하였다.

‘제1회 나도작가~! 내 생애 첫 시화전’ 김해문화재단의 행사에 필자의 재능이 사용되었고 역시 인건비도 지급되었다. 진영과 한림을 소재로 한 시인들의 시를 캘리그라피로 작품하고 전시하여 시민들이 전시작품을 둘러 보고 시화에 흠뻑 취하는 모습은 감개무량 그 자체이었다.

‘도랑치고 게 잡고~!’ 일석 이조는 이럴 데 쓰는 말인가 보다.

취미를 인생 이모작으로 활용하라

(벽화를 그리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사진=이양우 제공)

사람은 누구나 취미를 가지고 있다. 음악 미술 체육 낚시 서예 원예 공예 등등 많은 취미생활을 하고 있지만 정작 초기에 그만두고 포기하기 일쑤다. 필자는 강조하고 싶다. 취미나 특기를 프로화하라~! 대충입문 단계에서 중단하지 말고 관심 있는 분야라면 프로가 될 때까지 도전하라고 권면하고 싶다. 필자가 직장인으로 미술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였기에 은퇴 후에도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된 사실은 다른 분야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많은 지인들이 필자를 부러워한다. 자신의 취미를 살려 행복한 인생 2막을 시작했다고 인정해 준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부러울 것 없는 친구들이 매일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소일거리가 없다고 고민이다. 시간 보내기가 힘들어 직장을 구하기도 하고 여행, 운동 등으로 하루를 보내려고 애쓴다. 자신의 재능을 활용하여 사회에 공헌하고 재능기부를 통해 삶의 의미를 드높일 수 있다고 본다. 필자는 그림이라는 재능을 통해 은퇴 이후의 삶이 행복가득한 삶으로 변화되었다. 자신의 예술 활동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지역사회에 재능을 기부하기도 하고 소득을 얻기 때문이다. 수채화를 배우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그림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전시회를 열어 작품판매도 할 계획이다. 다른 지역에서 벽화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벽화와 시화로 소득을 얻고 지역을 섬기는 역할은 올해도 계속된다. 마찬가지로 행복 바이러스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득할 것이다.

취미를 활용한 지역사회 섬김이 은퇴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 직장인들에게 고민 해결의 방법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명함을 만들었다. 양지바른화실 서양화가 이양우

이제부터 필자는 화가로서 제2의 인생을 출발한다. 렛츠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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