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작 성공수기] 농촌에서 시작한 나의 인생 2막...우수상 신금희

김남기 기자
  • 입력 2021.10.15 11:06
  • 수정 2021.10.15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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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경상남도에서 실시한 제1회 신중년 인생이모작 성공수기 공모전 수상작품을 연재한다. 연재될 수상작품들은 퇴직 후 삶 준비, 재취업 성공사례, 사회공헌활동, 재능나눔 경험 등을 공유하고, 신중년 세대의 성공적인 인생 2막을 엿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농촌에서 시작한 나의 인생 2막
우수상 '신금희'

고구마 수확. 사진=신금희 제공)<br>
(고구마 수확. 사진=신금희 제공)

고운 봄 햇살이 부드럽게 퍼지고 있는 작은 농촌마을에 아침부터 기분 좋은 술렁거림이 있는 날, 2021년 3월 23일 아침은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상기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청년들의 모습으로 마을에 생기가 가득 했다. 이 날은 2018년에 시작되어 올해로 제4기생을 맞이하는 ‘청년귀농 장기교육’ 개강식이 열리는 날! 전국에서 모인 20명의 청년들과 농업기술센터의 소장님, 그리고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이곳이 바로 나의 인생2막이 시작된 곳, ‘빗돌배기농어촌체험휴양마을’이다.

청년귀농장기교육 개강식. 사진=신금희 제공)<br>
(청년귀농장기교육 개강식. 사진=신금희 제공)

영농경험이 부족한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농업농촌에 잘 정착할 수 있게 장장 6개월간이나 장기체류를 하면서 농사의 기본 교육과정을 배우게 되는 이곳은, 마을 만들기 사업을 통해 농촌공동체를 되살리고 농업의 6차 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어 우리 농업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농촌마을이다. 특별히 이 날 내가 개강식의 진행자 자리에 서게 되어,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그곳에 앉아있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노라니 교단에 섰던 나의 인생 1막과 그 이후에 찾아온 인생 2막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인생 1막은 학교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주어진 커리큘럼에 따라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되었지만, 퇴직 이후의 삶은 스스로 찾아내고 개척해가며 일구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설렘과 막막함이 교차되었다. 인생 후반의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컸지만 위기의 순간에도 실망하지 않고 힘을 냈던 평소의 나를 기억하며,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주변에 먼저 은퇴하여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조언을 구하면서, 여러 경로를 통해 정보를 찾아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마침 대학 선배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규모가 큰 학원을 운영하고 있던 선배의 제안은 학원에 와서 논술과목을 맡아주면 좋겠다는 것. 감사하기는 했지만 학교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편할 수도 있는 그 제안을 거절한 것은, 다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나쁘진 않지만 이제는 새롭게 도전할만한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국어 교사로서 36년이란 세월을 교실 안에서만 지내다시피 해서, 다시 시작하는 일은 열린 공간에서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그렇다면 시간 내서 그곳에 가보도록 해. 그곳이라면 도전해 볼만한 가치있는 곳이라 생각하니까”

후배의 고민을 귀담아 들어준 선배가 추천해 준 곳, 그곳을 직접 찾아가 스스로 확인해 보라는 선배의 말을 듣고 찾아 갔던 곳이 바로, 빗돌배기란 이름을 가진 농촌마을이었다. 농가가 스무 집도 안 되어 보이는 규모가 작은 마을이었는데, 마을 입구부터 논이 시작되어 추수를 기다리는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마을 뒤편으로 보이는 동산에는 잘 익은 단감들이 가을 정취를 담뿍 풍겨주고 있는 그런 곳이었다. 좁은 길 한쪽에선 코스모스 꽃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서는 낯선 도시인을 반겨주며 수줍게 웃고 있었다.

체험전 오티 진행. 사진=신금희 제공)<br>
(체험전 오티 진행. 사진=신금희 제공)

오래 잊고 지냈던 고향마을이 생각나는 그곳, 바로 그날! 나는 그곳에서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었다. 마을 공터에 주차되어 있는 대형버스 몇 대와 유치원 차량, 그리고 그곳에서 마을이 떠나가도록 웃으며 신나게 활동을 하고 있는 초등학생들을 보자 궁금함이 더해가기 시작하였다. 어린이용 낫을 이용해 벼를 베고, 탈곡기 앞에서 나락을 털어내며, 나락의 껍질을 벗기면 속살을 드러내는 하얀 쌀을 보며 소리 지르는 모습, 단감나무 밑에서는 주렁주렁 열려있는 단감을 따는 모습, 비석을 치고 투호 놀이를 하며 신나게 전통놀이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곳곳마다 지도사로 보이는 분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고구마 밭에서는 연세가 꽤 들어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얼핏 보아도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들과 고구마를 캐며 즐거워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고구마 줄기 수확. 사진=빗돌배기마을 제공)

끌리듯이 마을 안으로 들어가 보니 단감 과원 한 쪽에서는 젊은이들이 모여 각각의 나무에 달린 여러 모양의 단감을 두고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단감은 한 품종이려니 생각하고 있던 참인데, 그곳에는 ‘다품종 단감 교육장’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완전 단감이니 불완전단감이니 하는 용어들도 들리고 어떻게 그것들을 구별하는지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그 자리가 어찌나 진지해 보이는지 나도 모르게 그 뒤편에 서서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누구인지 모를 한 낯선 아낙이 젊은이들 뒤에 꽤 오래 서있는 것을 보고 궁금했는지 지도를 마치신 분이 다가와서 인사를 하는 바람에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선배의 이름과 찾아 온 연유를 말하니 반갑게 맞아준 그분이 바로 이곳의 대표일꾼이셨다. 농과대학 학생들이 실습교육을 마친 시간이라며 직접 마을의 이곳저곳을 안내해주며 마을에서 벌어지는 농촌과 농업에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 을 들려주었다. 농촌마을에서 벌어지고 일과 잠시 귀동냥을 한 농업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상상 밖이어서 좀 더 솔직한 마음을 표현해본다면 놀라움 그 자체였다. 마을사람들의 협력과 농업농촌을 배워보고자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지만 아직도 할 일이 태산 같다며 웃음 짓는 모습이 참 선해 보이는 분이었다. 대화의 마무리에서 나처럼 농업과 농촌에 대해 1도 모르면서 어쩌면 무모하기까지 한 결심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서슴없이 기회를 주어보지만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일이 농촌일이라 포기하고 돌아간 사람이 더 많았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식품, 관광, 교육, 치유 등 다기능 농업으로 이 분야가 확장되고 있어 다른 산업에 비해 농촌이 고용창출 잠재력이 높은 곳으로 기대되고 있다는 것도 새로 알게 된 사실이고, 농업에 대한 뜨거운 열정에 감염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셨지만 이 농촌마을에선 막내일꾼입니다.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 이해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농촌과 농업의 기본부터 공부해야 합니다. 기본이 튼튼해 야 오래 가고 멀리 가실 수 있습니다.”

마을 일에 합류한 날, 함께 일하게 될 분들에게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대표로부터 들은 이 말은 오래도록 그곳에서 나를 지탱하며 지켜낼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 농촌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시절부터 서울에서 지내다가 선친의 단감농장을 물려받기 위해 귀향하여 본격적으로 농사일에 뛰어든 후, 스스로 배움의 시간을 많이 가지며 연구를 거듭한 끝에 농업농촌의 가치를 전파 하는 일에 앞장서게 된 마을대표의 리더십이 조용한 농촌마을을 깨워주었다 한다.

(현장실습교육장 지정서, 농촌체험휴야마을 사업등급결정서)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잘 살려서 노력한 결과로 팜스테이마을, 녹색농촌체험마을을 거쳐 농어촌체험휴양마을로 지정을 받은 후, 1등급 마을로 평가를 받게 되었으니 찾아오는 이도, 배우러 오는 이도 많아졌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 공존하는 농촌의 모습으로, 또한 농업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곳으로 성장하면서 농업 농촌에 존재하는 가치들을 찾아내어 이를 활용하니 도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농촌체험학습을 원하는 학교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농림부의 현장품목실습장(WPL)으로 지정된 이후에는 국내에서는 물론이요 외국에서까지 교육을 받으러 오는 사례가 생겨 더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 마을이 이제는 우리나라 농촌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위상까지 갖추게 되었으니 이곳에서 내가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농어촌공사 또바기팜족 외국인교환학생 체험. 사진=빗돌배기마을 제공)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는 마음으로 임했던 시간의 연속이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힌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긴 했지만 쉬 운 일이 아니었다. 농촌자원을 활용한 체험의 종류도 80여 가지나 되어서 그것에 익숙해지기에는 막대한 시간과 노력과 집중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처음부터 체험을 지도하는 자리에 설 수는 없어서 보조역할을 하며 배우기 시작했고, 체험이 많은 가을철이라 매일 계속되는 체험활동 지도에 녹초가 될 정도로 피곤 한 하루하루였다. 같은 체험이라도 체험자의 부류에 따라 활동하는 방법도 조금씩 다르고 대처하는 방법도 배워야했다. 도농 교류의 일환으로 찾아오는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의 인원수가 가장 많았고 간혹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 다문화가족들, 선진지 견학 코스로 찾아오는 다른 농촌마을 사람들, 관광목적으로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까지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마을을 찾아와 체험도 하고 교육도 받으며 농촌마을을 즐기고 갔다. 어떤 그룹에게도 항상 최선을 다하고 친절과 배려로 만족스럽고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마을 일꾼들을 보면서 그들과 일하는 것이 참 자랑스럽고 좋아서 피로는 쌓여가도 힘든 줄을 모르고 지내게 되었다. 체험이 뜸해지는 한여름이나 겨울에는 농업인이나 귀농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농업교육, 농고 농대생 그룹의 현장실습교육이 활발하게 실시되었는데, 시간이 가능한대로 그 많은 교육들에 합류해서 농업교육도 받았다. 토양관리의 기본부터 시작해서 재식과 정식의 기초, 생산 기술에 이르기까지 이때까지 모르고 지냈던 많은 것들에 대한 교육도 반복해서 듣고 익히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이 마을은 농사만 잘 지으면 되는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농촌에 존재하는 모든 유, 무형의 자원을 바탕으로 농업의 6차 산업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곳이어서 배우고 익히는 순간마다 기대와 설렘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농촌체험 참가한 유치원생들. 사진=빗돌배기마을 제공)

그렇다고 만사가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나이 많은 막내가 의욕은 앞서는데 서투른 점 이 많아서 실수 연발! 전기차를 몰다가 화단으로 돌진하여 사고를 내기도 하고, 오븐에서 단감파이를 구워내다가 팔을 데이는 부상도 입었다. 무거운 것을 거뜬하게 들 수 있는 체력이 못되어 젊은이들의 힘을 빌려야 되고, 똑같이 배웠는데도 따라가지 못해 쩔쩔매는 일들이 생기면 나이 탓인가? 일에 대한 감각이 무딘 건가? 하는 자조적인 마음이 들기도 했다. 견디기 가장 힘들던 시기는 한여름이었는데, 푹푹 찌는 더위에 시들어가는 농작물에 물을 주고 다니느라 죽을 만큼 고생도 되었고 풀과의 전쟁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고구마 줄기를 걷어내다가 고꾸라지듯이 넘어져 크게 다칠 상황을 간신히 모면한 적도 있어 주변 사람들을 걱정시켰지만, 차츰 세월이 흐르니 이제 어지간한 일들은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학교에서는 존경받는 스승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 농촌마을에서의 내 모습은 막 결음마를 시작한 아이와 다름없다. 어느 날부터 조금씩 걷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다른 분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 가 많다. 그래도 학교에서 지낸 시간이 많은 덕분인지 아이들과 함께 체험활동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즐길 여유까지 생겨 행복하고, 익숙하게 지도할 수 있는 체험의 종류도 많이 생기니 그나마 쓸모 있는 막내 가 되어가는 것 같아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다만, 농사일은 아직도 배워야할 것이 한참 많아 까마득하긴 하다. 누가 햇볕과 물과 바람만 있으면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했을까?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 농부가 흘리는 땀과 수고를 생각하면 농부의 발자국을 들으며 농산물이 익어가고 자란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가족체험. 사진=빗돌배기마을 제공)

이제는 다른 마을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찾아온 이웃농부님들이나 도시민들을 안내하여 우리의 농산물과 마을에서 벌어지는 여러 활동들을 소개해줄 정도는 되었고, 잘하신다고 격려해주는 마을 분들이 있어 더 힘이 난다. 학교는 그만두어야 하는 시기가 정해져 있었지만 이 일들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끝까지 할 수 있는 일이니 좀 늦어지더라도 차분하게 이 길을 걸어가리라 생각하고 그것으로 힘을 얻는다. 열심히 하노라면 농업농촌의 새로운 가치 창조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도 생길 것이고, 지역 자원과 문화 가치를 활용할 아이디어도 생각해낼 수 있고, 농촌공동체를 위한 다양한 활동에도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다.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의 직격탄은 농촌에서도 피해갈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 되었다. 코로나에 대비한 많은 전략을 세우기도 하지만 농업 농촌의 가치를 알리고 전통문화의 전승과 보급에도 의미가 있었던 체험 현장이니 만큼 많은 생각과 고민이 따르게 된다. 거리두기로 인해 농촌을 찾아오는 단체 체험활동 을 할 수 없으니 학교로 찾아가 소규모로 활동하는 체험들을 기획하고, 대신에 가족단위로 농촌을 찾아오는 프로그램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렇게라도 농촌에 와서 알찬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많은 가족들의 신청이 줄을 잇고 있다는 점이다. 해마다 계속되어 오던 수많은 농업교육들도 비대 면 교육에서 조심스럽게 거리두기를 하며 대면교육으로 시작되고 있다.

(2021청년귀농장기교육 원예치유프로그램 체험. 사진=빗돌배기마을 제공)

쉽지 않은 결심으로 6개월 과정의 ‘청년귀농 장기교육’에 참가한 청년들이나 그들의 교육을 뒷바라지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정말 뜻있고 힘이 되는 시간들로 채워질 것이라 기대가 된다. 농촌과 농업의 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를 희망해서 배우기를 시작하는 저 젊은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농촌농업의 미래가 밝음을 예감할 수 있다. 오늘도 우리 마을의 일꾼들은 위기의 때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연구하고 있으며, 하루하루를 농촌이 ‘농촌다움’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가꾸며 돌보는 시간으로 보내고 있다.

2020년에 개인적으로는 이곳의 일의 특성상 주말을 반납한 대신 주중의 시간을 이용할 수 있는 이점을 이용하여 다문화학습 지원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관광안내통역사에 도전하는 다문화가족의 학습을 돕고 정서적 지원이 필요한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도 너무나 유익하고 소중했다. 할 수 있는 한 이런 일들을 계속하고 싶어서 올해도 새로운 다문화가족과 한 팀이 되어 그들을 도울 예정이다. 또한 마을에서는 틈새 시간을 알뜰하게 활용하여 마을의 일꾼들 전원이 ‘농촌마을해설가’ 교육과정을 이수하여 모두 자격증을 땄다. 모두가 잘 할 수 있는 일들이지만, 더 많이 배워서 익혔으니 새롭게 거듭나는 농촌마을을 더 잘 알릴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기분 좋게 수료한 교육이었다.

(코로나이전의  활동모습. 사진=신금희 제공)
(코로나이전의  활동모습. 사진=신금희 제공)

이렇게 빗돌배기마을의 막내는 성장을 위해 발돋움 중이다. 내 삶의 마지막 현장이 이곳이 되길 소망하며 우리 농촌을 후손들에게 잘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나의 남은 시간들은 이 일을 위해 쓰고 싶다. 교육실장이라는 직함을 받기는 했지만 이곳에서 나는 악착같이 선배들 뒤를 따라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막내이다. 부르기 전에 달려가고, 많이 배우려 노력하고, 먼저 알아서 일을 찾는 눈치 빠른 막내가 되려한다. 내가 함께 하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나의 인생후반전을 위해 선택한 농촌과 농업의 발전을 위해 작은 힘이라 도 보탤 수 있다면 더 이상은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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