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작 성공수기] 나의 인생이모작 도전기...장려상 '안정수'

김남기 기자
  • 입력 2021.10.28 15:42
  • 수정 2021.10.28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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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경상남도에서 실시한 제1회 신중년 인생이모작 성공수기 공모전 수상작품을 연재한다. 연재될 수상작품들은 퇴직 후 삶 준비, 재취업 성공사례, 사회공헌활동, 재능나눔 경험 등을 공유하고, 신중년 세대의 성공적인 인생 2막을 엿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나의 인생이모작 도전기

장려상 '안정수'

2016년 그해 여름은 긴 장마로 무척이나 무덥고 짜증이 났다.
믿고 있던 선배의 실수. 그로 인한 사업실패...
어지간한 일들에는 쉽게 흔들리지 않던 나에게도 그것은 큰 충격이었다.

(사진=안정수 제공)

25년 여간을 꾸준히 학원생활만 하였던 나는 꽤 괜찮은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선배의 말에 순간의 욕심으로 전혀 모르는 사업에 뛰어들어 채 1년이 지나기도 전에 혹독한 대가를 안아야만 했다. 선배의 도주와 사업장 정리 등으로 정신없이 두어 달을 지낼 무렵부터 대출금에 대한 독촉이 시작되었다. 확실하지도 않은 꿈같은 미래의 소득만을 생각하고 여기저기서 끌어다 쓴 운영자금, 생활비, 대출과정이 간편하여 빌려다 쓴 3금융권의 대출금이 문제였다. 이자도 이자이지만 거의 매일같이 걸려오는 독촉 전화는 올가미처럼 나를 옭아매 들어왔다.

ⓒ게티이미지뱅크

2016년 겨울의 문턱에 들어설 때쯤 무엇이라도 하여서 이자라도 갚아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대리운전을 시작하였다. 대리운전은 예상대로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일도 일이지만 혹여라도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어쩌나 늘 노심초사였다. 소위 ‘콜’이라는 것이 뜨면 길이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휴대폰에 장착된 내비게이션을 따라서 손님이 계신 곳까지 걸어가야 했기에 눈은 늘 휴대폰을 보며 길을 뛰다시피 걸었고 그러다 보니 무언가에 걸려서 넘어지기도 하고 길이 아닌 곳으로 잘못 들어서 한밤중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헤매기도 부지기수였다. 어쩌다 제법 두둑한 대리요금비를 받을 수 있는 손님을 태우고 신이나 목적지까지 바래다 드리고 나면 차도 다니지 않는 외진 곳이라 두 시간여를 걸어 나오기도 하였다. 그렇게 한 달여를 죽어라 일하니 보험료와 회사납부금 등 이것저것 비용을 제외하고 대략 이백여만 원의 수입이 생기는 것 같았다. 저녁 5시경 일을 시작하여 마지막 순환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새벽 5시쯤. 마지막 순환차를 놓쳐버려서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사상이나 마산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날은 아침10시를 훌쩍 넘겨 집에 도착하였다.

대리기사 생활을 여섯 달째 마칠 때 즈음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다시 학원 강의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넣어보았다. 사실 대학을 졸업하고 25여 년을 계속 학원에서 강의하며 나름대로 학부모님들과 학생들에게서 인정을 받아 제법 많은 소득을 올릴 수도 있었고, 그로 인해 넉넉한 생활을 할 수도 있었으나 반복되는 일상에서 오는 무료함도 있었고 사교육이니 뭐니 하며 들려오는 주위의 소리가 싫고 자괴감에서 다시는 학원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마음으로 선배의 사업 제안을 받아들였던 터라 다시 강의를 시작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기는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몇 군데 면접을 보았을 때쯤 일전에 만나 뵈었던 창원의 모 학원 원장님에게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의를 받았다. 그렇게 다시 학원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때마침 기말고사 준비기간이라 생각보다 업무량이 만만치 않게 많았다. 오후 3시에 출근하여 4시경부터 학교별 수업을 진행하고 고3 수업까지 모두 마치면 12시(창원은 학원 교습 시간이 10시까지였으나 보통 불법적으로 12시까지 수업한다). 통학버스를 운행할 수 없어서 학생들을 하교시켜주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면 거의 1시 30분쯤.

하지만 적지 않은 보수에 달콤한 제안까지 더해졌던 터라 정말 죽어라 열심히 수업하고 원생 관리, 강사관리 등을 하였다. 그렇게 20여 일이 지날 때쯤 아침에 일어나니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날은 오후 1시에 교무회의가 예정된 날인 터라 원장에게 몸이 좋지 못해 다소 늦을 것 같다고 양해를 구하고 겨우겨우 운전하여 학원 근처에 주차하고 학원을 향하는데 다리에 힘이 없고 몸이 자꾸만 한쪽으로 치우친다. 계단난간에 의지하여 힘겹게 2층 교무실로 들어서니 원장이 얼굴이 많이 안 좋아 보인다고 근처 한의원에 가보자고 하며 부축하여 근처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한의사 선생님은 볼 것도 없이 지금 바로 큰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받아보라고 하신다. 부랴부랴 원장의 차를 타고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인 파티마병원 응급실에 도착하니 점차 의식이 희미해져 갔다. 어찌어찌 등록을 마치고는 정신을 잃었다. 

ⓒ게티이미지뱅크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었고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뇌경색이라고 이 정도 상태 같으면 사전에 많은 징후가 있었을 건데 왜 이제 왔냐고 나무라신다.

그렇게 병원에서의 두 달간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보름쯤 지나고 다리에 약간씩 힘이 들어와 걷기 연습을 시작할 무렵부터는 병원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학원이라는 곳이 4대 보험이니 하는 것과는 상관없는 직종(사실은 가입하여야 하나 거의 대부분의 학원이 미가입)이다 보니 산재처리도, 별다른 보상도 받을 길이 없었다.

참 인간사 알 수 없는 것 같다. 사업실패 후 죽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막상 병이 들어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었다. 병원에서 약간씩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어 퇴원하게 될 때 형제들에게 나의 현재 경제 상태를 들켜버렸다. 사실 어릴 적부터 재주가 많아 부모님과 친척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랐고 젊은 시절 학원 강의로 유명세를 타며 적지 않은 재산도 모았었기에 자존심 때문에 사업실패와 그로 인한 채무독촉, 대리운전 이런 것은 형제들에게 일절 발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교수를 하는 동생이 하룻저녁을 함께 지내며 많이 울었다. 어릴 적 자신의 눈에는 영웅처럼만 보였던 우리 형이 이렇게 되어있다니 속이 상한다고, 그러고는 나의 채무를 대신 변제해주었고 매달 일정 금액의 생활비까지 보내주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렇게 2년여가 지났고 꾸준한 재활 운동 덕분인지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을 때쯤 문득 내가 살아온 지난날에 관한 생각과 앞으로 어찌 살까 하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면 할수록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내 지나온 시절이 오직 나만을 위해 살았고 어린 시절 내가 꿈꿔왔던 모습과는 차이가 많은 삶을 살고 있었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 의협심과 사명감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고 봉사하는 생활을 했었고 또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생활이 윤택해질 무렵부터 교만해져서인지 그렇지 못한 생활을 해왔던 것 같다.

(김해시 스마트씨티 조성 시민참여단 위촉식. 사진=김해시 제공)

그맘때쯤인 것 같다. 그날도 거리를 걸으며 회복 운동을 하고 있을 때 김해시에서 ‘스마트씨티 조성 시민참여단’을 모집한다는 현수막을 보았다. 발병 이전부터 모두 알 만한 지인의 영향으로 도시재생에 관심을 갖고 있던 나는 참여 신청을 하였고 그렇게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닌 공동체를 이해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진=안정수 제공)

이듬해 봄 그러니까 2020년 5월 김해시 인재양성과에서 진행하는 평생학습 매니저과정을 수료하게 되고 그 후 학습매니저로 활동하며 많은 이웃을 만나고 함께 고민하며 점차 우리 공동체의 발전 방향에 대해 해법을 찾아가기 시작하였다.

또한 여성친화도시 시민참여단 활동 등을 하며 시민사회에서 공익활동을 하시는 많은 분을 만나 친분을 쌓아가다 보니 의기투합하여 돌봄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경로당과 주간보호센터를 방문하여 어르신들께 스포츠댄스도 가르쳐드리고 노래도 함께 부르고 하루를 재미있게 어울려 드린다. 좋아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의 모습을 보면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가 생각이 나서 생전에 잘해드리지 못했음을 반성하게 되나 늦게라도 대신 마음을 전해드리는 것 같아서 좋았다.

(김해시장 표창장. 사진=안정수 제공)

2020년 10월 시 보조금 사업으로, 역량 강화 교육을 계기로 함께했던 분들과 ‘어울림 예술단’이라는 자원봉사단체를 만들어 그간 해오던 봉사활동 프로그램에 연극과 악기연주, 한궁 등 다양한 요소를 가미하여 더욱 풍성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있다. 이러한 노력과 활동 덕분인지 연말에 우수 시민으로 추천을 받아 김해시장님께서 주시는 표창도 받게 되었다.

(신중년기자단 '청춘리포터' 발대식. 사진=안정수 제공)

2021년 새해의 시작과 함께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더 적극적으로 활동을 해보고 싶어 양성평등에 관한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경남인생이모작지원센터의 청춘리포터 신중년 기자로도 선정되어 활동할 예정이다.

이러한 삶에 대한 변화된 생각과 모습들이 내 인생 후반전을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 또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빠가 항상 노력하고 부단히 변화하고자 애쓰고, 삶에 항상 진심이었다는 것을 딸내미가 알아주고 이해해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나의 인생 이모작은 성공적으로 출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지금도 건강에 자신이 생기지 않아서 이런 나의 다짐과 활동들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생이 다하는 날까지 내게 주어진 하늘의 명령이라 생각하고 한순간 한순간 최선을 다해 살고 부끄럽지 않은 인생 후반전을 보내고 싶다.

지금은 ‘코로나 시대’이다. 어떤 인류학자는 “어쩌면 우리가 과거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서로가 조금만 양보하고 서로를 생각하고 사랑한다면 이 힘든 세상에서도 조금의 희망은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공동체 모임으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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