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반격] 문인ㆍ시낭송가ㆍ교사 출신 시니어들이 만든 '마들극단' 1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10.28 17:36
  • 수정 2021.11.04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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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어, 파고다 공원에 오다'

주인공 '마들극단' 단원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그토록 울부짖는 것은, 
거대한 바보들의 무대에 서는 것이

너무 서글프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극이 너무 재미있어요.” 촬영=윤재훈 기자)
(“우리는 연극이 너무 재미있어요” 마들극단 단원들.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이 가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리어왕’을 각색한 '리어, 파고다 공원에 오다' 극을 준비하는 모임이 있다고 한다. 리어왕은 누구인가?

탐욕스럽고 간교한 큰딸과 둘째 딸에게 왕국을 넘겨주고, 결국 딸들에게 버림을 받아 분노에 찬 광인이 되어 광야를 떠돌던 왕이 아닌가. 첫째 딸은 질투에 눈이 멀어 둘째 동생을 독살하고 자신도 자살하고 마는 불행한 가계. 그것을 제공했던 무능한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막내딸 코델리아도 결국에는 가련하게 죽음을 당하고 마는 한 가족사의 비극적인 이야기.

​마치 우리 주위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생생하게 다루고 있는 것 같다. 부모의 재산을 사이에 두고 자식들이 서로 싸우고, 증오하고, 뿔뿔이 헤어지는 그런 스토리 말이다.

특히나 재벌가 등에서 왕자의 난이라 하여, 저희끼리 아귀다툼을 하는 것을 우리는 뉴스를 통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수백 년을 뛰어넘은 셰익스피어의 통찰이 다시 한 번 돋보이는 희곡이다. 그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그토록 울부짖는 것은,
거대한 바보들의 무대에 서는 것이 너무 서글프기 때문이다.”

(박정근 연출가. 촬영=윤재훈 기자)

‘마들극단’이라고 한다. 올해 대학을 정년한 박정근 연출가가 이끌고 있다. 특이하게도 배우 대부분이 지천명을 넘긴 시니어들에 의해 준비되고 있다. 연출가에서 이 극에 대한 변을 들어본다.

박정근 교수는 올해 대진대 영문과를 정년 퇴직했다. 셰익스피어를 전공했으며, 셰익스피어 학회와 협회에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정년 이후 현재 살고 있는 도봉구에서, 문화 운동을 펼치고 싶다고 한다. 시민들에게 문학작품이나 연극 등에 참여할 수 있는 운동을 펼쳐, 문화적으로 소외된 이 지역에 그런 온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시니어들에게, 그런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말이다.

평생 셰익스피어에 관한 여러 편의 논문를 쓰고, 연극을 해오면서 한국 관객들에게는 좀 낯선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맞게 각색하면 좋을 것 같아, 영국의 왕과 한국 재벌 간의 비슷한 갈등을 연극적으로 패러디(재현)했다고 한다.

필자는 2년 전인가 그가 했던 셰익스피어 원어 연극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영어로 하기 때문에 전공자가 아니면 잘 알아듣지 못하겠고, 자신들만의 리그에서 지식자랑만 하고 있는 것 같은 회의감이 들었다.

연출가는 그때는 사실 영문과 학생들과 전문가들을 위한 공연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실 한국 관객들과 이해의 소통이 좁은 것 같아, 이번 극을 준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올해 월간문학 희곡으로 등단한 작가이기도 하다.

(조한필 회장과 세 딸들. 촬영=윤재훈 기자)
(조한필 회장과 세 딸들. 촬영=윤재훈 기자)

이번 연극은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의 하나인 리어왕을 패러디한 작품이다. 여기서 주인공인 조한필 회장은 마치 리어왕처럼 딸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비극적으로 죽는 인물이다. 원전과는 약간 다른 양상이지만 재밌다. 돈키호테처럼 날뛰는 신인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 재벌들이 자식들에게 재산을 다 물려 죽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모습들도 보여주고 싶단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존경받은 재벌이 없고 지탄만 갈수록 팽배해지는, 슬픈 대한민국의 재벌가에 경종을 울려주고 싶다고 한다.

여기에 ‘한국사회의 노인 소외 문제와 나이 들어 겪게 되는 파국적인 경제난’, 이런 문제들에 대한 각성을 시켜주고 싶다고 한다.

 

공연시간은 다음 주 11월 6일, 3시, 6시(2회 공연), <창동극장>에서 한다. 
코로나 때문에 40명 인원 제한이 있으며, 선착순 입장할 수 있다.

(배우와 연출자. 촬영=윤재훈 기자)
(출연진과 연출자. 촬영=윤재훈 기자)

출연진들은 주로 시민들로 이루어진 극단이다. 문인, 시낭송가, 교사 등 여러 직업군에 시니어들이 모여, 함께 연극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시민극단을 만들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연극은 좋아하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데, 너무나 즐겁게들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시니어들이 극단이나 합창단, 그림 등, 여러 예술 분야에 참여하여 활기찬 노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관객에서만 벗어나 참여자로서도 함께 해보면, 더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비서실장과 노인, 큰 딸. 촬영=윤재훈 기자)
(비서실장과 노인, 큰 딸. 촬영=윤재훈 기자)

배우들이 가장 어려워 하는 문제는, 대사를 외우는 것이다. 어느 정도 나이도 먹었으니, 기억력 때문에 더욱 힘들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대사량을 좀 줄이고, 음악, 무용 등, 다른 예술장르들을 섞어 여러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고 한다.

(둘째 딸과 박카스 아줌마 외. 촬영=윤재훈 기자)
(둘째 딸과 박카스 아줌마 외. 촬영=윤재훈 기자)

관객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도 있단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경제적인 발달을 자랑하고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세계 자살율 1위 국가이다. 갈수록 삶의 질에서 최하위로 추락해가고 있다.

과거에 우리 민족은 두레 문화 등 공동체가 살아있는 사회였다. 한 마을이 서로 자식들을 키웠다. 그런데 지금은 앞집과도 인사도 하지 않는 그런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다. 물질만이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되는, 가치가 전도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세대 간의 소통도 안되고, 좌․우가 자신들의 이익에만 따라 첨예하게 갈라져 있는 시대다. 마치 우리 국토처럼 말이다.

이런 수상한 시대에 함께 어울려 고민하고, 보다 인간적인 문화적 접전을 찾아가고 싶어 시작된 모임이라고 한다.

(재산 다툼 중인 두 딸과 바라보는 막내 딸. 촬영=윤재훈 기자)
(재산 다툼 중인 두 딸과 바라보는 막내 딸. 촬영=윤재훈 기자)

처음에서 ‘마들 시민극단'으로 시민들만 참여했지만, 이제는 전문가들과 함께 해나가는 그런 장으로 만들어 보고 싶단다. 그래서 이름도 ’마들문화 예술 연구소‘로 바꿨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장르의 문화을 접목시킬 예정이며, 도봉구에 많은 지원도 받고 있다. 이제 꼭 도봉구뿐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 넓혀 더욱 진지한 극단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고 한다.

(’다시 부르는 자유의 노래, 김수영.‘ 출연진들, 촬영=윤재훈 기자)
(’다시 부르는 자유의 노래, 김수영.‘ 출연진들, 촬영=윤재훈 기자)

이 연극뿐만 아니라, 이번 11월 28일날 토요일 다른 연극도 준비되고 있다고 한다. 올해 ’김수영 탄생 100주년‘인데,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다시 부르는 자유의 노래, 김수영”을 무대에 올린다고 한다. 이 작품은 자신이 올해 월간문학에 등단한 작품이기도 하다.

김수영은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인 중에 한 명이며, 특히 그가 이곳 도봉구 도봉산 밑에서 양계장을 하면서 살았다. 그래서 방학동에 김수영 문화관도 건립되어 있다.

이 문학관을 중심으로 ’김수영 탄생기념 학술대회‘와 다시 부르는 자유의 노래가 개최된다고 한다.

사실 김수영 시가 난해하여 시민들이 접근하기가 어려운데, 이번 연극을 보며, 김수영의 시와 삶에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우렸다고 한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1968. 5. 29> ’풀‘, 김수영

(14년 동안 발행 중인 ’윌더니스‘ 문예지. 촬영=윤재훈 기자)

그는 일복이 많아서인지 ’윌드니스‘라는 반년간 문학 잡지도 지역 문인들을 중심으로, 벌써 14년째 해오고 있다고 한다. 그 출판 기념회와 공연을 창동극장에서 공연 전에 함께 개최한다.

시민들이 문학의 문턱을 너무 높고 어렵게만 생각해, 문인들과 함께 창작과 교육, 첨삭 등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문예지를 지향한다고 한다.

거친 황야에서 들풀이 자라듯, 그런 민중들의 작품을 실고 정신을 키워나가고 싶단다.

연극 '리어, 파고다 공원에 오다' 시니어 연극배우들 2 이어집니다.

 

공연시간은 11월 6일, 3시, 6시(2회 공연), <창동극장>에서 한다. 
코로나 때문에 40명 인원 제한이 있으며, 선착순 예약하면 입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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