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63] 남자 혼자 1달 살기

오은주 기자
  • 입력 2021.11.1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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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2019년 조연현문학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인수씨는 인터넷으로 예약한 강원도 바닷가의 한 펜션을 무사히 찾았다. 자가용을 가져오지 않고 가까운 강릉역에서 택시를 타고 들어왔다. 달랑 작은 짐가방 한 개뿐이라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코로나 백신접종을 완료한 아내가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정어머니와 언니를 보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1달 정도 머물다가 온다기에 이참에 인수씨는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강원도 한 달 살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남자 혼자’라는 사실과 ‘한 달 살기’라는 두 가지 명제가 그리 어려울 것 없어 보이는 조합이지만 나이가 64세 먹은 남자고 생전 처음이라면 자질구레한 난관이 예상되기도 했다. 인수씨가 애초에 한 달 살기를 꿈꾸었던 이유는 거창한 철학적 의미를 추구함이 아니고 지금의 삶을 뒤집고자하는 의도도 없었다. 3년 전 발병한 갑상선초기암을 치료하고 완치판정을 받은 지난달까지 그동안 자신도 힘들었지만 뒷바라지로 고생한 아내에게 진정한 휴가를 주고 싶었다.

“아내의 최종역할은 대개 간호사라더니 당신 벌써 나한테 간호사역할을 시키는 거예요?”라고 불평하면서도 아내는 충실하게 가장 중요한 식단관리를 해주고 운동에도 동참해 주었다. 병이 들어서 위안을 찾고자 패잔병처럼 바닷가를 찾는 게 아니고, 평생 호르몬 약을 먹어야하는 것 외에 다른 치료가 더 이상 없고 ‘위드코로나’ 시기도 왔기에 아내에게 휴가차 친정식구가 많이 살고 있는 미국행을 권했다. 인수씨 자신도 코로나로 집에 갇혀 있으면서 치료에 전념하느라, 멀어진 인간관계도 많아진 터라 다시 타인과 만남의 광장에 나서기 전에 재부팅이나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방 한 칸과 거실, 작은 주방으로 이루어진 10평 남짓한 펜션의 실내는 제법 정갈해서 1달간 머물기에 적합할 것 같았다. 5분 정도 걸어가면 바로 바닷가라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바닷가에서 보내는 일상에서 해보고 싶은 소위 버킷리스트도 많았다. 산책하기, 자전거 타기, 요리, 독서, 낚시… 사실 서울의 아파트에 살면서도 못할 일들은 아니지만 같은 행동이라도 바닷가 산책하기, 바닷가 일주도로에서 자전거 타기, 바다 낚시 등으로 ‘바다’를 붙이면 아주 의미가 색다르게 다가왔다.

짐을 풀자마자 당장 오늘 저녁부터 시작될 ‘혼밥’을 위한 장을 보기로 했다. 펜션에서 걸어갈만한 거리에 위치한 작은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는 일은 설레는 선택의 시간이었다. 쌀은 한 봉지를 사고, 반찬가게에서 강원도 특유의 나물반찬들을 사고 아침식사용으로 요구르트와 과일 등을 몇 개씩 샀다. 가장 쉬운 콩나물국을 끓여서 사온 반찬들로 저녁식사를 하고 나자 초겨울의 밤은 빨리 깊어졌다. 강원도에 잘 안착했노라는 소식도 전할 겸 아내와 영상통화를 하니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 처가 식구들이 작은 스마트폰 화면 뒤로 저마다 얼굴을 내밀고 인사를 했다. 다들 잘 지낸다니 다행이다. 하나뿐인 딸네도 전화를 하려다 어린 외손주가 벌써 잠을 잘 것 같아 그만 두었다. 일인용 소파 깊숙이 몸을 누이자 왠지 지나온 64년의 삶이 등 뒤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 같았다. 등 뒤에서 감싸오는 세월의 무게가 무겁지만은 않고 다정한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제사 동해 바다의 파도 소리가 밤의 정적을 헤치며 다가왔다. 첫째날 밤은 이렇게 오고, 인수씨는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모두 편안하길!”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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