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작 성공수기] 식당 아줌마에서 강사의 삶이 되기까지...감동상 최애자

김남기 기자
  • 입력 2021.11.19 11:48
  • 수정 2021.11.19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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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경상남도에서 실시한 제1회 신중년 인생이모작 성공수기 공모전 수상작품을 연재한다. 연재될 수상작품들은 퇴직 후 삶 준비, 재취업 성공사례, 사회공헌활동, 재능나눔 경험 등을 공유하고, 신중년 세대의 성공적인 인생 2막을 엿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식당 아줌마에서 강사의 삶이 되기까지

감동상 '최애자'

(푸드테라피 강사 최애자. 사진=유튜브 맘먹는TV 캡처)

내 나이 서른 살 중반이 되던 해에 경남 진해에서 열 평 남짓한 가게를 임대해 식당을 시작했다.

우체국에서 일하고 사무실에서 행정직 경험이 전부였던 나는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결과 어떤 날은 손님 한 테이블 받기도 어려운 날이 있었다. 분명 시작하기 전, 머릿속으로 고민을 하고 연필로 메모장에 적어가면 구상을 했던 식당이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주변 가족들은 응원은 커녕 마음에 대못을 박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졌다.

“거봐라. 집에서 살림이나 하지, 뭐 하러 시작해가지고 이 고생을 하노.”

“식당 아무나 하는 줄 아나. 지금이라도 얼른 때려치워라.”

그런 말을 듣고 있으니 어느 순간부터 독기가 올라왔다. 보란 듯이 성공해 보이고 싶었다. 어설픈 요리는 나부터라도 돈 내고 사먹지 않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부터 다시 시작했다. 요리책을 뒤집어 자료를 찾고, 주변 맛집이라 소문난 식당들을 다니며 음식 맛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몇 날 며칠 가게 문을 닫고 했기에 더욱 간절할 수밖에 없었다.

사계절 싱싱한 재료를 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과 바닷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를 고민한 끝에 최종적으로 아귀를 선택했다. 사실 내 입맛에 잘 맞는 재료였던 게 또 다른 이유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음식이어야 지속적으로 만들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다. 잘 짜여진 그물처럼 내 생각은 적중했다. 서서히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기적이 일어났다. 매장 문밖에 대기자가 생기기 시작했고 예약을 하지 않으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맛집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대박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사장님~저녁에 예약 좀 할게요.”

“이모~여기 아귀 수육 4인분이요.”

“아줌마~밥하고 반찬 좀 더 주이소.”

꿈속에서도 등장하는 손님들이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며 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진해에서 12년 동안 아귀수육 식당을 운영했다. 사실 한동안 돈이 들어오는 소리에 피곤함도 모르고 살았다.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 시작했던 식당이었기에 무조건 성공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세상일이 다 그렇듯 살아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인생이 내 뜻대로 다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변에 아귀수육 소문이 나자, 인근에도 비슷한 유형의 식당들이 생겨 경쟁이 시작되었고 결국 누가 먼저 쓰러지느냐의 게임이 시작되었다. 나는 싸움에서 패자가 되고 말았다. 하루가 어떻게 저물어 가는지도 모른 채 나무상자에 담겨져 온 아귀들과 싸워야 했던 12년의 시간들이 어느 순간 허무하게 느껴졌다.

왜 그토록 허무했나를 생각해보니 현실이 아닌 꿈속에서도 나의 이름은 들리지 않았다. 그저 어딜 가나 이모, 아줌마, 저기요, 사장님이 나를 대신하는 이름이었다. 분명 꿈이 있었던 소녀였고, 결혼을 해서 행복한 가정을 꿈꾸었던 상상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다시 찾고 싶었다. 주변 지인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그 나이에 무슨 꿈 타령이야.’ 라고 했지만 한번이라도 좋으니 꼭 해보고 싶었다.

(푸드테라피 강사 최애자. 사진=최애자 제공)

꿈을 펼치기 위해 준비하던 시점에 또 한 번의 시련이 찾아왔다. 우연한 계기로 병원을 찾은 남편은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것이다.

“앞으로 길어야 6개월입니다.”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런 일은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라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4개월이 되던 날, 남편은 떠나고 말았다. 그 일에 대한 충격으로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다른 곳에서 또 터지고 말았다. 딸의 시한부 판정이었다. 루게릭병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약이었다. 계절이 변하듯 내 인생에 여러 번의 굴국이 있었지만 지금은 직업훈련교사로서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나에게 다가왔던 시련이 가져다 준 선물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늦은 때란 없다.

내 나이 60세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인생 이모작 다시 한 번 시작해 보길 바란다.

(푸드테라피 강사 최애자. 사진=최애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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