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작 성공수기] 말을 물가로 끌고 가는 일...열정상 '고미애'

김남기 기자
  • 입력 2021.12.10 14:23
  • 수정 2021.12.1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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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경상남도에서 실시한 제1회 신중년 인생이모작 성공수기 공모전 수상작품을 연재한다. 연재될 수상작품들은 퇴직 후 삶 준비, 재취업 성공사례, 사회공헌활동, 재능나눔 경험 등을 공유하고, 신중년 세대의 성공적인 인생 2막을 엿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가는 일

열정상 '고미애'

2018년 8월 초등학교 교사로서의 교직을 마무리하고 정든 학교를 떠났다.

매일 아침, 바쁘게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는 학교로 쇠붙이가 자석에 끌리듯 빠르게 달려가던 삶이 퇴직과 함께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재직 중에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가르쳤던 기억을 떠올려보며, 퇴직을 앞두고 평생 가르치는 일만 해온 내가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마지막 근무지가 다른 학교에 비해 다문화를 가진 학생들이 많은 학교였다. 이 학교에서 근무하며,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겪는 어려움을 보면서 이 아이들이 학교에 잘 적응하며 학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 늘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다문화 가정은 대체로 결혼이민자 가정으로 외국인 어머니와 한국 아빠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말을 배우는 과정에서 엄마의 역할은 매우 큰 영향을 미침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국말을 원활하게 할 수 없는 엄마와 생활하는 친구들은 한국말과 한글을 채 배우기도 전에 학교에 입학해서 일반 아이들과 함께 같은 교육과정으로 공부하게 된다. 이 친구들이 학업을 따라 가기 쉽지 않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교사들은 애써 여러 가지로 노력해 보지만 교사와 아이들의 시간 부족과, 대부분의 시간을 어머니와 보내는 가정환경으로 한글 습득에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다문화가족의 자녀들은 한글 습득의 여려움이 있다. 사진=고미애 제공)

한국에 있는 외국인(다문화)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한국어 교육에 필요한 한국어학,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론, 한국어 교육 실습 등 총 120시간의 한국어 교원 양성과정을 공부해야 한다. 퇴직을 앞두고 온라인 교육으로, 교육실습으로 서울을 오가며, 한국어 교원 양성 과정을 수료하긴 하였으나 가르칠 기회를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경남종합사회복지관을 통해 사회공헌사업 지원자로 신청하고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배정받은 곳은 의창구에 있는 00지역아동센터였다. 방과 후 낮시간에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해 도움이 필요한 아동들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그곳에서 내가 맡은 봉사활동은 교육 프로그램으로, 생활지도, 학습지도 등의 교육 서비스를 통하여 건강한 인성을 형성하고, 학습권이 보장되도록 돕는 일이었다.

매주 화, 수, 목, 3일 아동 하교 시간에 맞추어 오후 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주로 학습지도 봉사 활동을 했다. 이 아동센터에는 다문화 아동들이 제법 있었다. 체계적으로 한글 교육을 받지 못한 친구들은 한글을 읽을 수는 있었으나, 독해, 바른 쓰기 등은 매우 어려운 형편이었다.

학습지도(학교 공부를 따라가는) 전에 해야 할 기초 기본 교육이 필요함을 느꼈다. 학교 진도에 맞춘 문제 풀이식 학습에 앞서 선결해야 할 교육이 한글 문해 교육임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며칠을 보냈다.

(아동센터 아동들의 학습지도 모습. 사진=고미애 제공)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다 보면 다양한 원인을 가진 학습 부진 학생을 만나게 되는데,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체계적이고 바른 한글 교육을 받지 못해 글은 읽을 수 있으나 독해 부족으로 학습을 따라 하기 어렵고 자신감이 없어 흥미를 잃게 되는 경우다.

아동센터 아동들의 학습하는 모습을 보고 실태를 파악해 본 결과,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이 몇몇 보였다. 저학년 아동뿐 아니라 초등 3, 4학년 임에도 기초학습이 부족한 친구들이 보였다. 저학년일수록 교정하기가 쉽고 자신감 회복이 빠를 수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 발생하는 학습결손은 향후 지속적으로 누적되어 학습 진행에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의 학력 격차 문제는 생활과 학습을 지원해 주기 어려운 사회 취약계층의 자녀들일수록 더 커지는 면도 분명히 있다.

어떤 방법으로 접근해야 할 지 고민 끝에, 기초학습 대상 친구를 정하고, 미리 준비한 한글 기초 공부와 기초연산(곱셈구구)공부를 시작했다. 8칸, 10칸 방안지에 큰 글씨로 단어 쓰기와 함께 뜻풀이를 알려주고 받아쓰기를 하고, 곱셈구구 원리를 가르쳤다. 쉬운 것부터 접근하니 재미있어 하기도 했지만 같은 또래의 친구와 다른 기초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한 낙인효과로 인한 약간의 자존심 상함(?)과 함께 학교에서 내주는 과제를 해야 하는 부담으로 오래 계속되지는 못했다.

친구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글을 익히고 문해력을 향상 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현직에 있을 때 ‘책을 켜자! 아침 독서 10분 활동’을 한 기억이 났다. 등교하면 먼저 자유롭게 책을 선택하여 수업 전까지 읽는 활동인데, 정착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긴 해도, 조금씩 책과 친해지고 학기초에 교사와의 약속을 꾸준히 지킨 학생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디지털기기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글자를 접하는 빈도수가 낮아지고 영상, 시각매체에 익숙해져 장문보다는 단문 위주의 글을 선호하고, 읽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 현실이다.

학령기에 종이책을 거부하고 디지털 매체만 선호하다 보면 글을 읽고 정확히 이해하여 핵심을 찾아내는 능력을 기르지 못해 학습에 지장이 생긴다. 사고력과 주의집중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천천히 텍스트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문자에 익숙해지고 내용을 읽어낼 수 있는 기반, 문해력의 기초를 닦는 일은 책 읽기(독서)가 최선의 방법이다.

마침 아동센터에는 책꽂이에 많은 책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책 읽기에 좋은 환경이 잘 갖추어진 셈이다. 억압된 분위기가 아닌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독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복지사와 의논했다. 책 읽기 에 대한 좋은 경험들을 심어주기 위해 센터에 오면 해야 할 공부를 끝내고 간식시간을 가진 후, 여유 시간에 읽고 싶은 한 권의 책을 선정하여 읽기로 했다. 독서에 대한 부담이나 거부감을 주지 않기 위해 독후활동은 읽은 책 목록, 읽은 날짜, 내 생각 등 최소한의 것만 하기로 정했다. 성실하게 책을 읽은 친구에게는 보상도 해주기로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은 책 읽기에 재미를 느끼고 빠르게 적응해 갔다. 코로나19로 바깥 활동을 하지 못해 다투거나 짜증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시끌벅적하던 센터가 책 읽는 시간이 되면 차분하고 안정된 분위기로 변했다. 학습문제집을 해결할 때 풀어야 하는 부담감으로 잘 읽지도 않고 해치우던 습관들이 하나 둘 고쳐지기 시작하고, 차근차근 글을 읽으며, 문제를 해결하기에 애쓰는 모습도 보였다.

문해력 향상의 기초가 되는 독서의 유익함은 익히 알고 있지만, 학령기의 독서지도는 쉽지 않은 현실이다

문해력 향상의 기초가 되는 독서의 유익함은 익히 알고 있지만, 학령기의 독서지도는 쉽지 않은 현실이다. 독서 외에 아동들이 해야 할 것들이 많아 늘 시간에 쫓기기도 하고, 주변에는 책보다 즐거움을 주는 것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힘들지만 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가르치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마시게는 할 수 없다.’라는 격언이 있다. 말을 물가에 데리고 가는 것은 가능하지만 물을 마시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격언의 의미를 교육에 비유해 보면 스승이 제자를 가르칠 수는 있지만 제자가 스스로 깨우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 인 것 같다.

평생 현직에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아름다운 은퇴자인 우리가 세상을 위해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모든 어른이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미래인 자라나는 세대인 이 말들을 물가 까지 끌고 가는 일이야말로 은퇴자인 우리가 해야 할 재능 나눔이 아닐까? 억지로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지만 말을 물가로 끌고 가는 일을 기꺼이 담당하는 어른이 많은 세상을 꿈꾸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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