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채운의 스카이가든13] 천변 풍경

권채운 작가
  • 입력 2021.12.1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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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채운<br>2001년 제4회 '창작과비평' 신인소설상 당선 <br>​​​​​​​소설집 [겨울 선인장] [바람이 분다]
권채운
2001년 제4회 '창작과비평' 신인소설상 당선
소설집 [겨울 선인장] [바람이 분다]

얼굴을 스치는 실바람이 보드랍다. 나는 강 따라 난 산책길을 걷다 말고 징검다리로 들어선다. 어제 이맘 때 어스름이 밀려올 무렵이었다. 부부로 보이는 중년의 남녀가 강바닥을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잡다가 여자가 미끄러져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여자는 강물에 몸을 담근 채 남자를 바라보며 일어날 생각도 않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모르게 덩달아 웃음이 터졌다. 나는 얼른 벌어지는 입을 틀어막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얼마만의 웃음인가. TV의 개그 프로를 보면서도 도무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온통 젖은 몸을 일으킨 여자가 넘어지면서도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남자에게 내밀었다. 올갱이였다. 물은 여자의 정강이 깊이였다. 강이라고 하기엔 그리 깊지도 넓지도 않고, 개울이라 하기엔 강폭이 꽤 넓다. 나는 강이란 말이 좋아서 곤지암천이란 이름이 버젓이 있는데도 그냥 강이라고 부른다.

강에는 올갱이며 송사리며 팔뚝만한 잉어도 가끔 보이고 가물치도 산다. 한여름 내내 등딱지를 말리는 자라가 강물 위에 솟은 작은 바위 위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기도 하고, 잠수하기 좋아하는 가마우지가 강물 속을 휘젓고 다니기도 했다. 올망졸망 새끼를 거느린 어미오리를 만나는 날은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여름 동안 부쩍 자란 오리가 떼를 지어 강물 위를 날아가 물결을 스치며 내려앉는 모습도 보기 좋다. 요즘 가마우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왜가리와 백로가 한가로이 물 위를 거닌다. 후두둑 소리에 고개를 들어 보니 물까치 한 떼가 갈대숲으로 날아든다. 물까치는 긴 회색 꼬리가 우아하다.

나는 징검다리 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가만히 물속을 들여다본다. 올갱이가 있다. 어제 그 사람들이 모두 훑어갔을 텐데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타난 것일까. 물속에 손을 넣어보지만 닿지 않는다. 보기보다 물살이 세고 깊다. 무릎을 꿇고 다시 손을 깊숙이 넣으니 손에 올갱이가 잡혔다. 제법 크다. 욕심을 내어 멀리 있는 것을 잡으려다 하마터면 물속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물에 빠졌으면 산책하던 사람들에게 웃음거리를 선사했을 텐데…… 나는 욕심을 거두어들이고 손이 닿는 데 있는 올갱이만 움켜쥐었다. 징검다리를 옮겨가며 일어났다 앉았다 구부려 가며 올갱이를 잡는데 재미가 들려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올갱이가 있어요? 징검다리를 건너가던 남자가 말을 붙였다. 나는 잠자코 손안의 올갱이를 남자에게 보여 주었다. 전에는 올갱이가 참 많았는데 저 위에 다리를 놓고부터 많이 없어졌어요. 남자는 징검다리를 성큼성큼 건너가 버렸다. 여기서 오래 살았나? 올갱이라고 하는 걸 보면 충북 사람인 것 같은데, 올갱이를 빌미로 고향이 충북어디냐고 물어볼 걸. 나는 그 남자가 징검다리를 다 건너가서 산책길로 들어설 때까지 멀거니 바라보았다. 강이 있는 마을로 이사 와서 일 년 만에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건넨 사람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극심한 우울증이 왔다. 먼저 환경을 바꿔보라는 신경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작년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마을로 이사를 왔다. 역세권이 아니라 대중교통이 불편하긴 해도 아직은 승용차를 운전할 수 있으니 그리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살던 집을 처분해서 낡은 아파트를 사고, 집수리를 하면서 인테리어에 가재도구까지 싹 바꿨지만 여윳돈이 남을 만큼 시골이다. 은퇴자가 살기에는 맞춤이었다. 게다가 집 앞에 강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강에 이끌려 서슴없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아침에 베란다로 나가보면 강물은 수없이 반짝이는 물별로 눈 맞추며 인사를 건넸다. 강가로 이어진 산책길은 뜻밖의 선물 같은 덤이었다. 이사 날짜를 맞추느라고 주변 환경 따위는 계산해볼 여유가 없었다. 이삿짐을 정리하고 강으로 내려갔더니 강을 따라 길게 뻗은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둑 위에는 벚나무가 늘어섰고 가로등이 산책길을 비추고 있어서 아무 때나 산책을 할 수가 있었다.

아파트 단지 안의 마트에서 장을 봐다 혼자 밥을 해 먹고 혼자 산책을 했다. 앞집과도 인사를 트지 않았다. 이따금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지만 그들도 나도 고개만 꾸벅하고 각자 집으로 들어갔다. 코로나 시국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사람을 새로 사귄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누군가와 얼굴을 맞대고 얘기 하고 싶었다. 가뜩이나 사람 사귀기 어려운 어중간한 나이였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환갑나이. 문화센터도 체육프로그램도 모두 멈춰버린 세상에서 낯선 동네로 이사를 한 게 잘못인지도 몰랐다. 이 년여 동안 만나지도 못하고 전화로만 소통하는 친구들과의 통화도 이젠 뜸해졌다. 무슨 잘못을 저질러 외딴 섬에 유배라도 당한 기분이었다. 동네 이름마저도 섬뜰이다.

징검다리 위에 쪼그리고 앉아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어지럽다. 열심히 잡은 올갱이가 한 손 가득이다. 불현듯 된장을 푼 물에 삶은 올갱이의 속살을 옷핀으로 발라 내 입에 쏙 넣어주던 어머니가 눈앞에 있다. 어머니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 보겠다고 어머니의 손때 묻은 세간까지 몽땅 버리고 이사했는데, 어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내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평생을 어머니와 아옹다옹하면서도 서로 의지하고 살아왔다. 건강하던 어머니가 심근경색으로 급작스레 세상을 뜬 게 이태 전이다. 몇 년 남지 않은 정년을 채우지 않고 교직에서 명예퇴직 했다. 우리 모녀의 관계는 애증의 연속이었다. 일찍 혼자가 된 어머니의 지나친 간섭으로 연애다운 연애 한 번 못 해보고 청춘을 보냈다. 이 사람은 이래서 안 되고 저 사람은 저래서 안 되고, 중매자리는 번번이 어머니가 퇴짜를 놓았다. 그러다가 혼기를 놓쳐버렸고, 어머니는 오롯이 외동인 내 몫이었다. 유럽의 소설 속에서나 등장하던 늙은 처녀, 그게 나였다.

어머니의 빈자리가 너무 컸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두문불출하는 나를 신경정신과로 이끌어간 이는 50년 지기 친구였다. 그만큼 했으면 됐어, 넌 이제 그만 이기적으로 살아야 해. 이 나이 먹도록 엄마 뜻대로만 살았잖아. 맞는 말이었지만 습관처럼 몸에 밴 어머니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았다.

소견머리가 올갱이 뚜껑보다 작아서 어디다 쓰겠냐? 귓가에 어머니의 목소리가 쟁쟁하다. 손에 가득한 올갱이를 들여다보다가 벌떡 일어나서 강물 아래로 냅다 흩뿌린다. 빈손이 왠지 후련하다. 다시 쪼그리고 앉아 강물에 두 손을 담근다. 손가락을 스쳐지나가는 물살이 간지럽다. 멀리서 나를 바라본다면 나는 징검다리 위에서 노니는 한가한 풍경일 수도 있겠다. 강물 위로 시선을 돌리니 백로가 한 마리 흰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날아간다. 나는 느릿느릿 섬뜰의 한 풍경으로 녹아들어가며 늙어갈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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