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작 성공수기] 쉰하나에 이모작 인생이 다시 시작되었다...열정상 ‘김미혜’

김남기 기자
  • 입력 2021.12.17 15:29
  • 수정 2021.12.1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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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경상남도에서 실시한 제1회 신중년 인생이모작 성공수기 공모전 수상작품을 연재한다. 연재될 수상작품들은 퇴직 후 삶 준비, 재취업 성공사례, 사회공헌활동, 재능나눔 경험 등을 공유하고, 신중년 세대의 성공적인 인생 2막을 엿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쉰하나에 이모작 인생이 다시 시작되었다
열정상 ‘김미혜’

(쉰하나에 이모작 인생이 다시 시작되었다. 사진=김미혜 제공)

[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내 인생을 새롭게 바꾸어 버린 또 다른 계기가 되 는 일이었다. 그리고 내 인생에도 이모작이란 이런 단어가 통용되고 있었다니 지나고 보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얘기를 하자면 지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봐야 하겠다.

나는 배움에 목말라서인지 늦은 나이 30대에 들어간 대학을 과 수석으로 졸업했었다. 그래서인지 당시 나는 모든 것이 내 손안에서 펼쳐지는 듯 순탄하게 사회복지학과 졸업과 동시에 장애인복지 쪽에서 아동 성교육 선생을 하면서 새로운 직업으로 새 삶이 펼쳐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때 현장에서 근무한 장애인복지 일은 젊은 20대 선생들과 함께 어깨 맞춰 일하기엔 너무도 큰 벽들이 존재했었기에, 2년 만에 그 직업을 그만두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나는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그러다 다시 용기를 내어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게 되었는데 그곳은 원장의 횡포로 인해 또 다른 상처를 입게 되어 2년을 넘기지 못하고 결국 사표를 쓰게 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아직 젊었고, 오뚝이처럼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내 인생을 개척해나갔다.

그래서 한 번 더 도전정신을 발휘해 1년간 간호학원을 다니며 학업에 매진해 자격증을 획득하였고 또 다시 꿈이 이루어지는 듯 요양병원에 간호조무사로 취직을 했었다. 이제 이곳은 생의 마지막 취업 점으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각오로 열심히 일했으나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직속 선배의 ‘태움’으로 난 정말 그 이전엔 겪어보지도 못한 고통의 연속으로 심지어 자살이란 단어까지 생각해야 할 정도로 약해졌다. 그렇게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가지고 4년여의 시간을 버티다 결국은 남편의 간청으로 영원히 사회생활과 단절하기로 마음먹었고 내 인생에서의 마지막 사표를 던지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원래 내 성격은 활발하고 사교성도 좋아 모두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의외로 주위엔 항상 시샘하는 부류가 생겨나고 마음이 여려서 남에게 마음 아픈 말 한마디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세상은 착하고 여린 사람을 알아주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 잔인하게 짓밟아버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인관계로 받은 상처는 사회생활하는 내내 나를 괴롭게 했기에 나와의 사회생활은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남편과 함께 여행 다니며 ‘내 가정과 행복에만 충실하자’하는 생각을 되뇌며 상처받은 내 영혼을 조금씩 치료했다. 그 뒤로 우리 가족은 전보다 더욱더 화목해졌으며 예쁜 추억을 쌓으며 누구나 부러워하는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사회와 연을 끊어버리게 되었고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행복한 사람이 되어갔다. 그렇게 몇 년간 이런 생활을 하다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출근하는 다른 주부들을 베란다로 통해 내려다보고 부러워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던 날들이 많아졌다.

(어르신과 함께 그림 색칠하기를 하고 있다. 사진=김미혜 제공)

그러던 날, 한 건의 문자가 전송되어왔는데 경남인생이모작센터에서 하나씩 알아 가며 배우고 재취업까지 할 수 있다는 문자가 왔는데 호기심 반 설렘 반으로 무조건 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또, 4주간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취업이 목표가 아니라 새로운 배움을 위해 신청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인생 50부터는 터닝 포인트로 재도전 할 수 있다는 그곳 선생님의 확신에 찬 말씀과 용기 주는 따뜻한 기운을 얻어, 쉰 한 살이라는 나이에 또 다른 누군가와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이 4주간의 수업은 정말 행복하고 알찬 시간으로 자리매김했고, 또 그 간의 사회생활로 받았던 상처가 아물고 단단해져서 내가 더 성장한 느낌을 순간순간 느꼈다. 나보다 더 연배가 높으신 분들이 대부분이라서 시기와 질투 없이 편안하게 배려해 주는 인생 선배님들 속에서, 나는 또다시 새로운 기대주가 되어가고 있었다.

연일 새로운 강사님들의 열강으로 매 수업들이 재미있었고 나름의 발표를 유도하게 하여 흥미로움마저 불러일으키기도 했기에 이런 종류의 수업을 좋아하는 나는 자연스럽게 리더 역할을 맡기 시작했으며 다른 사람들도 이런 나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조력자 역할을 하여 응원해 주었다. 그렇게 한 달간의 수업은 알차고 흥미로웠으며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도 몰랐고, 나는 모든 과정을 마치게 되었다.

(어르신 한글쓰기 연습하고 있다. 사진=김미혜 제공)

경남인생이모작에서는 수강생이 수료하고도 문자로 정보도 알려주고 다양한 행사에도 관심을 갖게 안내해 준다. 그러던 어느날 이모작센터 선생님이 취업 정보를 넌지시 알려주면서 원서를 한 번 넣어 보는 게 어떠냐 하고 권유 연락이 왔다. 노인맞춤돌봄 서비스를 하는 생활지원사를 창원도우누리에서 뽑는다는 공고가 났다는 것이었다. 근무 조건도 보건복지부 소속으로 하루 5시간 근무하며 스트레스 받을 상황도 덜했으며, 집으로 어르신들을 찾아가서 말벗을 지원해 드리는 일이나, 힘든 장보기, 소소한 청소도 해드리는 게 주된 업무였다. 그래서 나는 지원하기로 마음먹고 배웠던 이력서 쓰는 법을 활용하여 접수를 하게 되었다. 이 직업을 원하는 지원자들이 너무 많아 불합격할 수 있겠다고 생각되어 편하게 결과를 받아들이자 하였는데 행운의 신은 나의 편이었다. 면접에서 좋은 점수를 얻어 당당히 합격하게 되었고 지금은 생활지원사로 일하게 되었다.

2020년 1월에 입사하여 현재 생활지원사 경력 2년 차로 일하고 있다. 나는 열다섯 명의 어르신들과 라포관계를 형성하며 마치 친정부모님과 자식처럼 지내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여 말벗을 하고, 또 한글을 몰라 평생 한이 되신 분을 위해 한글도 가르쳐 드리기도 한다. 치매예방을 위해 퍼즐 맞추기 놀이와 그림 색칠하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천하고 있다. 어르신들께서 제일 만족해하시는 건 평생 마음에 두고 말하지 못한 옛 기억들, 자기가 처한 상황들을 속 시원하게 풀 수 있게 경청하는 일이다. 어르신들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고맙다” 하며 흡족해 하신다. 생활지원사가 방문하는 날을 기다리시고 반겨주심에 보람도 함께 느낄 수 있어,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생각하며 오늘도 최선을 다하면서 일하고 있다.

(어르신들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고맙다” 하며 흡족해 하신다. 사진=김미혜 제공)

2021년에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발병하여 한시적으로 방문을 하지 못하기도 하여, 어르신들이 불안해하시기도 했다. 지원사가 전화로만 안부를 묻기만 해서 안타깝기만 했다. 올해는 다행히 다시 방문을 할 수 있어 현재는 모든 생활지원사가 안전하게 마스크 착용과 체온계를 갖고 다니며 수시로 어르신들의 체온과 안색을 살피며 안전하게 일하고 있다. 나는 이 일을 시작한 뒤로 실력을 인정받아 현재 선임 생활지원사로 팀원을 이끌어 가고 있다. 어르신들도 새로 생긴 딸을 하나 얻은 것처럼 좋아하셔서 일하는 하루하루가 즐겁고 보람차다. 대부분 기초 생활대상자나 차상위 대상의 독거어르신들인데 방문해 보면 너무 어렵게 살고 계신 어르신들이라 봉림 행정복지센터나 창원도우누리센터에 기부·후원되는 그 무엇이라도 어르신들에게 하나라도 더 받을 수 있게 해 드리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노년기는 앞으로 다가올 나의 미래이기에, 건강을 잃은 독거어르신들의 지금의 삶이 더 안타깝고 가슴 아픈 순간도 있다. 그렇지만 코로나19사태로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처럼 노인 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도 드물다는 사실을 우리 국민들은 자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느 자녀가 한 달에 30여만 원의 용돈을 꼬박꼬박 통장에 넣어준단 말인가? 방문해서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거의 모든 분들이 국가가 고맙다고 말씀들 하신다. 나 또한 이 일을 하면서 자부심도 느끼게 되었고, 나도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모든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생활할 수 있을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더 바람직한지 심도 있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서 경남인생이모작지원센터를 만나 신중년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난 최고야’라고 칭찬해 주고 싶다.

(신중년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난 최고야’라고 칭찬해 주고 싶다. 사진=김미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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