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건희의 산책길㉜] 편지와 음악으로 만나는 드보르작의 일생…산울림 편지콘서트 ‘드보르작-Going Home’

천건희 기자
  • 입력 2021.12.21 13:54
  • 수정 2021.12.2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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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체코의 한 음악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이모작뉴스 천건희 기자] 연극과 연주회의 컬래버레이션, ‘산울림 편지콘서트 <드보르작-Going Home>’을 지난 12월 19일 소극장 산울림에서 관람했다.

<산울림 편지콘서트>는 시대를 초월해 지금도 깊은 감동을 주는 음악가들의 삶과 음악을 클래식 라이브 연주와 연극으로 조명하는 프로그램으로, 2013년에 시작됐다. 그동안 베토벤을 시작으로 해마다 슈만, 슈베르트, 모차르트, 브람스, 차이코프스키를 무대에 올렸다. 이번 <드보르작-Going Home>은 지난해 준비되었다가 코로나 상황으로 네이버TV로만 중계되어 뜨거운 호응을 받았던 것을 이번에 현장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이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무대에는 책상과 의자, 커다란 액자와 피아노 1대, 그리고 한쪽에는 타자기가 놓여 있다. 연극은 드보르작(배우 이창수)과 그를 취재하는 기자(배우 정찬영)와의 대화로 이어진다. 기자는 드보르작이 주고받은 편지 속의 등장인물인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등으로도 변신하며 드보르작이 살아온 삶과 일생을 보여준다.

체코가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 안토닌 드보르작(1841-1904)은 오스트리아 지배에 있던 프라하 근교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비올라를 연주하고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는 가난한 음악가였다. 드보르작은 오스트리아 정부의 국비 장학생 선발에 지원했고,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브람스가 그의 천재적 재능을 알아본 덕분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다. 음악가로서 빛을 발하고 명성을 얻게 된 그였지만, 두 아이를 잃는 비극도 겪는다.

사진=산울림 소극장 제공
사진=소극장 산울림 소극장

드보르작은 뉴욕 국립음악원 원장으로 초대받아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명곡들을 탄생시켰다. 드보르작은 구대륙과 신대륙을 이어주는 음악적 다리의 역할을 했고, 미국 현대음악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드보르작은 평생 보헤미아(체코의 서부지역)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고, 그의 모든 음악에는 체코 민족의 정서가 깊이 배여 있다. 드보르작은 1918년에 이루어진 체코의 독립을 끝내 보지 못하고, 63세로 생을 마감한다.

드보르작의 곡이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연극으로 보여주면서 바이올린(김상우, 장사무엘), 비올라(이승구), 첼로(이하영)의 현악기와 피아노(표트르 쿱카, 히로타 슌지) 연주로 들려준다. 90분 공연 가운데 7곡의 수준 높은 클래식 연주를 45분 동안 감상할 수 있어 행복했다.

사진=산울림 소극장 제공
사진=소극장 산울림 제공

‘꿈속의 고향(Going Home)’, ‘현악 4중주’, ‘슬라브 무곡’, ‘피아노 5중주’, ‘유모레스크’. 아이를 잃은 슬픔이 담긴 ‘집시의 노래’의 첼로 선율은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 4악장은 피아노곡으로 편곡해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연주하여 드보르작의 음악 세계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사진=산울림소극장 제공
사진=소극장 산울림 제공

무대가 반원형이라 관객석과 매우 가까워, 실내악 연주자들이 나를 위해 연주해주는 듯했다. 악기 소리 하나하나가 다 들리고 마스크 속 연주자의 감정도 느껴져 감동이 컸다. 작곡자인 드보르작을 연극을 통해 이해할 수 있어서 그의 음악이 더 특별하게 들렸다.

산울림의 무대는 넓지 않다. 그런데 그 좁은 공간을 연극배우와 연주자들이 함께 잘 활용하게 한 임수현 연출가의 연출력은 놀랍다. 연주와 연극이 교차되면서 전개되는데 관객들은 연극과 연주에 몰입하고 넘나들면서 더 큰 감동을 받았다.

사진=산울림 소극장 제공
사진=소극장 산울림 제공

드보르작은 펜에 잉크를 묻혀가며 편지지에 편지를 쓰고, 미국에서의 자신의 성공을 아버지에게 기쁘게 전달하는 모습으로 인간미를 더한다. 편지를 통해 한 예술가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작업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당시 독립국이 아니었던 체코에 대한 드보르작의 사랑과 애국심이 마음에 남는다.

“예술이 있다면 그 나라가 아무리 작다 하더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훌륭한 음악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고 해도 내 모습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저 체코의 한 음악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명곡 감상의 감동을 선물로 받아 마음이 흐뭇해지는 공연 <드보르작-Going Home>은 소극장 산울림에서 12월 26일까지 이어진다. 내년 <편지콘서트>의 주인공이 누구일지가 벌써부터 궁금하고, 산울림의 <편지콘서트> 프로그램이 계속 잘 이어지기를 소망하는 마음이다.

소극장 산울림에서 홍대입구역까지 이어지는 ‘경의선 책거리’ 산책길은 또 하나의 기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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