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작 성공수기] 저녁 노을을 스케치하며...열정상 ‘박영민’

김남기 기자
  • 입력 2021.12.23 16: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경상남도에서 실시한 제1회 신중년 인생이모작 성공수기 공모전 수상작품을 연재한다. 연재될 수상작품들은 퇴직 후 삶 준비, 재취업 성공사례, 사회공헌활동, 재능나눔 경험 등을 공유하고, 신중년 세대의 성공적인 인생 2막을 엿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저녁 노을을 스케치하며
열정상 ‘박영민’

(경남 생명의 전화 홍보 캠페인하는 박영민. 사진=박영민 제공)

30년이 넘는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퇴직한 지도 벌써 5년이 지났다. 직장에 다니면서 퇴직은 남의 이야기로 흘려들었고, 퇴직 이후의 삶이 없을 것처럼 생활하다가 어느 날 정년을 맞았다. 현실이었지만 쉽사리 인정하기가 힘들었고 마음으로는 무엇인가 계속해야 할 것 같은 생각으로 퇴직 초기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때 주위에서 누군가 그런 내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이제 인생 2막이 시작되었다고 알려주었다.

퇴직 이후의 바뀐 일상을 받아들이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몇 개월 마음을 추스르면서 궁리 끝에 지금까지는 하지 못했던 봉사활동을 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무원연금공단 퇴직공무원 건강지압 봉사활동. 사진=공무원연금공단 제공)

여기저기를 기웃거린 뒤에 처음 접한 활동이 공무원연금공단에서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건강지압과정이었고 지압과 손 마사지를 배웠다. 3개월 과정을 수료하고 공단의 도움으로 뜻있는 사람들끼리 건강지압 봉사단을 조직하여 월 2회 노인정이나 경로당을 찾아 어르신들에게 손마사지를 해 드렸다. 대개 80이 넘어 홀로 생활하는 어르신들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이하면서 주름지고 여윈 팔을 내밀었으며 자식도 마다하는 일을 해 준다며 고맙다고 했다. 퇴직 후 처음으로 서툰 봉사활동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뿌듯함을 느꼈다.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일이 좋았다. 큰마음을 먹고 봉사 범위를 조금 더 늘리기로 했다. 아내는 퇴직 후 외부활동이 거의 없던 사람이 갑자기 몇 가지 일을 할 수 있겠느냐며 걱정을 했다. 그렇지만 봉사를 하면서 마음이 점차 안정되었고 아직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 위로가 되었다.

(진로체험 교육을 하는 박영민. 사진=박영민 제공)

이어서 연금공단과 우정청에서 우표문화 강사과정을 수료했다. 우표를 통해 다양한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배웠다. 주로 지역아동센터에서 초등학교 아동들을 대상으로 방과 후에 봉사활동을 진행하였는데 국가나 역사, 과학과 생물 등 다양한 종류의 우표를 세분하여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고 관련된 우표를 제공하면 그중에서 자신이 골라 나름대로 제목을 적고 우표를 붙인 뒤 관련 내용을 찾아 기록하여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었으며, 돌아가면서 발표를 시키면 아이들은 흥이 나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듬해 (사)한국자원봉사문화에서 실시하는 청소년 진로체험지원 ‘좋은 어른 자원봉사자’로도 활동했다. 김해시에 있는 진로체험지원센터에 소속되어 중학교 자유학기제에 따른 다양한 진로 체험처 발굴, 체험처 안전점검실시, 학생인솔 등을 맡는 일이었다. 학생들은 학교를 벗어나 시청이나 병원, 기업체와 언론사 등을 찾아다니며 여기서는 어떤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현장을 둘러보고 필요한 것은 메모도 하면서 자신의 적성에 적합한지 알아보았는데 장차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칠 것 같았다. 학생들은 때로 네일 아트숍에서 자신의 손톱을 꾸미기도 하고 학원에서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가 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또 다른 봉사활동을 꿈꾸고 있었다. 대개의 봉사활동이 일주일에 1~2회에 그쳤으므로 그렇게 바쁘다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마침 경남 생명의 전화에서 자원봉사 상담원 교육생을 모집하고 있었다. 생명의 전화는 전국적인 조직으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어려운 상태에 놓이거나 열등감, 피해의식, 분노 등으로 스스로 삶을 포기하려는 이들을 대상으로 전화를 통해 1년 365일, 24시간 비대면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오랜 생각 끝에 접수를 했고 기초교육과 전문교육과정을 차례로 수료했다. 그리고 실습을 거쳐 처음 상담 전화를 받았을 때의 그 떨리는 마음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내담자는 자신의 힘든 처지를 원망하면서 오랫동안 말했다. 주춤거리며 겨우 대답을 할 정도였는데 내담자는 나중에 수화기를 놓으면서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놓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고 했다. 그때는 그 말이 왜 그렇게 고마운지 몰랐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늘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해도 언제나 부족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정해진 답은 없을 것이다. 최선의 답은 이미 내담자 자신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그들의 입장에 서서 공감하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부족함을 느껴서 따로 심리상담사 공부를 하여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코로나 19로 인하여 대면 봉사는 당분간 어려워졌다. 그래서 지금은 어르신들이나 학생들과의 교류는 중단된 상태다. 반가움에 눈이 보이지 않을 만큼 환하게 웃어주던 어르신들과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속히 코로나 19가 종식되어 그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다려본다. 다만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생명의 전화는 매주 빠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채 5년도 안 된 기간이지만 봉사시간은 1,500시간을 훌쩍 넘어섰다. 최근에는 코로나 19까지 겹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절박한 현실이 전화선을 통해 전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한 생명의 존귀함을 상기하며 스스로 마음의 끈을 다잡는다. 이러한 일을 겪으면서 퇴직 후 지금까지 달려온 시간을 돌이켜 본다.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기에 서툴기도 했고 때로 실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퇴직 이후의 삶을 주위의 더 힘든 이웃과 나눈다는 생각으로 나름대로 열심히 달려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을 다짐한다.

저녁 시간 멀리 서산으로 저무는 해를 보며 마음으로 노을을 스케치해본다. 하늘을 온통 붉은색으로 곱게 물들이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의 나머지 삶도 저 노을처럼 아름답게 마무리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