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이다⑨ ] 꿈결 같은 야경의 도시 여수, ‘백리섬섬길’을 가다3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12.28 11:39
  • 수정 2021.12.3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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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결 같은 야경의 도시 여수, ‘백리섬섬길’을 가다3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리를 들어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 낭만에 대하여, 최백호

(여수시 교동 ‘도깨비 시장’ 풍경. 촬영=윤재훈)
(여수시 교동 ‘도깨비 시장’ 풍경. 촬영=윤재훈)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전국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오는 도시 여수는, 2017년에 그 수가 무려 1,508만 명으로 제주도를 앞섰다. 인프라도 좋다. 2012년 5월 ‘세계 해양 엑스포 박람회’가 개최되면서 낙후된 교통 접근성 개선에 약 10조 원이 투입됐다. 2시간 50분이면 서울에서 여수 앞바다까지 KTX가 도착하고, 1972년부터 승객을 실어나르기 시작한 공항도 있다.

눈 시린 쪽빛 바다, 임진왜란을 엿볼 수 있는 역사문화유산과 뛰어난 자연경관, 한 상 가득 나오는 맛깔난 전라도 아지매의 손매가 묻은 음식들. KBS ‘다큐 3일’에 나온 ‘낭만포차’가 전국의 유명지가 되고, 2중3중 마땅히 차를 댈 곳도 없다. 버스커 버스커의 ‘여수 밤바다’가 해안도로를 따라 바닷바람과 섞여, 청춘들의 가슴을 들쑤신다. 

대교만 해도 13개가 놓여 해양 벨트를 이루고, 2028년까지 4개의 대교가 더 들어설 예정이다. 여수만을 빙둘러 펼쳐지는 환상적인 야경은 청춘남녀들의 넋을 뺴놓는다. 나폴리의 야경은 ”저리 비켜라“ 할 정도다. 

성웅 이순신 장군이 ‘큰 칼 옆에 차고’ 여수 앞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자산공원에서, 돌산 공원까지는 케이블카가 바다 위에 불빛을 달고 떠다닌다.

그 앞바다에 떠 있는 경도까지는 2024년까지 케이블카가 놓이고, 싱가포르 센토사섬을 능가하는 세계적인 해양관광단지가 건설된다. 1조 5천억 원을 들여 경도 일대 2.14㎢ 부지에 6성급 호텔과 리조트, 골프장, 상업시설, 워터파크, 인공해변, 쇼핑몰 등을 갖춘 아시아 최고의 복합 해양리조트가 들어서는 것이다.

오동도에서 건너다보이는 298.4평방km로 우리나라 5번째로 큰 섬인 남해까지는 해저터널이 놓인다.

(백야 대교에서. 촬영=윤재훈)
(백야 대교에서. 촬영=윤재훈)

오늘은 그중에서 5개의 다리로 이어져, 1시간 20분 이상 걸리던 거리를 단 10분 만에 넘어갈 수 있는, 여수, 고흥 간 ‘백리섬섬길(39.1km)’을 간다. 전남 여수시 돌산읍에서 시작하여 여자만을 감싸며, 고흥군 영남면까지 그림 같은 길로 이어주는 꿈 꾸는 섬들이 있는 곳이다. ‘두 고장을 잇는 거리가 백 리에 가깝고, 섬을 이어주는 길’이라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여수는 한 마리 나비 모양으로 된 아름다운 반도 지형을 가지고 있는데, 바야흐로 ‘환남해권 해양관광 거점 도시’로 도약하고 있다. 365곳에 달하는 풍부한 섬 자원을 활용해 ‘섬 특화 관광’으로 남해안 해양관광 허브를 이루겠다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오는 2026년 ‘세계 섬 박람회’가 열린다. 이 박람회는 7월 17일부터 8월 16일까지 여수 돌산 진모지구와 여러 섬에서 ‘섬, 바다와 미래를 잇다’를 주제로 열린다. 정부가 인정한 국제 행사로, 30개국 200만 명과 6,000명 고용 창출, 4,000억 원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세월 잃은 낚시꾼들. 촬영=윤재훈)
(백리섬섬길 세월 잃은 낚시꾼들. 촬영=윤재훈)

오늘 가는 길에는 그림 같은 섬들이 4개나 있다. '조발도, 둔병도, 낭도, 적금도', 다도해(多島海)에 떠 있는 그림 같은 섬들 중의 하나다.

남진의 노래가사처럼

”저 푸른 바다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사슴 한 마리 키우며,
한평생 살고 싶은 곳이다.“

(꿈꾸는 두 개의 섬은 아름다워라. 촬영=윤재훈)
(백야대교 빼어난 찻집이 두 곳 있다. 촬영=윤재훈)

오늘은 바로 출발점 근처에 있는 ‘백야 대교’를 놓치기 서운하여 그곳을 거쳐 갈 생각이다. 백야 대교는 ‘여자만’ 오른쪽에 있는 화양면 장수리에서 가막만을 만나, 남쪽에서 병풍처럼 둘러싼 섬을 비롯해 ‘여수만을 동그랗게 감싸고 있는, 첫 번째 섬이다.

하얀 철근 구조로 이루어진 대교는 마치 커다란 공룡의 등갈비를 연상시키는데, 길이 325m에 폭이 12m이며, 2005년에 개통되었다. 주탑 없이 아치로 상부를 지탱하는 주전자 손잡이 모양의 아치형 다리로, 최신 공법과 첨단 기술이 집약되었다.

그리고 2028년까지, ‘백야도, 제도, 개도, 월호도, 화태도의 5개의 섬을 잇는다는 계획이 수립되어 있다. 이미 힛도에서 백야도를 잇는 백야대교를 비롯해, 돌산에서 화태도를 이어주는 장장 1,345m의 화태대교도 2015년에 개통되었다. 가히 꿈같은 ’백리섬섬길‘이 연결되어 세계인을 유혹한다.

그동안은 여수시 화양면 장수리의 ’여자만 해넘이 전망대‘에서 팔영대교의 끝마을인 고흥군 영남면 우천리 소의 머리를 닮은 우두(牛頭)마을까지 가려며, 여수시와 순천시, 고흥군을 감싸고 있는 여자만을 빙 둘러 가야만 했다 거리만 해도 약 85km를 80여 분 동안 빙 돌아가야 했지만, 이제 다리가 놓여 30km 정도의 거리를 30분 내외면 갈 수 있게 되었다 여수시 돌산도에도 이름이 똑같은 우두마을이 있다.

한국의 세계적인 다리 기술을 찬탄하며 오늘 77번 국도, 그 길을 간다. 세계에서 5번째로 긴 6,927m의 보령 해저터널을 2021년에 개통시키는 놀라운 나라이니, 머지않아 이 다도해의 섬들 밑으로도 해저터널이 놓일 날이 오래지 않을 것만 같다.

(빼어난 찻집이 두 곳 있다. 촬영=윤재훈)
(꿈꾸는 두 개의 섬은 아름다워라. 촬영=윤재훈)

그 옛날 고등학교 시절, 이 섬에 사는 아이들은 여수로 유학을 참 많이 왔다. 그 당시에는 가난한 섬 어부의 아들들이 생선과 해초들을 팔아 어려운 뭍 유학길을 떠나 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왠만한 도회지 아이들 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땅값이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힛도에서 다리를 건너오자 마자 멋진 두 지점에 찻집들이 있다. 정말 그림 같은 전망이 바로 이런 곳이다. 여기에서 한 몇 년 한가하니 머물러도 참, 좋겠다. 다리 아래로는 가두리 양식장이 떠 있고 세월 잊은 낚시꾼들만 앉아있다. 찻집은 청춘 남녀들로 만원이었으며, 찻값은 서울의 어느 곳보다 가격이 높아 우리를 놀라게 했다.

(”아재여, 오늘 어항이 어때요.“촬영=윤재훈)
(백야도 ”아재여, 오늘 어항이 어때요".촬영=윤재훈)

여수반도의 끝자락인 가막만과 여자만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백야도(白也島)는, 말 그대로 흰 섬이다. 섬의 주봉인 백호산 정상의 바위가 흰 색을 띠어 그렇게 부른다. 멀리서 보면 하얀 색 호랑이가 새끼를 품고 있는 모습으로 보여 백호산이라 하고, 한때는 백호도라 부르기도 했다. 특히 돌산 끝자락에 올라오는 해돋이와 남해의 다도해로 떨어지는 해넘이가 일품이다.

모두 세 개의 봉우리로 되어있는 백호산의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는, 편백나무 숲과 삼나무, 소나무 숲들이 어우러져 있다. 아래로는 백야 마을과 선착장, 등대가 보인다. 세 번째 봉우리는 출입금지 구역이니 참고하기 바란다.

산에 오르기 전 마을 끝에는 이 일대에서 가장 물맛이 좋다는 작은 샘이 있는데, 정상까지 더 이상 약수터가 없으므로 이곳에서 목을 축이면 좋다. 이 산에는 봉수대와 백야산성이 있고, 백야목장 터도 있다. 정상과 주변을 둘러싼 돌로 된 산성은 그 둘레가 약 3km에 달했다. 축조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1592년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로 임명받고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여 그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다고 전해진다. 성벽 기단부 일부만 남아있는데, 도대체 그 시절에 세계로 나갈 길도 없는데, 왜란이 일어나기 얼마 전에 그런 준비를 해 놓았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 만약 호남이 없다면, 이는 국가가 없다)‘라는 명문장까지 남겼는데, 성웅(聖雄)이라는 그 호가 나라가 어려울수록 더 빛을 발한다.

(백야도에서 바라본 가두리 풍경. 촬영=윤재훈)
(백야도에서 바라본 가두리 풍경. 촬영=윤재훈)

봉수대는 축조연대나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위치상으로 동쪽으로는 돌산도 봉수대와 서쪽으로는 고흥 팔영산 봉수대와 봉홧불을 주고 받았을 것 같다. 현재는 원형대로 복원하여 체험 학습장으로 이용되고 있으니, 아이들과 왔다면 들려볼 만하다.

몽돌밭과 짐막골 해수욕장, 화백 해송림이 아름다워 여름에 많은 피서객이 찾는다. 1928년 세워진 백야도 등대는 최초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여수와 목포 간 항로 길잡이 역할을 한다.

등대 입구에는 이곳에서 45년 동안 근무했던 안영일 씨가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조각품들이 있는데, 특히 세 개의 여인상이 묘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또 한 쪽 편에는 꽃밭, 선인장 군락들까지 어우러져 안락한 분위기를 이룬다.

서쪽 해안의 몽돌밭은 많은 여행자가 즐겨 찾는 곳으로, 고등학교 시절 이곳에 사는 고하영이라는 친구의 안내로 섬처녀들과 깔깔거렸던 추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녀들은 지금쯤 무얼하고 있을까?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짙은 섹스폰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리를 들어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 낭만에 대하여, 최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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